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390~401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14. 무지의 발견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16. 자본주의의 교리
17. 산업의 바퀴
18. 끝없는 혁명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필사와 단상]
14. 무지의 발견
해결이 불가능해 보이는 인류의 모든 문제 중에서도 가장 성가시고 흥미롭고 중요한 것은 늘 죽음의 문제였다. 죽음은 우리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근대 후기 이전까지 대부분의 종교와 이데올로기는 이를 당연시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신앙은 죽음을 삶에 의미를 주는 원천으로 바꿔놓았다. 죽음이 없는 세상의 이슬람, 기독교, 고대 이집트 종교를 상상해 보라. 이들 종교는 사람들에게 죽음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 하며 내세에 희망을 두어야 한다고 가르쳤지, 죽음을 극복하고 이곳 지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을 추구하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선지자들은 죽음에서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기에 바빴다.
우리에게 전해진 가장 오래된 고대 신화, 즉 고대 수메르의 길가메시 신화가 다루는 주제도 이것이다. 그 주인공인 우루크의 왕 길가메시는 세상에서 가장 힘세고 유능한 남자로, 전투에 나서면 누구에게든 승리를 거두었다. 어느 날 가장 친한 친구 엔키두가 죽었다. 길가메시는 친구의 시신 옆에 앉아서 오래오래 관찰했고, 마침내 친구의 콧구멍에서 벌레 한 마리가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그 순간 길가메시는 끔찍한 공포에 사로잡혔고, 자신은 결코 죽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죽음을 물리칠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내어야 했다.
그는 우주의 끝을 향해 여행을 떠났다. 사자를 죽이고 전갈사람과 싸우며 저승을 향해 나아갔다. 그곳에서 그는 죽음의 강 뱃사공인 우르샤나비의 배를 움직이는 신비한 '돌로 된 것들'을 부숴버린 뒤, 최초의 홍수에서 살아남은 최후의 생존자 우트나피시팀을 발견했다. 하지만 길가메시의 원정은 실패로 끝났다. 그는 죽음을 받아들여야 하는 존재로서 빈손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하지만 새로운 지혜의 한 토막이 그와 함께 했다. 그는 깨달았다. 신들은 인간을 창조할 때 죽음을 필연적 숙명으로 정했으며 인간은 그 숙명과 함께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을.
진보의 사도들은 이런 패배주의적 태도에 동의하지 않는다. 과학자에게 죽음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기술적 문제에 불과하다. 사람이 죽는 것은 신이 그렇게 정해놓았기 때문이 아니라 심근경색이나 암, 감염 같은 다양한 기술적 실패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기술적 문제에는 기술적 해답이 있게 마련이다. 심장이 정상적으로 뛰지 않으면 심박조절기로 자극을 주거나 새 심장으로 교체하면 된다. 암이 날뛰면 약이나 방사선으로 죽이면 된다. 박테리아가 증식하면 항생제로 제압할 수 있다.
인정하건대, 현재 우리가 모든 기술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우리는 해결을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들은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느라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다. 대신 질병과 노화의 원인이 되는 생리적, 호르몬적, 유전적 시스템을 연구하느라 바쁘다. 그들은 신약, 혁명적 치료법, 인공장기를 개발 중이며 언젠가는 죽음의 신을 무찌를 수 있을 것이다.
최근까지만 해도 과학자든 누구든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은 없었다. "죽음을 정복해? 무슨 헛소리야! 우리는 그거 암, 결핵, 알츠하이머병을 치료하려고 애쓰고 있을 뿐이야!"라고 우겼다. 사람들은 죽음이라는 이슈를 피했다. 목표 달성이 지나치게 힘들어 보였기 때문이다. 불합리한 기대를 조장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솔직할 수 있는 지점에 와 있다. 과학혁명의 선도적 프로젝트는 인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는 것이다. 설령 죽음의 정복이 먼 목표로 보인다 할지라도 우리는 불과 몇 세기 전까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이미 달성했다.
1199년 사자왕 리처드는 왼쪽 어깨에 화살 한 대를 맞았다. 오늘날이었다면 경미한 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항생제나 효과적인 소독법이 없던 시절에 이 사소한 상처는 감염되었고, 괴저가 일어났다. 12세기 유럽에서 괴저의 확산을 막는 유일한 방법은 감염된 사지를 절단하는 것이었지만, 감염이 어깨에 있으면 그런 조치가 불가능했다. 괴저는 사자왕의 몸 전체로 퍼졌고, 아무도 왕을 도울 수 없었다. 2주일 후 그는 커다란 고통 속에서 죽었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최고의 의사들조차 이렇게 하면 감염을 방지하고 조직의 부패를 막는지를 알지 못했다. 야전병원 의사들은 병사들이 사지에 사소한 부상을 입었을 때조차 괴저가 두려워서 손과 다리를 늘상 절단했다. 절단은 다른 모든 의학적 처치(이빨 뽑기 등)와 마찬가지로 마취제 없이 이루어졌다. 최초의 마취제 - 에테르, 클로로포름, 모르핀 - 가 서구 의학에서 통상적으로 사용된 것은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였다. 클로로포름이 등장하기 전에는 의사가 부상자의 팔다리를 톱으로 자르는 동안 네 명의 병사가 환자를 잡고 있어야 했다.
워털루 전투(1815년)가 끝난 다음 날 아침 야전병원 근처에선 톱질로 잘려 나간 팔다리가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시절 군에 징집된 목수와 백정은 흔히 의무대로 보내졌다. 수술에는 칼과 톱을 다루는 기술 외에 더 필요한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워털루 전투 이후 2세기 동안 상황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알약, 주사, 복잡한 수술이 수많은 질병과 부상에서 우리를 구했다. 우리는 한때는 피할 수 없던 사망선고에서 해방되었다.
또한 우리는 근대 이전의 사람들이 그저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던 수많은 일상의 통증과 가벼운 병으로부터 보호받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40세가 채 안 되던 평균 기대 수명은 약 67세로 성큼 뛰었고, 선진국에선 약 80세가 되었다. 어린이와 유아 사망률이 특히 낮아졌다. 20세기가 되기 전에는 농경사회 어린이 중 3분의 1이나 4분의 1이 성인이 되기 전에 사망했는데, 대부분 디프테리아, 홍역, 천연두에 희생되었다. 17세기 영국의 경우 신생아 1천 명당 평균 150명이 출생 첫해에 죽었고, 모든 어린이의 3분의 1이 15세가 되기 전에 사망했다.
오늘날 영국에서 출생 첫해에 사망하는 아기는 1천 명당 다섯 명, 15세가 되기 전에 죽는 아이는 1천 명당 7명에 불과하다. 이런 수치가 주는 충격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숫자를 가리고 이야기하는 편이 낫다. 영국 왕 에드워드 1세(1237~1307)와 그의 왕비 엘리노어(1241~1290)가 좋은 사례였다. 그들의 자녀는 중세유럽에서 제공받을 수 있는 최고의 환경과 양육 여건을 누렸다. 왕궁에 살면서 음식을 마음껏 먹었고, 따스한 옷을 입었다. 좋은 벽난로와 가장 깨끗한 물, 수많은 시종, 최고의 의사가 있었다. 엘리노어 왕비가 낳은 열여섯 명의 아이에 대해 기록은 이렇게 전하고 있다.
1. 1255년에 태어난 이름 없는 딸은 출생 시 사망했다.
2. 딸 캐서린은 한 살 혹은 세 살에 사망했다.
3. 딸 조앤은 생후 6개월에 사망했다.
4. 아들 존은 5세에 사망했다.
5. 아들 헨리는 6세에 사망했다.
6. 딸 엘리노어는 29세에 사망했다.
7. 이름 없는 딸은 생후 5개월에 사망했다.
8. 딸 조앤은 35세에 사망했다.
9. 아들 알폰소는 10세에 사망했다.
10. 딸 마거릿은 58세에 사망했다.
11. 딸 베렌게리아는 2세에 사망했다.
12. 이름 없는 딸은 출생 직후 사망했다.
13. 딸 메리는 53세에 사망했다.
14. 이름 없는 아들은 출생 직후 사망했다.
15. 딸 엘리자베스는 34세에 사망했다.
16. 아들 에드워드
가장 어린 에드워드는 어린 시절이라는 위험한 시기를 지나 살아남은 첫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 에드워드 1세가 죽은 뒤 에드워드 2세로서 왕좌를 물려받았다. 다시 말해 엘리노어 왕비는 영국 왕비의 가장 근본족 임무 - 남편에게 남성 계승자를 안기는 것 - 를 수행하기 위해 열여섯 차례 임신을 시도해야 했다는 말이다. 에드워드 2세의 어머니는 예외적인 인내와 불굴의 용기를 지닌 여성이었음이 틀림없다. 에드워드 자신이 아내로 맞은 프랑스의 이자벨라는 그렇지 못했다. 그녀는 남편이 43세에 암살당하게 만들었다.
우리가 아는 한 엘리노어와 에드워드 1세는 건강한 부부로, 자식들에게 치명적인 유전병을 물려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열여섯 명중 열 명 - 62퍼센트 - 이 어린 시절에 죽었다. 가까스로 11세가 넘도록 살아남은 아이는 여섯 명뿐이었고, 40세가 넘도록 산 것은 세 명 - 18퍼센트 - 뿐이었다. 출산에 더해 엘리노어는 유산으로 끝난 임신도 여러 차례 했을 가능성이 많다. 에드워드와 엘리노어는 평균 3년에 한 명꼴로, 열 명의 아이를 차례차례 잃었다. 오늘날의 부모라면 그런 상실을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불멸을 추구하는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달성되려면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까? 5백 년? 1900년에 우리가 인체에 대해 아는 것이 얼마나 적었던지 그리고 한 세기 만에 우리가 얼마나 많은 지식을 축적했는지 돌이켜보면 낙관할 만하다. 최근 유전공학자들은 예쁜 꼬마선충의 평균 수명을 두 배로 늘리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호모사피엔스에 대해서도 동일한 일을 할 수 있을까? 나노공학자들은 수백만 개의 나노 로봇으로 구성된 생체공학적 면역계를 개발 중이다. 그 로봇들은 우리 몸속에 살면서 막힌 혈관을 뚫고, 바이러스와 세균과 싸우고, 암세포를 제거하며, 심지어 노화과정을 되돌릴 것이다. 몇몇 진지한 학자들은 2050년이 되면 일부 인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불멸은 아니다. 사고를 당하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치명적인 외상을 당하지 않는 한 생명이 무한히 연장될 수 있다) 전망한다.
길가메시 프로젝트가 성공하든 그렇지 않든,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근대 후기의 종교와 이데올로기 대부분이 죽음과 사후세계를 방정식 바깥으로 이미 제쳐놓았다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18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종교는 죽음과 사후의 일이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겼다. 18세기가 되면서 종교와 자유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등의 이데올로기들은 사후세계에 대한 흥미를 잃었다. 공산주의자가 죽은 뒤에 그 사람에게는 정확히 무슨 일이 일어날까? 페미니스티에게는? 마르크스, 애덤 스미스, 시몬 드 보부아르의 저작에서 그 답을 찾으려는 것은 무의미한 행동이다. 죽음에 여전히 핵심적 역할을 부여하는 유일한 근데 이데올로기는 민족주의다. 가장 시적이고 필사적인 순간에 민족주의는 민족을 위해 죽는 사람은 누구나 민족의 집단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 것이라고 약속한다. 하지만 이 약속은 너무나 모호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민족주의자들도 그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를 잘 모른다.
우리는 기술 시대를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과학과 기술 속에 우리의 모든 문제에 대한 답이 있다고 믿는다.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이 자신들의 일을 하도록 내버려 두면 그들이 지상에 천국을 건설할 것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과학은 여타 인간활동보다 상위에 있는 고도의 도덕적, 정신적 차원에서 벌어지는 사업이 아니다. 우리 문화의 다른 모든 면과 마찬가지로 과학은 경제적, 정치적, 종교적 이해관계에 의해 형성된다.
과학에는 돈이 매우 많이 든다. 인간의 면역계를 이해하려고 연구하는 생물학자에게는 실험실, 시험관, 화학물질, 전자현미경이 필요하다. 실험실 조수, 전기기술자, 배관공, 청소부는 말할 것도 없다. 신용대출 시장의 모델을 수립하려 연구하는 경제학자는 컴퓨터를 구입하고, 거대한 데이터뱅크를 마련하고 복잡한 데이터 처리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고대 수렵채집인의 형태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는 먼 곳으로 여행을 가서, 고대 유적지를 발굴하고 화석화된 뼈와 인공물의 연대를 추정해야 한다. 이 모든 일에는 돈이 든다.
지난 5백 년간 현대 과학이 놀라운 업적을 성취한 것은 주로 정부와 기업, 재단, 민간 기부자들이 과학 연구에 기꺼이 수십억 달러를 투자한 덕분이었다. 그 수십억 달러는 우주를 기록하고, 우리 행성의 지도를 만들고, 동물들의 목록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갈릴레오 갈릴레이,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찰스 다윈보다 더욱 크게 기여했다. 만일 이 천재들이 태어나지 않았더라도 이들의 통찰은 누군가 다른 사람의 머릿속에 떠올랐겠지만, 적절한 자금지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뛰어난 지성으로도 그것을 보충할 수 없다. 만일 다윈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진화론을 발견한 공은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라는 아이디어를 다윈과 별개로 불과 몇 년 늦게 생각해 낸 앨프리드 러셀 윌리스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유럽의 열강들이 세계 도처를 누비는 지리학적, 동물학적, 식물학적 연구의 자금을 대지 않았더라면, 다윈도 윌리스도 진화론을 뒷받침할 실증적 자료를 손에 넣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기업의 금고에서 수십억 달러가 실험실과 대학으로 흘러들어 가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학계에는 순수과학을 신봉할 정도로 순진한 사람이 많다. 이들은 정부와 기업이 무엇이 되었든 매력적으로 보이는 프로젝트에 이타적으로 자금을 댄다고 믿는다. 그러나 그것은 과학 연구자금의 실제를 몰라서 하는 생각이다.
대부분의 과학연구에 자금이 지원되는 이유는 그 연구가 모종의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목적을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고 누군가 믿기 때문이다. 예컨대 16세기의 왕과 은행가들은 세계를 누비는 지리적 탐험대에 막대한 지원을 투입했지만, 아동심리학 연구에는 한 푼도 대지 않았다. 새로운 지리적 지식이 자신들로 하여금 새로운 땅을 정복하고 무역 제국을 건설할 수 있게 해 주리라고 짐작한 데 비해 아동심리는 이해해 보았자 아무런 이익이 생기지 않는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1940년대 미국과 소련 정부가 수중고고학이 아니라 핵물리학 연구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한 것은 핵물리학을 연구하던 원자폭탄을 만들 수 있지만 수중고고학은 전쟁에서 승리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였다. 과학자들 자신이 돈의 흐름을 통제하는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이해관계를 항상 의식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과학자가 실제로 순수한 지적 호기심에서 행동한다. 하지만 과학적 의제가 과학자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설사 우리가 정치, 경제, 종교적 이해관계와 무관한 순수과학연구를 지원하고 싶다 해도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의 자원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기초연구를 위해 국립과학재단에 1백만 달러만 추가로 배당해 달라고 하원의원에게 요청한다면, 의원은 그 돈을 교사 교육에 쓰거나 형편이 어려운 자기 지역구 공장에 세금우대 조치를 주는 데 사용하는 게 더 좋지 않겠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이치에 맞는 말이다. 제한된 자원을 끌어오려면 우리는 "무엇이 더 중요한가?" "무엇이 좋은가?" 같은 질문에 대답해야만 한다. 그리고 이런 것은 과학적 질문이 아니다. 과학은 세상에 무엇이 존재하는지, 사물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미래에 무엇이 존재할 지를 설명할 수 있다. 하지만 정의상 과학은 미래에 무엇이 존재해야 마땅한 지를 안다고 허세를 부릴 수는 없다. 그런 질문에 대한 답을 추구하는 것은 종교와 이데올로기뿐이다.
다음과 같은 딜레마를 생각해 보자. 똑같은 전문성을 가진 같은 부서의 생물학자 두 명이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1백만 달러의 보조금을 신청했다. 슬러그혼 교수는 우유 생산량을 10퍼센트 감소시키는 암소의 유선 감염질환을 연구하고 싶어 한다. 스프라우트 교수는 암소가 송아지와 떨어지게 되었을 때 정신적 고통을 받는지를 연구하고 싶어 한다. 돈의 액수는 제한되어 있으며 두 연구 모두에 보조금을 지원할 수는 없다고 가정할 때, 어는 쪽이 지원을 받아야 할까?
이 문제에 과학적 해답은 없다. 오로지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해답이 있을 뿐이다.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슬러그혼이 돈을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 유선병이 소의 정신상태보다 과학적으로 더 중요해서가 아니다. 그저 그 연구에서 이익을 취하려는 낙농업계의 영향력이 돌물권리운동보다 더 강하기 때문이다. 암소가 신성시되는 엄격한 힌두 사회나 동물권 보호에 전념하는 사회였다면 아마도 스프라우트 교수에게 기회가 주어졌겠지만 그가 살고 있는 사회는 우유의 상업적 잠재력을 중시하며 암소의 기분보다 인간 시민의 건강을 더 중하게 여긴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런 전제에 맞게 연구제안서를 작성하는 것이 그에게는 최선이다. 이를테면 이렇게 쓰는 것이다. "우울증은 우유 생산의 감소로 이어진다. 젖소의 정신세계를 이해한다면 우리는 소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향정신성 약물을 개발할 수 있다. 이런 약은 우유 생산을 10퍼센트까지 늘릴 수 있다. 필자의 주장에 따르면, 소의 향정신성 약물에 대한 전 세계 시장의 수요는 매년 2억 5천만 달러에 이른다."
과학은 자신의 우선순위를 스스로 정할 수 없다. 자신이 발견한 것을 무엇을 할 것인지 결정할 능력도 없다. 순수한 과학적 견지에서 본다면, 가령 늘어난 유전학 지식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치 않다. 그 지식을 암 치료에 이용해야 할까, 유전자 조작 슈퍼맨을 만드는 데 써야 할까, 아니면 슈퍼 사이즈 젖통이 달린 유전자 조작 젖소를 만드는 데 써야 할까? 자유주의 정부, 공산 정부, 나치 정부, 자본주의 기업은 동일한 과학적 발견을 완전히 다른 용도로 이용할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어떤 용도를 다른 용도보다 선호할 과학적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과학연구는 모종의 종교나 이데올로기와 제휴했을 때만 번성할 수 있다. 이데올로기는 연구비를 정당화한다. 그 대신 이데올로기는 과학적 의제에 영향을 미치고, 과학의 발견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그러므로 인류가 어떻게 해서 앨러머고도와 달 - 수많은 다른 목적지가 아니라 - 에 도달했는지를 이해하려면, 심리학자, 생물학자, 사회학자의 업적을 조사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물리학과 생물학과 사회학을 형성했고 다른 방향들을 무시하면서 특정 방향으로만 밀어붙인 이데올로기적, 정치적, 경제적 힘을 고려해야 한다.
특히 두 가지 힘이 우리의 관심을 끌 만하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다. 과학과 제국과 자본 사이의 되먹임 고리는 논쟁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아마 지난 5백 년간 역사의 가장 중요한 엔진이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장들에서는 그것이 어떻게 작용했는지를 살펴보자. 먼저 우리는 과학과 제국이라는 쌍둥이 터빈이 어떻게 서로 맞물렸는지를 알아보고, 그다음에는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자본주의의 돈 퍼내는 펌프에 정착되었는지를 알아볼 것이다.
나노공학자들은 수백만 개의 나노 로봇으로 구성된 생체공학적 면역계를 개발 중이다. 그 로봇들은 우리 몸속에 살면서 막힌 혈관을 뚫고, 바이러스와 세균과 싸우고, 암세포를 제거하며, 심지어 노화과정을 되돌릴 것이다.
몇몇 진지한 학자들은 2050년이 되면
일부 인류는 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