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나누장] 2. 위밋업스포츠 공동대표 혜미
당신의 두려움은 무엇인가요?
우먼스베이스캠프는 누구라도 ‘모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모험을 떠날 채비를 할 시간을.
내 안의 두려움을 넘어 모험을 떠난 사람들의 이야기로 내 안의 불씨를 지피 우고 모험의 용기를 나눕니다.
그 두 번째 게스트는 여성과 아동을 위한 팀스포츠 플랫폼, 위밋업스포츠 @wemeetupsports 공동대표 혜미입니다.
두려운가요? Play on! 뭐든지, 하세요~
오늘이 10월 11일이에요. 오늘 무슨 날인지 아시는 분?
10월 11일은 세계 소녀의 날입니다.
세계 소녀의 날은 UN이 2011년에 제정한 날로, 올해가 벌써 열 번째예요.
전 세계적으로 할례나 교육적, 사회적으로 여전히 차별받고 있는 소녀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든 날입니다.
우리나라도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사회적으로 차별받는 소녀들이 많죠.
우리 여자들, 그리고 소녀들이 가진 야성 본능이 잘 일깨워져서 우먼스베이스캠프와 같은 여성들의 아웃도어 활동도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언니들이 앞서 있어야 어린 친구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함께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저는 여중에서 축구를 시작했어요. 대학교 때까지 축구 선수로 활동하다가 공부를 하고 싶어서 석사, 박사를 했어요. 그리고 사회생활에 뛰어들어서 험난한 생활을 맛보고 두려움을 부딪히면서 위밋업 스포츠라는 회사까지 창업하게 되었어요.
장애인 쪽 축구협회에서도 일을 했어서 장애인 분야도 조금 알고 있고요. 현재는 대학교에 출강도 하고 나이키나 데상트 등 브랜드와 사회공헌 파트 쪽 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위밋업 스포츠는 운동 경험이 부족한 여성과 아동을 위해 스포츠 프로그램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 기업이에요. 여자들이 다양한 스포츠를 접할 기회를 주고 그럴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선수 출신이기도 한데, 경력이 좀 단절됐어요.
다양한 일에 대한 욕구가 있었고 여러 가지를 하고 싶었는데 결혼과 육아로 경력 단절이 됐죠.
위밋업 스포츠도 혼자 한 건 아니에요.
15년 이상 생활 체육 지도자를 하며 남부럽지 않게 잘 나가는 생활을 하던 양수안나라는 친구와 같이 얘기하던 때였어요. 저희 생활의 이런저런 불평불만들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함께 고민하게 됐어요.
저는 되게 간절했어요. 왜냐하면 경력 단절 여성이었고 사회에 나아갈 틈새를 계속 찾고 있었으니까 얼마나 간절했겠어요. 애도 낳고 이제 남편은 계속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나는 계속 떨어지는 것 같고.
그래서 더 간절했죠.
반면에 함께 하는 친구는 그냥 저 꼴이 뵈기 싫은 거야,
사회에 있는 그 남성들의 그런 문화들이.
선수 출신 여성들이, 사실은 저 같은 경력 단절 여성들이 일자리 찾기가 정말 어려웠기 때문에 이런 걸 우리가 한번 만들어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희가 함께 이런 것들을 만들어보자 해서 위밋업이 탄생하게 됐습니다.
여기 계신 분들도 다양한 스포츠, 특히나 비인기 종목을 얼마나 경험해보셨는지 모르겠어요.
캠핑을 좋아하시니까 어쩌면 신체적인 활동에 조금 더 자신감이 있고 두려움이 없을 수도 있겠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여성분들은 다양한 스포츠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난 이걸 잘 못할 거다."라고 스스로 먼저 단정하시더라고요.
나는 축구 잘 못해.
근데, 해보셨어요?
물으면
안 해보셨더라고요.
안 해봤기 때문에 이걸 잘하는지 못하는지 모르는데도
"나는 못해"라고 스스로 얘기하세요.
그런 것들이 되게 많아요. 특히나 비인기 종목은 어떻겠어요.
여러분 혹시 레슬링 해보신 적 있으세요? 역도? 유도? 아니면 핸드볼? 필드하키?
들어보시면 알고 보면 우리나라 다 금메달 딴 종목이에요. 그런데 이 종목의 선수들이 어디 있을까요? 이거 다 여자 선수들이거든요. 어디 있을까요? 국가대표 감독하고 있나요?
아니요. 다 남자가 감독해요.
내가 아무리 잘해도, 금메달을 따도 사회 진출하기 어려워요.
제 주변에 그런 선수들이 되게 많은데, 다 아이 키우고 집에 있어요.
아니면 다른 종목, 돈 벌기 쉬운 종목으로 전향해서 강사하고 있어요.
이런 어려움이 되게 많아서 이 친구들이 어떻게 연결되면 좋을까 하고 만들어진 게 위밋업 스포츠예요.
사실은 이런 걸 만들어 달라고 대한체육회의 은퇴 선수 진로 상담하는 담당자를 찾아가서 얘기했어요. 근데 잘 이해를 못 하시죠. 왜냐면 그들은 저희한테 관심이 없거든요.
그냥, “그래? 응~ 알겠어.” 끝.
왜냐하면 이렇게까지 만든다고 성과가 나오는 일이 아니었거든요. 그러니 굳이 만들 이유가 없었죠.
아무튼 위밋업은 그렇게 해서 탄생한, 어떻게 보면 절박함? 절실함? 이게 아니면 안 되는 마음에 탄생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저희는 되게 간절했어요.
이건 좀 자랑하려고 보여드려요.
저희가 지금 직원이 다섯 명이 되었어요. 4대 보험을 주는 직원들이요. 저랑 양수안나 대표는 여기 4대 보험에 껴 있지 않습니다. 저흰 아직 자기 알아서입니다.(웃음)
이렇게 저희 직원이 따로 있고요.
12개 이상 종목의 강사들이 있고 종목별 강사가 약 30여 명이예요. 협약 강사는 계속 활동하는 강사는 아니지만 우리가 이런 종목을 개설하면 언제든 바로 올 수 있는 강사 분들, 그런 강사가 한 50여 명이 돼요. 이렇게 전체적으로 하면은 한 100여 명이 넘는 강사가 함께 하고 있어요. 다 여성 은퇴 선수 강사들이고요.
그리고 너무 감사하게도, 저희가 사업을 할 때 다른 전문 분야의 도움도 많이 받아요. 저희 전문 쪽은 운동이지 다른 건 전문이 아니잖아요. 다른 일을 할 때 해결해야 될 일들이 실은 되게 많아요. 그런 거에 저희가 자문을 많이 구해요.
저희가 못하는 거에 있어서
되게 겸손하거든요.
저희가 운동은 잘할 수 있어요.
운동에 있어서는 이건 이렇게 하세요. 저건 저렇게 하세요, 되게 잘난 척을 할 수 있는데 그 외 분야, 저희가 못하는 거에서는 초보인 거예요. 그래서 항상 물어보려고 해요.
다양한 분야의 자문위원을 두고요. 감사하게도 저희 클래스에 참여한 여성분들 중에도 유능한 분들이 정말 많으시더라고요. 도움의 손길을 많이 주셔서 저희가 자문도 많이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협업 기관들이 있는데요.
특이한 점은, 스포츠와 관련된 협업 기관이 없다는 거예요.
저희가 스포츠 쪽으로는 안 가고 있어요. 왜 그럴까요? 처음에 저희한테 그랬어요.
“너네가 뭘 해봤자.” 이런 식이었어요.
지금은 물론 많이들 연락을 주시긴 하는데, 협업 기관 중에서 스포츠 쪽과는 협업이나 MOU를 웬만하면 다 안 해요. 저희가 생각하고 있는, 나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가야 되겠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하고 있는 사업들 이렇게 사진으로 좀 보여드리면. 이분들 좀 연세 있어 보이시잖아요?
제일 어리신 분이 50대고, 60대 70대 이제 시니어 여성분들이세요. 중랑구에 있는 시니어 여성분들의 성평등한 활동과 관련된 운동, 신체활동을 같이 하시는 분들이고요. 그다음에 이거는 야구 클래스, 이거는 언니들 축구대회 올해 했던 거고요.
저희가 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교사 트레이닝이에요.
누가 가르치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많이 달라진다고
저희는 항상 생각해요.
어떤 코치를 만나느냐에 따라서
내가 이 운동에 긍정성을 갖느냐 부정성을 갖느냐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초등학교 교사분들 트레이닝에 되게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이 나이 때가 되게 중요해요. 그래서 이분들한테 계속해서 아이들에게 즐거움을 줘야 된다고 이야기해요.
종목별 은퇴 선수 출신들이 와서 함께하고 있고,
이 친구들은 간절하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요.
지도하는 거에 있어서 대충 하는 법이 없어요.
다들 되게 열심히 하고. 어떻게 하면 내가 이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전달을 해줄지에 대해서 다들 최선을 다해요.
성교육이나 성인지 교육 등 저희 교육이 빡빡하게 돌아가는데 이런 교육들도 다 듣고 이수해야지 저희랑 같이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이런 교육을 받은 전문 강사들이 종목별 프로그램의 강사로 나가거나 아니면 스포츠 이벤트를 함께 참여하거나. 비인기 종목의 은퇴 선수들은 레슬링이나 유도나 이런 쪽으로 접목, 교육을 시켜서 자기 방어 프로그램 강사로 활용할 수 있게 하고요.
또 장애인이 함께하는 스포츠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아요.
저희는 장애 인식 교육에서 수어 교육을 좀 하거든요.
‘하이, 헬로’는 다 하는데 수어는 잘 모르시는 분들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그냥 언어가 다른 것이지 서로 차별적 요소를 두지 말자라는 생각에서 장애인을 위한 스포츠 프로그램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제 저의 두려움의 성장 과정을 설명드리고 싶어요.
되게 파릇파릇한, 이때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나?
제가 국가대표 상비군 때 대회에 나갔을 때에요.
이 때는 뭣도 모르고 상비군에 뽑혀서 나갔을 때예요. 아무것도 모를 때.
근데 잘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나 어떡하지?” 이 정도의 두려움만 있을 때였던 것 같아요.
아마 대학교 2학년 때였던 것 같아요.
저때는 운동에 대해서라기보다 제 삶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 때였던 것 같아요. 생각은 되게 많고, 두려움보다는 그냥 꿈도 많고. 아마 저 나이 때 대학생은 다 그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그리고 그냥 멋 모르고 결혼하고, 삶이 그냥 모든 게 다 좋아 보였을 때였어요.
이제 회사를 다니면서 대학원도 다니고 유학 갔다 오고. 회사도 다니고 아이를 낳기 전이었으니까 나름 괜찮은 삶이었어요. 두려울 게 없었던 그런 삶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요기 요 꼬맹이가 생기면서 저도 회사를 그만뒀거든요.
이때 첫 두려움이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지?
내가 얘를 어떻게 책임지지?
이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손꼽히는 두려움이 아니었나 생각하는데. 저희가 상해에 있을 때, 아이 둘을 데리고 공부했을 때예요.
이때 어느 정도였냐면, 내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왜냐하면 제가 중국어를 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되게 잘하는 것도 아닌데 그냥 무작정 저기에 넘어가서 버티고 있을 때였거든요. 제가 뭘 잘해서가 아니라. 근데 주변에 사람들은 너 애도 데리고 왔고, 막 이렇게 되게 이렇게 치켜세워주지만 사실은 근근이 버티고 있을 때였어요.
근데 이때가 진짜 지금 생각하면 가장 힘들었던 때인 것 같아요. 하루하루가 되게 두려웠던 때. 내가 되게 잘해야 되고 내가 이 아이들을 잘 보살펴야 되고 막 이랬었던 때.
그러다가 이제 좀 한국에 넘어와서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하고 괜찮아지면서 이때는 어떤 생각이 있었냐면요.
이제 제가 보이는 거예요. 이제 모든 상황이 보니까, 이제 그때 제가 보이면서 드는 질문이, “나 이제 뭐 하지?”
이제 박사도 다 마치고 한국에 왔는데 제가 뭘 할 게 없더라고요. 내가 두렵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막 했는데 제가 없어요. 박사도 따고 한국에 왔더니 제가 없는 거예요.
이때 아마 우울증이 조금 왔었던 것 같아요. 내가 없어서. 되게 두려웠던 것 같아요.
“어? 나 왜 없지? 나는 어디, 나는 뭐를 해야 되지?”
그러면서 되게 많은 일을 찾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웃고 있지만 이러고 나서는 일을 찾기 시작하고 나서 다시 웃음을 찾았어요.
여러분이랑 이런 대화를 하는 저조차도 사실은 되게 평범하고 아마 왜 이런 일을, 어떤 일을 하길래 위밋업을 만들었을까 궁금하실 수도 있고 저 같은 사람이 뭘 했길래 이런 일을 했을까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면 제가 뭘 얘기를 해야 될까 하다가 그냥 제가 거쳐온 이야기를 좀 해드리면, 별 거 없다는 거를, 좀 만만하게 느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저도 되게 만만하고 별거 없거든요. 되게 만만한 사람이에요. 별 거 없고.
그 두려움을 저도 항상 느끼고 살았던 것 같아요.
그 두려움을 이기려고 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내가 이걸 꼭 이겨야지, 난 이길 수 있어,
난 되게 잘해, 이러지는 않았던 것 같고요.
단지 그냥 계속 그 순간순간 매 순간을
그냥 잘 버티면서 살아왔던 것 같아요.
위밋업을 하면서 제가 느낀 건요.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 같아요.
아마 캠프를 하실 때 혼자 가시는 분들도 계시겠죠. 근데 같이 갔을 때 더 재밌지 않으세요?
커피를 혼자 마시는 것도 낭만이 있고 뭔가 운치 있고 하지만 누군가 같이 얘기를 하면서 커피를 마시면 더 맛있잖아요. 저희도, 저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혼자서 위밋업을 했다면 저는 좀 잘 못했을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 하다 말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여기 있는 친구들이 같이 해줬기 때문에 이 두려움도 어려움도 잘 이겨내고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 친구들 앞에서는 “그냥 하면 되지 뭐, 야 해”
이런 식으로 얘기는 하지만 이 안에는 “안 한다고 하면 어떡하지?” 이런 마음도 사실은 있어요. 똑같아요. 저도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혹시 기억나세요? 지난 리트릿캠프 때 제가 “여러분, 뭐든 하세요!” 하고 외쳤던 거?
이 플레이온(Play on)이라는 게, 경기 중에 되게 애매한 상황 있죠?
이게 불어야 될지, 말아야 될지 하다가, 심판이 결국에는 “Play on! 하세요!”라고 하거든요. 망설일 때?
다시 한번 말씀을 드리자면
플레이온 하셨으면 좋겠어요.
망설이고 있는 일이 있다면 그게 어떤 일이든 간에,
그게 그 어떤 일이어도
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어요.
왜냐하면 하고 난 다음에 후회는 괜찮아요.
하고 난 후에 후회는 다음에 안 하면 되지 생각하면 되니까.
근데 안 하고 후회는 조금 아쉬운 것 같아요. 왜냐하면 계속 머릿속에 남거든요.
이 말씀을 꼭 하고 싶었습니다.
여러분, 플레이온 하셨으면 좋겠어요.
감사합니다.
Q. 운동을 하시다가 이런 사회적 기업과 같은 조직을 만들어 운영하고 계시는데. 그 시작의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는지?
A. 저는 운동선수였고, 그래도 축구를 했으니까. 축구는 우리나라에서 어쨌든 인기 종목이기도 하고 생활화되어 있어서 제가 코치 생활을 하려면 할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근데 그러기보다는 제가 나름 열심히 한다고 공부까지 하고 박사를 하고 한국에 넘어왔잖아요. 저는 신랑이랑 같은 대학원에서 같이 조교 생활을 했거든요. 그때 어떤 한 교수님이 제게 한 말이 저한테 좀 컸어요.
굳이 너까지 사회에 나올 필요가 있냐 라는 말.
제가 강의를 달라고 한 것도 아닌데, 강의를 안 줘도 되는데 말이에요. 저한테는 이 말이 진짜 컸어요.
그리고 저희가 현재까지 스터디 동아리를 같이 하고 있거든요. 근데 어느 순간부터 연락이 신랑한테만 가는 거예요.
사회에 나왔을 때 저희 신랑은 잘 나가고 나는 상대적으로 안 나가니까 나한테 연락을 안 하는 건가? 이게 어쩌면은 상대적 박탈감일 수도 있는데, “나 차별하는 건가?” 이걸 되게 많이 느꼈어요. 후배들도 저한테 연락을 주기보다는 신랑한테 먼저 주고, 누군가를 만나면 "아이는 누가 보고 네가 왔냐?" 이런 식으로 얘기했어요.
그래서 여러 가지 상황에서 잘 돼야 되겠다는 욕구가 좀 컸던 것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그게 그런 불씨도 있잖아요. 운동선수들의 약간 경쟁 욕구를 불러주는. 저에게 이제 불씨를 막 피워주려, 이제 주변에서 도와준 거죠 실은. 감사하게도.
저의 또 그런 욕구를. 제가 약간 싸움닭 같은 면이 없지 않아 있어서, 그래 내가 한 번 보여줘? 약간 이런 느낌이 그땐 계속 들어서 진짜 기분이 좀 안 좋았어요.
“그냥 혜미는 집에서 애 보면 되지” 이런 식의 이야기들. 저희 신랑은 그래도 제가 공부를 했으니까 뭔가를 연결시켜주려고 하는데 그게 잘 안 되는 거예요.
연결이 왜 안 됐는지 이유를 알게 되고 자존심이 많이 상하더라고요.
왜냐하면 나는 운동을 했었고 이 분야에서는 어쨌든 당신네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는데, 그런 행동들이 나를 무시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어쨌든 남자들이 저보다 같은 그거에 있으면 남자를 먼저 이렇게 하는 그런 분위기. 어쨌든 그런 것들이 저는 많이 속상했어요.
나도 간절한데 왜 나한테는 안 그러나.
나도 먹고살아야 되는데.
왜 쟤는 내가 봤을 때 나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은데 쟤한테 주고 왜 나한테 안 주나 이런 생각 많이 했었죠.
Q. 스포츠 쪽 분야에 특히 더 성차별적인 문화가 있나요?
A. 아직 많이 남아 있죠. 스포츠 쪽은 더 많이.
제가 아까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되게 '잘 나가던 여성 스포츠인들 지금 어디 있을까라고 생각해 보시면 우리나라 모든 국가 금메달, 비율로 봤을 때 봤을 때 여성이 더 많이 땄어요.
근데 감독은 누가 하고 있죠? 이렇게 얘기하면 싫어할 말들인데 누가 하고 있죠? 다 남성이 하고 있잖아요.
여성 지도자들이 못해서일까요? 그건 아니라고 봐요.
경험의 그 기회조차도 없었기 때문에 잘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결국에 남는 건 남성 지도자들이었다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공청회 가서도 그렇게 얘기했다가 씨알도 안 먹혔지만 어쨌든. 그렇습니다.(웃음)
Q. 오늘 참석해 주신 분들 중에 질문을 미리 써주신 분이 계셨는데. 본인을 축구 지도자를 하고 있는 비선수출신 신입 코치라고 소개해 주셨어요. 코치를 하고 있는 것이 옳은 길인가 의구심이 든다고 하십니다.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지. 고민이나 질문이나 혹시 얘기해 주실 게 있을까요?
A. 저 궁금한 게, 재밌으세요? 지도하는 게?
그리고 축구가 재미있으세요? 지도와 관련해서 공부도 계속하고 계세요?
그러면 저는 찬성이에요.
하셨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어렸을 때 기회가 안 돼서 선수가 안 된 거고, 지도와 코치라는 거는 전문 선수라고 해서 잘 가르치는 건 아니에요.
저는 솔직히 축구를 잘 가르치지는 못하거든요. 가르치는 거를 그렇게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보다 내가 오래 했기 때문에 좀 더 나을 수는 있어요.
근데 그걸 더 애정을 갖고 노력을 하는 그 시간 대비는 아마 선생님이 더 잘하실 수도 있어요. 나중엔 결국.
전 그렇게 생각해요. 물론 제가 축구를 오래 했으니까 지도자 자격증을 따고 이런 게 조금 더 수월했을 수는 있겠죠.
근데 저는 지도하는 데 있어서 이런 철학이나 이런 걸 알려주는 일이 더 재밌지, 제가 아이들의 실력을 높이 하거나 이런 프로그램을 짜거나 이건 저랑은 조금 안 맞다고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이걸 좀 빨리 깨달았어요.
가르치면은 난 좀 다른 식으로 가르쳐야 되겠다.
저는 깨달았거든요.
왜냐하면 저희 위밋업에 오면은 진짜 잘 가르치는 코치들이 되게 많아요.
그 친구들 보면서 더 느껴요. 저런 건 쟤네들이 가르쳐야 되는구나. 근데 국가대표 오래 했다고 다 잘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내가 이걸 얼마나 연구하고 노력하고 하는 친구들이 잘 가르쳐요. 진짜예요.
그거는 노력이 좀 들어가야 돼요 그래서 저는 만약에 선생님이 지도하는 게 너무 좋다 하시고, 거기다가 노력도 하시고 그러면 더 좋아요.
하셨으면 좋겠어요.
물론 그건 있어요. 어딜 가나 이 판을 먼저 열심히 해왔고 이 사람들이 노력을 그만큼 했기 때문에 그거는 조금 견뎌야 되는 부분이기도 해요.
왜냐하면 갑자기 내가 이렇게 노력했고 이만큼 했는데 갑자기 들어온 느낌이거든요.
아마 저도 잘 몰랐으면 그럴 수 있어요.
그건 선생님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몰라서 그래요. 그러면 그걸 모습을 좀 보여주시면 돼요.
그러면은 더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계속 버티셔야 돼요.
어디서 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랑 관심 있으시면 같이 해도 좋아요.
Q. 어쨌든 가정을 버릴 수는 없잖아요. 일과 가정 육아를 공존하는 노하우. 어떻게 하고 계신지 궁금해요.
A. 저는 ‘교육’인 것 같아요. 저희 남편을 열심히 교육시켰어요. 남편은 되게 잘 도와주는 편이기도 했고요. 그리고 저의 일을 좀 지지해 주는, 저의 진짜 되게 좋은 친구, 동반자 같은 파트너예요. 반려견은 아니고 제가 반려자라고도 얘기했었는데. 반려자로서 저에게는 되게 든든한 지지자이고.
저도 저희 신랑이 하는 일을 항상 응원을 하고요. 그리고 저희 신랑도 저의 일을 응원을 하다 보니까 서로의 시간이 안 되는 그 부분은 할 수 있는 일을 해요.
근데 저희 신랑도 안 해봤던 일은 해봐야지 되는 거잖아요.
그런 일에 대해서는 교육을 잘 시켰고.
저는 아들이 둘인데 어렸을 때부터 좀 시켰던 것 같아요. 음식 쓰레기 버리는 초등학교 저학년도 할 수 있어요. 처음에는 같이 할 수 있는 거. 7살도 음식 쓰레기는 버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버리는 거야 그리고 쓰레기 분리수거하는 거 저는 다 가르쳤어요. 방법은 교육인 것 같습니다. 서로에게 소통이 있으면 충분히 가능한 거 같습니다.
그리고 절대 혼자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슈퍼 우먼은 없어요. 슈퍼맨도 없고 슈퍼우먼도 없어요.
저는 아빠 혼자 감당하는 거는 다 아닌 것 같고요. 엄마 혼자 감당도 아닌 것 같아요.
누구 혼자의 감당이 아니라 함께 감당이었으면 좋겠어요.
Q. 현재의 혜미의 가장 큰 두려움이 있으신가? 아까 과거의 두려움은 좀 이야기해 주셨던 것 같은데 요즘 두려움이 있으신가요?
A. 이 얘기를 하려고 저한테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나? 이렇게 마주치자면. 저 사실은 최근에 일이 너무 많아서 제가 이 한계를 좀 달렸었어요.
극도로 예민해지고 제 자신을 되게 자책하고 내가 이걸 왜 이렇게밖에 못하지라는 생각에 좀 많이 힘든 시점이 있었어요. 근데 너무 예민해지니까 문제가 뭐냐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되게 화를 내더라고요. 짜증을 내고. 그러면 안 되는 건데.
같이 일을 하고 있는 이 친구들이 잘못한 건 아닌데 이 친구들에게 계속해서 얘기를 하게 되고. 그 누군가를 핑계를 대고 그리고 누군가가 나보다 좀 더 잘하는 것 같으면 뭔가 나를 위협하는 것 같고.
이게 사람을 되게 비교하고 저를 계속해서 방어하려고 하는 그런 저를 좀 보더라고요 이게 아까 전에 제가 고슴도치 보여드렸잖아요. 두려울수록 가시를 이렇게 세운다라고.
그게 사실은 저라고 얘기했던 게 내가 지금 그러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 시점이 있었어요. 그런데 제 스스로가 너무 안 되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나 되게 열심히 하는 것 같은데 나 스스로 왜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때 “힘들어도 괜찮다”라는 말을 했어요.
이 상황이 너무 네가 힘들고 두려울 수 있어. 그거를 그냥 인정하자라는 생각을 그때 당시에 딱 하게 된 것 같아요.
그러니까 좀 눈물이 계속 쭉 나오더라고요. 눈물이 흐르면서 저도 모르게 “그래 힘들어. 그래 인정” 이렇게 좀 쿨하게 된 것 같아요.
그래 나 지금 되게 힘들다,
근데 괜찮아. 이거 이번에 힘들다고 어떻게 되는 거 아니야. 한 번 힘들 수 있지 매번 계속 힘든 거 아니잖아. 이번에 힘들면 내일은 좀 괜찮아질 수도 있겠지.
또 친구들이 도와주겠지. 근데 나 오늘 힘들다. 나 이번에 좀 힘드네. 근데 좀 많이 힘들어. 이렇게 좀 인정했던 것 같아요. 그러고 나니까 마음이 되게 편안해지고 그런 두려움도 없어지고.
누군가를 자꾸 비교하고 제가 나를 대신하면 어떡하지, 내가 쟤보다 못하면 어떡하지, 이런 마음이 좀 사라졌어요.
못할 수 있지. 내가 언제부터 다 잘했나? 나 되게 뛰어났나? 나 원래 못했는데. 괜찮아 못할 수도 있지, 실수할 수 있지. 다시 하면 되지.
나 아직 내일도 있고. 괜찮아. 이렇게 좀 저를 되게 아끼자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분명히 힘든 시기가 오신 분도 있을 테고 넘어가신 분도 있고 또 언젠가 올 수도 있는데. 힘든 거를 그냥 인정하는 게 괜찮은 방법인 것 같더라고요. 나 지금 힘들구나. 정신적으로도 괜찮은 것 같아요.
모험하는 여성들의 아웃도어 커뮤니티, Women's Basecamp(WBC)는 여성들에게도 야성이 있다고 믿습니다. 모험의 경험이 조금 필요할 뿐이죠.
자연 속에서 나를 마주하고 몸으로 연대하는 각종 밋업 및 라이프 리트릿에 함께하지 않으시겠어요? WBC 여성들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인스타그램 @womensbasecamp를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