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의 경험 차이와 허무주의. 그리고 인간성
강릉역에서-김명준
케이티엑스는 강릉역에서 출발했다
3호차 8C
심하게 덜컥이는 열차를 타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없다
신세대의 열차는 덜컥이지 않는다
잔잔한 파동이 온몸을 울린다 그것이 전부다
자리를 확인하고는 앉아 습관처럼 스마트폰을 켠다
그놈의 스마트폰을 켠다
습관처럼 무선이어폰을 귀에다 꽂고
플레이리스트의 노래를 켜고 이제 뭐해야 했더라 슬슬 지겹다
그놈의 스마트폰을 끈다
고개를 드니 또 다른 디스플레이가 있다
그놈의 디스플레이에서는 뉴스가 나온다
멍을 때린다 공간이 허물어지듯이 그러다 다시 열차 위
이번에는 창문을 보았다
더 멀리를 보아야지 고작 전자제품 따위가 아니라
멀리를 보았다 저기 산꼭대기를 향하여
하필이면 저녁이라, 가로등은 유독 밝았다
열차가 전질할때마다 휙휙 뒤로 가는 가로등에 자꾸만 시선을 빼앗겼다
멀리를 볼 수 없는가 고작 가로등 때문에
가로등은 그저 밝히는 것이었을 텐데
토머스 에디슨의 유산이 고작 그것이 나를 지배한다
이제는 도대체 무얼 해야 하는가
무얼 봐야 하는가
무언가 파괴되어가고 있다 그것을 인지할 새도 없이
눈을 감았다 인류의 본질에 맞닿아 있는
만 년 전의 호모 사피엔스도 평생을 보아왔을
그 어둠에 갇히기로 했다 이제 내가 보는 건 0미터의 거리 밖
그러나 끝없는 공간
끝없는 세월 동안 인류는 이곳에 있었다 그리고 꿈이 재생되었다
덜컥 덜컥 싸륵싸륵 눈꽃 쌓이는 사평역에서 내가 있었다
덜컥이는 열차를 타 본 적이 있는가
아마 나는 없다
한줌의 톱밥을 불빛속에 던져주는 그 기분을 나는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