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14

제1부 인지혁명/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109쪽~111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2. 지식의 나무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4. 대홍수


[필사와 단상]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전쟁이냐 평화냐

마지막으로 아주 까다로운 질문이 남는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전쟁은 어떤 역할을 했을까? 일부 학자들은 고대 수렵채집 사회는 평화로운 천국이었으며 전쟁과 폭력이 시작된 것은 사람들이 사유재산을 축적하기 시작한 농업혁명 이후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고대 수렵채집 사회가 특히 잔인하고 폭력적이었다고 주장한다. 두 주장은 모두 공중에 지은 누각에 지나지 않고, 이들을 지상과 연결하는 줄은 가늘다. 빈약한 고고학적 증거와 오늘날의 수렵채집 사회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만 있을 뿐이다.

인류학적 증거는 흥미롭지만 문제가 너무 많다. 오늘날의 수렵채집인은 북극이나 칼라하리 사막처럼 고립되고 황량한 지역에 주로 살고 있다. 인구밀도가 매우 낮으며 다른 사람들과 싸울 기회가 거의 없는 곳이다. 게다가 최근 여러 세대에 걸쳐 그들이 현대 국가의 권력에 복종하는 경향이 점점 커졌는데, 현대 국가는 대규모 분쟁이 발발하는 것을 막는다. 연구자들이 규모가 크고 인구밀도가 상대적으로 조밀한 독립 수렵채집인을 관찰할 수 있었던 기회는 단 두 차례뿐으로, 19세기 북미 북서부와 19~20세기 초반 호주 북부에서였다. 미국과 호주 원주민 문화는 둘 다 무력충돌을 자주 겪었다. 하지만 이런 무력충돌이 '영원히' 지속된 상황이었는지 유럽 제국주의의 여파인지 여부는 논란의 대상이다.

한편 고고학 유물은 드물고 불분명하다. 수만 년 전에 발생했던 전쟁에 대해 말해주는 단서가 남아 있을 수 있을까? 그 당시에는 요새와 성벽은 물론 포탄 껍데기도 없었다. 칼이나 방패도 없던 시절이다 원시적인 창날은 전쟁에 사용되었을 수도 있지만 사냥에 사용되었을 수도 있다. 인간의 유골 화석이라고 해서 해석하기가 더 쉬운 것은 아니다. 부러진 뼈는 전쟁에서 다친 것일 수도 있고 그냥 사고를 당한 탓일 수도 있다. 또한 오래된 뼈에 부러지거나 잘린 흔적이 없다고 해서 그 뼈의 주인이 폭력에 희생된 게 아니라는 결정적 증거는 될 수 없다. 죽음의 원인은 연조직에 외상을 입은 탓일 수 있는데 그러면 뼈에는 아무 흔적도 남지 않는다.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산업혁명 이전의 전쟁에서 사망자의 90퍼센트 이상은 무기가 아니라 굶주림과 추위와 질병 때문에 죽었다는 점이다. 3만 년 전 어느 수렵채집 부족이 인근 부족과 영역 싸움에서 패배해 본거지에서 쫓겨났다고 상상해 보자. 문제의 결정적 전투에서 열 명이 사망했고 이듬해 해당 부족원 중 1백 명이 굶주림과 추위, 질병으로 죽었다. 이 110개의 유골과 마주한 고고학자들은 대부분이 모종의 자연재해로 사망했다고 아주 쉽게 결론 내릴지 모른다. 이들 모두가 무자비한 전쟁의 희생자였다는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파악할 수 있겠는가?

주의사항을 충분히 설명했으니, 이제 고고학적 발견의 내용을 알아보자. 포르투갈에서 농업혁명 직전의 유골 4백 구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폭력의 흔적이 뚜렷한 것은 두 구뿐이었다. 이스라엘에서 나온 같은 시기의 유골 4백 구를 대상으로 비슷한 조사를 한 결과는 인간의 폭력 탓으로 추정할 수 있는 흔적이라고는 하나의 두개골에 하나의 금이 가 있는 것뿐이었다. 다뉴브 강 유역의 농업혁명 이전 시기 유적지 여러 곳에서 4백 구의 유골을 조사한 결과는 좀 달랐다. 열여덟 개 유골에서 폭력의 흔적이 나타났다. 4백 명 중 열여덟 명이라면 많지 않은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높은 비율이다. 열여덟 명이 정말로 폭력으로 사망한 것이라면, 고대 다뉴브 강 유역의 사망자 중 4.5퍼센트가 인간이 폭력으로 죽었다는 말이다. 오늘날 전쟁 및 범죄에 의한 사망률은 세계 평균 1.5퍼센트에 불과하다.

20세기 사망자 중 인간의 폭력에 의한 희생자는 5퍼센트에 불과했는데, 더구나 이 시기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역사상 가장 대규모 인종학살을 겪은 시기였다. 그러니 위의 유골에서 나타난 증거가 전형적인 것이라면, 고대 다뉴브 강 유역은 20세기와 비슷한 정도로 폭력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뉴브 강 이외의 다른 지역에서도 이처럼 우울한 결론이 도출되었다. 수단의 자블 사하바에서는 쉰아홉 구의 유골이 매장된 12,000년 전 공동묘지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화살촉이나 창끝이 박혀 있거나 바로 옆에서 발견된 유골이 스물네 구로 전체의 40퍼센트였다. 한 여성의 유골에는 열두 곳의 부상 흔적이 있었다. 독일 바이에른 주의 오프넷 동굴에서는 고고학자들이 수렵채집인 서른여덟 명의 유골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여성과 어린이였고, 두 군데 구멍에 던져져 매장되어 있었다. 이 중 어린이와 아기를 포함한 절반의 뼈에는 곤봉이나 칼처럼 인간의 무기에 의해 손상을 입은 흔적이 역력했다. 성인 남성의 뼈는 몇 되지 않았는데, 이 뼈에는 최악의 폭력이 자행된 흔적이 남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보아 한 무리의 수렵채집인 전원이 그곳에서 대량학살된 것일 개연성이 아주 높다.

다음 중 어느 쪽이 고개 수렵채집인의 세계를 더 잘 대변할까? 이스라엘과 포르투갈의 평화로운 유골, 아니면 자블 사하바와 오프넷의 도살장? 어느 쪽도 아니다. 수렵채집인들의 종교와 사회구조가 매우 다양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의 폭력 사용률 역시 매우 다양하게 분포했을 가능성이 크다. 특정 시기, 특정 지역의 사람들은 평화와 고요를 즐긴 반면 다른 무리들은 격렬한 폭력으로 고통을 당했을지 모른다.





사회적, 정치적으로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평화로 가기 위한 폭력?

평화는 전쟁, 분쟁 또는 그 일체의 갈등 없이 평온함을 말하는 것이다.

폭력이 평화로 가는 길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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