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간 10주년 특별 서문 (P7~10)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기필코 해 낼 거다. (필사와 단상 기록)
[필사]
<출간 10주년 기념 특별 서문>
인공지능의 시대,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2011년 여름 <사피엔스> 집필을 마무리하면서 이 이야기로 다시 돌아올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이 책을 각별히 좋아하는 데다가 성공까지 거둬 감사한 마음이지만, 이 책을 통해 인류에 대한 이야기는 일단 전해졌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휴머니티 2.0'은 여전히 진화해가고 있고, 그래서 다른 이에게 맡겨두는 것이 최선이라고 여겼다.
그러던 중 2016년 미국 대선의 여파로 나는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 상상 속의 질서와 지배적 구조를 창조해 내는 인류의 독특한 능력을 재검토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우리가 배운 것은 가짜 뉴스가 진짜 뉴스보다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 FBI가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다는 점, 페이스북이 선거판의 틀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 억만장자가 경쟁 후보보다 적은 돈을 써서 대통령이 될 수 있다는 점, 마지막으로 한 국가가 적대적인 두 진영으로 쪼개져 더 이상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이다.
달리 말해 이 모든 현상이 말하는 바는 대규모로 상상 속의 질서를 창조해 내는 인류의 독특한 능력이 현재 우리에게서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우리는 국민국가와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상상 속의 질서 덕분에 힘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덕분에 전례 없는 번영과 복지도 이루었다. 하지만 그 상상 속의 질서가 오늘날 우리를 분열시키려 하고 있다.
현재 우리가 마주한 커다란 도전 과제는 세계적인 규모로 새로운 상상 속으리 질서를 만들되 국민국가나 자본주의 시장에 기초하지 않는 것이다.
국민구가난 자유시장 또는 개인의 주권이나 자연의 지배에 기초하지 않은 채로 세계적인 규모로 새로운 상상 속의 질서를 만들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이 책에서 내가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이다.
위 글은 나, 유발 노아 하라리가 쓴 것이 아니다. 나처럼 쓰라는 주문을 받은 강력한 인공지능이 쓴 것이다. 이 특별한 인공지능의 이름은 GPI-3로, 샌프란시스코에 본사가 있고 기계학습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연구소인 '오픈 AI'에서 만들었다. <사피엔스> 출간 10주년을 맞아 새로운 서문을 써달라는 주문을 받자 GPT-3는 내 책과 논문, 인터뷰는 물론 온라인에 떠돌아다니는 무수한 내 글을 모아서 위 글을 완성했다. 그 과정에 어떠한 수정이나 편집은 없었다.
나를 구현해 낸 GPT-3의 글을 보면서 마음이 복잡했다. 우선, 그리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실제로 내가 썼던 표현들을 베낀 뒤, 인터넷을 뒤져 온갖 다양한 견해를 섞어 글을 조합했기 때문이다. 나라면 결코 글로 쓰지 않았을 아이디어가 많이 포함됐다. 납득하기 어렵거나 명백하게 우스꽝스러운 부분도 보였다. 그 결과물은 문학적이면서 지적이 잡탕처럼 보인다. 일단 안심이 된다. 적어도 몇 년간은 GPT-3가 내 일자리를 뺏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깜짝 놀랐다. 위 글을 읽는 동안 충격으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정말 AI가 이 글을 썼단 말인가? 글 자체는 잡동사니들을 조합해 만든 잡탕이다. 하지만, 어차피 모든 글이 다 그렇잖은가? 내가 <사파엔스>를 집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수많은 책, 논문, 인터뷰 글들을 다 끌어 모아서 서로 다른 아이디어와 사실을 결합해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으니 말이다.
GPT-3가 생산한 글이 가진 가장 놀라운 사실은 말이 된다는 점이다. 문장을 무작위로 조합한 것이 아니며 논리적으로 일관성을 띠고 있다. 나는 GPT-3의 일부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글이 실제로 모종의 주장을 펴고 있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약 유명환 이야기처럼 원숭이에게 타자기를 가지고 놀레 했다면 나는 힐끗 쳐다보기만 해도 1초도 되지 않아 그게 내 글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을 터다. 하지만 GPT-3의 글은 1분 내지 2분 동안 찬찬히 들여다본 후에야 비로소 내가 쓴 것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P7~10)
책을 읽기 전 서문을 꼼꼼히 읽는 편이다. 이 책은 서문만 열 페이지, 겨우 네 페이지 필사했는데 이미 뿌듯하다. 당연히 저자가 쓴 글이려니 하고 읽은 서문 시작 단계가 인공지능이 쓴 것이라니 놀랍다. 당분간은 일자리 뺏길 염려가 없어 안심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말이 유머스럽게 들리긴 하지만 인공지능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날 올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제2의 한강'이 되길 꿈꾸는 젊은 문학도들의 사기(士氣)가 염려된다.
브런치스토리 작가 나흘째, 기쁨 충분히 누렸고, 이제 '작가'의 이름값을 해야 하는데 기능, 구성 등이 낯설어 밤낮 가리지 않고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며 매거진과 브런치북을 알았다. 실력보다 한참 앞서는 꿈 때문에 브런치북을 덜컥 만들었다. 제목, 추천 독자, 북소개까지 빽빽이 쓰고, 기 발행된 글 4개를 옮겨 저장하고 임시 목차 6개 만들기 위해 끙끙댔으나 쉽지가 않다. 일단 포기하고 브런치북과 매거진의 차이점을 알아봤다. 결과, 새내기 작가인 나는 매거진이 맞았다. 시스템에 익숙할 때까지 일반 발행을 할까도 생각했는데 타 작가들의 표지가 있는 브런치북과 매거진이 근사했고 부러웠다. 결국 '사는 이야기' 매거진 하나를 만들었고, 브런치북에 있는 글 4개 옮기고 새 글 하나를 추가 발행했다. 두번째 매거진 '사피엔스 통필사'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기쁘기 그지 없을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