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필사 53

제3부 인류의 통합/ 13. 성공의 비결(348~359쪽)

by 명희

"일명 벽돌책으로 불리는『사피엔스』, 구입한 지 2년 됐으나 쉽게 손에 안 잡혀 숙제로 남아있었다. 올해도 안 읽을 게 뻔하다. 읽어낼 무기가 필요하다. 찾은 것이 '통필사', 손필사가 필사의 정석이다만 자신 없다. 안나카레니나 통필사를 손글씨로 한 적 있는데 쉽지 않았다. 기간에 대한 약속은 없다. 하루 한 페이지든 두 페이지든 써 '완독'을 대신할 거다. -2025.01.10.-




제3부 인류의 통합

9. 역사의 화살

10. 돈의 향기

11. 제국의 비전

12. 종교의 법칙

13. 성공의 비결


[필사와 단상]

13. 성공의 비결


상업, 제국 그리고 보편 종교는 모든 대륙의 사실상 모든 사피엔스를 오늘날 우리가 사는 지구촌 세상으로 끌어들였다. 이런 팽창과 통일 과정이 단선적이었다거나 중단된 적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지만, 큰 그림을 보면 다수의 작은 문화에서 몇 개의 큰 문화로, 마지막에는 하나의 전 지구적 사회로 이행하는 것은 아마도 인간사 역학에 따른 필연적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지구촌 사회가 필연적이었다고 해서 최종 결과가 지금 우리가 사는 특정한 종류의 지구촌 사회처럼 되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우리는 분명 다른 결과도 상상할 수 있다. 왜 덴마크어가 아닌 영어가 이렇게 널리 퍼졌을까? 세계에 기독교 신자는 약 20억 명, 무슬림은 12억 5천만 명, 조로아스터교인은 15만 명, 마니교 신자는 0명인 이유는 무엇일까?

만일 1만 년 전으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이 과정을 다시 진행한다면, 그래도 매번 일신교가 등장하고 이신교가 쇠퇴하는 것을 보게 될까? 그런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진짜 답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역사의 핵심적 특정 두 가지를 연구함으로써 단서를 찾아볼 수는 있다.



사후 깨달음의 오류

역사상 모든 지점은 교차로다. 우리가 과거에서 현재로 밟아온 길은 하나의 갈래였지만, 여기에서부터 미래로는 무수히 많은 갈래의 길이 나 있다. 이 중 일부는 더 넓고 평탄하며 이정표도 잘 되어 있기 때문에 선택될 가능성도 더 크지만, 때때로 역사는-또는 역사를 만드는 사람들은-예상을 벗어나서 움직인다.

4세기가 시작할 무렵 로마 제국 앞에는 다양한 종교적 선택의 가능성이 펼쳐져 있었다. 제국은 전통적인 다채로운 다신교를 고수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내란으로 갈기갈기 찢겼던 지난 세기를 돌아보면서 분명한 교리를 지닌 단일 종교를 믿으면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된 제국을 통합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는 당대에 있었던 수많은 종교 중 하나를 국교로 삼을 수 있었다. 마니교, 마트라교, 이시스교나 키벨래교, 조로아스티교, 유대교, 심지어 불교도 선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왜 그는 예수를 선택했을까? 기독교 신학에 뭔가 개인적으로 끌리는 부분이 있어서였을까, 아니면 자신의 목적에 부합한다고 생각한 어떤 신앙적 측면이 있었던 것일까? 그가 어떤 종교적 경험을 했던 걸까, 아니면 기독교가 빠르게 신도를 늘리고 있으니 거기 편승하는 게 최선이라는 조언을 들었던 것일까? 역사학자들은 추측은 할 수 있지만 확정적 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기독교가 어떻게 로마 제국을 접수했는지 서술할 수 있지만, 어째서 이 특정한 가능성이 현실화한 것인지는 설명할 수 없다.

'어떻게'를 서술하는 것과 '왜'를 설명하는 것은 뭐가 다를까? '왜'를 설명한다는 것은 왜 다른 사건이 아니라 하필 이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인과관계를 찾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부 학자들은 실제로 기독교의 발흥 같은 사건에 결정론적 설명을 제시한다. 이들은 인간사를 생물학적, 생태학적 혹은 경제적 힘의 작용으로 설명하려 한다. 이들은 로마가 지배했던 지중해 연안의 지리적, 유전적, 경제적인 뭔가가 필연적으로 일신론의 발흥을 가져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은 이런 결정론적 이론에 회의적이다. 학문 분과로서의 역사학이 지닌 가장 뚜렷한 특징 중 하나는, 특정한 역사 시대에 대해 많이 알면 알수록 왜 하필 일이 그런 식으로 전개되었으며 다른 식으로는 전개되지 않았는지를 설명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는 점이다. 특정 시대에 대해 피상적인 지식만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실현된 가능성에만 초점을 맞추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사후의 깨달음을 근거로, 어째서 그런 결과가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를 증명도 반증도 불가능한 이론으로 설명한다. 반면에 해당 시대에 대해 더 깊이 알고 있는 사람들은 실제로 진행되지 않은 경과를 훨씬 많이 인식하고 있다.

사실 그 시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야말로 그 시대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후의 깨달음에 의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정작 그 시대에는 전혀 명백하지 않은 일이었다. 이 역사의 철칙은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우리는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벗어난 것인가. 아니면 최악의 위기가 곧 닥쳐올 예정인가? 중국이 성장을 계속해서 선도적 초강대국이 될까? 미국은 헤게모니를 잃을까? 일신로적 근본주의가 급증하는 것은 미래의 파도일까 아니면 장기적 중요성은 별로 없는 국지적 소용돌이일까? 우리는 환경적 재앙으로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기술적 파라다이스로 향하고 있는가? 어느 쪽이든 이를 뒷받침하는 훌륭한 주장이 존재하지만, 확실히 알 방법은 없다. 그러나 불과 몇십 년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과거를 돌아보면서 이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은 명백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특히 동시대 사람들에게는 아주 희박해 보였던 가능성이 종종 실현되곤 한다는 사실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306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제위에 올랐을 때, 기독교는 비밀스러운 동방의 분파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에 이 종교가 곧 로마의 국교가 될 참이라고 누가 말했다면, 사람들은 웃다 못해 방 밖으로 뛰쳐나갔을 것이다. 오늘날 당신이 2050년이 되면 힌두교의 하레 크리슈나 교단이 미국의 국교가 될 것이라고 말할 경우 당할 일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1913년 10월 볼셰비키는 러시아의 작은 급진주의 파벌에 지나지 않았다. 이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파벌이 불과 4년 내에 이 나라를 접수하리라고는 예측하지 않았을 것이다. 기원후 600년에는 사막에 살던 한 무리의 아랍인이 머지않아 대서양에서 인도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을 정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더더욱 터무니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만일 비잔틴 제국의 군대가 이슬람의 첫 맹공을 격퇴할 수 있었다면, 이슬람교는 오늘날 한 줌의 전문가들만이 아는 무명의 종교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만일 그랬다면 학자들은 메카의 중년 상인에게 내려진 게시를 기반으로 한 신앙이 어째서 널리 퍼질 수 없었는지를 매우 쉽게 설명할 수 있었을 것이다.

모든 일이 가능하다는 말은 아니다. 지리적, 생물학적, 경제적 힘은 제약을 만들어낸다. 하지만 그 제약 속에서도 어떤 결정론적 법칙에도 매이지 않은 것처럼 보이는 놀라운 일이 전개될 여지는 매우 많다.

이런 결론은 역사가 결정론적이기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킨다. 결정론은 호소력이 있다. 우리가 사는 세상과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국민국가에 살며 자본주의 원리에 따라 경제를 조직하고 인권을 열렬하게 신봉하는 것은 역사의 자연스럽고 필연적인 결과라는 것을 시사하기 때문이다. 역사가 결정론적이지 않다고 인정하는 것은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는 민족주의, 자본주의, 인권이 우연에 불과하다고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역사는 결정론으로 설명될 수도 예측될 수도 없다. 역사는 카오스적이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이들 간의 상호작용은 너무 복잡하므로, 힘의 크기나 상호작용 방식이 극히 조금만 달라져도 결과에는 막대한 차이가 생긴다. 그뿐만이 아니다. 역사는 이른바 '2단계level two' 카오스계다. 카오스계에는 두 종류가 있다. 1단계 카오스는 자신에 대한 예언에 반응을 하지 않는 카오스다. 가령 날씨는 1단계 카오스제다. 날씨는 무수히 많은 요인의 영향을 받지만, 우리는 점점 더 많은 요인을 고려하는 컴퓨터 모델을 만들어 점점 더 정확하게 예보할 수 있다.

2단계 카오스는 스스로에 대한 예측에 반응하는 카오스다. 그러므로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시장이 그런 예다. 만일 우리가 내일의 석유 가격을 1백 퍼센트 정확히 예측하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석유 가격은 예측에 즉각 반응할 것이고, 해당 예측은 실현되지 않을 것이다. 현재 가격이 배럴당 90달러인데 내일은 1백 달러가 될 것이라고 절대적으로 옳은 컴퓨터 프로그램이 예측한다면 어떻게 될까? 거래인들은 그 예측에 따른 이익을 보기 위해 급히 매입 주문을 낼 것이고, 그 결과 가격은 내일이 아니라 오늘 배럴당 1백 달러로 치솟을 것이다. 그러면 내일은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무도 모른다.

정치도 2단계 카오스계다. 소련 연구가들은 1989년 혁명을 예측하지 못했고, 중동 전문가들은 2011년 '아랍의 봄' 혁명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를 두고 비난하고 혹평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런 비난은 공정하지 못하다. 혁명은 그 정의상 예측이 불가능하다. 예상 가능한 혁명은 결코 발생하지 않는다.

왜일까? 지금이 2010년이라고 가정하고 다음과 같은 일을 상상해 보자. 천재적인 일부 정치학자들이 컴퓨터 천재들과 손잡고 결코 틀릴 수 없는 컴퓨터 알고리즘을 개발한다. 이 알고리즘을 매력적인 인터페이스와 결합하면 혁명 예측 장치로 시장에 내놓을 수 있다. 이들은 많은 선금을 받고 이집트의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이 서비스를 제공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예측에 의하면 이듬해에 틀림없이 이집트에서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해준다. 그러면 무바라크는 어떻게 반응할까? 가장 가능성이 큰 행동은 즉시 세금을 낮추고, 시민들에게 수십억 달러의 지원금을 풀고, 만일에 대비해 비밀경찰을 보강하는 것이다.

이런 선제 조치는 효과를 낸다. 해가 바뀌고 시간이 흘렀지만, 놀랍게도 혁명은 일어나지 않았다. 무바라크는 환불을 요구한다. "당신에 알고리즘은 쓸모가 없어!" 그는 정치학자들에게 소리친다. "그 돈을 뿌리지 않았다면 궁을 하나 더 지을 수 있었어!" 정치학자는 반론을 편다. "하지만 혁명이 일어나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그것을 예측했기 때문입니다." 무바라크는 경호원들에게 그들을 체포하라고 손짓하면서 말한다. "일어나지 않는 일을 예언하는 예언가라고?" 그런 놈이라면 카이로 시장에 가서 거의 공짜나 가까운 값에 열몇 명이나 고용할 수 있었겠지."

그러면 왜 역사를 연구하는가? 물리학이나 경제학과 달리, 역사는 정확한 예측을 하는 수단이 아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것은 미래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다. 우리의 현재 상황이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 결과 우리 앞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가령 유럽인이 어떻게 아프리카인을 지배하게 되었을까를 연구하면, 인종의 계층은 자연스러운 것도 필연적인 것도 아니며 세계는 달이 배열될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역사의 여신은 장님

우리는 역사가 하는 선택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선택에 대해 매우 중요한 발견을 할 수는 있다. 역사의 선택은 인류를 위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가 펼쳐짐에 따라 인류의 복지가 필연적으로 개선된다는 증거는 전혀 없다. 인류에게 이로운 문화가 반드시 성공하고 퍼진다든가 덜 이로운 문화는 사라진다든가 하는 증거도 없다. 기독교가 마니교보다 더 나은 선택이었다든가 아랍 제국이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보다 더 도움이 되었다는 증거도 마찬가지로 없다.

역사가 인류에게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는 증거는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그런 이익을 측정할 객관적 척도가 없기 때문이다. 문화에 따라 무엇이 선인지에 대한 정의가 달라지는데, 어느 쪽이 옳은지를 판단할 객관적인 척도는 우리에게 없다. 물론 늘 승자는 자기네 정의가 옳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왜 승자의 말을 믿어야 하는가? 기독교인들은 기독교가 마니교에게 승리한 것이 인류에게 유익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과 의견을 같이할 이유가 없다. 무슬림들은 사산 왕조 제국이 무슬림의 손에 무너진 것이 인류에게 이익이 되었다고 믿는다. 하지만 이런 이익이 명백한 것은 우리가 무슬림 세계관을 받아들였을 때뿐이다. 어쩌면 기독교나 이슬람교가 사라지고 패배했더라면 우리는 더욱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점점 더 많은 학자들이 문화를 일종의 정신적 감염이나 기생충처럼 보고 있다. 인간은 자신도 모르는 새 숙주 역할을 하고 있다는 말이다. 바이러스 같은 기생체는 숙주의 몸속에서 산다. 이들은 스스로를 복제하며 숙주에서 숙주로 퍼져나가고, 숙주를 먹고살면서 약하게 만들고 심지어 죽게 할 때도 있다. 숙주가 기생체를 퍼뜨릴 만큼 오래 살기만 하며, 기생체는 숙주의 상태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는다. 바로 이와 같은 방식으로 문화적 아이디어는 인간의 마음속에 산다. 증식해서 숙주에서 숙주로 퍼져나가며, 가끔 숙주를 약하게 하고 심지어 죽이기도 한다. 기독교의 천상의 천국이나 공산주의자의 지상낙원에 대한 믿음 같은 문화적 아이디어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것이 전파를 위해서라면 목숨까지 걸고서 헌신하게 만든다. 해당 인간은 죽지만, 아이디어는 퍼져나간다.

이런 접근법에 따르면, 문화는 다른 사람을 이용하기 위해 일부 사람들이 꾸며낸 음모(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가 아니다. 그렇다기보다는 우연히 출현해서 자신이 감염시킨 모든 사람을 이용하는 정신의 기생충에 더 가깝다. 이런 접근법은 때로 문화 구성요소학, 혹은 밈 연구라고 불린다. 유기체의 진화가 '유전자gene'라 불리는 유기체 정보 단위의 복제에 기반을 둔 것과 마찬가지로, 문화적 진화는 '밈meme'이라 불리는 문화적 정보 단위의 복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성공적인 문화란 그 숙주가 되는 인간의 희생이나 혜택과 무관하게 스스로의 밈을 증식시키는 데 뛰어난 문화다.

대부문의 인문학자들은 밈 연구를 멸시한다. 문화적 과정을 조악한 생물학적 유추를 통해 설명하려는 아마추어적 시도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학자 중 많은 이가 밈 연구의 쌍둥이 자매 격인 포스트모더니즘을 고수한다.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는 문화를 건축하는 벽돌로써 밈이 아니라 '담론discourse'를 들먹이지만 이들 역시 문화는 인간의 이익과 무관하게 스스로 퍼져나가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가령 민주주의를 19세기와 20세기에 퍼져서 전쟁, 압제, 증오, 인종청소를 일으킨 치명적 전염병으로 묘사한다. 한 나라의 사람들이 거기 감염되는 순간, 이웃 나라의 사람들도 그 바이러스에 감염될 가능성이 컸다. 민족주의 바이러스는 스스로가 인간에게 혜택이 된다고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주로 자기 자신에게만 이익이 되었다.

사회과학에서도 게임이론의 비호 아래 비슷한 주장이 흔히 이야기된다. 게임이론은 다수가 참여하는 게임에서 어떻게 모두에게 해가 되는 시각과 행동 패턴이 뿌리를 내리고 퍼져나가는지를 설명해 준다. 유명한 예가 군비 경쟁이다. 군비 경쟁은 참여하는 모든 당사국들을 파산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군사력의 균형을 실제로 바꾸지는 못하면서 말이다. 파키스탄이 첨단 항공기를 구입하면, 인도가 동일한 조치로 대응한다. 인도가 핵폭탄을 개발하면, 파키스탄도 그대로 따라 한다. 파키스탄이 해군력을 확장하면, 인도가 그에 대응한다. 이 과정의 끝에 다다르면, 힘의 균형은 과거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동안 교육과 의료에 투자할 수 있었을 수십억 달러가 무기의 구입과 개발에 사용되었을 뿐이다.

하지만 군비 경쟁의 역학은 저항하기 힘들다. '군비 경쟁'은 하나의 행동 패턴으로서,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바이러스처럼 퍼져나가며 모두에게 해를 끼친다. 하지만 스스로에게는 이롭다. 생존과 번식이라는 진화적 기준에서 보면 그렇다(군비 경쟁은 유전자와 마찬가지로 지각이 없다는 점을 기억해 두라. 그것이 의식적으로 생존과 번식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강력한 역학의 의도치 않은 결과로 그것이 전파되는 것뿐이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이름 붙이든 - 게임이론, 포스트모더니즘, 밈 연구 - 역사의 역학은 인간의 복지를 향상시키는 방향을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상 가장 성공한 문화가 반드시 호모 사피엔스에게 가장 좋은 문화라는 생각은 근거가 없다. 진화와 마찬가지로 역사는 개별 유기체의 행복에 무관심하다. 그리고 개별 인간은 너무나 무지하고 약해서, 대게는 역사가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으로 전개되도록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역사는 교차로에서 교차로로, 뭔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처음에는 이 경로를 택했다가 다음에는 저 경로로 진입했다가 하면서 나아간다. 1500년경 역사는 가장 중대한 선택을 했다. 인류의 운명뿐 아니라 아마 지구에 있는 모든 생명의 운명까지도 바꿀 선택이었다. 우리는 이것을 과학혁명이라고 부른다. 그 혁명은 서유럽에서 아프로아시아의 서쪽 끝에 있는 커다란 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때까지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던 지역에서 말이다.

왜 과학혁명은 하고많은 곳을 놔두고 하필 그곳에서 일어났을까? 어째서 중국이나 인도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어째서 중국이나 인도에서 일어나지 않았을까? 어째서 실제보다 2세기 앞이나 3세기 뒤가 아니라 두 번째 천년의 한중간에 일어났을까? 우리는 모른다. 학자들은 열몇 가지 이론을 내놓았지만, 특별히 그럴싸한 이론은 없다.

역사는 무수히 많은 가능성들이 있는 드넓은 지평을 갖고 있으며, 그중 많은 가능성들은 영영 실현되지 않는다. 세대에서 세대를 거듭하면서 역사가 진행되지만 과학혁명을 비켜가는 흐름도 얼마든지 상상 가능하다. 기독교나 로마 제국, 금화가 없는 역사를 상상하는 게 이상할 것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사실 그 시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
다시 말해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이야말로
그 시대를 가장 모르는 사람들이다.
사후의 깨달음에 의해 필연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
정작 그 시대에는 전혀 명백하지 않은 일이었다. "

물질적 풍요의 감사함을 모르는 것은 풍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 제1부 인지혁명, 제2부 농업혁명에 이어 제3부 인류의 통합까지 마쳤습니다.

속도는 비록 느리지만 시작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마지막 제4부 과학혁명까지 잘 마칠 것을 다시 한 번 다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