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하이 Mar 27. 2022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누가 좀 정해줬으면 좋겠어

어떤 선택을 하든, 너의 삶을 응원해

수많은 선택의 시간들이 있었다.
생각해보면 나는 항상 남들과는 조금 다른, 늘 의외의 선택을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남다른 행보를 하는 나를 약간의 동경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현실이 얼마나 무섭고 냉혹한 지 이해시키려 하며 세상을 모르는 애송이 취급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렴 상관은 없었다. 난 그저 좋아하는 일,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뚝심 있게 나만의 세계를 천천히 만들어 나갔다.


친구들은 종종 그런 나를 보고 흥미롭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람이는 나중에 뭐가 될지 너무 궁금해"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리고 난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웅, 나도 내가 너무 기대돼



무언갈 선택할 때 두려워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선택할 수 있었던 건 아마 일찍이 생긴 꿈 때문일 것이다.


등 떠밀려 시작한 미술 봉사에서 배웠던 건 내가 쉽게 할 수 있는 일들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고 행복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서툴게 그린 고등학생의 그림을 보면서도 행복감에 젖어있던 아이들의 표정이 잔잔하지만 또렷하게 마음을 울렸다. 그들의 미소에 어느새 나도 스며들었다.


어쩌면 이 순간을 위해 미술을 하게 된 건 아닐까 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때부터 뭐가 되고 싶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줄곧 이렇게 답했다.


되고 싶은 건 없고요. 꿈은 있어요.
 
난 누군가에게 내가 가진 걸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카메룬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강한 확신과 기대로 떠난 곳이었다. 근거 있는 자신감이었다.


언제나 그랬으니까.

이곳에서도 새로운 길을 찾을 것이고, 고민 없이 선택하고 걸을 것이 확실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전혀 다르게 나의 카메룬 생활은 빛이 들지 않는 깊은 골짜기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매일 나의 한계를 체험하며 이곳에서의 나의 존재가치에 대한 끝없는 의심, 수많은 의문들이 나를 집어삼켰다. 다 타버린 촛불 심지에 꾸역꾸역 불을 붙이려고 하는 듯 흐릿해져 가는 첫 마음을 붙들려고 발버둥을 쳤다. 답 없는 문제 앞에 나는 좌절했다.


내가 쫓던 눈부신 청춘, 찬란한 꿈, 모든 것이 멈춰버렸다.


"난 더 이상 이 일을 할 수 없을 거 같아. 난 이제 뭐가 돼야 하는지 모르겠어"  

카메룬을 떠나기 전날 나는 한참을 울었다.

그렇게 나의 20대는 끝나가고 있었다.




오랜만에 겪는 한국의 겨울은 많이 추웠다.

카메룬에서 돌아온 후 어지러운 마음을 채 돌보지 못한 채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전혀 다른 길을 가려고 하는 나에게 취업 준비는 모호한 선택의 연속이었다.

전과는 달리 선택 앞에 수없이 망설이고 저울질하고 있었다.


후회하지 않을 선택을 하고 싶었고, 시간도 에너지도 그 어떤 것도 낭비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선택의 대가는 또 얼마나 무거울까 상상하니,

선택이 여간 부담스러운 게 아니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를 선택하는데도 며칠, 혹은 몇 주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고 가끔은 두통까지 동반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왜 답은 없는 거냐며 신에게 따지듯 묻기도 했다.

내가 믿는 신은 침묵 했다.


그렇게 반복되는 선택 앞에 지쳐갈 때쯤 어렵게 취업에 성공했다.

다행히 회사생활은 평범하고 안온했다.


하지만 기쁨과 안정감보다는 풀리지 않는 우울감과 무력감이 나를 채웠다.

더 이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내 삶이 두려웠다.



건너 건너 WBC를 알게 된 후에도 지원을 한참 망설였다.

친구가 보내준 링크를 들어갔다 나왔다를 수차례 반복했고, 그렇게 며칠을 흘려보냈다.

전에 없던 알 수 없는 두려움을 겨우 떨쳐내고 다시 들어간 신청서 링크엔 못 보던 문장이 쓰여있었다.


"신청이 마감되었습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순간 철렁했다. 못 간다고 하니 더 가고 싶어졌다. 아니 어떻게든 가야만 했다.

밑져야 본전이니 일단 보내나 보자.. 안되면 말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연락은 오지 않았다.

아 고민하던 시간에 지원을 했어야 했는데.. 좀 더 절박함을 어필할 걸 그랬나. 후회하며 일상을 보내던 어느 날, 카톡이 하나 왔다.


가람님, 함께 하실 수 있나요?



자연 속에 던져진 그녀들은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 제일 반짝거리는 사람들이었다.

덕적도로 들어가는 배 안, 18명의 사람들은 어색하지만 호의적으로 서로에 대해 자연스럽게 나누고 있었다.

나는 그들 사이에서 어찌할 바를 몰라 그저 천천히 관찰하는 걸 택했다.


배낭 꽤나 싸 봤다고 자부하는 나였지만, 백패킹을 위한 배낭의 무게는 차원이 달랐다.

그 무게를 짊어지고 배에서 내려 꽤 긴 거리를 걸어 덕적도 한 바다 앞에 도착했다.

바다가 햇빛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다들 힘든 건 금방 잊은 듯했다.



다들 한동안 바다를 바라보았다.

짐을 풀고 나자 사람들은 각자의 스타일대로 자연 속을 누볐다.

그 공간은 금세 우리의 컴포트 존이 되었다.


핸드폰의 빈자리는 그녀들의 이야기와 자연의 풍경으로 꽉 채워져서

어느 순간 핸드폰이 없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렸다.


우리의 이야기는 밤이 되자 더 깊어졌다.



그녀들에게는 내가 잃어버린 그 무언가가 여전히 있었다.


자신들의 의지를 따라 자신이 원하는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에게서 나오는 자신감.


어쩌면 나처럼 무언가를 포기하고 살고 있을지도 모를 사람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힘들고 느리고 더뎌도 정확하고 분명한 보폭으로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무너졌던 나의 자존감도 새로운 삶을 향한 의욕도 다시 차오르는 듯했다.


늦은 밤까지 이어지는 그녀들의 이야기들은

17개의 너무 설레고 새롭고 낯선 여행지를 산책하는 것 같았다.

내가 스스로 그어놓았던 삶의 경계선들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었다.




캠핑을 다녀온 후 나의 상황이 크게 달라진 건 없다.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여전히 나를 드러내는 일에 서툴고, 용기가 샘솟지도 않았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정답은 없다는 것,

각각의 방법이 있다는 것,

나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로든 떠날 수 있다는 거.


봄이 오면 다시금 봉오리를 피우는 꽃과 같이

깊은 나락에서 빠져나와 다시금 봉오리를 피울 에너지와 가능성이 생겼다.


무엇을 선택해도 괜찮아.
답은 없어, 그냥 너의 선택일 뿐이야.
 
어떤 선택을 하든 너의 삶을 응원해.
 

덕적도에서의 시간들은 나에게 그렇게 말해주었다.




여전히 친구들은 나한테 말한다.

"가람이는 나중에 뭐가 될지 너무 궁금해"

나는 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나는 그냥 내가 되겠지.


글쓴이 가람 @lululalga_


모험하는 여성들의 아웃도어 커뮤니티, Women's Basecamp(WBC)는 여성들에게도 야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모험의 경험이 조금 필요할 뿐이죠.

자연 속에서 나를 마주하고 몸으로 연대하는 각종 밋업 및 라이프 리트릿에 함께하지 않으시겠어요? WBC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womensbasecamp를 팔로우하세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