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373~380쪽)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14. 무지의 발견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16. 자본주의의 교리
17. 산업의 바퀴
18. 끝없는 혁명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필사와 단상]
14. 무지의 발견
현대 과학에는 도그마가 없다. 하지만 연구기법에는 공통적인 핵심이 있는데, 늘 경험적 관찰들을 모은 뒤 수학적 도구의 도움을 받아 그것들을 하나로 결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관찰이란 적어도 우리의 감각기관 중 하나로 관찰할 수 있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를 통틀어 사람들은 경험적 관찰들을 모았지만, 이 관찰의 중요성은 보통 제한적이었다.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답이 수중에 있는데 또다시 새로운 관찰을 얻으려고 귀중한 자원을 낭비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하지만 현대인은 자신들이 매우 중요한 몇몇 질문에 대한 답을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으므로, 완전히 새로운 지식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결과, 현대의 지배적인 연구기법은 오래된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오늘날 무게중심은 옛 전통을 연구하기보다는 새로운 관찰과 실험을 하는 쪽으로 옮겨갔다. 현대의 관찰이 과거의 전통과 배치되는 경우, 우리는 관찰에 우선권을 부여한다. 물론 먼 은하의 스펙트럼을 분석하는 물리학자, 청동기 시대의 도시 유물을 분석하는 고고학자, 자본주의의 출현을 연구하는 정치학자는 전통을 무시하지 않는다. 이들은 과거의 현자들이 말하고 쓴 것을 공부하는 데서 시작한다. 하지만 물리학자, 고고학자, 정치학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대학 1학년 때부터 자신의 임무는 아인슈타인, 하인리히 슐리만, 막스 베버가 알았던 것을 뛰어넘는 데 있다고 배운다.
하지만 더 많은 관찰이 곧 더 많은 지식은 아니다. 우주를 이해하려면, 관찰들을 연결하여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 필요가 있다. 과거의 전통에서는 보통 이야기를 써서 이론을 꾸며냈지만, 현대 과학에서는 수학을 사용한다.
성경이나 코란, 베다, 유교의 경전에는 방정식, 그래프, 계산이 거의 없다. 전통적 신화와 서적이 보편 법칙을 서술할 때는 수식이 아니라 이야기의 형태로 제시했다. 따라서 마니교의 근본 원리는 세상이 선과 악의 전쟁터라고 이야기했다. 악의 힘이 물질을 만들었고, 선의 힘이 정신을 창조했으며, 인간은 두 가지 힘 사이에 붙잡혀 있으니 악을 넘어 선을 선택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예언자 마니는 두 힘을 계량함으로써 인간의 선택을 예측하는 데 쓸 수 있는 수학공식을 만들려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았다. "사람에게 작용하는 힘은 그의 정신의 가속도를 신체 질량으로 나눈 값과 같다"는 식의 계산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과학자들이 달성하고자 하는 것이다. 1687년 아이작 뉴턴은 현대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책이 틀림없을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를 출간했다. 뉴턴은 운동과 변화의 일반이론을 제시했다. 뉴턴 이론의 위대한 점은 세 개의 매우 단순한 수학 법칙으로 떨어지는 사과에서부터 별똥별에 이르기까지 우주의 모든 물체의 운동을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부터, 대포알이나 행성의 운동을 이해하고 예측하고 싶은 사람은 해당 물체의 질량, 방향과 가속도, 거기에 작용하는 힘을 측정하기만 하면 되었다. 숫자들을 뉴턴의 방정식에 집어넣으면, 그 물체의 미래의 위치를 예측할 수 있었다. 이것은 마술처럼 작동했다. 과학자들이 뉴턴의 법칙에 잘 들어맞지 않는 소수의 관찰 결과와 마주친 것은 19세기말이 되어서였고, 그런 관찰은 물리학의 새로운 혁명으로 이어졌다.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이었다.
뉴턴은 자연이라는 책이 수학의 언어로 쓰여 있음을 보여주었다. 일부 챕터(예컨대 물리학)는 결국 깔끔한 방정식들로 귀결된다. 하지만 생물학, 경제학, 심리학을 깔끔한 뉴턴 방정식으로 환원하려고 시도했던 학자들은 실패했다. 이런 분야는 그런 야망을 덧없는 것으로 만드는 복잡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수학을 포기했다는 말은 아니다. 지난 2백 년 사이에 실재의 보다 복잡한 측면을 다루기 위한 새로운 수학 분과가 개발되었다.
1744년 스코틀랜드의 장로교 목사인 알렉산더 웹스터와 로버트월리스는 생명보험기금을 만들어 사망한 목사의 배우자와 고아에게 연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그들은 자기네 교회의 목사들에게 각자 자신의 수입 중 일부를 떼어 기금에 넣으라고 제안했고, 그들이 그 돈으로 투자를 하겠다고 했다. 만일 어느 목사가 죽으면, 배우자는 기금의 수익에서 배당을 받을 것이다. 그러면 그녀는 평생 안락하게 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목사들이 얼마를 내야 기금에 돈이 충분히 모여서 약속한 의무를 다할 수 있는지 알려면, 웹스타와 월리스는 매년 얼마나 많은 목사가 죽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배우자와 고아가 남을 것이며 배우자는 남편보다 얼마나 오래 살 것인지 예측할 수 있어야 했다.
먼저 두 성직자가 하지 않은 일에 주목하자. 이들은 답을 알려달라고 하느님에게 기도하지 않았다. 성경이나 고대 신학자의 작품 속에서 답을 찾지도 않았다. 추상적인 철학논쟁을 시작하지도 않았다. 스코틀랜드인 답게 이들은 실용적이었다. 그래서 애든버러 대학의 수학 교수인 콜린 매클로린과 만났다. 세 사람은 사람들의 사망 연령에 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그것을 이용해 어떤 해에 얼마나 많은 목사가 사망할지를 계산했다. 이들의 작업은 통계와 확률 분야에서 얼마 전에 등장한 여러 발전들에 토대를 두었다. 그중 하나가 야코프 베르누이의 '큰 수의 법칙'이었다. 베르누이는 특정인의 사망 같은 단일사건의 발행 확률을 정확히 예측하기는 힘들지만 수많은 비슷한 사건들의 평균 결과는 매우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는 원칙을 명문화했다.
요컨대 매클로린은 웹스터와 월리스가 내년에 사망할지 여부를 수학을 이용해서 예측할 수 없지만, 충분한 자료가 주어진다면 웹스터와 월리스에게 내년에 스코틀랜드에서 얼마나 많은 장로교 목사가 사망할지를 거의 정확하게 말해줄 수 있었다. 운 좋게도 그들에게는 즉각 사용할 수 있는, 이미 만들어진 자료가 있었다. 특히 50년 전에 메드먼드 핼리가 출간한 생명표가 유용했다. 핼리는 독일 브레슬라우 시에서 얻은 1,238건의 출생기록과 1,174건의 사망 기록을 분석해 두었다. 핼리의 표가 있으면, 예컨대 그 해에 20세인 사람이 사망할 확률은 1백 분의 1이지만 50세인 사람의 사망확률은 39분의 1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 수치를 가공하여, 웹스터와 윌리스는 어느 시점에서든 살아있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는 930명이고, 연평균 27명의 목사가 사망할 것이고, 그 배우자는 18명일 것이라고 결론 내렸다. 배우자를 남기지 않은 사람 중 다섯 명은 고아를 남길 것이고, 배우자를 남긴 사람 중 두 명에게는 아직 16세에 이르지 않은 전처소생의 자식이 있을 것이다.
이들은 그 배우자가 죽거나 재혼하는 데(두 경우 모두 연금 지불은 중단된다) 몇 해가 걸릴 것인가까지도 계산했다. 이 수치를 통해 웹스터와 월리스는 기금에 가입한 목사들이 얼마를 내야 아내나 자식들의 생활비를 보장할 수 있을지 결정할 수 있었더. 한 해에 2파운드 12실링 2펜스를 내는 목사는 죽은 뒤 아내가 매년 적어도 10파운드(당시로서는 큰돈이었다)를 수령할 것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이 돈이 적다고 생각하면 매년 6파운드 11실링 3펜스를 내기로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러면 아내가 매년 25파운드를 받게 해 줄 수 있었다.
이들의 계산에 따르면, 1765년에는 '사망한 스코틀랜드 교회 목사들의 배우자와 자녀를 위한 대비 기금'의 자본은 총 58,348파운드가 될 것이었다. 이 계산은 놀랄 만큼 정확하였다. 실제로 그해가 되었을 때 기금의 자본은 예측보다 단 1파운드 적은 액수 58,347파운드였다! 하박국(구약에 나오는 기원전 7세기의 소 선지자 - 옮긴이), 예레미야(기원전 6~7세기의 대 예언자 - 옮긴이), 사도 요한의 예언보다 훨씬 더 정확한 예측이었다. 오늘날 웹스터와 월리스의 기금은 간단히 '스코티시 위도스'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세계 최대의 연금 및 보험회사로 꼽힌다. 자산 가치 1천억 파운드가 넘는 이 회사는 사망한 스코틀랜드 교회 목사들의 배우자뿐 아니라 보험증권을 사려는 누구에게나 연금 지불을 보장해 준다.
스코틀랜드의 두 목사가 사용했던 것과 같은 확률 계산은 연금과 보험산업의 핵심이 되는 보험통계학뿐 아니라 인구통계학(역시 성직자였던 영국성공회의 로버트 맬서스가 기초를 쌓았다)의 기초가 되었다. 그리고 인구통계학은 결국 찰스 다윈(영국 성공회 목사가 거의 될 뻔했다)이 세운 진화론의 초석이 되었다. 특정한 조건들 아래서 어떤 종류의 생명체가 진화할 것인지을 예측하는 방정식은 없지만, 유전학자들은 확률 계산을 통해 주어진 개체군 내에서 특정 돌연변이가 퍼져나갈 가능성을 계산한다. 이와 유사한 확률 모델은 경제학, 사회학, 심리학, 정치학을 비롯한 다른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의 핵심이 되었다. 심지어 물리학도 결국 뉴턴의 고전 방정식을 양자역학의 확률 구름으로 보충했다.
이런 과정이 우리를 얼미나 멀리까지 데려왔는지 실감하려면, 교육의 역사를 들여다보기만 하면 된다. 대부분의 역사 내내 수학은 난해한 분야였고, 교양 있는 사람들도 이를 진지하게 공부한 예가 드물었다. 중세 유럽에서는 논리학, 문법, 수사학이 교육의 핵심을 이룬 반면, 수학 교습은 단순한 산술과 기하를 넘어서는 경우가 없었다. 통계학은 아무도 공부하지 않았다. 모든 학문 분야 왕자는 신학이었고 여기에는 논란의 여지가 없었다. 오늘날 수사학을 공부하는 사람은 찾기 어렵다. 논리학은 철학의 한 분과로만 존재한다. 신학은 신학교에서만 배운다. 하지만 점점 더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배우려 하거나 배우도록 강요받는다. 정밀과학을 향하는 흐름은 거역할 수 없는 대세이고, '정밀'하다는 말의 정의는 수학적 도구를 사용한다는 뜻이다. 전통적으로 인문학의 분야였던 인간 언어의 연구(언어학)나 인간 심리의 연구(심리학)조차 점점 더 수학에 의존하며 스스로를 정밀과학이라고 소개하려 한다. 이제 통계학은 물리학이나 생물학만이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의 기초 필수 과목이 되었다.
내가 몸담은 대학교의 심리학과 강좌 목록을 보면, 커리큘럼에서 가장 먼저 수강해야 하는 과목은 '심리학 연구의 통계학과 방법론 입문'이다. 심리학과 2학년 학생은 '심리학 연구의 통계적 방법'을 반드시 수강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공자, 부처, 예수, 마호메트에게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병을 치료하려면 통계학을 먼저 공부해야 한다고 말해주었다면, 그들은 아주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역사 내내 수학은 난해한 분야였고,
교양 있는 사람들도 이를 진지하게 공부한 예가 드물었다.
이제 통계학은 물리학이나 생물학만이 아니라
심리학, 사회학, 경제학, 정치학의 기초 필수 과목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가 존재할 만큼 머리 아픈 학문 수학! 더 쉽게, 더 편하게, 더 빠르게, 더 안전하게를 끊임없이 요구하는 현대인의 욕망이 있는 한, 수치(數値)는 과학문명의 우두머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