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 인지혁명/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96쪽~101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2. 지식의 나무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4. 대홍수
[필사와 단상]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수렵채집인이 삶을 영위하는 방식은 지역마다 계절마다 크게 달랐지만, 대체로 이들은 그 후손인 농부, 양치기, 노동자, 사무원 대부분에 비해서 훨씬 더 안락하고 보람 있는 생활을 영위한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풍요의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일주일에 평균 40~45시간 일하며 개발도상국에선 평균 60시간, 심지어 80시간씩 일한다. 이에 비해, 지구상의 가장 척박한 곳에서 살아가는 수렵채집인, 예컨대 칼라하리 사막 사람들은 주 평균 35~45시간 밖에 일하지 않는다. 이들은 사흘에 한 번 밖에 사냥에 나서지 않으며 채집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 3~6시간에 불과하다. 평상시에는 이 정도 일해도 무리 전체를 먹여 살릴 수 있다. 칼라하리보다 더욱 풍요로운 지역에 살았던 고대 수렵채집인들은 식량과 원자재를 획득하는 데 이보다 더 적은 시간을 썼을 것이다. 이에 더해 이들에게는 가사노동의 부담이 적었다. 접시를 씻고 진공청소기로 카펫을 밀고 마루를 닦고 기저귀를 갈고 청구서를 납부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수렵채집 경제는 농업이나 산업 시대보다 사람들에게 더욱 흥미로운 삶을 제공했다. 오늘날 중국의 직공은 아침 7시경에 집에서 나와 오염된 거리를 지나 노동착취 공장에 도착한다. 그가 똑같은 기계를 똑같은 방식으로 장장 열 시간 동안 멍하게 돌리고 나서 집에 돌아오면 저녁 7시다. 이때부터 접시를 닦고 빨래를 해야 한다.
3만 년 전 중국의 수렵채집인은 가령 아침 8시에 동료들과 함께 캠프를 나섰다. 이들은 인근의 숲이나 초원을 오가며 버섯을 따고 먹을 수 있는 뿌리를 캐고 개구리를 잡았다. 가끔은 호랑이를 피해서 도망쳤다. 오후에는 캠프로 돌아와 점심 준비를 했다. 덕분에 남는 시간에 이들은 가십을 나누고, 아이들과 놀아주기도 하고, 지어낸 이야기를 하면서 한가롭게 보낼 수 있었다. 물론 호랑이에게 물려 가거나 뱀에게 물리는 일도 가끔 일어났지만 자동차 사고나 산업공해에 대처할 필요는 없었다.
모든 시기 대부분의 장소에서 수렵채집은 가장 이상적인 영양소를 제공했다.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인간은 이런 식단을 수십만 년 동안 먹어왔고, 신체 역시 여기에 잘 적응했다. 고대 수렵채집인은 후손인 농부들보다 굶어 죽거나 영양실조에 걸리는 일이 적었으며, 화석 뼈에 나타난 증거가 시사하는 바에 따르면 키가 더 크고 신체도 건강했을 가능성이 많다. 다만 평균 기대수명은 30~40년에 불과했다. 그러나 그것은 주로 어린이 사망률이 높은 탓이었다. 출생 1년 이내의 영아 사망률이 가장 높았으며, 이 시기를 지난 아이는 60세까지 살 가능성이 높았고 일부는 80세까지 살았다. 현대 수렵채집인 경우 45세인 여성은 향후 20년 더 살 것으로 기대되며 구성원의 5~8퍼센트는 60세 이상이다.
수렵채집인은 굶어 죽거나 영양실조에 걸리지 않았다. 이들의 성공비결은 다양한 식단에 있었다. 농부는 매우 제한된 종류의 식품을 먹으며 불균형인 식사를 한다. 특히 현대 이전에 농업인구를 먹여 살린 칼로리의 대부분은 밀이나 감자, 쌀 등 단일작물에서 왔다. 여기에는 일부 비타민, 미네랄을 비롯해 인간이 필요로 하는 여러 양양소가 부족하다. 중국 전통사회의 전형적 농부는 아침, 점심, 저녁에 쌀밥을 먹었다. 운이 좋으면 다음 날도 그렇게 먹을 수 있었다. 이에 비해 고대의 수렵채집인은 수십 가지의 다양한 식품을 규칙적으로 먹었다. 농부의 조상인 수렵채집인은 아침에 각종 배리와 버섯, 점심에 과일 및 달팽이와 거북, 저녁에는 토끼 스테이크에 야생 양파를 곁들여 먹었을 것이다. 다음 날에는 전혀 다른 음식을 먹었을지 모른다. 이처럼 다양한 식품은 고대 수렵채집인이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확실히 섭취하게 해 주었다.
게다가 단 한 가지 식량에만 의존하지 않았기 때문에 해당 식량의 공급이 끊어져도 문제가 덜했다. 농경사회는 가뭄이나 화재, 지진 때문에 쌀이나 감자 농사를 망치면 기근에 휩싸인다. 수렵채집 사회도 자연재해를 당하고 결핍과 굶주림의 시기를 겪었지만, 대체로 이런 재앙을 좀 더 쉽게 극복할 수 있었다. 주식이 되는 일부 먹을거리를 구하지 못하면 다른 것을 사냥하거나 채집할 수 있었고, 영향을 덜 받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수도 있었다.
고대 수렵채집인은 전염병의 영향도 덜 받았다. 농경 및 산업사회를 휩쓴 대부분의 전염병(천연두, 홍역, 결핵)은 가축이 된 동물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이것이 사람에게 전파된 것은 농업혁명 이후부터다. 고대 수렵채집인이 기르는 가축은 개밖에 없었으므로 그들에게는 이런 괴로움이 없었다. 게다가 농업 및 산업 사회 사람들은 인구가 밀접한 비위생적인 거주지에 영구적으로 살았는데, 이는 질병이 퍼지기 이상적인 온상이었다. 수렵채집인들은 떠돌며 생활했는데, 무리도 소규모여서 전염병이 널리 퍼질 수 없었다.
건강에 유익한 음식을 다양하게 먹고, 주당 일하는 시간도 상대적으로 짧으며, 전염병도 드물었으니, 이를 두고 많은 전문가는 종경 이전 수렵채집 사회를 '최초의 풍요사회'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렇다고 고대인의 삶을 이상적인 것으로 그리면 실수일 수도 있다. 이들이 농업 및 산업 사회 사람 대다수보다 더 나은 삶을 영위하기은 했지만, 그럼에도 삶은 거칠고 힘든 것이었다. 고난과 결핍의 시기가 종종 닥쳤고, 어린이 사망률이 높았으며, 오늘날 같으면 사소했을 사고가 쉽게 사망선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돌이 무리 내에서 두터운 교분을 향유했겠지만, 무리 내에서 적개심이나 비웃음을 받는 사람들은 끔찍한 고통을 겪었을 것이다.
현대의 수렵채집인들은 가끔 무리를 따라오지 못하는 노인이나 장애인을 버리거나 심지어 죽이는 일이 있다. 원치 않았던 아기나 어린이는 살해될 수 있으며 심지어 종교적인 인신공양 사례도 존재한다. 1960년대까지 파라과이에 살았던 아체족은 수렵채집의 어두운 면을 조금 보여준다. 그곳에서는 무리에서 높은 인물이 사망하면 어린 소녀를 죽여서 함께 묻는 것이 관행이었다.
아체족을 취재한 인류학자들의 녹음 자료에 따르면, 이들은 병에 걸린 중년 남자가 무리를 따라오지 못하자 그를 유기했다. 남자는 나무 아래에 버려졌고, 나무에는 성찬을 기대하는 독수리들이 앉아있었다. 하지만 남자는 기력을 회복했고 빠른 속도로 걸어서 어찌어찌 무리에 합류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신체는 새똥으로 뒤덮여 있었고, 그래서 그의 별명은 '독수리 똥'이 되었다.
한번은 늙은 아체 여성이 무리에 부담이 되자, 젊은 남자가 그녀의 뒤로 몰래 다가가 도끼를 머리를 쳐서 살해했다. 어는 아체족 남자가 시시콜콜 캐묻는 인류학자에게 정글에서 보낸 최고의 시절을 설명하는 것을 들어보자.
"나는 나이 든 여자를 상습적으로 죽였다. 나는 숙모들을 죽이곤 했다. 여자들은 나를 두려워했다. 이제 백인들이 이곳에 오고 나니 나는 약해졌다."
몸에 털이 없이 태어난 아이는 미숙아로 간주되어 즉각 살해당했다. 어떤 여자는 옛날에 자신의 첫딸이 살해되었는데 그 이유는 무리의 남자들이 여자아이를 원치 않기 때문이었다고 했다. 어느 남자는 어린 남자애를 살해했는데 이유는 '기분이 나쁜데 애가 울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다른 어린아이는 산 채로 파묻혔는데 이유가 "보기에 재미있는 데다 다른 아이들이 그걸 보고 즐거워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아체족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 된다. 이들과 여러 해 이상 함께 살았던 인류학자들은 성인 간의 폭력은 극히 드물었다고 보고했다. 남녀 모두 뜻에 따라 자신의 파트너를 바꿀 수 있었다. 이들은 지배계급이 없었고, 항상 미소를 띠었으며, 남을 지배하려 드는 사람을 대체로 기피했다. 얼마 되지 않는 소유물에 대해 극도로 관대했으며, 성공이나 부에 집착하지 않았다. 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좋은 사회적 상호관계와 높은 수준의 우정이었다. 이들은 어린이나 병자, 노인을 살해하는 행위를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낙태나 안락사를 보는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이 부족이 파라과이 농부들에 의해 무자비하게 사냥, 살해당했다는 사실도 지적되어야 한다. 아체족이 무리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예외적으로 가혹한 태도를 취한 이유는 적을 피해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요는 아체 사회가 다른 모든 인간사회와 마찬가지로 매우 복잡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피상적인 지식만으로 그들을 부정하거나 이상화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아체족은 천사나 악마가 아니라 사람이었다. 고대 수렵채집인도 마찬가지였다.
현대인의 삶의 목표는 부자로 살기, 지도자로 살기, 스타로 살기 등 다양하다.
목표 달성을 위해 가는 길은 치열하다. 텔레비전에서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유행이다. 참가자들의 절실함에서 나오는 포효, 안쓰럽기까지 하다. 살아남아야 한다. 경쟁자를 누르고 내가 서야 한다.
제1의 삶의 목표가 '생존'이었던 수렵채집인과 다를 바 없다. 도구와 수단만 다를 뿐.
인지혁명, 농업혁명, 산업혁명 원시시대부터 계속되고 있는 혁명의 근원은, 보다 더 잘 살기 위한 것이다.
잘 사는 것, 내가 정한 의미와 기준에 따라 살벌할 수도, 평온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