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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하이 Jul 07. 2022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파도 소리가 우릴 채워줄 거야.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덕적도 표류 3일 차. 눈곱을 떼고 냉장고에서 마지막 남은 막걸리를 꺼냈다. 지숲이 육지서부터 챙겨 온 과천도가 막걸리였다. 이 막걸리는 어쩜 이렇게 맛도 있고 속도 편하고 취하지도 않을까 감탄하며 마셨는데, 그 말을 4번이나 했던 걸 보면 조금 취했던 것 같다. 거실 바닥에 등을 깔고 누워 창밖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만 보자, 오늘이 화요일. 화요일 아침에 뒹굴거리며 하늘을 보다니. 한량이라는 오랜 꿈을 이룬 그 순간이 문득 감격스러웠다. 나는 누구인가, 덕적은 어디인가? 생계와 자기 계발의 저편에서 무위와 멍 때림의 이편으로 불현듯 넘어와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조금씩 흥이 오르다 갑자기 멋진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바다, 그래 바다에 가야겠다! 감격스러운 오늘의 화룡점정은 바다가 찍어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주섬주섬 옷가지와 주전부리를 챙겨 바다로 향했다.


  숙소에서 곧장 난 길을 따라 우리는 이내 해변에 도착했다. 수평선이 얼핏 얼핏 시야에 들어오자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나대는 심장을 다독이며 모래사장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보니 헉, 바다. 바다였다. 새파란 바다가 끝도 없이 펼쳐져있었다. 배까지 결항된 것치곤 하늘도 제법 맑았는데 구름도 뱃길까지 막은 체면은 있는지 적당히 기분 좋은 그늘을 내어주었다. 우리는 숙소에서 챙겨 온 맥주와 과자를 세팅하고 본격적으로 바다를 바라보았다. 한적한 해변에 앉아 수평선과 몇몇 무인도, 그리고 부서지는 바다를 바라보고 있자니 호방한 기분이 들었다.


  그 바다에 앉아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굴지의 성격 테스트들에서 All I, 100이면 100 내향형(Introversion) 진단을 받는 사람이다. 외향형과 내향형이 사람들에게 호기심을 갖고 그들과 함께하는 시간으로부터 에너지를 충전하는지 혹은 혼자만의 시간으로 재충전하는지의 차이라면 나는 보통 혼자 있을 때 활짝 피어난다.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즐겁긴 한데 집으로 돌아올 때면 정말이지 진이 빠진다. 내 안에도 이미 수많은 감정과 생각이 넘쳐흐르는데 거기에 다른 이들의 보내는 신호들까지 내겐 새로운 자극이 되어 지쳐버리는 것이다. 내게 세상은 넘쳐나는 말들이었다. 그래서 대게는 혼자 글을 끼적이거나 공상을 펼치며 시간을 보냈다. 내 안의 말들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나서야 나는 가뿐하게 털고 다시 세상으로 나설 힘을 얻었다. 사는 게 바빠 오래도록 충전하지 못할 때면 누군가를 만나는 것도 버거워 허둥댔다. 어서, 어서 도망칠 곳을 찾아야 해, 꼬르륵꼬르륵.. 홀로 도망쳐 숨 쉴 곳을 찾지 못한 나는 칭얼대는 아이를 안고 안절부절 못 하는 어린 부모처럼 쉽게 당황했고 지쳐버렸다. 그런 내게 일요일에 만나 화요일까지 꼬박 사흘을 함께한 사람들은 부담스럽고 버거운 존재가 될 운명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날 해변에서의 나는 방전되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생생하게 살아있었다. 거리낌 없이 나를 드러냈고, 이야기를 나누다 멋쩍어지면 곧장 바다로 뛰어들었다. 볼일을 핑계로 한 물놀이인지 그 반대인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바다로 빠진 나는 금세 다시 피어났다. 바다는 부지런히 파도를 밀어 보냈고 그 파도를 맞은 나는 차곡차곡 힘을 얻었다. 파도에 몸을 싣고 가만히 발을 굴렀다. 두둥실 몸이 떠오르는 순간이 더없이 평화로웠다. 바다에서 나는 내 안의 말들과 나 자신을 향한 시선을 거두고 내 숨소리에 오롯이 머물렀다. 지긋지긋한 자의식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외부 세계에 오롯이 집중하는 경험. 자아가 사라지니 행동이 자유로웠고, 절제하고 억압하기 바빴던 머릿속이 원초적 자유로 넘실거렸다. 헤엄을 치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나는 그 바다에 존재했다. 해방의 경험이었다. 그날 우리는 한 꺼풀씩 옷을 벗어 바다로 뛰어들었고 우리 사이엔 아주 적절한 분량의 말이 오고 갔다. 파도 소리가 우리를 채워주었다.



  한참을 헤엄 치다 보니 어느새 해변엔 서희와 나 둘만 남아있었다. 아직 서희가 낯설었던 나는 우리 사이의 정적이 부담스러웠다. 정적을 메워야 할 것 같아 속으로 곰곰 말을 골랐다. 그래도 바다에서만큼은 진심만 얘기하고 싶어 고민하던 중 최근 읽은 책의 한 구절이 생각났다.



 서희, 진심으로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책에 따르면 지금 이 자리에서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 중 하나가 눈앞에 있는 사람의 행복을 진심으로 빌어주는 것이란다.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지금 보이는 그 누군가가 행복하길 기도하는 것이다. 짧게나마 열과 성을 다해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벅차오르며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바다에 취해 행복했던 나는 조금 더 행복해지고 싶어 눈앞에 있는 서희의 행복을 빌었다. 뜬금없는 기도문을 들은 서희는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배시시 웃었다. 덕분에 나는 조금 더 행복해졌지만 동시에 맥락 없는 멘트로 조금 멋쩍었다.


  그리고 다음날, 헤어지며 쓴 롤링페이퍼에서 서희는 내게 그 말을 돌려주었다. 



  명해, 당신이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그 글을 읽는데 툭 눈물이 났다. 내가 건넨 말이었지만 그 말이 참 낯설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오래도록 누군가의 행복을 빌어주지 못했던 것 같다. 21세기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으로, 나는 참 열심히 살아왔다. 열심히 공부를 했고 열심히 시험을 치렀고 열심히 스펙을 쌓았고 열심히 직장을 다녔다. 열심은 관성이 되어 나의 일상에 스며들었고 나는 많은 순간 스스로를 감시하고 시간을 관리하는 착실한 관리자로 내 삶에 복무했다. 왜 그렇게 쫓기듯 열심히 살았을까?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 떠오르는 모습이 있다. 저마다 바쁘게 앞으로 걸어가는 사람들과 그 속에서 부지런히 발맞춰 걷는 나. 그러다 순간 발을 헛디뎌 고꾸라진다. 그런 나를 두고 앞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뒤로, 뒤로 처지는 나. 가까스로 걸음을 추스른 나는 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다시 열심히 걷는다. 그 길이 어디로 난 길인지도 모른 채 나는 그저 걸었다. 그렇게 열심히 걸은 결과라야 나는 지금의, 아주 보통의 내가 된 뿐이었다. 가끔 공허했고 자주 불안했다. 어디서부터 시작된 불안 인지도 모른 채 나는 끝없이 혼자만의 경쟁을 이어갔다. 나의 불안은 나의 열심을 부추기는 걸로도 모자라, 나보다 더 열심히 더 빨리 걸어 나를 추월한 이들에게 향했다. 그때부터였다. 타인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하고 빌어주지 못했던 것이.   


  그런 내가 나는 늘 부끄러웠다. 내가 얼마나 치졸하게 남을 살피고 나와 줄 세우는지 나는 아니까. 오래도록 그런 내가 미웠다. 내 안의 그 마음들이 혐오스러워 늘 나를 무시했다. 내 마음에 이는 불안과 질투를 누군가 알아버릴까 전전긍긍했다.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못남과 궁상스러움이 내 안에서 켜켜이 쌓여갔다. 그 모든 마음을 훌쩍 꺼내다 밝은 볕 아래 말리고 싶었지만 그 마음을 마주하는 것조차 내겐 힘든 일이었다. 내 행복을 SNS라도 올릴라치면 날 선 검열의 목소리가 울렸다. 내가 쌓고 얻어 온 결과물들이 내 것인가? 남몰래 누군가의 실패를 기대하고 나의 성취를 자축한 결과가 아니었던가? 어쩔 줄 모르는 불안에 그저 열심히 살아왔고 그 열심의 결과가 고작 부끄러움이었다. 그렇게 나는 나를 비롯한 누구의 행복도 맘 편히 바라지 못하는 삶에 오래도록 지쳐있었다. 


  한창 입시교육을 시작한 10대 후반부터 경주마처럼 앞만 보며 내달린 나의 20대는 참 안쓰러운 시기였다. 망가져버린 마음을 붙잡고서 나는 나를 사랑하지도, 맘 놓고 미워하지도 못했다. 그때의 내 마음이 스스로에게도 얼마나 큰 폭력이었을지 되짚어 본다. 꼭 그 길로 걸어가지 않아도 괜찮아. 그 길에서 내려와 나를 꼭 닮은, 고즈넉한 길도 있음을 알게 되고부턴 내 곁의 어여쁜 길들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 싶었다. 그런 내게 덕적도에서 만난 17명의 친구들은 저마다의 길을 걸어가는 멋진 산책자였다. 불안에 잠식되지 않고 호젓하게 자신을 돌볼 줄 아는 동료들. 


  “송미야, 너 방금 정말 멋있었어. 어떻게 이 18명 속에서 그렇게 김송미스럽게 앉아있을 수가 있어? 이 정신없는 와중에 방금 니 눈빛. 너무 고독하고 멋있었어. 그냥 그렇다고.”


  지나가는 송미를 붙잡고 말했다. 내 마음에 퐁퐁 솟아나는 감사의 마음들을 꾹꾹 눌러 전했다. 낯간지러워 괴성을 지르는 송미를 붙잡고 꿋꿋이 말했다. 오늘 밤 내 마음이 그냥 그렇다고. 이제야 너의 멋짐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진심으로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나 너무 기쁘다고. 나만의 길을 느긋하게 걷자 내 마음엔 미움보다는 우정이, 질투보다는 존경이 퐁퐁 피어났다. 내 안의 반가운 다정함을 이렇게 좀 더 자주 떠들다 보면 머지않아 내게도 그런 말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아무런 계산 없이 나를 꺼내 보이고, 누구도 낙오되지 않고 함께 뛰놀 수 있는 컴포트 존을 넓혀가는 것.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이, 그것도 17명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이 조금 어리둥절하고 많이 기뻤다. 그 여름 덕적도에서 우리는 섬이 떠나가라 오래도록 함께 웃었다. 빨갛게 봉숭아 물을 들인 손톱도 훌쩍 자라 있었다. 


글쓴이 명해 @mh.yoon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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