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부 농업혁명/ 8. 역사에 정의는 없다(224~230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제2부 농업혁명
5. 역사상 최대의 사기 132
6. 피라미드 건설하기 160
7. 메모리 과부하 190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208
[필사와 단상]
8. 역사에 정의는 없다
각기 다른 사회가 채택한 상상의 질서는 서로 다르다. 인종은 현대 미국인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중세 무슬림에게는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았다. 중세 인도에서 카스트는 생과 사의 문제였지만 현대 유럽에서 계급제도는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알려진 모든 인간사회에서 최고로 중요한 위계질서가 하나 존재한다. 바로 성별이다. 사람들은 어는 곳에서나 스스로를 남자와 여자로 구분했다. 그리고 거의 모든 곳에서 남자가 더 좋은 몫을 차지했다. 적어도 농업혁명 이후로는 그랬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 기록 중 일부는 기원전 1200년경의 것으로 미래를 점치는 데 쓰인 갑골문이었다. 그중 하나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하오 왕비(은나라 중흥군주 무정[武丁, 기원전 1250~1192년 재위]의 두 번째 왕비 - 옮긴이)가 아이를 낳으려 합니다. 아들일까요?" 답은 이렇게 쓰여 있다. "만일 정丁일에 낳으면 길吉하니 아들일 것이다. 만일 그 아이가 경庚의 날에 태어난다면 매우 길하다." 그러나 하오 왕비는 갑인甲寅일에 아기를 낳았다. 갑골문은 시무룩한 기록으로 맺는다. "3주일과 하루가 지난 후인 갑인일에 아기를 낳았다. 길하지 않았다. 딸이었다." 그로부터 3천여 년 후 중국 공산당 정부는 '한 자녀' 정책을 시행했는데, 이즈음에도 많은 가정들은 여자아이의 탄생을 불길하다고 보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었다. 때때로 부모들은 갓 태어난 여자아이를 유기하거나 살해했다. 아들을 낳을 기회를 갖기 위해서였다.
많은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소유물에 불과했다. 주인은 아버지인 경우가 가장 많았고 남편이나 남자 형제일 때도 있었다. 많은 법체계는 강간을 재산권 침해로 다루었는데, 달리 말해 강간의 피해자는 강강당한 여성이 아니라 그 여성을 소유한 남성이란 뜻이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법적 제재의 내용은 소유권 이전이었다. 강간범은 피해자의 아버지나 남자 형제에게 신부 값을 지불하라는 요구를 받았고, 지불과 동시에 여자는 강간범의 소유물이 되었다. 성경의 규정은 이렇다. "만일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만나 그녀를 붙잡아서 동침한 사실이 밝혀지면 그 남자는 그 젊은 여성의 아버지에게 은 50세젤을 지불해야 한다. 그러면 그 여자는 그의 아내가 되어야 한다."(신면기 22:28~29)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것아 타당한 해결책이라고 보았다.
어느 남자에게도 속하지 않은 여성을 강간하는 것은 전혀 범죄로 취급되지 않았다. 복잡한 거리에서 누군가 잃어버린 동전 하나를 줍는 것은 도둑질로 취급받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남편이 아내를 강간했다면 범죄가 아니었다. 사실 남편이 아내를 강간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모순이었다. 남편이 된다는 것은 아내의 성을 완전히 마음대로 할 권리를 가진다는 뜻이었다. 남편이 아내를 '강간했다'는 말은 누군가가 본인이 지갑을 훔쳤다는 말처럼 비논리적인 것이었다. 이런 사고방식은 고대 중동에서만 통용되던 것이 아니었고, 2006년 기준으로 53개국에서 아내는 남편을 강간죄로 기소할 수 없었다. 심지어 독일에서도 1997년에 이르러서야 강간법이 개정되어 부부간 강간이라는 법적 범주가 만들어졌다.
남편의 구분은 인도의 카스트 제도나 미국의 인종차별 시스템처럼 상상의 산물일까? 아니면 생물학적 뿌리가 깊은 자연스러운 구분일까? 정말 자연스러운 구분이라면 여자보다 남자를 선호하는 것에 대한 생물학적 설명도 존재할까?
남녀 간의 문화적, 법적, 정차적 차이 중 일부는 성별에 따른 명백한 생물학적 차이를 반영한 것이다. 출산은 언제나 여성의 일이었다. 남자는 자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사회는 이런 보편적인 핵심 사실 주변에 생물학과 거의 관련 없는 문화적 개념과 규범을 층층이 쌓아 올렸다.
많은 사회가 일련의 속성을 남성성과 여성성에 결부시키지만 대체로 생물학적으로 분명한 근거는 없다. 예컨대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민주사회에서 자궁을 가진 개인은 독립적인 법적 지위를 가지지 못했으며 평의회 의원이나 관사가 되는 것을 금지당했다. 좋은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사업을 하거나 철학적 논의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아테네의 정치 지도자, 위대한 철학자, 웅변가, 예술가, 상인 중에 자궁을 지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자궁이 있으면 생물학적으로 이런 직업에 맞는 않는 걸까? 고대 아테네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현대 아테네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오늘날 아테네에서 여성은 투표에 참가하고, 공직에 선출되며, 연설을 하고, 보석부터 빌딩, 소프트웨어에 이르는 모든 것을 디자인하며, 대학에 다닌다. 자궁 때문에 남자보다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할 일은 없다. 사실 정치와 상업 분야에서는 여전히 여성 대표자가 부족한 상태다. 그리스 회의에 여성 의원은 12퍼센트밖에 안 된다. 하지만 정차 참여에 법적 제한은 없으며, 대부분의 그리스 사람들은 여성이 공직에 근무하는 것을 매우 정상적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또한 남성성의 필수요소는 여성에게만 성적으로 끌리고 성관계도 여성하고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것을 문화적 편견이 아니라 생물학적 진실로 간주한다. 성별이 다른 두 사람의 관계는 자연스럽지만 성별이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부자연스럽다는 것이다. 하지만 사실을 말하자면, 대자연은 남자끼리 서로 성적으로 끌리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아들이 옆집 소년과 성관계를 맺고 있다고 해서 소동을 일으키는 것은 오로지 특정 문화에 깊이 물든 인간 엄마뿐이다. 사실 엄마의 분노도 생물학적 필연은 아니다. 적잖은 인간 문화들이 동성애가 합법적일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 건설적이라고 보았고, 그 가장 두드러진 사례가 바로 그대 그리스였다. <일리아스>에는 아킬레스가 파트로클로스와 동성애 관계를 맺는 데 대해 엄마인 테티스가 반대했다는 언급이 전혀 없다. 마케도니아의 올림피아스 여왕은 고대 세계에서 가장 개성이 강하고 단호한 여성의 하나로 꼽힌다. 남편인 필리포스의 암살을 사주했을 정도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인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저녁을 같이 하려고 연인인 헤파이스티온을 집에 데려왔을 때 발작을 일으키지 않았다.
우리는 생물학적으로 결정되어 있는 것과 단지 사람들이 생물학적 신화를 통해 정당화하려고 노력하는 것을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까? 양자를 구분하기 좋은 경험법칙이 있는데, '자연은 가능하게 하고 문화는 금지한다'는 기준이다. 생물학은 매우 폭넓은 가능성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람들에게 어떤 가능성을 실현하도록 강제하고 다른 가능성을 금지하는 장본인은 바로 문화다. 생물학은 여성들에게 아이를 낳는 능력을 주었고, 일부 문화는 여성들에게 그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을 의무로 지웠다. 생물학은 남자들끼리 성관계를 즐길 수 있게 했고, 일부 문화는 그런 가능성을 실현하는 것을 금지했다.
문화는 자신이 오로지 부자연스러은 것만 금지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지만, 생물학적 관점에서 보자면 사실 부자연스러운 것이란 없다. 가능한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처음부터 자연스러운 것이다. 정말로 부자연스러운 행동, 자연법칙에 위배되는 행동은 아예 존재 자체가 불가능함을 금지할 필요가 없다. 수고롭게시리 남자에게 광합성을 금지하거나, 여자에게 빛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게 하거나, 은전하를 띤 전자가 서로에게 끌리지 못하도록 금지한 문화는 하나도 없었다.
진실을 말하자면, '자연스러움'과 '부자연스러움'이라는 우리의 관념은 생물학이 아니라 기독교 신학에서 온 것이다. '자연스러움'이란 말의 신학적 의미는 '자연을 창조한 신의 뜻에 맞는다'는 뜻이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신이 인간의 몸을 창조할 때 사지와 장기가 특정 목적을 수행하게 하려는 의도를 가졌다고 주장한다. 우리가 사지와 장기를 신이 마음에 그렸던 목적에 맞게 사용한다면 그것은 자연스러운 활동이고, 신의 의도와 다르게 사용한다면 부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장기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진화한 것이 아니며, 그 사용방식은 끊임없이 변화한다. 인체의 장기 중에 그것이 원형 상태로 수억 면 전 처음 등장했을 때 했던 일만을 하고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장기는 특정기능을 수행하기 위해 진화하지만, 일단 존재하게 되면 다른 용도를 사용되는 방향으로 적응할 수 있다. 가령 입이 등장한 것은 가장 초기의 다세포 생명체가 영양소를 몸 안으로 섭취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고, 우리는 지금도 그런 용도로 입을 사용하지만, 동시에 키스하고 말하는 데도 사용한다. 람보라면 수류탄 핀을 뽑을 때도 써먹는다. 이런 용도 중 어느 하나라도 부자연스러운 것이 있을까? 벌레 비슷하게 생겼던 6억 년 전의 우리 선조가 입으로 하지 않던 일이라는 이유만으로?
마찬가지로 날개도 처음부터 모든 공기역학적 장점들을 갖추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다. 원래 다른 목적으로 쓰였던 기관에서 발달했다. 한 이론에 따르면, 곤충의 날개는 날지 못하는 벌레의 신체에서 돌출한 부위로부터 수백만 년 전 진화했다. 튀어나온 혹이 있는 벌레는 신체 표면적이 더 넓었고, 덕분에 햇빛을 더 많이 흡수해서 체온을 따스하게 유지할 수 있다. 진화가 서서히 진행되면서 태양광 히터는 점점 더 커졌다. 햇빛을 최대로 흡수할 수 있는 구조 - 표면적이 넓고 무게가 덜 나가는 구조 - 는 우연히 다른 능력도 주었다. 달리고 점프할 때 약간 떠오르는 능력이었다. 돌출부위가 더 큰 벌레는 더 멀리 뛰고 점프할 수 있었다. 어떤 곤충들은 이 부위를 이용해서 활강하기 시작했고, 여기서 약간의 단계만 더 거치면 실제로 공기를 헤치고 날게 해주는 날개가 된다. 다음번에 모기가 당신 귀 근처에서 앵앵거린다면 모기에게 그것은 부자연스러운 행위라고 바난해보라. 만일 그 모기가 하느님이 자신에게 준 것에 만족하는 착한 모기라면 날개는 태양광 집열기로만 쓸 테니까.
인간의 성기와 성행위에도 똑같은 멀티태스킹이 적용된다. 성관계는 당초 출산을 위해 진화했고, 구애행위는 잠재적 짝의 적응도를 측정하는 방법의 하나로 진화했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동물이 이 두 가지를 다양한 사회적 목적들에 이용한다. 자신의 작은 복사본을 만드는 것과는 거의 관련이 없는 목적들이다. 예컨대 침팬지는 정치적 유대를 강화하고 친밀한 관계를 만들고 긴장을 완화하는 데 성관계를 이용한다. 이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인가?
"만일 정丁일에 낳으면 길吉하니 아들일 것이다."
"3주일과 하루가 지난 후인 갑인일에 아기를 낳았다. 길하지 않았다. 딸이었다."
남아선호男兒選好, 남존여비男尊女卑,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구시대적 사고의 불편함이 역력하지만, 그 사고의 잔재가 지금도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완전 부정할 수 없다.
길일에 태어났냐 아니냐에 따라 인간의 가치를 분류했다는 중국의 상상의 질서가 어이없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자 남자의 차별적 위계질서 불합리는 현재도 존재한다.
다행으로 이런 온당치 않은 문화적 개념과 규범의 층이 하나하나 무너지고 있지만, 가정에, 사회에 차별이 바탕이 된 억울함은 적잖게 존재한다.
'상상속의 질서'로 당연하듯 성립된 것들을 끄집어 내,
당연하지 않은 것으로 풀어 나가는 유발하라리의 집요함(?)에서 긴 글쓰기의 요령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