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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Jun 18. 2020

당근마켓으로 마케팅을 배우다니

내 물건을 어떻게 팔아야할지 처음으로 고민해본날


“ 당.. 당근? "

친구(이하 당근도사)가  당근마켓으로 직거래를 할 때 약속장소에서 주변을 조심스레 두리번거리다가 서로를 알아보는 인사말이라고 한다.


이거 뭐야? 중고거래가 뭐 이렇게 귀여워? 매일 페이스북으로 당근마켓을 칭찬하는 기사들을 많이 봐왔던 터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도대체 당근마켓이 뭐길래 이렇게 핫한 거야?’ 호기심도 생기고 트렌드에 밝아야 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서  ‘이런 게 있구나~’하고 넘어가는 건 예의가 아니라 생각했다.


사실 중고로 내 물건을 팔아본 적은 없다. 중고나라에서 좋아하는 가수의 콘서트 티켓 판매 글을 찾아보거나 한정판 연필을 딱 한번 사본 정도다.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면 그래도 팔만한 물건들이 꽤 나온다는 당근 도사의 말에 '나도 한번 공돈? 커피값이나 벌어보자!' 하는 마음으로 물색했다. 3개의 아이템을 정하고 신이 나서 올렸다.


사진을 찍고, 가격을 정하고, 거래 장소나 방식을 비롯해 상품에 대한 설명도 쓴다. 두근두근.

맨처음 올린 글, 호응이 아예 없었다.

올리면 바로 팔리는 줄 알았는데 

3일이 지나도록 하트 한번 받지 못했다.

'끌올'이란 기능이 있는걸 뒤늦게 알고 지난 게시물을 끌어올려봤지만 핸드폰은 너무 조용했다.

30번 넘게 거래한 경험이 있는 당근도사에게 SOS를 요청했다.



“뭐야 관심 누른 사람 한 명도 없어?”

“일단 제목에 <미개봉> 이런 말을 붙여.”

“그냥 어디 브랜드 미스트 이렇게 쓰지 말고 ‘잠자기 전에 뿌리면 좋은 미스트’ 이렇게 써봐.”

“맨뒤에 ‘~팔아요’를 붙이면 관심이 한 개 올라가더라고, 진짜로.”



당근도사의 가르침에 따라 제목과 본문 내용을 수정했다. 어떻게 하면 잘 팔릴까? 고심했다.

제목을 살짝 사람이 말하듯이 부드럽게 바꿔주고 왜 이걸 파는지, 어떤 상태의 제품인지 살을 붙여 적어줬다.

결과는...?

고친 지 얼마되지 않아 하트가 생기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했다. 하트 이후에 바로 거래가 되진 않았다. 직접적인

거래 문의가 온건 다름 아닌 저녁 9시경 '끌올'을 한번 더 했을 때였다.


아, 결국 타이밍이구나.

‘이 제품을 볼만한 사람들이 언제 가장 많이 들어올까?'를 고려했어야 했다.당근에 계속 상주해 있는 사람이 아닌, 일이 끝나고 집에서 쉬거나, 저녁을 먹고난 다음, 또는 운동을 다 마치고 돌아가는 그 시간 즈음인 저녁 9시. 핵심 타깃의 앱 사용 시간대를 잘 활용해야 불특정 다수에게 구경거리가 아닌 거래 성사를 위한 적확한 컨텐츠가 되는 법.



푸시 알림으로 당근마켓에서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

‘자니?’ 같은 톡 말고 가장 설레는 알림이 아닐 수가 없다.

나의 역사적인 첫 당근거래다.


친절로 무장한다(실제로도 친절해요)

들뜬 마음에 첫 거래라서 택배비도 깎아드리고, 포장을 할 때에도 선물포장 못지않게 심혈을 기울였다.

‘어떻게 하면 받았을 때 상대방이 기분 좋게 받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앞섰다. 중고나라에서 한정판 연필을 샀을 때, 기대하지도 않았던 수수한 마스킹 테이프 포장과 덤으로 준 연필 한 자루에 기분이 좋아졌던 때가 생각났다.


제품이 파손되지 않게 뽁뽁이는 기본이고, 얼마 전 시몬스 침대의 플래그십 스토어에서 챙긴 스티커가 딱이겠다 싶어서 냉큼 챙겼다. 잠이 잘 오는 미스트에 “Perfect for the sleep” 스티커라니 환상의 궁합이었다! 첫 거래인만큼 스티커 뒷면에 몇 자 적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세상에 이렇게 뿌듯한 거래일수가. 정말 별거 아닌 스티커이긴 했지만, 작은 마음을 쓰는 것만으로 큰 마음을 되돌려 받는 재미가 있었다. 어찌 보면 고맙단 말이 듣고 싶어서, 내 기분이 좋아지고 싶어서 뭐라도 더 얹어드린 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대학시절 수업시간에 '마케팅'을 학문으로 접하고 '4P'니 '타겟'이니 아주 기본적인 용어들만 탑재하고 있었는데 결국에는 마케팅도 해봐야 아는 거였다. 마케팅은 별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다른 사람이  제품에 관심을 가질까?   친절하게 대하기, 상대가 일을   하지 않게 배려하기, 그리고 믿음을 주기. 이런 아주 간단한 것들만 지켜도  물건이 매력적으로 보일  있다.


당근 고수분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거래지만, 30년 인생 첫 중고 거래인만큼 나에게는 값진 경험이었다.





당근마켓 거래를 위한 소소한 꿀팁을

다시 한번 정리해보자면,


1. 물건이 매력적으로 보일  있도록 제목에서 어필하라 

  - 어디 브랜드의 무엇인데, 어디에 좋아요 +  '한 번도 안 뜯었어요'를 강조하기.


2. 가격은 시세를 확인하고 정하기

   - 동일한 제품이 얼마에 거래되었는지 확인해보고, 가격 경쟁력을 위해 조금 낮추는 것도 방법이다.  아니면 너무 흔한 방법이 긴 하지만 9의 법칙을 활용해 1만 원에 올릴 것을 9900원에 올려보자. 유치해도 꽤 괜찮은 방법일지도 모른다.


3.  당근마켓의 핵심은 인간미

- 우리 모두 이 의심 많은 세상 속에서 아직은 살만하 다는 걸 증명하고 싶은 경험의 일환으로 당근마켓을 쓸지도 모른다. 신뢰가 핵심인  이곳에서 가급적 친절하게,  가격도 흥정해보고, 덤으로 무어라도 껴서 거래도 해보자. 말 한마디로 천냥 빚 갚는다는 말도 있듯이, 그냥 물건만 보내지 말고 감사의 문장 하나라도 써서 보내보자. 얼마나 선물 받는 기분이겠어. 이게 신규 물품을 받는 것보다 더 따뜻한 중고거래만의 매력이 될 수 있을거다 분명.


4. 타이밍이 중요하다

내 제품을 쓸 것 같은 연령대와 성별의 사람이 ‘언제 이 당근마켓 앱을 열까?’를 한 번만 생각하고 올려보자. 출근 시간이 좋을까? 아니면 잠시 틈이 있는 점심시간이 좋을까? 아니면 마음의 여유가 있는 저녁이 좋을까? 만약 직장인이 아닌 다른 루틴의 일상을 가지신 분들을 위한 제품이라면? 자취생 또는 수험생을 위한 물품이라면?



이번 주 토요일에 처음으로 직거래를 한다.

수줍게 핸드폰만 들여다보다가 당근을 외치지 말고, 당당하게 진짜 당근을 한 손에 들고 서있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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