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다리엔 모기 자국이, 내 마음엔 그녀들이 남아있었다.
떠나기 전 나에겐 큰 방해꾼이 있었다.
이 시국에 꼭 가야 하냐고, 같이 가는 사람들은 대체 누구냐고 의심에 의심을 하는 한 남자.
남편이었다.
허락보다 용서가 쉽다고 했던가. 나는 벌써 참가비를 입금해버렸다고 하곤, 나도 누구누구가 오는지는 잘 모르는데 일단 느낌이 좋다고 둘러대고 캠프에 합류했다.
낯선 곳에, 낯선 이들과 캠핑을 가야 하는데… 나와 나를 초대한 호스트를 제외한 n명의 여인들. 어떤 목적으로 왔는지 도저히 알 수는 없었지만 용기만은 출발도 전부터 인정해 주고 싶었다. 여름의 더위가 가시기 전인 9월 초, 굳이 버스가 있는데도 땀을 한 바가지 쏟으며 사이트까지 걸어가야 했던 그 길이 너무나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 와중에 사진을 찍으며 여유를 부리는 사람, 자신의 모험담을 풀어놓는 사람, 서로의 연결고리를 자연스레 찾는 사람, 내 무거운 생수통을 들어주던 사람들도 있었다.
아, 나 여기 즐기러 온 거였지?
아주 다양한데 또 서로 잘 통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오늘 적응을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 더 컸다.
3박 4일이 되어버린 1박 2일은 내가 단기간에 모기에 가장 많이 물린 시간이기도 하다. 캠핑은, 특히 백패킹은 절대로 낭만적이거나 감성적이지만 않다는 것을 이번 시간에 배우기도 했다. 모기에 물릴 거라곤 상상을 못 하고 기피제를 뿌리지 않아서였을까, 괜히 멋 부리고자 딱 달라붙는 레깅스를 신어 땀 냄새를 맡고 나에게 달려든 것일까. 오래간만에 먹잇감을 만나 신났을 모기 XX들을 생각하니 너무나도 얄미웠다. 깨끗하지 못한 손으로 긁다 보니 어느덧 아기 주먹만 하게 부어버린 내 다리를 보며 내 존재가 어찌나 불쌍해 보이던지. 요즘의 말로 스불재였다. 스스로 불러일으킨 재앙. 그러게 편안하게 에어컨 바람 밑에 있으면 되는데, 누가 캠핑을 가자고 부추긴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고집을 피워 벌을 받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그 간지러움은 캠핑기간 내내 쉽사리 사그러 들지 않았다. 하지만 모기 물렸다고 유난 떨던 나에게 끊임없이 고마운 손들이 내밀어졌다. 차가운 토마토 파스타 통을 전해주며 이걸로 냉마사지를 해보라던 M님. 모기약은 아니지만 어쩌면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며 수제 만병통치약 크림을 내밀던 A님. 나 때문에 모기약을 소지했다는 게 커밍아웃되어 튜브 용기가 다 뜯어질 때까지 희생되었던 B님의 모기약은 아마 이제 더 이상 쓸 수 없을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
내 고통을 감소시켜주었던 조그마한 관심들이 참 오랜만이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무의식적인 즐거움으로 나를 인도하여 간지러움을 잠재워준 다양한 경험들, 세상에서 가장 맛있고 따듯했던 비건 요리들, 좋지 않은 소식을 듣고 불안감을 혼자만이 감당한 채 우리에겐 마음의 평화를 주려했던 명상시간, 적당한 움직임을 준 스트레칭과 파쿠르, 수영…
하나하나가 모두 다 알찬 순간이었고 모기에 물린 서러움을 보상받는 시간이었다. 본인들의 이야기를 아낌없이 풀어주었던 수다타임은 처음 만난 사이라는 게 무색하게 너무나 즐거웠어서 사실 돌이켜 보면 나는 솔직히 덕적도의 풍경이 어땠고, 바람이 얼마나 세었나는 크게 인상 깊지가 않다. 자연을 만나러 가서 더 매력 넘치는 친구들을 인생을 만났기에.
내 다리엔 모기 물린 흉터가, 내 마음속에는 그녀들과의 인상 깊었던 추억들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들의 용감하고, 의식 있고, 건강한 생각과 행동들이 내 정신과 행동에도 깊게 물들어 나를 조금 변화시켰는데, 언젠가는 그 얘기에 대해서도 한 번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오늘도 나는 그날들을 추억하며 혼잣말을 하게 된다.
정말 안 갔으면 어쩔 뻔했어!
글쓴이 선진 @tout_sur_gr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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