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인지혁명/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101쪽~108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2. 지식의 나무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4. 대홍수
[필사와 단상]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정령과의 소통
고대 수렵채집인의 정신적 영적 삶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계량 가능하고 객관적인 요인들에 기반하여 수렵채집 경제의 기본적인 측면을 어느 정도 신빙성 있게 재구성할 수 있다. 예컨대 한 사람이 살아남으려면 하루에 몇 칼로리가 필요한지, 호두 1킬로그램에서 몇 칼로리를 얻을 수 있는지, 숲 1제곱킬로미터에서 채취할 수 있는 호두가 얼마나 되는지를 계산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자료를 바탕으로 이들의 식단에서 호두가 상대적으로 어떤 비중으로 차지하는지를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하지만 이들은 호두를 진미로 여겼을까 아니면 평범한 주식으로 보았을까? 호두나무에 정령들이 살고 있다고 믿었을까? 호두나무 잎이 예쁘다고 보았을까? 수렵채집 소년이 소녀를 낭만적인 장소로 데려가고 싶어 할 때 호두나무 그늘이면 충분했을까? 생각과 믿음과 느낌의 세계는 훨씬 더 파악하기 어려운 법이다.
고대 수렵채집인 사이에서 애니미즘 신앙이 일반적이었다는 데 대부분의 학자들은 동의한다. 애니미즘(영혼이나 정신을 뜻하는 라틴어 'anima'에 기원을 두고 있다)이란 모든 장소, 동물, 식물, 자연현상이 의식과 감정을 지니고 있으며 인간과 직접 소통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므로 애니미스트는 언덕 꼭대기의 큰 바위가 욕망과 필요를 지니고 있다고 믿을 수 있다. 이 바위는 사람들의 어떤 행위에 화를 낼 수도 있고 또 다른 행동에 기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람들에게 충고하거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은 바위를 상대로 말을 걸거나 위로하거나 위협을 가할 수 있다. 바위뿐 아니라 언덕 아래로 흐르는 시냇물, 숲 속 공터에 있는 샘, 그 주위에 자라는 덤불, 공터에 이르는 길, 샘에서 물을 먹는 들쥐, 늑대 까마귀도 모두 그렇다. 애니미즘의 세계에서는 사물과 생물만 정령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형의 실체도 존재한다. 죽은 사람의 영혼, 오늘날 우리가 악마, 요정, 천사라고 부르는 사악하거나 우호적인 존재가 모두 그런 예다.
애니미스트는 인간과 다른 존재 사이를 가로 막는 장애물이 없다고 믿는다. 그들은 말이나 노래, 춤이나 의식을 통해 이들 모두와 직접 소통할 수 있다. 사냥꾼은 한 무리의 사슴에게 말을 걸어 그중 한 마리에게 스스로 희생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사냥에 성공하면 사냥꾼은 죽은 동물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다. 누군가 병에 걸리면, 샤먼이 병을 일으킨 정령과 접촉해 달래거나 겁을 줘서 쫓아버릴 수 있다. 샤먼은 필요하다면 다른 정령의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다. 이 모든 소통행위의 특징은 말을 거는 대상이 국지적 존재라는 점이다. 우주적인 신들이 아니라 특정한 사슴, 나무, 시냇물, 유령이다.
인간과 다른 존재 사이에 장애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들 사이에도 엄격한 위계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이 아닌 존재는 단순히 인간이 필요로 하는 것을 제공하기 위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들이 세계를 마음대로 움직이는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다. 세계는 인간을 중심으로 돌아가지도 않고, 다른 특정한 부류의 존재를 둘러싸고 돌아가지도 않는다.
애니미즘은 특정한 종교가 아니다. 수천 종이 넘는 종교와 사교와 신앙의 포괄적 이름이다. 이들 모두를 '애니미스트'라고 부르는 것은 세계에 대한 접근법과 인간이 차지하는 위치에 대해 공통된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수렵채집인들이 아마도 애니미스트였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현대 이전의 농업종사자들이 대부분 유신론자였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
유신론(Theism, 신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theos'에서 유래했다)이란 우주의 질서가 인간과 신(소수의 천상의 존재로 구성된 집단) 사이의 위계질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견해다. 현대 이전의 농업종사자들이 대체로 유신론자였다는 말은 분명 사실이지만, 이 말만으로는 개개의 상세한 특징을 알 수는 없다. '유신론자'라는 표제에는 18세기 폴란드의 유대교 랍비도 들어 있고, 마녀를 화형 하는 17세기 매사추세츠의 청교도도 포함되며, 15세기 멕시코의 아즈텍 사제, 12세기 이란의 수피 신비주의자, 10세기의 바이킹 전사, 2세기의 로마병사, 1세기의 중국인 관료도 들어 있다. 이들 각각은 다른 이들의 신앙과 관습을 기괴한 이단으로 보았다. '애니미즘적' 수렵채집인들의 신앙과 관습 역시 이와 비슷하게 서로 퍽 달랐을 것이다. 이들의 종교적 경험은 논쟁과 개혁과 혁명으로 가득 찬 격동적인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런 조심스러운 일반화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고대 영성의 상세한 특성을 서술하려는 시도는 어느 것이나 매우 사변적이게 마련이다. 길잡이로 삼을 증거가 거의 없는 데다 조금 있는 증거(손으로 꼽을 수 있는 숫자의 인공물과 동굴벽화)는 무수히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렵채집인들의 감정에 대해 안다고 자처하는 학자들의 이론은 석기시대 종교보다 그 주충자의 편견에 대해서 더 많은 것을 알려준다.
우리는 무덤의 유물, 동물벽화, 뼈로 만든 조각상의 의미를 침소봉대하기보다, 고대 수렵채집인의 종교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이 애니미스트였을 것으로 가정하지만, 이것이 알려주는 정보는 많지 않다. 그들이 어는 정령에게 기도했는지, 어떤 축제를 기념했는지, 어떤 금기를 지켰는지 우리는 모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어떤 이야기를 지어냈는지를 모른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인류 역사에 대한 우리의 이해에 난 가장 큰 구멍 중 하나다.
거의 아무것도 밝혀지지 않은 또 하나의 영역은 수렵채집인의 사회정치적 세계다. 이미 설명한 대로, 학자들은 기본적인 것에 대해서조차 합의하지 못하고 있다. 사유재산이 존재했는지, 핵가족이었는지, 일부일처제를 유지했는지에 대해서도 말이다.
일부 집단은 가장 못된 침팬지 집단처럼 위계질서가 엄격하고 긴장되어 있고 폭력적이었을지 모른다. 이에 비해 다른 집단들은 보노보 무리처럼 느긋하고 문란했을지도 모른다.
1955년, 고고학자들은 러시아의 숭기르 유적에서 3만 년 전 매머드를 사냥한 문화권의 매장터를 발견했다. 한 무덤에서는 50세 남자의 유골이 나왔는데, 매머드 상아로 만든 구슬 3천 개를 꿰어 만든 목걸이 같은 것으로 덮여 있었다. 머리맡에는 여우 이빨로 장식한 모자가 놓여 있었으며 손목에는 상아 팔찌 스물다섯 개가 놓여있었다. 이 매장지의 다른 묘지에는 부장품이 이보다 훨씬 더 적었다. 학자들은 이를 토대로 승기르의 매머드 사냥꾼들이 계급사회에 살았으며 문제의 남자는 무리의 지도자이거나 여러 무리로 구성된 부족 전체의 지도자였을 것이라고 추론했다. 몇십 명에 불과한 일개 무리에서 그렇게 많은 부장품을 손수 만들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다음 고고학자들은 더욱 흥미로운 무덤을 발견했다. 무덤 속에는 얼굴을 마주 보는 두 구의 유골이 있었는데, 하나는 12~13세 소년의 뼈였고 다른 하나는 9~10세 소녀의 뼈였다. 소년은 5천 개의 상아 구슬로 뒤덮여 있었고, 여우 이빨로 장식한 모자를 쓰고 있었으며, 그런 이빨 250개가 들어간 허리띠를 하고 있었다(250개는 적어도 60마리의 여우를 잡아서 이빨을 뽑아야 가능한 숫자다). 소녀를 장식한 상아 구슬은 5,250개였다. 두 어린이는 작은 조각상을 비롯해 다양한 상아 물건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숙련된 장인이 상아 구슬 한 개를 만드는 데는 아마도 45분쯤 걸렸을 것이다. 두 어린이를 덮은 상아 구슬 1만 개를 만드는 데만 7,500시간에 이르는 정교한 작업이 필요했다는 뜻이다. 숙련된 장인이 3년 훨씬 넘게 작업해야 할 양이다. 이렇게 어린아이들이 지도자였거나 매머드 사냥꾼이었을 가능성은 희박하므로 문화적 신념만이 그처럼 사치스러운 매장의 이유를 설명해 줄 수 있다. 하나의 가설은 이들의 계급이 부모에게서 기인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가족의 권위를 신봉하거나 엄격한 상속 원칙을 믿는 문화에 속하는 지도자의 자녀였을지 모른다. 두 번째 가설은 이들 어린이들은 태어날 때부터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환생으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세 번째 가설은 아이들을 매장한 방식은 살았을 때의 지위가 아니라 죽는 방식을 반영한다는 것이다. 즉 이들이 종교의식에서 희생되었으며 - 아마도 지도자의 장례식의 한 부분으로서 - 그러고 나서 부장품을 갖춘 화려한 무덤에 묻혔다는 가설이다.
정확한 답이 무엇이든 간에, 숭기르의 아이들은 3만 년 전의 사피엔스가 우리의 DNA뿐만 아니라 여타 인간이나 동물 종의 행동 패턴을 훌쩍 넘어서는 높은 수준의 사회정치적 코드를 발명할 능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말해주는 가장 훌륭한 증거다.
팔공산 갓바위 찾아 자녀의 수능 기도 올리는 현대인, 원시 사피엔스든, 현대 사피엔스든 개개인의 생각과 믿음과 느낌의 세계 파악은 쉽지 않으나, 둘 다 '간절함'에서 나오는 행위임은 틀림없다.
애니미즘,
비논리적 비과학적을 얘기하기보다는 자연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는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볼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