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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하이 Jun 28. 2022

다시 삶의 주인이 되는 여행

현진, 우리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정말 할 수 있어!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철저히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원하는 선택을 하며 살아왔다.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초등학생 땐, 부모님을 졸라 미술학원을 등록해 다녔다. 인기 많은 영화감상부를 뒤로하고 꿋꿋이 공예반에 들어가 몇 명 없는 교실에서 바쁘게 손을 움직였다. 외국어 하나만은 내 힘으로 마스터해보고 싶어서 방과 후 거의 모든 시간을 일본어를 공부하는 데 썼다. 부산에 있는 대학교를 간 건 가족과 떨어져 있고 싶어서였고, 그중 1년은 일본에서 보냈다. 졸업 후엔 호주로 바로 날아가 6년을 살고 나는 여기, 한국에 와 있다. 


지금까지 나만의 속도로 살아왔고 모두 내가 좋아서 벌인 일이었다. 

느슨하게 살았던 히피 타운에 비해 한국에서의 삶은 촘촘하게만 느껴졌다.


TV와 신문에선 주식이나 불평등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지하철역의 사람들은 빠른 발걸음으로 앞만 보며 내 어깨를 스쳐 지나갔다. 나는 자꾸 옆을 보며 내 삶의 속도와 타인의 속도를 비교를 하기 시작했다. 인생을 살고 있지만 왜인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누군가 무얼 하자면 하고, 이끌리는 대로 살고 있었다. 선택을 하고 실행하기 전엔 내가 올바른 선택을 하는 건지 의심하며 주변 눈치를 살폈다. 뒤 돌아보지 않고 갈 길을 가던 예전의 내 모습이 아니었다. 문이 닫혀있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듯 숨이 막혔다.  


사진은 답답한 도시생활에서 숨통을 트게 하는 나만의 방법 중 하나이다. 


나 자신이 점점 회색으로 변해가고 있을 때, 지영은 나에게 우먼베이스캠프라는 프로그램에서 사진을 찍어줄 수 있겠냐는 제안을 해줬다. 사진이 맘껏 찍고 싶었고,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나는 멋진 여성들과 함께하는 캠핑에 참여하기로 했다. 백패킹의 ‘ㅂ’조차 모르던 청년 신현진이 배낭을 메고 야생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몇십 킬로인지도 모르는 60L 짜리 가방을 메고 2호선 홍대입구역행 합정역 승강장으로 나섰다. 한 번도 얹어본 적 없는 무게의 가방 때문에 몸은 계속 휘청거렸다. 갓 태어난 고라니가 스스로 일어나 첫걸음마를 떼는 영상을 어디선가 본 적 있는데, 내가 바로 그 고라니와 같은 모양새였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승강장 스크린도어에 비친 홀로 서있는 내 모습을 보니 정말 강력한 여성이 된 느낌이었다. 갑자기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만 작은 용기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사진과 영상을 담당한 나는 모두의 모습을 관찰자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었다. 관찰은 카페 창가에 앉아 거리를 걷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을 인생 이야기와 재능을 상상해보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잘하는 것이기도 했다. 


- 그녀들의 마음은 활짝 열려있었다.  


섬에 도착하자 다시 가방을 고쳐 메고 해변까지 걸어가는 열일곱 명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새벽부터 하루를 시작하고 날도 꽤 더웠는데 말이다. 만난 지 단 몇 시간밖에 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힘을 북돋아줄 수 있는 건 분명 이 사람들의 마음이 넓고 무엇이든 기꺼이 감싸 안을 수 있는 오픈마인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 그녀들은 자연과 함께하는 삶에 진심이고 진짜 즐길 줄 안다.  


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들은 매우 익숙하다는 듯 가방에서 캠핑의자를 꺼내 앉았다. 모두 바다 방향으로. 그리고는 한참 동안 경치를 즐겼다. 누군가가 ‘함께 풍경을 바라봐요!’하고 말한 것도 아닌데, 하나같이 그렇게 앉아 순간을 즐겼다. 누군가에게 인증하기 위해 자연과 함께하는 ‘척’, 보여주는 ‘척’하는 게 아닌 정말 오랫동안 자연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온 진정한 내공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 그녀들은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주체적인 사람들이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대자연에서 그녀들은 혼자 힘으로 불을 지피고 스스로를 위해 맛있는 요리를 해 본인을 대접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우먼베이스캠프라는 이름 하에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자신만의 하루를 구성하고 행동하기도 했다. 그들은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두 팔 벌려 환영하고 함께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모험을 해온 사람들이라 그런지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천재지변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고 노련하게 해결방법을 찾아내는 독립적인 여성들이었다.  


- 그녀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내는 창조자들이고, 스스로를 틀 안에 가둬두지 않는다. 


서로에 대해 좀 더 알아가면서, 그들이 뭍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었다. 누구는 여러 번 진로변경을 했고, 누구는 세상에 변화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니까 누가 이미 만들어 놓은 뻔하고 그럴듯하고 편한 성공의 길(혹은 그렇게 불려지는) 이 아니라 아무도 밟지 않은 눈 쌓인 벌판에서 그들만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어나가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서로의 성취와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진정한 어른들이었다.


오랜 사랑이 떠나간 후, 퍼주기만 하는 사랑을 하는 동안 지키지 못했던 온전한 나를 찾기 위해 긴 시간을 헤맸다.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 처음 서울생활터전을 구축하느라 여기저기 휩쓸리기도 했다. 그녀들에게서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도록 우직하게 중심을 잡는 방법을 배웠다. 자신감 넘치는 내 모습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녀들과 함께한 3박 4일은 질투와 시기로 가득한 소란스러운 세상에서 잠시 벗어나 자연과 연결되어 평화를 찾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서울에서 다시 은진과 제니퍼를 만났을 때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나를 잃은 것 같았는데, 다시 한번 해낼 수 있을 것 같아.
백패킹도 내가 할 수 없는 일의 영역이라 항상 생각했는데,
한번 해보니까 다시 한번 해보고 싶어 졌어.

은진과 제니퍼는 그런 나를 안아주며 말해줬다. 


현진, 우리는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정말 할 수 있어!

반복해오던 루틴을 벗어나 새로운 세계를 향한 문을 열자, 수많은 가능성이 나에게 다가왔다.



글쓴이 현진 @iamhyeonjinshin


모험하는 여성들의 아웃도어 커뮤니티, Women's Basecamp(WBC)는 여성들에게도 야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모험의 경험이 조금 필요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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