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예술로 빛난다
매년 매월 요지부동인 날들, 새 달력 들춰 1년 치 기록하고, 설 명절로 부산 떨다 보니 1월이 갔다. 세상의 소음 속에 2월도 반이 찼다. 어제오늘 추위가 주춤하자 그 틈새를 타고 들어온 햇살이 제법 따뜻하다. 서둘러 3월을 땡겨오고 싶다.
3월의 기운에는 부지런함이 있다. 겨우내 벌벌 떨고 있던 나뭇가지가 물을 빨아들인다. 실내로 들였던 아이들(식물), 추위 덜 타는 애부터 하나 둘 베란다로 나간다. 시커멓고 덩치 커다란 옷들이 하나둘 개켜진다. 나의 허접한 것들 보강할 새해 계획도 3월에야 비로소 깊게 바라본다.
모든 일의 시작은 당연히 허접하다고 하지만 그 초기의 허접을 느낄 때 자존감이 쪼그라들어 구겨진 호일 같다. "예술을 한다는 것은 어디 안드로메다에 있을 법한 뭔가를 생각하고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해, 삶에 대해 지극히 사유한 결과를 물체로 토해 내는 것이다(조원제 <삶은 예술로 빛난다>)." 문학도 예술이다. 사피엔스의 인지혁명으로 지상 최고의 포식자 위치에 있는 인간이 언어를 가지고 실재를, 때론 가상을 그럴싸하게 꾸며 만드는 문학작가는 대충 훑어낸 삶, 대충 훑어본 자연으로는 지극히 사유한 결과를 토해낼 수 없다는 것이다.
어찌어찌해서 '브런치작가'라는 명칭을 얻었지만 내 글은 허접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수년을 계속 쓰고 있다. 왜일까? 답은 간단하다. 글을 쓰면서 퍽퍽한 내 삶에 윤기가 돌고 있다는 강한 확신때문이다.
『삶은 예술로 빛난다』에서 저자는 "허접은 비범으로 향하는 유일한 길이다."라고 말한다. 비범까지는 아니어도 나를 위로하는 것에서 조금 더 나아가, 타인의 공감과 감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글을 쓸 때까지 '작가'의 명칭을 민망스럽지만 뻔뻔하게 사용할 거다. 이름이 사람을 만든다고 하지 않던가!
내 나이 계절로 치면 가을이다. 정확히 말하면 늦가을이다.
봄 풍경은 싱그럽고, 여름 풍경은 에너지 차고, 겨울 풍경은 하얀 마음이고, 가을 풍경은 알록달록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가을은 아름답다. 오늘 한줄한줄 또 쌓은 내 이야기가 가을볕에 무르익어 아름답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