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47

제3부 인류의 통합/ 11. 제국의 비전(285~291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제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

10. 돈의 향기

11. 제국의 비전

12. 종교의 법칙

13. 성공의 비결


[필사와 단상]

11. 제국의 비전


제국이란 무엇인가?

제국이란 정치질서는 두 가지 중요한 특징을 지닌다. 첫째, 그런 명칭으로 불리려면 서로 다른 문화적 정체성을 지니고 서로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서로 다른 민족이나 국민을 지배해야 한다. 정확히 얼마나 많아야 할까? 둘이나 셋으로는 충분치 않다. 20이나 30이면 충분히 많다. 제국이라 불리기 위한 조건은 그 중간 어디쯤에 있다.

둘째, 제국의 특징은 탄력적인 국경과 잠재적으로 무한한 식욕이다. 제국은 자신의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변화시키지 않은 채 갈수록 더 많은 국가와 영토를 집어삼키고 소화할 수 있다. 오늘날 영국은 국경이 분명하며, 스스로의 기본구조와 정체성을 훼손하지 않고는 국경을 넘어설 수 없다(제국주의 국가가 아니라는 말이다-옮긴이). 1세기 전에는 지구상의 거의 어떤 지역이라도 대영제국의 일부가 될 수 있었다. 문화의 다양성과 영토의 탄력성은 제국의 독특한 특징일 뿐 아니라 역사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두 가지 특징 덕분에 제국은 다양한 소수민족과 생태적 지역들을 하나의 정치 체제하에 묶어낼 수 있었고, 그럼으로써 인류와 지구에서 점점 더 큰 부분을 하나로 융합했다. 강조할 점은, 제국이 그 기원이라든가 정부 형태, 영토의 범위, 인구의 크기에 의해서 정의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문화적 다양성과 국경의 탄력성으로만 정의된다는 것이다. 제국이 반드시 군사적 정복으로 등장할 필요도 없다. 아테네 제국은 자발적 동맹으로 생명을 얻었으며, 합스부르크 제국은 혼인으로 탄생해 일련의 영리한 결혼동맹에 의해 꿰맞춰졌다. 제국은 또 반드시 독재적 황제가 통치해야 하는 것도 아니다. 역사상 초대 규모였던 대영제국의 통치체제는 민주주의였다. 다른 민주적(혹은 적어도 공화정인) 제국으로는 근현대의 네덜란드, 프랑스, 벨기에 미국이 있다. 근대 이전의 노브고로드, 로마, 카르타고, 아테네도 여기에 속한다.

크기 역시 실제로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국은 왜소할 수도 있다. 아테네 제국은 최전성기에도 크기와 인구가 오늘날의 그리스보다 작았다. 아즈텍 제국은 오늘날의 멕시코보다 작았다. 두 국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국이었지만, 현대 그리스와 멕시코는 아니다. 왜냐하면 전자는 수십 수백 개의 서로 다른 통치조직을 점차 복속시킨 데 반해 후자는 그러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테네는 원래 독립된 도시국가 1백여 곳을 재배했으며, 아즈텍 제국은 과세 기록이 사실이라면 371개의 부족과 해당 부족민을 다스렸다.

그렇게 다양한 사람들을 어느 정도까지만 근대적이었던 국가의 영토 안에 구겨 넣는 일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과거에는 민족과 부족의 수가 훨씬 더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오늘날의 전형적 민족에 비해 구성원의 수도 적었고 차지한 영토도 더 작았다. 오늘날 지중해와 요단강 사이의 땅에서 서로의 야망을 채우려 다투는 민족은 둘 뿐이지만, 성경시대에 이 땅은 수십 개의 국가, 부족, 작은 왕국, 도시국가를 수용했다. 제국은 인류의 다양성을 급격히 축소시킨 주된 이유의 하나였다. 제국이라는 증기롤러는 수많은 민족의 독특한 특징을 지워버리고(예컨대 누만시아), 그로부터 훨씬 더 크고 새로운 집단들을 만들어냈다.




사악한 제국?

오늘날 '제국주의자'라는 말은 거의 최고의 정치적 욕설이다. 이보다 심한 말은 '파시스트'밖에 없다. 제국에 대한 현대의 비판은 대게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1. 제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수많은 피정복 민족을 효과적으로 다스리는 것은 결국 불가능하다.

2. 설사 그것이 가능하다 할지라도 실행해서는 안 된다. 왜냐면 제국은 파괴와 착취의 사악한 엔진이기 때문이다. 모든 민족은 자결권이 있고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아서는 안 된다.


역사적 관점에서 볼 때 1번 서술은 난센스에 불과하고, 2번은 큰 문제가 있다.

실제 제국은 지난 2,500년간 세계에서 가장 일반적인 형태의 정치조직이었다. 이 시기에 살던 인류의 대부분은 제국에 속해 있었다. 제국은 매우 안정된 형태의 정부다. 대부분의 제국은 반란을 너무나 쉽게 제압했다. 제국을 무너뜨린 것은 대개 외부의 침공이나 내분에 따른 지배 엘리트의 분열밖에 없었다. 그래서, 정복당한 민족이 제국의 지배자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킨 기록은 그리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은 수백 년에 걸쳐 복속 상태로 남아 있었다. 이들은 제국에 서서히 소화되어 고유의 문화가 흐지부지되는 게 보통이었다.

가령 기원후 476년 서로마 제국이 게르만족의 침공으로 마침내 무너졌을 때, 누란니시아, 아르베르니, 헬베티아, 삼늄, 투시타니아, 움브리아, 에트루리아 종족(아르베르니는 프랑스 오베르뉴 지방에 살던 고대 종족을 말하고, 헬베티아는 스위스족, 삼늄은 고대 이탈리아, 루시타니아는 포르투칼, 움브리아는 고대 이탈리아 중북부, 에트루리라는 이탈리아 중부를 가리킨다 - 옮긴이)을 비롯해 수세기 전 로마에 정복당했던 민족들은 ㄴ커다란 물고기 속에서 나온 성경 속 요나와는 달리 가리가리 찢긴 제국의 시체에서 살아 나오지 못했다. 이들은 모두 사라졌다. 스스로 그런 국가의 국민이라고 믿었고 그 나라의 언어를 썼고 그 나라의 신을 섬겼고 그 나라의 신화와 전설을 읊었던 사람들의 생물학적 후손들은 이제 로마인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숭배했다.

많은 경우 하나의 제국이 무너진다고 해서 피지배 민족들이 독립하는 일은 드물었다. 옛 제국이 붕괴하거나 후퇴한 자리에 생긴 진공에는 새로운 제국이 발을 들여놓았다. 가장 명백한 예가 중동 지역이다. 국격이 어느 정도 안정된 많은 독립국들이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는 현재 그 지역의 정치적 상황은 지난 수천 년간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중동에 마지막으로 이런 국면이 조성된 것은 기원전 8세기, 거의 3천 년 전의 일이었다! 기원전 8세기 네오 아시리아 제국이 발흥한 이래 20세기 중반 대영제국과 프랑스 제국이 붕괴할 때까지, 중동은 마치 이어달리기에서 다음 주자에게 넘겨지는 바통처럼 한 제국의 손에서 다른 제국의 손으로 넘어가는 일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영국과 프랑스가 마침내 그 바통을 떨어뜨렸을 즈음에는 이미 아람, 아몬, 페니키아, 필리스티아, 모아브, 에돔을 비롯해 아시리아에 정복되었던 민족들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오늘날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조지아인 들이 고대 중동 민족들의 후예라고 주장하는 것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규칙을 증명하는 예외에 불과할 따름이며, 이런 주장조차 어느 정도 과장되어 있다. 예컨대 유대인이 지닌 정치, 경ㅈ베, 사회적 관습은 고대 유대 왕국에서 유래한 부분이 크지 않다. 그보다는 지난 2천 년간 자신들이 그 휘하에서 살았던 제국들에서 유래한 부분이 더 크다. 만일 다윗 왕이 오늘날 예루살렘의 초정동파 시나고그레 모습을 드러낸다면, 동유럽식 복장에 게르만 방언(이디시어)으로 말하며 바빌로니아 문서(탈무드)의 의미에 대해 끊임없이 논쟁을 벌이는 사람들을 보고 그는 크게 당황할 것이다. 고대 유대 왕국에는 시나고그, 탈무드 경전, 심지어 토라 율법 두루마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려면 수많은 사람을 악랄하게 살해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할 필요가 있었다. 전쟁, 노예화, 국의 추방, 대량학살은 제국의 일반적 수단으로 꼽힌다. 기원후 83년 로마가 스코틀랜드를 침략하여 현지 칼레도니아 종족의 격렬한 저항에 부딪혔을 때 로마의 대응은 이 지역을 초토화하는 것이었다. 로마의 평화 제의에 대해 칼가쿠스 족장은 로마인들을 '세상의 악당들'이라고 비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은 약탈과 학살과 강도질을 두고 제국이라는 허튼 이름을 붙이고, 사막을 만들어 놓은 뒤 이를 평화라고 부른다."

그렇다고 해서 제국이 그 뒤에 가치 있는 것을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모든 제국을 검게 지워버리고 제국의 유산을 모두 거부한다는 것은 인류문화의 대부분을 거부하는 것이다. 제국의 엘리트들은 정복에 따른 이익을 군대와 성체에만 쓰지 않았다. 철학, 예술, 사법제도, 자선에도 썼다. 아직 남아 있는 인류의 문화적 성취 중 상당한 몫은 제국이 피정복민을 착취한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 로마 제국주의가 제공한 이익과 번영 덕분에 키케로와 세네카,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사색과 집필을 할 여유를 누릴 수 있었다. 타지마할은 무굴 제국이 인도 신민을 착취해서 축적한 부가 없었다면 건설될 수 없었다. 합스부르크 제국은 슬라브어, 헝가리어, 루마니아어를 사용하는 지역을 지배하면서 얻은 이익으로 하이든에게 월급을 주고 모차르트에게 작곡을 의뢰했다. 후손을 위해 칼가쿠스의 연설을 적어둔 칼레도니아 작가는 아무도 없었다. 우리가 그에 대해 아는 것은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 덕분이다. 사실 타키투스는 아마 이 이야기를 지어냈을 것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역사가는 타키투스가 문제의 연설을 지어냈을 뿐 아니라 자신을 비롯한 로마 상류계층이 자신들의 국가에 대해 생각하는 바를 대변하도록 하기 위해서 칼레도니아의 족장인 칼가쿠스의 캐릭터까지 창조했을 것이라는 데 동의한다. 엘리트 문화와 고급 예술을 넘어서 보통 사람들의 세상에 초점을 맞추더라도, 대부분의 현대 문화들에서 우리는 제국의 유산을 찾아볼 수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네 조상들이 칼로써 강요당했던 제국의 언어로 말하고 생각하고 꿈꾼다.

대부분의 동아시아 사람들은 한漢 나라의 언어로 말하고 꿈꾼다. 원래 기원이 무엇이었든, 알래스카 배로 반도에서 마젤란 해협에 이르는 두 아메리카 대륙의 거의 모든 거주자는 네 개의 제국언어-스페인어, 포르투칼어, 프랑스어, 영어- 중 하나로 의사소통을 한다. 오늘날 이집트인은 아랍어로 말하고, 스스로를 아랍인이라 생각하며, 아랍 제국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7세기에 이집트를 정복했으며 자신들에 대항하여 일어난 여러 차례의 반란을 철권으로 진압했던 제국을 말이다. 남아프리카에 있는 약 1천만 명의 줄루복은 19세기에 있었던 줄루촉의 영광의 시대를 들먹이지만, 사실 그들 대부분은 줄루 제국에 대항해서 싸웠으며 유혈 군사작전을 통해서 강제로 제국에 편입된 종족들의 후예이다.





"제국을 건설하고 유지하려면 수많은 사람을 악랄하게 살해하고
나머지 사람들을 무자비하게 억압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제국이 그 뒤에 가치 있는 것을 아무것도 남겨두지 않았다는 말은 아니다. (......) 제국의 엘리트들은 정복에 따른 이익을 군대와 성체에만 쓰지 않았다. 철학, 예술, 사법제도, 자선에도 썼다. 아직 남아 있는 인류의 문화적 성취 중 상당한 몫은 제국이 피정복민을 착취한 덕분에 생겨날 수 있었다."



일본제국에 대한 피지배국으로서의 우리 역사는 기억으로든 기록으로든 사라지지 않는다. 올해로 광복 80주년이다. 경제는 세계 무역의 중심 대상일만큼 성장했고, 문화 역시 세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올바른 지도세력과 올바른 시민정신만이 필요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