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54

제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362~372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제4부 과학혁명

14. 무지의 발견

15. 과학과 제국의 결혼

16. 자본주의의 교리

17. 산업의 바퀴

18. 끝없는 혁명

19.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다

20. 호모 사피엔스의 종말


[필사와 단상]

14. 무지의 발견


기원후 1000년 어느 스페인 농부가 잠이 들어 5백 년 후에 깨어난다고 하자. 그는 콜럼버스가 이끄는 니냐 호, 핀타 호, 산타마리아호의 선원들이 내는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깼다. 그렇지만 그가 깨어난 세상은 매우 친숙해 보일 것이다. 기술과 풍습과 정치적 경계선은 많이 달라졌겠지만, 중세의 이 '립 밴 윙클'(미국의 작가 워싱턴 어빙이 지은 소설 속 주인공 이름. '세상의 변화에 놀라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인다 - 옮긴이)은 편안하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만일 콜럼버스의 선원 중 한 명이 같은 식으로 잠에 빠졌다가 21세기 아이폰 벨소리에 잠을 깬다면, 자신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세상에 와 있다는 것을 알고 이렇게 자문할 것이다. "여기는 천국인가, 아니면 지옥인가?"

지난 5백 년간 인간의 힘은 경이적으로, 유례없이 커졌다. 1500년에 지구 전체에 살고 있던 호모 사피엔스의 수는 5억 명이었다. 오늘날에는 70억 명이 산다. 1500년 인류가 생산한 재화와 용역의 총가치는 오늘날의 화폐로 치면 약 2,500억 달러였다. 오늘날 인류의 연간 총생산량은 60조 달러에 가깝다. 1500년 인류가 하루에 소비한 에너지는 약 13조 칼로리였다. 오늘날 우리는 하루 1,500조 칼로리를 소비한다.(숫자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라. 인구는 열네 배로 늘었는데 생산은 240배, 에너지 소비는 115배 늘었다)

현대의 전함 한 대가 콜럼버스 시대로 옮겨졌다고 상상해 보자. 이 배는 니냐, 판타, 산타마리아 호를 몇 초 만에 널빤지 조각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고, 당시 열강들의 모든 군함을 격침시키면서도 자기는 긁힌 자국 하나 없을 것이다. 현대 화물선 다섯 척이 있었다면 당시 세계의 모든 상단이 실어 나른 모든 짐을 실을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의 컴퓨터 한 대면 중세의 모든 도서관에 있는 모든 사본과 두루마리에 있는 모든 단어와 숫자를 쉽사리 저장하고도 공간이 넉넉하게 남았을 것이다. 오늘날의 대형 은행 어느 한 곳이 보유한 돈은 중세의 모든 왕국이 가지고 있던 돈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을 것이다.

1500년에 10만 명 이상 거주하던 도시는 드물었다. 대부분의 건물은 진흙과 나무와 짚으로 지어졌다. 3층이면 초고층이었다. 도로는 바퀴자국이 나 있는 비포장 흙길로, 여름에는 먼지가 날리고 겨울에는 진창으로 변했으며, 보행자, 말, 염소, 닭, 마차 몇 대가 오갔다. 도시에서 가장 흔히 들리는 소음은 인간의 목소리와 동물의 울음소리였으며, 가끔 망치질과 톱질하는 소리도 들렸다. 해가 지면 도시의 경관은 캄캄해졌고, 어둠 속에서 가끔 촛불이나 횃불이 보일 뿐이었다. 그런 도시의 주민이 현대의 도쿄, 뉴욕, 뭄바이를 본다면 어떤 생가기 들까?

16세기 이전에는 지구를 일주한 인간이 아무도 없었다. 상황은 1522년에 바뀌었다. 마젤란의 배가 72,000킬로미터를 항해한 끝에 스페인으로 돌아온 것이다. 항해에는 3년이 걸렸으며, 탐험대의 거의 전원이 희생되었다. 심지어 마젤란 본인까지. 1873년에 쥘 베른은 필리어스 포그라는 부유한 영국인 모험가가 세계를 80일 만에 일주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한 이야기를 썼다. 오늘날에는 중산층 정도의 수입이 있는 사람이라면 단 48시간 만에 쉽고 편안하게 지구를 일주할 수 있다.

1500년에 인류는 지표면에 묶여 있었다. 탑을 세우고 산에 올라갈 수는 있었지만 하늘은 새와 천사와 신의 영역이었다. 1969년 7월 20일 인류는 달에 착륙했다. 이것은 역사적 위업 정도가 어니라 진화적, 심지어 우주적 업적이었다. 지난 40억 년의 진화 기간 동안 지구의 대기권을 벗어난 생물조차 없었으며, 달에 발자국이나 촉수 자국을 남긴 생물도 없었을 것이 확실하다.

역사의 대부분 기간 동안, 인간은 지구상에 있는 생명체 중 약 99.99퍼센트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미생물 말이다. 우리와 상관이 없어서 몰랐던 것은 아니다. 우리 몸속에는 수십조 마리의 단세포 생명체가 살고 있다. 이들은 무임승차자만은 아니다. 우리의 최고의 친구이자 가장 치명적인 적이기도 하다. 그중 일부는 우리 몸속에서 음식을 소화시켜 주고 장을 청소해 주지만, 다른 일부는 병과 전염병을 일으킨다. 하지만 인간의 눈이 미생물을 처음 본 것은 1674년이 되어서였다. 안톤 판 레이우엔훅이 집에서 만든 현미경으로 엿본 세계는 놀라웠다. 한 방울의 물속에 미세한 존재들이 돌아다니는 세계가 있었던 것이다. 그 후 3백 년간 인류는 현미경으로만 보이는 엄청난 숫자의 생물 종을 알게 되었다. 이들이 일으키는 가장 치명적이고 전염성이 강한 질병의 대부분을 퇴치하는 데 어찌어찌 성공했으며, 미생물을 의료와 산업에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박테리아를 조작해 약품을 만들고, 바이오 연료를 생산하며, 기생충을 죽인다.

하지만 지난 5백 년간 가장 눈에 띄는 단 하나의 결정적 순간은 1945년 7월 16일 오전 5시 29분 45초였다. 정확히 그때, 미국 과학자들은 앨러머고도 사막에 첫 원자폭탄을 터뜨렸다. 그 순간 이후 인류는 역사의 진로를 변화시킬 능력뿐 아니라 역사를 끝장낼 능력도 가지게 되었다.


우리를 앨러머고도로, 그리고 달로 이끈 역사적 과정이 과학혁명이다. 이 혁명 기간 동안 인류는 과학연구에 자원을 투자함으로써 막대한 새 힘을 얻었다. 왜 그것이 혁명이었는가 하면, 약 1500년 이전까지 전 세계 인류는 자신에게 새로운 의학적, 군사적, 경제적 힘을 얻을 능력이 있는지를 의심했기 때문이다. 당시 정부와 부유한 후원자들이 교육과 학문에 자금을 제공하기는 했지만, 그 목적은 새로운 능력을 획득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능력을 얻기 위함이었다. 근세 이전의 전형적인 지배자는 사제와 철학자, 시인에게 돈을 주면서 이들이 자신의 지배를 정당화하고 사회질서를 유지하기를 기대했지, 이들에게 새 의약품을 발견하거나 신무기를 발명하거나 경제성장을 촉진하라고 주문하지 않았다.

지난 5세기 동안, 인류는 과학연구에 투자하면 스스로의 능력을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점차 믿게 되었다. 이것은 맹목적인 믿음은 아니었다. 경험적으로 반복해서 증명된 사실이었다. 증거가 쌓일수록, 부자와 정부는 과학에 더 많은 자원을 기꺼이 투입하였다. 그런 투자가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달 위를 걷거나 미생물을 조작하거나 원자를 쪼갤 수 없었을 것이다. 가령 미국 정부는 지난 몇 십 년간 핵물리학 연구에 수십억 달러를 배정했다. 그 연구에서 만들어진 지식은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수 있게 해 주었고, 발전소는 미국 산업들에 싼값으로 전력을 공급했으며, 그 산업들은 미국 정부에 세금을 냈고, 미국 정부는 이 세금 중 일부를 핵물리학을 더욱 깊이 연구할 자금으로 댔다.

왜 현대 인류는 자신에게 연구를 통해 새로운 힘을 획득할 능력이 있다고 믿게 되었을까? 무엇이 과학과 정치와 경제의 연대를 구축했을까? 이 장에서는 현대 과학의 독특한 속성을 살펴봄으로써 그 답의 일부를 제공할 것이다. 이후 두 장에서는 과학과 유럽 제국들과 자본주의 경제가 어떻게 동맹을 형성했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우리는 모른다

적어도 인지혁명이 일어난 이후부터 인류는 우주를 이해하려 애썼다. 우리 선조들은 자연세계를 지배하는 규칙을 발견하기 위해 수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현대 과학은 과거의 모든 전통 지식과 다음 세 가지 점에서 결정적으로 다르다.


1. 무지를 기꺼이 인정하기. 현대 과학은 라틴어로 표현하면 '이그로나무스 - 우리는 모른다'에 기반을 두고 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한다고 가정하는 것이다. 더욱 중요한 점은 우리가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가 더 많은 지식을 갖게 되면 틀린 것으로 드러날 수도 있음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떤 개념이나 아이디어, 이론도 신성하지 않으며 도전을 벗어난 대상이 아니다.
2. 관찰과 수학이 중심적 위치 차지. 무지를 인정한 현대 과학은 새로운 지식의 획득을 목표로 삼는다. 그 수단은 관찰을 수집한 뒤, 수학적 도구로 그 관찰들을 연결해 포괄적인 이론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3. 새 힘의 획득. 현대 과학은 이론을 창조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이론을 사용해서 새 힘을 획득하고자 하며, 특히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고자 한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근데 이전의 전통 지식이었던 이슬람, 기독교, 불교, 유교는 세상에 대해 알아야 할 중요한 모든 것은 이미 알려져 있다고 단언했다. 위대한 신들, 혹은 전능한 유일신, 혹은 과거의 현자들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지혜가 있었고, 그것을 문자와 구전 전통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평범한 사람들은 그런 고대의 문헌과 전통을 파고들어 적절하게 이해함으로써 지식을 얻었다. 성경이나 코란, 베다에 우주의 핵심 비밀이 빠져 있다고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피와 살을 가진 피조물들이 앞으로 발견할지도 모르는 비밀이 말이다.

고대의 전통 지식은 오로지 두 종류의 무지만을 인정했다.

첫째, 한 개인이 뭔가 중요한 것에 대해 무지할 수는 있었다. 그가 필요한 지식을 얻으려면, 자신보다 현명한 누군가에게 묻기만 하면 되었다. 아무도 모르는 무언가를 새로 발견해야 할 필요는 없었다. 예컨대 13세기 영국 요크셔 지방 마을에 사는 농부가 인류의 기원에 대해 알고 싶었다면, 그는 기독교 전통 속에 명확한 답이 있다고 가정했다. 그가 할 일은 동네 사제에게 물어보는 게 전부였다.

둘째, 하나의 전통 전체가 뭔가 중요치 않은 것에 대해 무지할 수는 있었다. 위대한 신들이나 과거의 현자들이 우리에게 애써 말해주지 않은 것은 그게 무엇이든 정의상 중요치 않은 것이었다. 가령 아까 그 요크셔 농부가 거미가 어떻게 거미줄을 치는지 알고 싶었다면, 사제에게 물어보는 것은 무의미했다. 기독교 문헌 어디에도 이에 대한 답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기독교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뜻하진 않았다. 오히려 거미가 어떻게 집을 짓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어쨌든 하느님은 거미가 어떻게 집을 짓는지 너무나 잘 알고 계셨다. 만일 이 정보가 인간의 번영과 구원에 핵심이 되는 것이었다면, 하느님은 당연히 성경에 상세히 설명해 놓으셨을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사람들에게 거미 연구를 금지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미학자는 - 중세에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말이지만 -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이 부수적이라는 점과 자신의 연구결과가 기독교의 영원한 진리와 관련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학자가 거미나 나비나 갈라파고스핀치에 대해 무엇을 발견하든 그 지식은 하찮은 것에 불과했고, 사회나 정치, 경제의 근본적 진리와 무관했다.

사실 일이 그렇게 단순한 것은 아니었다. 어느 시대에나, 심지어 가장 경건하고 보수적인 시대에도 자신들의 전통 전체가 전혀 알지 못하는 뭔가 중요한 것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존재했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하찮은 존재로 취급받거나 박해를 받았다. 혹은 그들은 새로운 전통을 세우고, 이제 자신들이 세상에서 알아야 할 모든 것들을 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예언자 마호메트는 다른 아랍인들이 신의 진리에 무지하다고 비난하난 것으로 종교 경력을 시작했다. 그러나 마호메트는 아주 금방 자신이 모든 진리를 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으며, 추종자들은 그를 '예언자들의 봉인'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따라서 이제는 마호메트에게 주어진 계시를 넘어서는 다른 계시는 필요하지 않았다.

오늘날의 과학은 지식의 전통으로서는 독특하다.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집단적 무지를 공개적으로 인정한다는 점이 그렇다. 다윈은 스스로 '생물학자의 대표'를 자처하거나 생명의 수수께끼를 최종적으로 해결했다고 주장하지 않았다. 몇 세기에 걸친 광범위한 연구를 한 뒤에도 생물학자들은 뇌가 어떻게 의식을 만들어내는지에 대해 좋은 설명을 전혀 얻지 못했다고 인정하고 있다. 물리학자들도 무엇이 빅뱅을 일으켰는지,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지 모른다고 인정한다.

또 다른 경우에는 끊임없이 나타나는 새로운 증거를 기반으로 서로 경쟁하는 과학이론들이 큰 소리로 논쟁을 벌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경제를 운영하는 최선의 방법미 무엇이냐는 것이다. 개별 경제학자들은 자신의 방법이 최우선이라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금융 위기가 오거나 주식시장 버블이 터질 때마다 정설이 바뀌고 있다. 그리고 경제학의 결정판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견해다.

그리고 또 다른 경우에는 이용 가능한 증거들이 특정 이론을 너무나 일관성 있게 지지하는 나머지 다른 대안들이 이미 오래전에 다 밀려났다. 그런 이론들은 진리라고 받아들여지지만, 모두가 동의하는 바 만일 그 이론에 반대되는 새로운 증거가 등장한다면 해당 이론은 수정되거나 폐기되어야 한다. 좋은 예가 지구 판구조론과 진화론이다.

현대 과학은 무지를 기꺼이 받아들인 덕분에 기존의 어떤 전통 지식보다 더 역동적이고 유연하며 탐구적이다. 덕분에 우리는 세계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능력과 새로운 기술을 발명할 역량이 크게 확대되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의 선조 대부분이 대처할 필요가 없었던 심각한 문제를 하나 제기하기도 했다.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하며 지금의 지식도 잠정적인 것이라는 가정은 우리가 공유하는 신화에까지, 즉 수백만 명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협력하게 만들어주는 신화에까지 적용된다. 만일 이 신화들 중 많은 것이 의심스럽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우리는 어떻게 사회를 유퓨지할 수 있을까? 우리의 공동체, 국가, 국제 시스템은 어떻게 기능할 수 있을까?

정치사회적 질서를 안정시키려는 현대의 모든 노력은 다음의 두 가지 비과학적 방법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1. 하나의 과학이론을 택해서 통상의 과학적 관례와는 반대로 그것이 궁극적인 절대진리라고 선포하는 것, 이것은 나치당원과 공산주의자들이 사용한 방법이었다. 나치당원들은 자기네 인종정책이 생물학적 사실들의 핑연적인 귀결이라고 주장했다. 공산주의자는 마르크스와 레닌의 경제적 진리는 절대적이고 신성한 것이며 여기에는 결코 반박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2. 과학은 내버려 두고 과학과 무관한 절대진리에 따라 사는 것. 이것은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전략이었다. 자유주의적 인본주의는 인간의 고유한 가치와 권리에 대한 도그마적인 신조를 토대로 건설된 이념인데, 그 신조는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과학적 연구결과와는 당황스러울 정도로 공통점이 없다.


하지만 놀랄 것은 없다. 과학 자체도 스스로의 연구를 정당화하고 자금을 공급받으려면 종교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신념에 의지해야 하는 마당이니까.

그럼에도 현대 문화는 이전 어떤 문화보다 더욱 폭넓게 기꺼이 무지를 받아들여 왔다. 현대의 사회질서를 지탱해 준 요인 중 하나는 기술과 과학적 연구방법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믿음의 확산이었다. 이것은 절대진리에 대한 믿음을 어느 정도 대체했다.



과학혁명은 지식혁명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무지의 혁명이었다.
과학혁명을 출범시킨 위대한 발견은 인류는
가장 중요한 질문들에 대한 해답을 모른다는 발견이었다.



앎은 無知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