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11

제1부 인지혁명/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90쪽~96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꼭! 2025.01.10.




제1부 인지혁명

1. 별로 중요치 않은 동물

2. 지식의 나무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4. 대홍수


[필사와 단상]

3. 아담과 이브가 보낸 어느 날


최초의 풍요사회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경시대 이전 세상의 삶에 대해 일반화할 수 있는 내용이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십 명, 기껏해야 수백 명으로 구성된 작은 무리에 속해 살았으며 무리 속의 개체 모두가 인간이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마지막 대목을 굳이 적은 것은 이것이 당연한 이야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농경 및 산업사회의 구성원은 대부분이 가축화된 동물이다. 물론 이들은 주인과 평등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구성원임은 분명하다. 오늘날 뉴질랜드 사회는 450만 명의 사피엔스와 5천만 마리의 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일반 원칙의 유일한 예외가 개다. 개는 인간이 길들인 최초의 동물로, 그 시기는 농업혁명 이전이었다. 정확한 시기에 대한 전문가들의 평가는 엇갈리지만, 약 15,000년 전에 이미 가축화된 개가 존재했다는 명백한 증거가 있다. 개가 인간 무리에 합류한 시기는 이보다 수천 년 전일 가능성이 있다.

개는 사냥과 싸움에 이용되었으며, 야생동물이나 인간의 침입을 알리는 경고 시스템으로 활용되었다. 세대를 거듭하면서 이들 두 종은 서로 의사소통이 잘되도록 진화했다. 동료인 인간의 필요와 감정을 잘 경청하는 개는 추가적인 보살핌과 먹을거리를 얻었으며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커졌다. 이와 동시에 개는 자신의 필요에 맞게 인간을 조종하는 법을 배웠다. 역사가 15,000년에 이르는 유대관계를 통해서 인간과 개는 인간과 다른 동물과의 관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서로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다. 개가 죽으면 사람처럼 예식에 따라 매장하는 경우도 있다.


같은 무리의 구성원들은 서로를 매우 잘 알았으며, 평생을 친구와 친척에게 둘러싸인 체 살아갔다. 고독과 프라이버시는 없었다. 이웃 무리들은 자원을 놓고 경쟁했을 테고 싸우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우호적인 접촉도 있었다. 서로 구성원을 교환하고, 함께 사냥하며, 희귀한 사치품을 매매하고, 종교적 축제를 벌였으며, 외부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서로 힘을 합치기도 했다. 이런 협력은 호모 사피엔스의 중요한 트레이드 마크였고, 다른 인간 종들에 비해서 결정적 우위를 누리게 해 주었다. 어떤 때는 이웃 무리와의 관계가 워낙 가까워서 이들이 하나의 부족을 구성하고 동일한 언어와 신화와 규범과 가치를 공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외부 관계의 긴밀성을 과대평가해서는 안 된다. 위기가 닥쳐 부족들이 공동으로 행동하고, 심지어 사냥이나 싸움, 축제를 함께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모였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전히 대부분의 시간을 소규모 집단에서 보냈다. 교역은 대체로 조가비나 호박, 염료 같은 귀중품만으로 한정되었다. 과일이나 고기 같은 주식을 교역했다든지, 다른 무리에게서 사들이는 것에 의존해서 살아간 무리가 있었다든지 하는 증거는 없다. 사회정치적 관계도 드문드문 일어났다. 부족은 영속적인 정치적 틀로 가능하지 못했다. 또한 계절마다 회합하는 장소를 보유하고 있다 하더라도 영구적인 도시나 시설은 없었다. 평균적인 개인은 몇 달 동안 자기 집단 외의 사람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며 살았을 것이고, 평생 만나는 사람도 불과 몇천 명을 넘지 않았다. 사피엔스 집단은 넓은 지역에 희박하게 퍼져 있었다. 농업혁명 이전 지구 전체의 인구수는 오늘날 카이로보다 적었다.

대부분의 사피엔스 무리는 먹을거리를 찾아 여기저기 떠돌며 길 위의 삶을 살았다. 이들의 이동에 영향을 주는 것은 계절의 변화, 동물들의 연례 이동, 식물의 성장주기였다. 이들은 같은 터전 내에서 왔다 갔다 이동하면서 살았는데, 그 전체 영역은 수십-수백 제곱킬로미터였다.

가끔은 자기 세력권을 벗어나 새로운 땅을 헤매는 무리들이 있었다. 원인은 자연재해, 폭력적 분쟁, 인구 증가에 의한 압박,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의 결단 등이었다. 이런 방랑은 인간이 외부 세계로 팽창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수렵채집인 한 무리가 40년마다 한 번씩 둘로 나뉘며, 갈라져 나온 집단이 원래 있던 곳보다 1백 킬로미터 동쪽에 있는 새로운 영토로 이주한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동부 아프리카에서 중국까지 1만 년이면 갈 수 있었을 것이다.

식량이 특별히 풍부한 예외적인 경우, 무리들은 한 철을 같은 지역에서 보내기도 하고 심지어 한 지역에 영구적인 캠프를 차리기도 했다. 식량을 말리고 훈제하고 냉동하는 기술 덕분에 좀 더 오래 한 곳에 머무는 것이 가능해졌다. 가장 중요한 점은, 해산물과 물새가 풍부한 바닷가와 강변을 따라 영구적으로 어촌이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농업혁명보다 훨씬 앞선 역사상 최초의 영구 정착지였다. 이르면 45,000년 전부터 어촌은 인도네시아 제도의 연안에 출현했을 가능성이 있다. 이들 마을은 호모 사피엔스가 최초의 대양 횡단사업-호주 침략-을 시작하는 기지였을지 모른다.


대부분의 기지에서 사피엔스 무리는 융통성 있게 그때그때 되는대로 먹고살았다. 흰개미를 찾아서 모으고, 장과류를 채취했으며, 구근을 캐고, 토끼를 쫓고, 들소와 매머드를 사냥했다. '사냥꾼 인간'이라는 흔한 이미지와는 달리, 사피엔스의 주된 활동은 채집이었다. 대부분의 칼로리를 여기서 공급받았을 뿐만 아니라 부싯돌, 나무, 대나무 같은 원재료도 채집으로 구했다.

사피엔스는 식량과 원재료만 찾아다니지 않았다. 지식도 찾아다녔다. 이들이 살아남으려면 자신의 영토에 대한 상세한 마음속 지도가 필요했다. 매일매일 식량을 찾는 일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려면, 개별 식물의 성장 패턴과 개별 동물의 습성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다. 어느 식품이 영양가가 많고 어느 것을 먹으면 탈이 나고 어떤 것이 치료제가 될 수 있는지를 알아야 했다. 계절이 어떻게 흐르는지, 폭풍우나 건기가 오기 전에 어떤 징후가 나타나는지를 알 필요가 있었다. 이들은 주변에 있는 모든 개울과 호두나무와 곰 동굴과 부싯돌 매장지를 공부했다. 모든 개인들이 돌칼 만드는 법, 찢어진 망토를 고치는 법, 토끼덫을 놓는 법, 눈사태에 대처하는 법, 뱀에게 ㅐ물리거나 배고픈 사자를 만났을 때 대처하는 법을 알아야 했다. 이런 수많은 기술 중 하나라도 숙달하려면 오랜 도제기간과 실습이 필요했다.

평범한 고대 수렵채집인은 몇 분이면 부싯돌 하나로 창촉을 만들 수 있었다. 우리가 따라 해 보면 보통 실패로 끝날 뿐이다. 우리에게는 부싯돌이나 현무암의 겉면이 어떻게 깎이는지에 대한 전문 지식이 없으며 이런 정교한 작업을 할 수 있는 운동기능이 없다.

다시 말해 평범한 수렵채집인은 현대인 후손 대부분에 비해 주변환경에 대해 좀 더 넓고 깊고 다양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 산업사회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자연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알 필요는 없다. 컴퓨터 엔지니어, 보험 중개인, 역사교사,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기 위해서 알아야 할 지식은 무엇일까? 당신의 아주 좁은 전문영역에 대해서는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할 테지만,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다른 방대한 영역에서는 다른 전문가들의 도움에 맹목적으로 의존한다. 이들 전문가 역시 그들의 영역에 지식이 한정되어 있다. 인간 공동체의 지식은 고대 인간 무리의 그것보다 훨씬 더 크지만, 개인 수준에서 보자면, 고대 수렵채집인은 역사상 가장 아는 것이 많고 기술이 뛰어난 사람들이었다.

사피엔스의 평균 뇌 용적은 수렵채집 시대 이래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증거가 일부 존재한다. 그 시대에 생존하려면 누구나 뛰어난 지적 능력을 지녀야 했다. 하지만 농업과 산업이 발달하자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다른 사람들의 기술에 더 많이 의존할 수 있게 되었고, '바보들을 위한 생태적 지위'가 새롭게 생겨났다. 별 볼 일 없는 유전자를 가진 사람이라도 살아남을 수 있으며, 물품을 배달하거나 조립라인에서 단순노동을 하면서 그 유전자를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게 되었다.

수렵채집인들은 주변의 동물, 식물, 물건뿐 아니라 자기 신체와 감각이라는 내부세계에 대해서도 완벽히 터득했다. 이들은 뱀이 숨어 있는지를 알아내기 위해서 풀밭에서 나는 아주 미세한 소리까지도 귀 기울여 들었다. 또 과일과 벌집, 새둥지를 발견하기 위해서 나뭇잎들을 주의 깊게 관찰했다. 이들은 최소한의 노력으로 소리를 내지 않고 이동했으며 가장 기민한 방식으로 앉고 걷고 달릴 수 있었다. 신체를 다양한 방식으로 계속 사용한 덕분에 마라톤 주자처럼 건강했다. 그들의 신체적 기민성은 요즘 사람들이 요가나 태극권을 수십 년간 수련해도 따라갈 수 없는 수준이었다.






현대 사피엔스는 협력과 상상을 통해 무시무시한 문명의 발달을 가져왔다. 급기야 미국 기업가인 일런 머스크는 사람의 뇌에 칩을 박음질하듯 심어 신체의 상실된 기능을 대신하게 했다. '와우!' 환호보다는 인간의 능력은 과연 어디까지일까 무섭기까지 하다. '내가 없는 나'의 시대가 올 수도 있다.


길 위의 삶, 의식주를 자연에서 해결했던 원시 사피엔스, 현대 사피엔스가 갖는 고민 우울 좌절 무기력 같은 것은 없었을 거다. 배고프면 나가서 먹을 것을 찾고, 추우면 불 지피고, 더우면 강가에서 목욕하고, '어쩌면 행복한 삶'을 누렸을 거다.


질적으로 우수한 삶과 일상의 편리함을 제공하는 과학 기술, 그에 따른 폐단으로 환경오염, 생태계 파괴는 어찌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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