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에서 나는 그녀들을 만났고 비로소 나와 더 친해질 수 있었다.
친한 친구가 강력 추천해서 여름에 사주를 보러 갔었다. 예약을 잡아야 갈 수 있는 다른 데보다 복채도 비싼 철학원이었다.
이 사주는 뭐, 남자는 우습지.
아주 짧은 인사말 후, 나보다 먼저 입장한 내 생년월일시를 두고 사주 보는 분 입에서 나온 첫마디였다. 어쩐지 내가 기억하는 내 삶과 맞지 않는 말 같다. 사주에 의하면 나는 안 그래도 뜨거운 삼복더위에 불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다혈질에, 사랑보다 일을 더 중요시할 확률이 높단다.
난 연애 따위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며 살아온 것처럼 보이는 이력의 소유자다. 20대에 중동 항공사부터 시작해 승무원으로 해외 여기저기서 경력을 쌓았고, 책을 쓰고 번역한 경험이 있으며, 인도네시아 발리를 드나들며 요가를 배우다 요가 가르치는 직업을 갖게 되었다. 파쿠르를 해보니 좋길래 코치 자격을 따서 올해부터는 파쿠르도 가르친다. 팟캐스트도 한다. 판데믹 전에는 한 달이고 두 달씩 훌쩍 외국에 나가 배우고 싶은 것, 놀고 싶은 것을 원 없이 경험하다 오곤 했었다.
자유롭고 독립적인 기질을 타고나 이런 삶을 선택한 척 살고 있지만, 내 삶을 이렇게 다이내믹하게 만든 근원의 힘은 따로 있다. 연애, 정확히는 실패한 연애다. 당시 사귀던 사람에게 ‘너랑은 안 되겠다’는 말을 듣고 차인 뒤 한국을 떠나고 싶어 선택한 게 외국 항공사 승무원이었고, 그 후로도 커리어와 인생의 주요 선택을 결정지었던 내 모든 동기는 박살난 연애였다.
내 나이는 마흔둘이다.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사는 캐릭터로 굳어져서인지 내 주변엔 이 나이 먹도록 결혼도, 연애도 안 하는 이유를 물어오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나이에 따르는 책임감이나 역할에서 벗어난 삶이 가볍다. 그래서 감사해하며 산다. 하지만 종종 붕 뜬 기분이 두려움으로 이어진다. 특히 올해부터는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로 추락하는 느낌까지 든다.
40년 넘게 살다 보니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그게 끝일 것 같다가도 전혀 생각지 못한 맥락에서 오르막을 만나는 기회가 반드시 오며, 이 오르내리는 그래프가 갈수록 고차원으로 펼쳐져 일반적 통찰로 패턴을 예상할 수 없을 뿐 지나고 보면 같은 원리로 반복되어 펼쳐진다는 삶의 법칙을 나름 확신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번 내리막은 성질이 다르다. 어느 쪽으로 머리를 넘겨도 흰머리가 보이기 시작했고, 뭘 하든 몸과 마음의 탄성이 전 같지 않다. 살짝 삐끗했다고 생각한 발목은 해를 넘겨도 회복이 안되어 간단한 점프나 균형 잡기조차 힘들어졌다. 원하는 바가 마음대로 되지 않아 그저 삶이 엉망 같았던 시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내리막이다.
이런 시점에 백패킹 캠핑을 즐기는 활동적인 여성들에게 파쿠르를 가르치러 오라는 요청을 받고 고민이 되었다. 산뜻하게 수락할 수 없는 자잘한 이유는 많았다. 하고 있는 수업을 취소하거나, 아마도 한번 쓰고 안 쓸 캠핑 용품 쇼핑을 해야 하는 등 여러 귀찮은 문제들이 생각났다. 그중 무엇도 ‘이 캠핑 못 가겠다’고 확실히 답할 이유는 주지 못했다. 나 자신도 알 수 없었던 솔직한 이유가 두려움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올해 내내 망가져온 나의 체력, 편안한 호텔 침대에만 익숙한 나의 몸뚱이, 무인도 백패킹 캠핑에서 파쿠르라는 생소한 운동을 배워볼 의향이 있는 미지의 젊은 여성들. 두 달 전 나에게는 이 모든 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을 몰랐다. 정말 나도 몰랐다. 그럼에도 캠핑에 참가해 파쿠르를 가르치겠다고 명해에게 대답을 주었던 이유는 이 캠핑 기획을 이루는 모든 요소 중 어느 하나도 나의 가치관과 어긋나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야말로 날아다니는 어린 남성들 사이에서 매번 신체적 한계를 인지하며 파쿠르를 수련했다. 그럼에도 파쿠르가 그 어떤 심신단련법보다 현대인, 특히 여성들에게 꼭 필요한 치유를 가져다준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나 같은 여성들도 그런 치유를 경험할 수 있게 역할을 하고 싶어서, 그래서 숨이 턱까지 차는 파쿠르 코치 과정까지 하지 않았던가. 게다가 이 캠핑에는 자연, 연대, 모험, 야생으로 돌아가기(rewilding), 불편 감수 등 내가 평소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던 모든 가치가 다 들어있었다. 이걸 거절한다면 나의 언행불일치를 스스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자유로운 삶을 선택했던 것처럼 이번엔 스스로에게 떠밀려 백패킹 캠핑이라는 첫 모험을 선택했다.
트롤리 끌고 다니는 여행만 했던 터라 제대로 된 캠핑용 배낭이 없었다. 그래서 책가방으로 쓰는 대충 넉넉한 배낭에 단출하게 짐을 싸서 집을 나섰다. 집결지인 인천항까지 차를 몰고 가 터미널 입구 가장 코 앞에 주차를 하고 약속 시간인 오전 7시 30분에서 5분을 넘겨 허둥지둥 들어갔다. 기획자인 명해와 지영은 얼굴만 아는 사이라 무슨 말로 인사를 할까 잠시 고민했던 머릿속이 순간 아득해졌다. 터미널 의자에 모인 아마도 내 일행으로 보이는 여자들이 어마어마한 배낭을 짊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면 내 배낭은 소풍가방이었다.
그들이 내 짐을 대신 져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덕적도에 도착해 알 수 있었다. 내가 가볍고 단출하게 캠핑에 나설 수 있었던 건 누군가 내 침낭과 텐트를 자신의 배낭에 넣어왔기 때문이다. 열여덟 명이 일박이일 동안 소비할 각종 식재료부터 관악산 생막걸리, 맥주며 모닥불용 땔감까지 그 무거운 짐을 산더미같이 배낭에 담고 새벽같이 집을 나섰을, 지금은 너무 친해진 친구들의 얼굴을 떠올리니 가슴이 뭉클하다.
배에서 내려 대충 짐을 나눠 받고 캠핑 지점까지 한 시간 정도 걸어야 했다. 아직 소개나 인사를 나누기 전인 일행 한 명이 내가 맨 배낭을 뒤에서 번쩍 들어 올린다.
언니, 끈이 이렇게 길면 무겁고 허리 다쳐. 큰일 나요. 줄여 줄게요.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언니?
직업이 미군인 이 친구 이름은 하영이고, WBC 기획자 셋 중 하늬의 동생이다. 군장을 지고 장거리를 걷는 훈련에 특화된 군인이라서일까? 하영은 정말 씩씩하게 잘 걸었고, 잠시도 쉬지 않았다. 나 역시 체력이 월등한 남성들과 운동하면서 한번 선두에서 멀어지면 굉장히 힘들어진다는 것을 체득했기 때문에 무조건 하영과 맨 앞에서 걸었다. 하영은 초면에 호구 조사하며 내 인생 연대기를 맞춰나갔다. 내 삶에 대해 이렇게 열정적으로 궁금해하는 사람을 마지막으로 만났던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언니, 여러 직업을 해봤고 외국 생활도 했고 또 요가도 가르치다가 이제 파쿠르까지 하잖아요. 자, 그러면! 언니는 지금의 스스로가 만족스러워요? 그니까 지금이 후회 없는 최선의 선택인 것 같아요?”
바닷가에 도착해 한참 뒤에 걸어오는 일행을 기다리며 생각지 못한, 고민되는 질문을 받았다. 아직도 내가 완전히 만족할 자리에 서 있지는 않은 것 같다고 대답했더니, 이번엔 꿈이 뭔지 묻는다.
“우와, 이런 질문 신선하다. 물어봐줘서 너무 좋은데 딱 떠오르지 않아요.”
“그러면 언니, 저는 언니가 군대를 가면 좋겠어요. 걷는 거 보니까 행군도 아주 잘하실 것 같고, 군인 진짜 딱이다!”
하영의 엉뚱함에 웃음이 터졌고, 이내 우리 일행이 하나 둘 도착하기 시작했다. 다들 별다른 말을 나누지 않고 소나무 숲에서 덕적도 바다를 바라보며 어떤 사람은 간식을 먹고, 어떤 사람은 사진을 찍었다. 어떤 기준으로도 ‘기성세대’인 나는 나보다 어린 한국 여성에게 가지고 있는 단적인 이미지가 하나 있다. 놀란 토끼처럼 눈을 크게 뜨고 틴트 바른 입술을 뾰로통하게 내밀어 ‘insecure’한 표정으로 찍은, 필터를 아주 강하게 먹인 셀카다. 나는 이게 몸서리치게 싫다. 왜 그럴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아마 뽀송하게 어려 보이는 외모로 귀여움 받을 뿐 자기주장이나 능력으로 주목받지 못하는 아시안 여성의 나약한 이미지가 떠오르기 때문인 것 같다. 외국 생활이 길어질수록 나 자신은 쌈닭으로 변해갔지만 이런 아시안 여성의 무력한 이미지는 사실 나 스스로를 바라보는 뿌리 깊은 관점이라는 사실을 최근에 깨달았다.
어려서부터 일단 윗사람 말씀 먼저 다 듣고 무조건 ‘네’부터 한 다음에 내 주장을 하려거든 요령껏 ‘애교 있게’ 하면 된다고 배웠던 내가 다국적 환경에서 일을 하게 되었을 때 겪었던 좌절감은 상상을 초월한다. 아랫사람 또는 여성이라는 역할을 벗어나 성숙한 어른으로 기능하고 행동하는 법 먼저 터득하지 못한 대가는 컸다. 적절한 중심을 찾지 못하고 조용한 아시안과 눈에 뵈는 게 없는 쌈닭 사이를 오가며 피곤한 외노자 생활을 했었다.
같은 캠핑에 왔지만 상투적인 관계와 친목 과정에 빠지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지혜로운 눈으로 먼 하늘과 바다를 보는 여성들 모두 성숙한 어른 그 자체였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내가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무엇이 가능하고 나는 어떤 어른이 될 수 있을지 희망을 보는 기분이었다.
자기소개 시간에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 자신만의 방법으로 스스로 정한 길을 가는 단단한 어른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캠핑 동안 많이 친해졌지만 우리 중 몇 명은 도대체 뭘 해서 먹고 사는지 나는 아직도 정확히 이해를 못 하겠다. 없는 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라 그렇다. 파쿠르 정신과 통하는 데가 있다. 그래서인지 파쿠르 수업 내내 매 움직임 세션마다 내 의도보다 더 깊은 이해와 교감이 이뤄졌다. 파쿠르 코치로서 가장 인상적인 수업이었다.
“저는 파쿠르 코치이기 전에 나이에 따른 급격한 변화를 경험하고 있는 여성이에요. 지금까지는 몸으로 어떤 목표를 달성하려고 훈련해왔어요. 그런데 이제 내 몸이 끝없이 발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어요. 우리가 나이는 다르지만 같은 여성이고, 여성의 몸에 오는 다양한 신체 변화를 함께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수업 준비하면서 굉장히 마음이 편했어요. 내가 나에게 주고 싶은 파쿠르를 여러분과 수업으로 나눠보겠습니다.”
파쿠르 수업을 소개하는 동안 여기저기서 끄덕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몸풀기 첫 번째 주요 움직임은 파트너와 짝으로 하는 가벼운 발차기와 스쿼트를 이용한 피하기였다. 발차기는 공격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의도에 따라 상대방의 운동을 도와주는 언어가 될 수도 있다. 모든 포유동물은 어릴 때 싸움을 통해 관계와 소통을 배운다. 싸우면서 상처 주지 않는 방법 역시 싸움을 통해 배운다. 난 실제로는 싸우지 않으면서 상처만 주도록 배웠던 것 같다. 그 결과 상대방의 눈을 정면으로 보고 대결할 줄도 모르지만, 진심으로 용서하는 것도 서툰 어른이 되었다. 참가자 열일곱 명은 내 의도를 꿰뚫는 것처럼 짝마다 자신들만의 리듬으로 공격과 수비의 속도를 맞춰나갔다. 상대방의 발이 어디서 날아오는지 정확하게 응시하고 피하는 동시에 상대방에게 필요한 발차기를 주고 있었다. 진지한 가운데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미니 싸움을 몸풀기에 넣기 정말 잘했다는 생각에 뿌듯했다.
파쿠르 기초 훈련에 꼭 들어가는 요소는 단연 네발 걷기다. 스포츠 과학과 피트니스 업계도 네발 움직임에 대한 과학적 연구에 뛰어들기 시작해 인지능력 및 관절 가동성, 협응력, 위치감각 등 그 효용이 널리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네발 걷기가 꽤 힘들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훈련이니까 마라톤 같은 네발 걷기를 울며 겨자 먹기로 하는 입장에 가깝다. 그래서 처음 해보는 사람들에게 네발 걷기를 가르칠 때는 겸연쩍은 기분이 들곤 한다. 내가 방어적으로 네발 걷기의 효용부터 늘어놓는 이유다. 이번에는 긴말할 틈도 없이 참가자 모두 우르르 뒤를 따라왔다. 회를 거듭할수록 코치인 나보다 훨씬 앞서는 사람도 늘어났다. 제니퍼와 하니는 번외 배틀까지 할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이런 수업은 처음이다.
시각이나 촉각을 차단하고 상대방을 의지해 장애물을 극복하는 세션과 두려움 극복을 주제로 한 트러스트 폴(Trust Fall, 한 명이 높은 곳에서 뒤로 넘어지면 팀원들이 받아주는 게임)에서도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내 파쿠르 수업의 모든 순간을 마음에 담아 가려는 듯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소감을 나누며, 한 번이라도 더 하고 싶어 했다. 두 시간이 지나 마무리하려고 하자 아쉬워하는 탄성이 나왔다. 그래서 예상에 없던 점프 레슨까지 하게 되었고 열여덟 명 모두 동시에 착지하고 신나게 웃는 것으로 파쿠르 수업을 마무리했다. 올해 들어 어떻게든 내리막인 것 같았던 인생의 흐름에 그동안 경험한 적 없는 방식으로 변화가 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반나절 동안 열일곱 명이 내 마음속 이야기를 여러 방식으로 들어주고 느껴줬기 때문일 것이다.
비가 한바탕 지나간 밤하늘에 별이 반짝였고, 우리는 모닥불에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내 이야기를 하는 것과 같다.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내 마음을 듣는 것이다. 일제히 약속이라도 한 듯 섣부른 판단이나 조언을 하지 않고 듣고, 더 듣고 싶어 했다. 서로의 이야기에 끊임없이 질문이 이어졌다. 어둠 속 별빛처럼 모두가 조용히 빛났다. 밤이 깊어져 미리 들어와 자고 있던 텐트 메이트 은비 옆에 누우니 벅찬 기분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각자의 빛깔로 아름답게 빛나는 사람들 속에 나도 있었다는 사실이 알 수 없는 힘을 주었다.
“새벽에 제가 들락거려서 자는데 방해됐죠?”
해 뜰 때까지 숙면한 나로선 금시초문이다. 알고 보니 새벽에 비바람이 몰아쳐 우리 텐트가 다 뽑혀 날아갈 뻔했고 은비 혼자 나가 비바람 난리 속에 텐트를 고쳤다. 나는 반쯤 날아간 텐트 안에서 세상모르고 잘도 잤다. 사실 우리 텐트 부실시공의 원인은 나다. 내가 친 텐트다.
명해는 사람들 자는 동안 커피와 차를 끓이고 음식을 만들었다. 나에게 이소가스 불 붙이는 방법도 가르쳐줬다.
“처음에 캠핑 다닐 때 이걸 못해서 불은 항상 누군가 붙여줬어요. 그런데 배우면 할 수 있는 거더라고요. 로리 언니도 이제 배웠으니까 불 붙일 줄 아는 거예요. 다른 사람 가르쳐줄 수도 있고.”
이렇게 일박이일이 짧게 느껴질지 몰랐다. 오전 일정을 마치면 다시 배를 타고 별빛도 이야기도 없는 공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게 아쉬웠다. 지영이 나에게 오전 요가 세션을 부탁했다. 원래 오전 요가는 지영이 준비했는데, 참가자들이 더 폭넓게 경험할 수 있도록 우리가 나눠서 수업을 진행하면 좋겠다고 했다. 흔쾌히 수락하고 물이 빠진 바닷가 모래 위에서 아침 요가 수업을 했다. 내 뒤를 이어 지영이 싱잉 볼을 가져와 진행한 명상까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아쉬운 건 돌아가야 한다는 사실뿐.
그런 주책맞은 미련이 하늘에 닿았는지 명상 끝나고 폭탄 발표가 있었다. 기상악화로 오늘 배가 뜨지 않는다는 거다. 나는 간단히 스케줄 조정을 할 수 있었지만 회사원, 사업하는 사람, 복귀해야 하는 군인, 당장 프레젠테이션 발표해야 하는 사람 등 정말 곤란해진 사람들이 많았다. 이제야 밝히는 말이지만 이박삼일 간 덕적도의 모든 선박 운항이 멈춘 원인은 한동안 나에게 무심했던 하늘이 보상으로 내 바람을 너무 잘 들어줘서일 수도 있다. 노트북 하나 없이 섬에 발이 묶여 고생했던 친구들에게 뒤늦게 미안함을 전한다.
하늬가 일사불란하게 대책을 세운 덕분에 캠핑을 정리하고 실내에 화장실과 부엌이 있는 펜션으로 바로 이동할 수 있었다. 창틀과 화장실 타일 바닥에 묶은 때가 눌어붙어 있고 보풀이 일어난 이불과 배겟잇은 마지막에 언제 세탁했는지 알 수 없다. 난 이런 곳을 정말 싫어했었다. 그렇지만 덕적도에서는 비를 피할 수 있는 실내에 모여 형광등 아래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있는 게 정말 좋았다. 음식에 흙이나 빗방울이 들어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호사스럽게 느껴졌다. 사람들이 빈 방을 두고도 거실과 부엌 바닥에 옹기종기 모여 잤다. 서로 샤워 순서를 양보하고, 설거지도 자기가 하겠다고 싸웠다. 특히 솔미는 절대 설거지를 양보하지 않았다.
대부분 혼자 다니며 일을 하고, 여행도 혼자 다니는 내가 열일곱 명의 여성들과 삼 박 사 일 동안 방을 나눠 쓰고, 음식을 나눠먹으며 오히려 내 공간이 넓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이 연결된 사람들과 함께 있기에 저 넓은 세상도 내 것같이 느껴지고, 누군가 내 공간에 들어와도 편안해진 것이다.
덕적도에서 열일곱 명의 어른들과 보낸 삼 박 사일은 이후의 내 삶을 바꿔놓았다. 나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한 가치인지 생각하며 실천하는 삶을 살게 되었으며, 안락한 호텔 침대보다 별빛 아래 모닥불을 쬐며 사랑하는 이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행복하게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늙어 보이지 않으려고 가 아니라 지극히 내적인 동기로 건강에 노력을 기울여 두 달 사이에 기력을 회복하다 못해 흰머리 뿌리에서 검은 머리가 올라올 지경이다! 또 하나는 인스타 보는 게 그렇게 재밌을 수가 없다. 캠핑에서 흙 묻은 파프리카를 나눠먹던 친구들이 도시에서는 어떻게 사는지 볼 때마다 반갑고 사랑스럽다.
나는 WBC 캠프를 통해 열일곱 명의 친구와 가까워졌고, 무엇보다 나와 더 친해졌다. 다양한 빛깔로 나를 비춰주는 친구들을 통해 가장 건강한 방법으로 나를 알아가며, 화해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품을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기회가 인생에 또 있을까? 벌써 다음 캠핑이 기다려진다.
글쓴이 @rory_suk
모험하는 여성들의 아웃도어 커뮤니티 Women's Basecamp(WBC)는 여성들에게도 야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모험의 경험이 조금 필요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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