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30쪽~43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기필코 해 낼 거다. 2025.01.10 (필사와 단상 기록)
제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2. 지식의 나무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날
4. 대홍수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약 140억 년 전(2013년 플랑크 위성의 관측 결과를 반영한 우주의 최신 나이는 137억 9.800만 년±3,700만 년이다. 저자는 140억 년이라고 적었으나 이는 개략적인 수치다-옮김이) 빅뱅이라는 사건이 일어나 불질과 에너지, 시간가 공간이 존재하게 되었다. 우주의 이런 근본적 특징을 다루는 이야기를 우리는 물리학이라고 부른다. 물질과 에너지는 등장한 지 30만 년 후에 원자라 불리는 복잡한 구조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원자는 모여서 분자가 되었다. 원자, 분자 및 그 상호작용에 관한 이야기를 우리는 화학이라고 부른다.
약 400억 년 전 지구라는 행성에 모종의 분자들이 결합해 특별히 크고 복잡한 구조를 만들었다. 생물이 탄생한 것이다. 생물에 대한 이야기는 생물학이라 부른다. 약 7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 중에 속하는 생명체가 좀 더 정교한 구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문화가 출현한 것이다. 그 후 인류문화가 발전해 온 과정을 우리는 역사라고 부른다.
역사의 진로를 형성한 것은 세 개의 혁명이었다. 약 7만 년 전 일어난 인지혁명은 역사의 시작을 알렸다. 약 12,000년 전 발생한 농업혁명은 역사의 진전 속도를 빠르게 했다. 과학혁명이 시작한 것은 불과 5백 년 전이다. 이 혁명은 역사의 종말을 불러올지도 모르고 완전히 다른 것을 새로이 시작하게 할지도 모른다. 이들 세 혁명은 인간과 그 이웃 생명체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그것이 이 책의 주제다.
인류는 역사가 시작하기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현대 인류와 아주 비슷한 동물은 약 250만 년 전 출현했지만, 수업이 많은 세대 동안 그들은 같은 지역에 서식하는 다른 수많은 동물들보다 딱히 두드러지지 않았다.
우리가 2백만 년 전의 동부 아프리카에서 하이킹을 한다고 상상해 보자. 우리가 마주칠 인간 군상의 모습은 오늘날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아기를 안고 있는 여인, 진흙탕에서 즐겁게 노는 어린이들, 사회의 규범에 반항하는 흥분한 젊은이들, 그저 평화롭게 지내기만을 원하는 무기력한 노인들, 동네 미인들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어 주먹으로 가슴을 두드리는 총각들, 오래전부터 이런 광경들을 보아온 현명하고 나이 든 우두머리 여성.
이들 원시인류는 서로 사랑하고 놀면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기도 하고, 지위와 권력을 위해 경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은 침팬지, 개코원숭이, 코끼리도 마찬가지였다. 인간이라고 해서 특별한 점은 없었다.
당시에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 당시에는 아무도 짐작하지 못한 사실이 있다. 당시에는 아무도 이들 원시인류의 후손이 언젠가 달 위를 걷고 원자를 쪼개고 유전자 코드를 해독하며 역사책을 쓰리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선사시대 인류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이 그다지 중요치 않은 동물, 주변환경에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종이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고릴라, 반딧불이, 해파리보다 딱히 더 두드러지지 않았다.
생물학자들은 생물을 종으로 분류한다. 동물을 같은 종으로 구분하는 기준은 간단하다. 서로 교배를 하는 경향이 있고 그래서 번식 가능한 후손을 낳으면 된다. 말과 당나귀는 최근에 같은 조상에서 갈라졌고 신체적 특질에 공통점이 많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성적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굳이 교배를 하게 유도할 수는 있으나 그 후손인 노새는 불임이다. 그러므로 당나귀의 DNA에 생긴 돌연변이는 말에게 전달될 수 없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그 결과 두 동물은 각기 다른 종으로 분류되며 각자 다른 진화의 길을 걷는다. 이와 대조되는 경우는 불도그와 스패니얼이다. 둘은 매우 달라 보이지만 같은 종이다. 동일한 DNA 정보를 공유한다는 뜻이다. 이들은 교배를 하고, 그들이 낳은 강아지는 자라서 다른 개와 짝을 지으며 많은 새끼를 낳는다.
같은 조상에게서 진화한 각기 다른 종들을 묶어서 '속屬. genus'이라 부른다. 사자와 호랑이, 표범과 재규어는 '표범 속panthera'에 속하는 각기 다른 종이다.
생물학자들은 두 개의 라틴어로 생물의 학명을 붙인다. 속이 먼저 나오고, 종은 그 뒤에 쓴다. 예컨대 사자의 학명은 'Panthera leo'로, Panthera 속에 속하는 leo 종이라는 뜻이다. 속의 상위에 있는 것이 '과科, family'다. 고양이과(사자, 치타, 집고양이), 개과(늑대, 여우, 자칼), 코끼리과(코끼리, 매머드, 마스토돈) 등이 그런 예다. 같은 과에 속하는 모든 동물은 동일한 선조의 후손이다. 예컨대 모든 고양이과 동물은 약 2,500만 년 전에 살았던 조상을 공유하고 있다. 가장 작은 집고양이에서 무서운 사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마찬가지다.
호모 사피엔스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과에 속한다. 이 엄연한 사실은 역사에서 가장 은밀히 숨겨진 비밀이었다. 오랫동안 호모 사피엔스는 스스로를 다른 동물과 동떨어진 존재로, 속한 과科가 없는 동물인 것처럼, 형제자매도 사촌도 없고 가장 중요하게는 부모도 없는 동물인 것처럼 보려고 했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좋든 싫든, 우리는 거대 영장류라는 크고 유달리 시끄러운 과의 한 일원이다. 현생종들 중 우리와 가까운 친척으로는 침팬지, 고리라, 오랑우탄이 있고, 가장 가까운 것은 침팬지다. 불과 6백만 년 전 단 한 마리의 암컷 유인원(꼬리 없는 원숭이)이 딸 둘을 낳았다. 이 중 한 마리는 모든 침팬지의 조상이, 다른 한 마리는 우리 종의 할머니가 되었다.
인류가 스스로 숨겨온 비밀
호모 사피엔스는 이보다 훨씬 더 불편한 사실을 계속 비밀로 해왔다. 오늘날 우리에게 문명화되지 않은 사촌들이 많을 뿐 아니라 과거에는 형제자매도 적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지난 1만 년간 우리 종은 지구상의 유일한 인간 종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스스로를 유일한 인류라고 생각하는 데 익숙해 잇다. 하지만 '인간human'이란 말의 진정한 의미는 '호모 속에 속하는 동물'이고, 호모 속에는 사피엔스 외에도 여타의 종이 많이 존재했다.
더구나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우리는 사피엔스가 아닌 인류와 다시 한번 경쟁해야 할지도 모른다. 이는 책의 마지막 장에서 살펴볼 주제다. 이런 논점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 나는 호모 사피엔스 종의 일원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사피엔스'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하겠고, '인류human'란 '호모 속에 속하는 현존하는 모든 종'을 지칭하는 의미로 쓰겠다.
인류는 약 250만 년 전 동부 아프리카의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진화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우리보다 더 오래된 유인원의 한 속으로서 '남쪽의 유인원'이란 뜻이다. 약 2백만 년 전 이들 원시의 남성과 여성은 고향을 떠나 여행을 시작해 북아프리카, 유럽, 아시아의 넓은 지역에 정착했다. 인류 집단은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방향으로 진화했다. 북유럽의 눈 덮인 숲에서 살아남기에 좋은 특질과 인도네시아의 찌는 듯한 정글에서 살아남 데 필요한 특질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서로 다른 여러 종들이 생겨났고, 과학자들은 여기에 거창한 라틴어 이름을 붙였다 유럽과 서부 아시아의 인류는 '호모 네안데르탈렌시스(네안데르 골짜기에서 온 사람)', 흔히 말하는 네안데르탈인으로 진화했다. 이들은 우리 사핀엔스보다 덩치가 크고 근육이 발달한 덕분에 유라시아 서부에서 빙하기의 추운 기후에 잘 적응했다. 아시아의 좀 더 동쪽 지역에는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다. 이들 '똑바로 선 사람'은 그 지역에서 2백만 년 가까이 살아남아, 가장 오래 지속된 인간 종이 되었다. 우리 사피엔스가 이 기록을 깰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호모 사피엔스가 지금부터 1천 년 후에 존재할지 지 여부도 의심스러운 마당에 2백만 년은 우리와는 동떨어진 시간이다.
인도네시아 자바 섬에는 호모 솔로엔시스가 살았는데, '솔로계곡에서 온 사람'이란 뜻이다. 이들은 열대지방이 삶에 잘 적응했다. 한편 인도네시아의 또 다른 섬 플로레스에서는 고인류가 왜소화의 과정을 겪었다 인류가 플로레스 섬에 도착한 것은 해수면이 이례적으로 낮아져서 본토에서 건너가기가 쉬운 때였다. 그러다 해수면이 다시 높아지자 일부 사람들이 자원이 부족한 그 섬에 갇히게 되었다. 식량을 많이 먹어야 하는 덩치 큰 사람들이 먼저 죽었고, 아무래도 작은 사람들이 살아남기가 수월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플로레스 섬사람들은 점점 난쟁이가 되었다. 과학자들이 '플로레스인(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이라 이름 붙인 이 사람들은 최대 신장이 1미터에 체중은 25킬로그램 이하였다(2003년 발견된 이들 화석인류는 12,000년~9만 년 전에 생존했던 것으로 추정된다-옮긴이). 하지만 이들은 석기를 만들 능력이 있었으며, 가끔 섬의 코끼를 어찌어찌 사냥하기도 했다. 사실은 그 코끼리들도 왜소화 된 종이었지만 말이다.
2010년에 우리의 잃어버린 사촌 중 또 하나가 발견되었다. 시베리아의 데니소바 동굴을 발굴하던 과학자들이 손가락뼈 화석 하나를 찾아냈는데, 유전자 분석 결과 이 손가락의 주인은 이제껏 알려지지 않은 인류에 속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자들은 '데니소바인(호모 데니소바)'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또 다른 동굴이나 섬에서 발굴을 기다리는 우리의 잃어버린 사촌이 얼마나 많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들 인류가 유럽과 아시아에서 진화하는 동안, 동아프리카의 진화도 계속되었다. 인류의 요람은 다양한 종을 길러냈다. '호모 루돌펜시스(루돌프 호수에서 온 사람)' '호모 에르가스터(일하는 사람) 그리고 우리 종이다.
우리는 뻔뻔스럽게도 스스로에게 '호모사피엔스(슬기로운 사람)'란 이름을 붙였다. 이들 종은 덩치가 크기도 했고 작기도 했다. 일부는 무서운 사냥꾼이었고 일부는 온순한 식물 채집인이었다. 하나의 섬에만 사는 종도 있었지만 대륙을 방랑한 종이 많았다. 하지만 모두가 호모 속에 속해 있었다. 모두가 인간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이들 종을 단일 계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예컨대 에르가스터가 에렉투스를 낳고 에렉투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낳고 네안데르탈인이 진화해 우리 종이 되었다는 식이다. 이런 직선 모델은 오해를 일으킨다. 어느 시기를 보든 당시 지구에 살고 있던 인류는 한 종밖에 없었으며, 모든 오래된 종들은 우리의 오래된 선조들이라는 오해 말이다.
사실은 이렇다. 2백만 년 전부터 약 1만 년 전까지 지구에는 다양한 인간 종이 동시에 살았다. 왜 안 그랬겠는가? 오늘날에도 불곰, 흑곰, 북극곰 등 수많은 종류의 곰들이 살고 있지 않은가. 한때 지구에는 적어도 여섯 종의 인간이 살고 있었다. 여기에서 이상한 점은 옛날에 여러 종이 살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오히려 지금 딱 한 종만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이 사실은 우리 종의 범죄를 암시하는 것일지 모른다. 곧 살펴보겠지만 우리 사피엔스 종에게는 사촌들에 관한 기억을 억압할 이유가 있다.
생각의 비용
인간의 여러 종은 차이도 많지만 공통점도 많다. 우선 인간은 다른 동물에 비해 뇌가 예의적으로 크다. 무게가 60킬로그램인 포유동물의 뇌는 보통 2백 세제곱센티미터인 데 비해, 250만 년 전 살았던 가장 초기의 인류는 뇌 용적이 6백 세제곱센티미터였고, 현대의 사피엔스는 편균 1,200~1,400세제곱센티미터에 달한다. 네안데르탈인의 뇌는 이보다 더 컸다.
우리는 진화과정에서 큰 뇌가 선호되는 것을 구태여 뇌를 굴려볼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일로 여긴다. 우리는 자신의 높은 지능에 현혹된 나머지 "지적인 능력은 크면 클수록 좋다"고 가정한다. 하지만 만일 그렇다면 지금쯤 고양이과에서도 미적분을 할 수 있는 개체가 출현했을 것이고, 개구리는 지금쯤 나름의 우주계획을 출범시켰어야 하지 않겠는가.
실상을 말하자면 커다란 뇌는 자원을 고갈시키는 밑 빠진 독이다. 무엇보다 갖고 다니기 어렵다. 커다란 구개골 안에 들어 있으면 더 그렇다. 심지어 연료도 많이 소모한다. 호모 사피엔스의 뇌는 몸무게의 2~3퍼센트를 차지할 뿐이지만,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는 신체가 휴식 상태일 때 전체의 25퍼센트나 된다. 반면에 다른 유인원의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는 신체가 휴식상태일 때 전체의 8퍼센트에 불과하다.
고인류는 뇌가 커지면서 두 가지 대가를 지불했다. 첫째, 식량을 찾아다니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다. 둘째, 근육이 퇴화했다. 국방예산을 교육 부문으로 전용하는 정부처럼 인류는 근육에 쓸 에너지를 뉴런에 투입했다. 이것이 아프리카의 대초원에서 살아남기 좋은 전략이었다고 성급히 결론을 내려버릴 수는 없다. 침팬지는 호모 사피엔스와 논쟁을 벌여 이길 수는 없지만 인간을 헝겊 인형처럼 찢어버릴 완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의 큰 되는 좋은 성과를 올리고 있고, 덕분에 우리는 자동차와 총을 만들 수 있다. 자동차 덕분에 우리는 침팬지보다 훨씬 빨리 이동할 수 있고, 레슬링을 하는 대신 총으로 안전한 거리에서 침팬지를 쏠 수 있다. 하지만 차와 총은 최근 등장한 산물이다. 인간의 신경망은 2백만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성장을 거듭해 왔으나, 몇몇 돌칼과 날카로운 막대를 제외한다면 그것이 이룬 성과는 극히 미미했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이 지난 2백만 년간 인간의 엄청난 뇌 용량 증가를 일으켰을까? 솔직히 우리는 모른다.
인간의 또 다른 이례적 특징은 직립보행이다. 대초원에서 똑바로 서면 사냥감이나 적을 찾기가 쉬워진다. 그리고 이동에 쓰이지 않게 된 팔은 다른 용도, 예컨대 돌을 던지거나 신호를 보내는 데 사용할 수 있다 팔이 할 수 있는 일이 늘어날수록 그 주인이 성공할 가능성이 커지므로, 진화의 압력에 따라 우리는 손바닥과 손가락애 신경이 집중되고 섬세한 근육이 자리 잡게끔 진화하였다. 그 결과 인간은 손으로 매우 복잡한 업무를 수행할 능력을 갖추었다. 특히 복잡한 도구를 만들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인간이 도구를 만들었다는 첫 증거가 나타나는 시기는 약 250만 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구의 제작과 사용은 고고학자들이 고인류를 인정하는 기준이다. 하지만 직립보행은 단점이 있다. 지난 수백만 년간 우리 영장류 선조들은 머리가 상대적으로 작고 네발로 기는 몸을 지탱하는 골격을 진화시켜 왔다. 그러다가 직립 자세에 적응하는 것은 상당한 도전이었다. 특히 유달리 커다란 두개골을 골격이 비계처럼 지탱해야 했기에 더 그랬다. 인간은 높은 시야와 부지런한 손을 얻은 대가로 오늘날 허리가 아프고 목이 뻣뻣해졌다.
여성은 더 큰 비용을 치렀다. 똑바로 서서 걸으려면 엉덩이가 좁아야 하므로 아기가 나오는 산도(질)도 좁아지는데, 하필이면 아기의 머리가 점점 커져가는 기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분만 중 사망은 인간 여성에게 주요한 위험이 되었다. 아기의 뇌와 머리가 상대적으로 작고 유연할 대 일직 출산하는 여성이 더 살아남기 쉬었고, 더 많은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
그 결과 자연선택은 이른 출산을 선호했다. 사실 다른 동물과 비교할 때 인간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많은 시스템이 덜 발달된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갓 태어난 망아지는 곧 걸을 줄 알고, 고양이는 생후 몇 주만 지나면 어미 품을 떠나 혼자 힘으로 사냥에 나선다. 그에 비해 인간의 아기는 무력하여, 여러 해 동안 어른들이 부양하고 지키고 가르쳐주어야 한다.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이 덕이요, 특유의 사회적 문제를 안게 된 것도 이 탓이다. 혼자 사는 엄마는 줄줄이 딸린 자녀와 자신을 위한 식량을 충분히 조달하기가 어렵다. 애를 키우려면 가족의 다른 구성원 및 이웃의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인간을 키우려면 부족이 필요했고 따라서 진화에서 선호된 것은 강한 사회적 결속을 이룰 능력이 있는 존재였다. 게다가 인간은 미숙한 상태로 태어나기 때문에 교육을 받고 사회화할 수 있는 기간이 다른 어떤 동물보다 길다.
대부분의 포유동물은 자궁에서 나올 때, 말하자면 유약 발라 구운 도자기 같은 상태로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든 재성형하려면 긁히거나 깨질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인간은 용광로에서 막 꺼낸 녹은 유리덩어리 같은 상태로 자궁에서 나온다. 놀라울 정도로 다양하게 가공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우리가 아이를 교육시켜 기독교인이나 불교도로도, 자본주의자나 사회주의자로도, 호전적 인물이거나 평화를 사랑하는 인물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이렇게 가정한다. '뇌가 크고 도구를 사용하며 학습능력이 뛰어나고 복잡한 사회적 구조를 갖추면 크게 유리할 것이다.' 인간은 분명 이런 특징 덕분에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동물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인간은 2백만 년 동안 이런 특징을 지녔음에도 계속 연약한 주변부 존재일 뿐이었다. 1백만 년 전 인간은 뇌가 크고 날카로운 돌도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포식자를 끊임없이 두려워하며 살았고, 큰 사냥감을 잡는 일은 드물었다. 주로 식물을 채취하고 벌레를 주워 담고 작은 동물에게 몰래 접근하며, 다른 힘센 육식동물이 남긴 썩은 고기를 먹었다. 초기 석기의 가장 흔한 용도는 뼈를 쪼개 골수를 빼내는 일이었다. 인간의 우너래 생태적 지위가 그것이었다고 믿는 연구자들도 일부 있다. 딱따구리가 나무속에서 벌레를 꺼내는 데 특화했듯이 최초의 인류는 뼈에서 골수를 꺼내는데 특화했다는 것이다.
왜 하필 골수였을까? 예컨대 한 무리의 사자가 기린은 쓰러뜨린 뒤 뜯어먹고 있는 것을 당신이 보았다고 하자. 당신은 이들의 식사가 끝날 때까지 끈기 있게 기다린다. 하지만 차례는 아직 멀었다. 사자가 남긴 것은 하이에나와 자칼의 몫이다. 당신은 감히 거기 끼어들지 못한다. 당신과 당신의 무리는 이들의 식사가 끝난 다음에야 좌우를 조심스럽게 살피며 다가가서 남아 있는 잔해 중에 먹을 수 있는 조직을 찾아 열심히 먹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역사와 심리를 이해하는 열쇠다. 먹이사슬에서 호모 속이 차지하는 위치는 극히 최근까지도 확고하게 중간이었다. 수백만 년 동안 인간은 자기보다 작은 동물을 사냥하고 식물을 채취해 왔으며 지속적으로 대형 포식자게에 사냥을 당해왔다. 인간의 몇몇 종들이 대형 사냥감을 정기적을 사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40만 년 전부터였고, 인간이 먹이사슬의 정점으로 뛰어오른 것은 불과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가 출현하면서부터였다.
중간에서 꼭대기로 단숨에 도약한 것은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던 다른 동물, 예컨대 사자나 상어는 수백만 년에 걸쳐 서서히 그 지위에 올랐다. 그래서 생태계는 사자나 상어가 지나친 파괴를 일으키지 않도록 견제와 균형을 발달시킬 수 있었다. 사자의 포식 능력이 커지자 가젤은 더 빨리 달리는 쪽으로 진화했고, 하이에나는 협동을 더 잘하도록 진화했으며, 코뿔소는 더욱 사나워지도록 진화했다.
이에 비해 인간은 너무나 빨리 정점에 올랐기 때문에, 생태계가 그에 맞춰 적응할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 자신도 적응에 실패했다. 지구의 최상위 포식자는 대부분 당당한 존재들이다. 수백만 년간 지배해 온 결과 자신감으로 가득해진 것이다. 반면에 사피엔스는 중남미 후진국의 독재자에 가깝다. 인간은 최근까지도 사바나의 패배자로 지냈기 때문에, 자신의 지위에 대한 공포와 걱정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때문에 두 배로 잔인하고 위험해졌다. 치명적인 전쟁에서 생태계 파괴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참사 중 많은 수가 이처럼 너무 빠른 도약에서 유래했다.
'끝까지 쓰리라' 다짐했지만 과연 내가 이 벽돌책 필사를 완성할까? 우려는 솔직히 있다.
하지만 서문을 끝내고 본문에 들어간 오늘, 다행히 흥미롭게 줄을 따라갈 수 있었고, 타이핑 할 수 있었다.
새벽 조명의 부담과 눈의 피로가 아니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다.
엄마 뱃속에서 나온 아이는 용광로에서 막 꺼낸 유리덩어리와 같아 놀라울 정도로 다양한 가공이 가능하다고 하는 저자의 말에 절대 공감이다.
1500℃ 이상 고온 용광로에서 나온 유리덩어리, 다양한 공법으로 멋진 작품이 되고, 쓸모 있는 물건이 된다.
'만물의 영장'이라고 자칭하는 우리 인간, 가정이 이웃이 사회가 나라가 엄마 뱃속에서 나올 때부터 가르쳐야 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이 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