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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하이 Feb 26. 2022

당신의 여름은 안녕한가요?

이대로 여름이 영영 오지 않는대도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안녕하세요, 그곳은 안녕한가요?


1.


나는 지금 이상한 마을에 들어섰어요.



이 마을은 무엇인고 하니, 세 명의 지인의 네트워크에 의해 초대된 파티인데요. 이곳에 내가 우연히 발을 들이게 된 것이에요. 나에게 이 마을을 알려준 사람은 다솔과 인애인데, 그들도 어디서 이것을 보고 나에게 연락한 건지 알 수가 없지만, '서희가 좋아할 것 같아요.' 하며 링크를 나에게 던져주었을 뿐이에요.


나는 이곳에 있는 18명의 사람들을 아직 잘 알지 못해요.


나는 타인에게 무관심해요. 특히 대규모 인원일 때는 더욱요. 나는 무리에 속해 있어도 혼자이고 싶고, 혼자이다가도 무리에서 깔깔 대기도 해요. 하지만 이 마을에서 다 큰 어른인 우리는 운영진에게 핸드폰을 빼앗겼어요. 그것이야말로 온전한 서로에게의 집중을 가져다주었죠.  



나는 유독 이곳에서 안전하고 편하다고 느꼈어요.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봤어요.


1. 내가 사랑하는 자연 속에 함께이기 때문이에요. 눈앞에 바다가 펼쳐지고, 우리는 소나무 사이에 텐트를 치고 걸었죠. 사람들과의 어색한 공기마저 자연의 바람이 스쳐 지나간 자리에 포근하게 느껴져요.


2. 바다를 등지고 자기소개하는 시간이었어요. 뻔한 직업이나 나이 이야기 말고, 각자가 풀고자 했던 삶의 과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어요. 다른 곳에서는 왠지 눈치 보이던 비건이나 친환경, 여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어요. 내가 생각하는 가치들을 나보다 더 열심히 일구고 또 지키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었어요.


3. 어차피 여성뿐이었어요. K-눈치를 짚어 던질 수 있었죠. 겉 옷을 훌러덩 벗어던지고 나시만 입고 활동을 해도, 갑자기 빨간색 비키니를 입고 모래사장을 휘어 갈기며 달려도, 아무도 내게 이상한 눈길을 주지 않았어요. 오히려 환호와 탄성이 들려왔죠. 나는 나의 몸을 부정하지 않아도, 나의 살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이런 몸으로 함께 뛰고 걷다가 또 수영하는 마을에 안착했어요. 그것이 참 좋았네요.


자기소개를 한 후에는 텐트를 치고, 눈 감고 걷고 쓰러지는 연습을 했어요. (공식 명칭 : 파쿠르 훈련)


눈을 감고 뒤로 쓰러질 때, 사람들이 나를 받아줬어요. 우리는 신뢰라는 자그마한 쿠키를 선물 받았어요. 달콤했어요.


무서웠지만, 내가 믿을 거라곤 내 뒤에 팔을 받치고 서있는 사람들뿐이었죠. 태어나 처음 해보는 훈련이었어요. 왜 하는지도 모르면서 갑자기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귀여웠어요. 눈을 감고 감각이 깨어날수록 신뢰는 두터워졌어요. 엄청난 차원의 신뢰라기보다는, 넘어지려 할 때 이 사람에게 손 내밀어도 좋겠다 하는 정도의 가벼운 믿음이었어요.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너무 많은 것에 조심하며 살아가지 않나요? 가끔 손 내밀고 또 덥석 그 손을 잡아봐도 괜찮을 텐데 말이에요. 난 그저 그런 손이 필요했어요. 아무 이유 없이 가끔 내밀기도 하는 그런 손이요.



나는 사실 이 마을에 오기 전에 아주 스스로를 질책하고 있었어요.


자연에 있고 싶다면서, 자연의 흐름을 온몸으로 부대끼며 느끼고 싶다면서, 1년이라는 시간을 나를 위해 쉬고 싶다면서, 도시에서 한없이 벌여둔 일들을 쫓아다니느라 자연에 다녀오지 못 한 채로 여름이 지나 가버렸거든요. 도시에서의 연결은 분명 뜨겁고 행복했지만, 내가 형광등 아래서 밤새던 사이 뜨거운 여름 햇살은 식어간다는 소식에 마음이 내려앉았어요. 이렇게 또 하나의 계절을 허투루 보내는구나, 그때를 놓치고 그때를 말하는구나, 늘 이런 식이구나. 그렇게 불행해했어요. 올여름, 이 여름도 또 여름답게 보내지 못했구나.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사실 난 여름을 싫어했고, 바다가 지루했어요.


늘 산이 좋아  바다가 좋아? 하는 물음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산을 택했죠. 어딜 가나 똑같은 풍경의 바다를 왜들 그리 좋아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어요.



사실 제가 남들은 다 잘하던데 어릴 때부터 못하는 게 있었는데요. 바로 자전거와 수영이었어요.  그러다 22살쯤 자전거를 혼자의 힘으로도 타고 또 자유롭게 멈출 수 있게 된 후로 삶이 달라졌어요. 따릉이라는 세계를 즐길 수 있게 된 후 한강을 따라 달릴 수 있게 된 거죠. 페달을 밟으며 귀 옆을 스치는 바람을 느끼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만 빼고 이 재미를 어릴 때부터 누렸구나' 하고 배신감을 느꼈어요. 가장 적은 돈으로 누릴 수 있는 세계 최대치의 자유였죠.


그러니 내가 여름과 바다를 싫어하는 이유도 어쩌면 그저 수영을 못 해서 인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수영을 못 하니 물을 싫어하게 되었고, 바다에 발 한번 담글 일 없는 내게, 해변에서의 휴식은 지루함 뿐이었던 거죠.


아니, 어쩌면 나는 늘 목적지가 있고, 그곳을 향해 끝없이 걸어야 하는 산행에서 더 안정감을 느꼈는지도 몰라요. 늘 삶에는 넥스트 스텝과 목표의식이 있었고, 그것을 위해 달리기 바빴던 사람이니까요. 산이 그리도 좋았던 건 잠깐 쉬더라도 결국에 도달해야 할 정상이 있고, 정상 그 후에도 내려와야 할 여정이 있다는 것이 급한 제 성격에 꼭 맞았기 때문인가 봐요.



그렇게 바쁘게 달리던 제가 돌연 휴직을 했어요. 어김없이 무리한 목표를 세우고 준비해둔 PCT(미국을 걸어서 횡단하는 트레일)가 코로나로 인해 무산되었죠. 그래서 대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한다는 강박 없이 무용하고 쓸모없는 시간들로 촘촘히 채워보자고 다짐했어요. (’ 쓸모없는’과 ‘촘촘히’라는 단어의 모순이 보이시나요?) 오랜 시간을 지나야 만 익숙해지는 것에 시간을 써보자, 늘 잘해온 것 말고 못 하던 것을 좀 해보자. 그렇게 무용하고도 아름다운 시간을 보내보자.라고 다짐하고 첫 두 달은 제주도에서 서핑만 하며 지냈어요. 정말 무용하고 또 유용했어요. 수영을 못 해도 바다에 떠있으면서 두려워하지 않는 법을 배웠으니까요.


그런데 결국 나는 노는 것도 색다르게 놀아야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었어요. 휴직이 반년이 지나자 서울에서 전시를 열고, 책을 쓰고, 도시의 사람들과 시간을 보냈어요. 다양한 창작 그 뒤로 내게 스며든 것은 자연의 햇살 대신 도시의 바다와 형광등이었어요. 분명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한 날들을 보내면서도, 반대로 막상 놓친 것 앞에서는 우울한 마음이 들었어요. 회사에 다니는 친구들도 바다에 가서 수영을 하고 여름휴가를 보내다 오는데, (인스타그램 고놈이 참 문제네요.) 나만 혼자 서울에 남아 있는 기분이 들었어요. 절망스러웠어요. 이것도 저것도 가지려 하다니 정말 욕심쟁이네요.


그 해 여름, 제가 을지로에서 했던 단체전의 주제는 "우리가 원하는 건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어. 바다를 찾아 멀리멀리 가지 않아도, 바다는 도심 한복판 을지로에도, 네 마음속에도 있어.”였는데 말이에요.


사람은 늘 멋진 말로 자신을 꾸며내고, 또 타인의 보이는 모습에 또 한없이 부러워해요. 나는 그런 사람이에요. 나도 이런 내 모습이 참 지질해요. 일상 속에서 바다를 찾자고 전시 내내 외쳐놓고, 나 혼자 바다를 마음껏 다녀오지 못했다고 불행해하다니. (게다가 전시 준비를 핑계로 부산 서핑 여행을 잠시 다녀오기도 했는데 말이죠.)


참 우습죠?


아마 회사원의 숙명일 거예요. 휴가 하루하루가 소중해 허투루 보내기 아깝고, 놀아도 왠지 도시에서 최대한 멀어져야 뽕을 뽑는 그 기분.


전시가 끝나고 혼자 몇 차례 ‘진짜’ 바다를 보러 갔다 왔지만, 왠지 입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어요. 아무리 실내 수영장에서 3개월 초급 수업을 듣고 자유형 배영 평영 기술을 터득했다고 해도, 진짜 바다에서 혼자 수영복을 입고 뛰어들 용기 같은 것은 길러진 적이 없더라고요. 결국 바다에 뛰어드는 일도 나의 기본적인 역량뿐만 아니라 함께 뛰어들어줄 친구라는 사회적 요건까지 갖춰져야만 이루어지는 일이었던 거예요.


바다에서 함께 수영할 친구를 사귀게 해주는 수영 학원 어디 서울에 없나요?


2.


파쿠르 시간이 끝나고 저녁 먹기 전까지 쉬는 시간이 있었어요. 갑자기 몇몇이 '난 바다로 갈래~' 하면서 수영복을 입고는 뛰어들었어요. 저는 잠시 망설였죠. 수영은 무서우니까, 파도는 더 무서우니까.


그런데 어디서 솟아난 용기인지 빨간 비키니로 후딱 갈아입는 나를 발견했어요.


왠지 지금이 아니면 바다에 영영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내가 비키니를 입은 채 바다로 달려 나가자 사람들이 '오~~'하고 소리쳤어요. 마치 늘 비키니를 아무렇지 않은 듯 입어 재끼는 사람처럼 당당하게 보였을 거예요. 그렇지 않다는 걸 아무도 몰랐을 거예요.


두려워서 뛰어들지 못하는 자와, 두렵지만 그럼에도 뛰어드는 자. 이제 나는 후자의 사람이 되었어요. (근엄)



한 차원 더 나은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별거 아닌데, 그 차가운 바다에 발 한 번 담그는 일이 이렇게나 우쭐댈 일인가요?


그것은 분명 흐린 날씨에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동동 떠있는 사람들, 이미 그곳에 있는 것이 대수롭지 않은 사람들 덕분이었을 거예요. 우리는 바다를 점유했고, 그곳은 우리의 세상이었어요.  파도는 생각보다 너무 강했고, 바닥은 생각보다 너무 급하게 깊어졌고, 물은 생각보다 너무 짰어요. 그러니 꼭 장밋빛만은 아니었는데, 그럼에도 제게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영화 같은 순간이었어요. 과장을 조금 보태 정말 영화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의 한 장면이었어요. 햇살만 빠진 버전이었죠. (콜바넴에서 이탈리아의 햇살을 빼면 남는 것은 티모시의 미모뿐...)


아 여름의 맛 -!


이 별 거 없는 걸 놓쳤다고 그렇게 우울해하다니. 나도 드디어 여름이 다 지나고 9월이 되어서야 제대로 여름을 느끼는구나. 전혀 계획하지 않은 방식으로. 내가 만난 지 반나절도 채 되지 않은 여럿의 여성들과 함께. 그저 내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곤 어떻게 더 오래 이 바다에 떠 있을까 뿐이었어요.



이제 조금 알 것도 같아요. 이런 영화 같다고 느끼는 순간들은, 대게 우리가 외부로 향하던 시선을 현재로 가져올 때 일어난다는 것을요.


자전거와 수영을 좋아하게 된 것도 결국은 디지털 세상과의 절대적 단절이 주는 희열 때문이에요. 자전거를 탈 때는 핸들을 양손으로 잡아야 하고, 수영을 하는 물속에서는 더욱 어떤 종류의 생산성 - 그것이 책이든 휴대폰이든 - 도구를 가져올 수가 없으니까요.


그곳에서 우리는 오롯이 나와 바다 그리고 바닷속과 바다 밖 함께인 사람과 풍경에 집중할 수 있었어요. 더구나 나 같은 초보에게는, 당장 3초 후에 밀려오는 파도의 크기만 가늠하기에도 벅차니까요. 그렇게 한순간 한순간 집중하다 보면, 내 시선을 너무 멀리 있는 세상이 아닌 내 바로 앞과 내 안으로 가져오다 보면 선명해져요. 사실은 우리가 목메었던 많은 것들이 그다지 급한 일이 아니었음을, 내가 없어도 세상과 삶과 인간은 잘 굴러간다는 것을 다시 한번 인정하게 되는 거예요.


게다가 그 단절과 집중, 몰입의 시간을, 나만이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기분은 또 어떻고요?  결국 우리 모두의 눈빛이 같은 곳, 또는 각자가 선택했지만 여전히 같은 '현재' 속을 유영하고 있다는 감각. 그 파도 안에서 우린 결국 각자 혼자고, 그렇지만 또 함께이기도 해요. 그러니 내가 원했던 것은 단지 수영이라는 '기술'을 터득해 물리적 자유를 얻는 것 이상이었어요. 오히려 모두가 현재에 함께 집중할 때만 나눌 수 있는 눈빛을 바다라는 자유의 세상에서 함께 누리고 싶었던 거예요. 가끔은 나의 허우적도 옆의 사람의 허우적과 함께 다 같이 이 세상에서 흔들리면서 또 가끔 견고해지기도 하는 것. 삶이라는 홍수 속에 우리 모두 결국 따로 또 함께 있다는 감각. 내가 갑자기 팔을 헛디뎌 물에 잠겨 죽을 지경이 온대도 이중에 한 명은 나를 구해줄 테니 모두 괜찮다 -.


3.

우리는 그렇게 다음 날도 또 바다에서 수영도 하고, 산에 오르기도 했어요. 아참, 바다 앞에서 수박도 먹었어요.


당신에게만 솔직하게 말하는 건데, 나는 과일을 싫어해요. 정말 모든 종류를 거의 다 싫어해요. 이렇게 말하면 마치 다들 간첩이라도 본 것처럼 쳐다보는데, 전반적으로 모두 싫어하고 또 그중에 제일 싫어하는 4대 천왕이 수박, 멜론, 참외, 바나나예요. 그런데도 바닷가 앞에서 수박을 썰어 먹는 사람들의 사이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내 손으로 수박을 꺼내어 먹었어요. 이 또한 왠지 - 내게는 뒤늦게라도 여름을 즐기는 방법이었어요. 바다를 바라보며 술을 한잔하고, 수박을 먹다가 또 바다에 들어가서 수영하고, 아무도 없는 바닷가에서 물속에 들어가 비키니도 벗어보고, 잠시 알몸으로 다 같이 수영을 하기도 했어요. 웃음이 끊이지 않았죠. 알몸으로 바다에서 수영해본 적 있어요? 없다면 말을 말아요.


그건 분명 우리만의 해변에서 여름을 즐겼어요. 이보다 더 여름일 수 없다. 이대로 여름이 영영 오지 않는대도 좋겠다. 하고 생각했어요. 이토록 짙은 또 하나의 여름을 이제야 보낼 수 있게 되었네요. 9월이든 7월이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고요. 이번의 강제 감금은, 나에게는 아주 가장 한복판 여름, in the very midst of summer에요.



바다와 수박.

싫어하던 것이 이렇게 좋아져도 되나요? 사람은 너무 빨리 변하면 죽는다던데, 나 혹시 죽음을 앞둔 걸까요?


그 모든 것을 앞에 두고, 또 나는 아주 오래 춤을 췄어요. 손이 가는 방향을 따라가고,  발가락은 모래와 파도를 움켜쥐었다 폈죠. 때론 휘청거리기도 하면서, 때론 날아오르기도 하면서, 그렇게 모래사장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 속에서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압박감이나 부담감도 없이, 그저 아무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구 춤을 췄어요. 그리고 나는 분명 혼자 춤추고 있었고, 사람들은 그저 수박을 먹으며 모래 위에 앉아 있었지만, 나는 그들이 나를 보는지, 보지 않는지, 나 빼고 재밌는 대화를 하는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으면서, 그저 춤을 추었어요. 그리고 우리가 그 마법의 마을에서 어렵게 빠져나와 헤어지던 날, 나를 향한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어요.


" 나 대신 자유로워 보였고, 늘 그렇게 자유로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서희가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


결국 이런 한 마디를 들으려고 우리, 살아가는 거 아닐까요?



글쓴이 @guridang

2021 WBC리트릿캠프  멤버 서희가 만든 자작곡도 함께 감상해보세요 :)

유튜브 @Conleche 의 '[월간구리당 2월호]결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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