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2

출간 10주년 특별 서문 완성 (P10~16)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기필코 해 낼 거다. (필사와 단상 기록)



[필사]

<출간 10주년 기념 특별 서문>


그뿐만이 아니다. 두 번째로 날 놀라게 하고 또 불안하게 한 것은 변화의 속도다. GPT-3는 여전히 매우 원시적인 인공지능이다. 앞으로 우리가 마주치게 될 것은 훨씬 더 많다. 2010년 <사피엔스>를 집필할 때, 난 인공지능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이 단어는 심각한 역사책보다는 그저 공상과학 영화에나 어울리는 것처럼 들렸다. 하지만 내가 도서관에 앉아 오래된 책을 읽고 있을 때 컴퓨터 공학 연구소에 다니던 내 동료들이 게으름을 피우지는 않은 듯하다. 2011년 <사피엔스>가 히브리어로 처음 출판되었을 때의 일을 돌이켜보자. 왓슨이라는 이름의 AI가 미국의 인기 게임 프로그램인 <제퍼디!jeopardy!>에서 인간 참가자들에게 승리했으며, 자율주행 자동차는 베를린 도심에서 주행에 성공했고, 음성 인식 서비스인 시리siri가 아이폰에 처음으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10년이 지난 현재 인공지능 혁명이 전 세계에 휘몰아치고 있다. 이 혁명은 우리가 알던 방식의 인류 역사는 끝났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수만 년 동안 인류는 모든 종류의 도구를 개발해 스스로 더 강해졌다. 도끼, 바퀴, 원자폭탄은 인류에게 새로운 힘이 되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다르다. 역사상 처음으로 힘의 중심이 인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지도 모른다.

인류가 이전의 도구들을 통해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도구에게 스스로의 용도를 결정할 능력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결정권은 언제나 인류의 특권이었다. 도끼 스스로 어떤 나무를 찍을지 결정할 수 없었고, 원자폭탄이 스스로 전쟁을 시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가능하다. 이미 오늘날 은행에 대출을 신청하면 승인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인공지능이다. 이력서를 잠재적 고용주에게 보냈을 때도 그걸 살펴보고 당락을 결정짓는 것은 인공지능일 가능성이 크다.

이전 도구들을 통해 인류가 힘을 누릴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도구가 인간을 이해하는 것보다 인간이 도구를 더 잘 이해했다는 사실이다. 농부는 도끼의 용도를 잘 이해하지만 도끼는 농부의 요구나 감정을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머지않아 인공지능은 우리 자신보다 우리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인공지능은 인류의 도구로 계속 남을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그들의 도구가 될 것인가?

적어도 몇 년 동안은 인간이 인공지능보다 여전히 더 강할 것이다. 특히 인공지능을 비롯한 혁신적인 기술을 어떻게 개발하고 사용할 것인지, 그 틀을 결정할 힘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이 힘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기술은 결코 결정론적이지 않다. 동일한 기술이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사용될 수 있다. 20세기에 일부 사회는 전력, 기차, 라디오를 이용해서 전체주의 독재 정권을 이뤄낸 반면, 다른 사회는 정확히 똑같은 힘을 사용해서 자유민주주의를 만들었다. 우리는 21세기에 새로운 기술을 사용하여 천국도 만들 수 있고 지옥도 만들 수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 선택에 달렸다.

현명한 선택을 위해서는 이런 새로운 기술들이 가진 모든 잠재력을 이해해야 하겠지만, 또한 우리 스스로에 대해 더 잘 파악해야 한다. 만일 인공지능을 사용해서 어떤 세상이든 모두 만들 수 있다면, 과연 그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생명공학을 이용해 인간의 몸과 마음을 개조할 수 있다면 무엇을 바꾸겠는가?

동화 속에서 그 결과는 보통 비극이었다. 마법을 부리는 금붕어나 요술램프 속 전능한 지니가 사람들의 소원 세 가지를 들어줄 때를 보라. 이는 사람들 스스로 엉뚱한 소원을 빌었기 때문이다. 행복과 불행의 진짜 근원이 무엇인지를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이런 동화 속에 등장하는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벗어나려면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알아야 한다.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다행히 지난 10년 동안 디지털 기기가 어마어마하게 강력해지면서 인간 생물학과 인류의 역사에 관한 우리의 지식도 엄청나게 늘어났다. 2011년 <사피엔스>를 출판한 뒤에 과학자들은 인류 가계도에서 몇몇 새로운 가지를 발견했다. 2013년 남아프리카에서는 호모 날레디Homo naledi의 뼈가 처음 발견되었다. 필리핀 루손 섬에서 살았던 도인종인 호모 루소넨시스Homo luzonensis도 2019년에 발견되었다. 2021년에는 이스라엘과 중국에서 새로운 인류종으로 추측되는 유골 두 종류가 발견되었다.

우리는 단지 다른 고대 인류가 존재했다는 사실뿐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행동했으며 심지어 누구와 관계를 맺고 살았는지도 알게 되었다. <사피엔스>를 쓸 무렵, 우리가 아는 거라곤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이종교배에 대한 조그만 힌트뿐이었다. 하지만 현재 그들 간의 조우에 대한 훨씬 더 많은 증거가 나왔다. 또한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모두 데니소바인과도 교배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2010년 처음 발견된 미스터리한 또 다른 인류 말이다. 최근 과학자들은 모계는 네안데르탈인이며 부계는 데니소바인인 혼종 인간의 유해를 발견했다.


<사피엔스>를 펴낸 이래 인류 역사에 많은 정보가 더해졌고 새로운 전환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책에서 언급했던 요점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즉, 호모 사피엔스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호모 사피엔스를 '이야기하는 동물storytelling animal'로 보는 것이라는 점이다. 인간은 신과 국가와 기업에 대한 허구의 이야기를 만들어내며, 이러한 이야기들은 우리 사회의 근간이자 삶에 의미를 주는 원천이 된다. 그 이야기를 위해 우리는 기꺼이 누군가를 죽이거나 또는 죽임을 당한다. 이런 형태는 침팬지나 늑대를 비롯해 사회생활을 하는 똑똑한 다른 종에서는 볼 수 없다. 인간은 다른 어떤 동물보다 더 많은 사실을 알지만 또한 더 많을 허구를 믿는다. 오직 인간만이 이야기 탓에 서로를 살해한다. 정말로 우리가 인류 역사를 이해하길 원한다면 허구적인 이야기글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게 내 주장이다. 그저 경제나 인구통계학적인 요소만 들여다본다고 되는 게 아니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을 떠올려보자. 독일과 영국은 왜 전쟁을 벌였는가? 영토나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1914년 독일과 영국 모두 집을 짓기에 충분한 영토가 있었고, 국민들이 먹고살기에 충분한 식량도 있었다. 하지만 양측이 함께 믿을 수 있는 공통의 이야기를 만들지 못했다 그래서 전쟁을 벌였다. 오늘날 영국과 독일 간에 평화가 유지되는 이유는 더 많은 영토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실제로 1914년 때보다 영토는 훨씬 작아졌다) 두 나라 국민 대부분이 믿는 공통의 이야기가 현존하기 때문이다.

수천 년 전, 석가모니는 이미 사람들이 환상의 세계 속에서 살고 있다고 논했다. 실제로 국가, 신, 기업, 돈, 이념은 우리 모두가 창조해서 신봉하고 있는 집단 환상이다. 이것이 인류의 역사를 지배한다. 인공지능의 시대를 맞아 우리가 어떤 이야기를 믿느냐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이는 우리 스스로의 환상을 추구할 더욱 강력한 기술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인류가 상상한 천국과 지옥은 그들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쟁에 참여하여 이른바 '이단자'들을 죽였으며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금식과 금욕을 했다. 하지만 그들은 천국 그 자체를 죽음이라는 상상의 영역으로 미뤄둬야만 했다. 하지만 21세기에 적어도 몇몇 사람들은 그들의 환상을 이 땅에서 이루고자 하는 유혹을 뿌리치기 힘들 것이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 및 기타 혁신적인 기술을 사용해서 말이다. 우리가 무엇을 믿을 것인지를 신중하게 선택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순진무구한 이상향에 쉽게 호도될 수 있다. 출구 없는 기술 지옥에 빠져버릴지도 모른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면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우거나 유전자 코드를 해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인공지능과 유전공학은 전체주의 폭군과 종교적 광신자의 목표를 쉽게 이루게 해 줄 수 있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의 마음과 그 마음이 만들어내서 믿고 있는 환상이다. 시인과 철학자와 역사가들의 과제이자 어느 때보다 해결이 시급한 숙제다.

우리는 죽은 자들의 꿈 안에 갇혀 있다. 하지만 역사를 연구하면 출구가 보일 수 있다. 나 같은 역사가의 임무는 과거를 기억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사람들을 과거로부터 해방시키는 데 있다. 우리가 믿는 이야기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배우게 될 때, 그 이야기들을 바꿀 방법도 알게 된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동물이며, 인간 사회는 이야기 없이 작동될 수 없다. 하지만 결국 이 이야기들도 사람들을 돕기 위해 우리가 만드는 도구에 불과하다. 만약 이야기가 유익함보다 해로운 결과를 더 많이 낳는다면 언제든지 그 이야기를 바꿀 수 있는 것이다.


2022년 7월

유발 노아 하라리






[단상]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인공지능? 나를 지배할 인공지능? 상상만으로도 무섭다.

아직은 인공지능이 편리성 신속성 경제성을 위한 나의 도구에 불과해 다행이다. 인공지능의 성장은 인간의 자료 입력에 의한 데이터 수집 결과이다. 인간이 만들어 인간이 지배당할 수 없다.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기술보다 인간 이해가 먼저다. 인공지능이 인류에 해로운 결과를 미친다면 그건 혁명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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