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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Oct 22. 2020

티를 코스로 즐기는 알디프의 브랜드 경험

탄탄한 기획이 만든 단단한 팬덤의 브랜딩

나는 기획이 탄탄한 브랜드를 애정한다. 탄탄한 기획은 어떤 의미일까?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제품이나 서비스를 제공받는 대상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어야한다. 너무 뻔하고 면접 자기소개 같은 말이지만, 실제로 마음을 동하게 하는 브랜드는 많이 못봤기 때문이다. 두 가지로 해석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경험의 흐름을 온전히 사용자의 무의식적인 행동과 자연스럽게 맞아떨어지도록 설계했는가?  궁극으로 고객이 '구매'하거나 제품을 사용하는데 있어 걸림돌 없이 편하게 모든 온라인 화면이나 오프라인 매장에서 경험이 이뤄질 수 있도록 구성했냐는 뜻이다. 잘 나가다가 결제 페이지에서 갑자기 먹통이라거나, 매장에서 주인이 불친절하거나 내가 원하는 정보를 얻지 못했을 때가 그런 예다.



 둘째, 잊지 못할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었는가? 한 번의 울림이 없으면 다음의 울림도 없다. 한 번의 울림이 있으면 파장이 점점 커져 두 세 번의 경험으로 이어지게 되고,  당사자의 주변 사람들에게도 입소문으로 전파되기 때문에 그 파급력은 무시할 수 없다.두 개 모두를 충족시키면 정말 베스트, 이 중에 하나라도 충족했다면 일단은 나의 관심 영역에 들어온걸로 간주해 보기로한다.




그래서 내가 꼽은 올해의 기획이 탄탄한 브랜드는 '알디프'다.

알디프는 TEA & LIFESTYLE을 꿈꾸며  직접 블렌딩한 티는 물론 티퍼퓸, 슬립웨어 같은 제품들로 확장하고 있다.

알디프를 알기 전까지 차는 너무 어렵고 거리가 먼 식품으로 여겨졌지만

제품과 오프라인 경험을 모두 해보고 나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이게 알디프 차다.

알디프 차의 가장 큰 특징은 맛도 맛이지만

차의 이름, 맛을 상상하게 하는 디테일한 문장, 선곡, 그리고 감각적인 디자인 모든 게 조화롭게 어우러진 게 핵심.


영원히 걷고 싶은 오후,
거리에 비치는 햇살의 맛

 

이 설명은 비포선셋이란 차의 설명구다.

그리고 선곡은 영화 비포선셋 줄리델피의 ‘Waltz for a night’. 실제로 마시면 정말 무슨 맛이야! 라고 말 못하고 저 문장의 느낌이 입을 감싼다.



사실 차 맛은 정말 무궁무진하다고 하지만, 아무리 설명해도 도통 맛을 말로 표현하기도 어렵고, 쓰면 쓰고 구수하면 구수한 것이 차였다. 그런데 차마다 적힌 글귀를 가만히 읽고 있으면 아련했던 어떠한 기억이 떠오르기도 하면서 차 맛에 조금이라도 가닿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환상을 준다.


뒷면에는 차를 우리기 좋은 시간, 온도, 카페인 정도 등이 함께 나와있어 나같은 차알못에게도 차의 취향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고 별 무리없이 마실 수 있다.


페어링된 음악을 곁들여 들으며 마시면 차 맛이 좀 더 살아나는 기분도 든다.


알디프의 시그니처 티, 우주의 맛을 표현한 '스페이스 오디티'가 나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데이비드 보위의 스페이스 오디티를 단연 선곡했고,

은하수의 포름산 에틸의 향이 파인애플 향과 닮았다는 데서 착안해 그 맛을 구현했다.

스페이스 오디티 - 사진: 알디프


파랗고 보라색의 차를 본 적이 있는가? 파워에이드나 어떤 인공 색소가 들어간 탄산음료가 아니면

절대 볼 수 없었던 색인데, 정말 예쁘다. 여기에 레몬즙이나 레몬 조각을 넣으면 색이 분홍색으로 바뀐다.

산을 만나 아무래도 화학적으로 변하는 것 같은데, 이걸 보고 있으면 정말 찻물이 내 눈 앞에 펼쳐지는 작은 우주처럼 다가온다.


티 코스에 나온 스페이스오디티 레몬을 넣기 전과 후 비교



차만 홀짝홀짝 집에서 마시자니 어딘지 모르게 섭섭했다. 이건 꼭 가야겠다 싶어서 알디프의 또 하나의 시그니처 서비스 '티 코스'를 예약해서 혼자 찾아가봤다.코스 요리처럼 웰컴티, 메인부터 디저트티까지 5가지의 차가 나오고 중간에 티푸드도 함께 제공된다.오마카세처럼 티 소믈리에님이 직접 앞에서 티를 만들어 주시고 각 차에 대한 설명을 곁들인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시즌별로 진행되는 티 코스마다 테마가 달라서 맛볼 수 있는 티도 다르다는 것.

이번 가을 시즌은 할로윈 테마로, 어느 미지의 길을 떠나 호박을 파먹고 물리쳐서 집으로 돌아가는(?) 내용이었다. 각 차별로 단계단계 이야기가 하나의 큰 이야기를 이룬다.와, 어떻게 이런 발상과 이야기를 생각해낼 수 있을까? 싶다.


알디프의 기본 블렌딩티를 베이스로 하되 다른 토핑을 얹고 만드는 방식을 달리해 베리에이션 티를 맛볼 수 있는데, 정말 이게 차야? 싶을 정도로 맛있다. 아니 새롭다. '물고문 하는 곳이다라'는 말만큼 정말 원없이 티를 마셨는데 고문처럼 괴롭진 않고 너무 즐거운 시간이었다. 1시간 30분 정도가 정말 금방 지나간다.  

알디프는 크림맛집이란 별명이 붙은 만큼, 매 시즌마다 특정 메뉴 에 어울리는 크림을 위에 얹는다.할로윈 테마에는 차를 붓고 그 위에 단호박 크림, 그 위에 파마산 치즈가루를 얹었는데, 어떻게 차랑 이 크림이 어울릴 수 있지? 싶으면서도 먹어보면 크림만 자꾸 퍼먹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이전 테마에서는 와사비 크림, 오징어 먹물 크림을 차와 함께 내었다고 하는데, 상상 초월이다. 물론 맛도 좋았다고 하고.



알디프 대표의 창업 배경을 찾아보고나니 이런 브랜드가 나올 수 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이은빈 대표는 코스메틱 기업에서 브랜드 매니저로 일한만큼 섬세한 감각을 길러왔고, 브랜드 컨셉 개발과 제품 기획에 이미 많은 경험을 축적하고 있었다. 동시에 중국에 주재원으로 근무하면서 차를 접할 기회도 많았고, 개인적으로도 책과 영화 등 스토리가 있는 컨텐츠를 즐기는 편이었다.

잘할 수 있는 일과 좋아하는 것을 접목해 알디프라는 브랜드를 만든 셈이다. 그리고 창업자가 좋아하던 모든 감각과 경험들이 고객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지는 것 같아 정말 이 대표님은 엄청난 기획력을 가진 기획자란 생각이 들었다.



몇 번이나 알디프 차를 소개하고 사람들에게 좋다고 이야기하고 다녔는지 모른다.굳이 광고비를 받지 않고도 고객은 정말 자신에게 도움이 되거나 무한한 감동을 주면 자발적인 앰배서더가 되어브랜드를 홍보한다. 홍보의 차원을 넘어서, 내가 이렇게 취향을 공유하니, 자신도 이런데 관심이 있었다면서 서로 몰랐던 공통의 취향 접점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있고, 생각보다 파급효과가 개인적으로 컸다.



정리해보자면 기획이 좋은 브랜드는 팬을 만드는 일을 계속하는 브랜드이고, 지속 가능한 힘을 기를 줄 아는 브랜드로 재정의하고 싶다.


품질 유지(?)를 위해 개선사항은 개선해나가면서, 기존 고객에게는 더 새로운 감동을 줄 수 있도록,

잠재 고객이 찐 고객으로 넘어올 수 있기 위해서 발견의 경로를 잘 닦고, 어? 이거 뭐야? 하고 멈춰 설 수 있게 하는 경험들도 만들어 내는 것. 내가 먼 훗날 한 브랜드를 탄생시켜서 잘 이끌어나갈 지는 잘 모르겠지만

기획이 탄탄한 브랜드를 키우고 싶다.  많은 사람들한테 영감을 주고 재미를 주고, 감동을 주는 브랜드를 만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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