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가게에서 찾은 브랜드의 힘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는 무엇일까?’
라는 아주 진부한 질문에 각자 좋아하는 고기 종류나 음식을 댈것이다. 한우, 삼겹살, 치킨 등등.
최근에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고기를 먹었다. 고기의 맛도 맛이지만, 모든 상황이 고기를 완벽하게 만들었다.
몇일동안 밤늦게까지 고생해서 완성한 보고서로 진행된 미팅이 끝난 후 먹는 금요일 한낮의 고기.
대표님이 수고했다며, 먹고 일찍 들어가라며 사주신 소갈비다. 여기까지만 읽어도 고기가 맛이 없을 수 없는 풍경이다. 특히 앉아서 먹는게 아니라 의자 없이 서서 먹는 이 생경함이 가장 압권이다.
서울 이곳저곳에 ‘서서갈비’라는 간판을 단 고기집들이 보이는데, 막상 들어가보면 진짜 일어나서 먹는 곳은 거의 없다. 딱 한번 교대에 위치한 ‘서서갈비’집에서 회식을 할 때, 진짜 서서먹는 줄 알고 기대했지만, 의자가 있었던걸 매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단 한곳, 마포구에 위치한 ‘연남서식당’은 다르다.
이곳이 서서갈비의 원조격이라 해도 무방하다. 점심/ 저녁 장사로 나눠 운영하지 않고, 하루 600대의 소갈비를 팔고 재료가 떨어지면 영업을 마친다. 연남서식당은 1953년 전쟁이 끝나고 나서 시작되었다. 어머니와 두 여동생을 잃고 전쟁의 폐허만남은 당시 이대현 사장의 아버지는 드럼통 세개를 길에 깔아놓고 잔술을 팔기 시작했다. 당시 뜯어먹기 번거로우니 양반들이 먹지 않아서 저렴했던 소갈비를 안주로 냈다.
나는 이 연남서식당을 단순히 고기집이 아닌,
하나의 브랜드로 바라보았고, 브랜드 경험을 지속적으로 전달해주었기에 혼자서 엄청난 인사이트를 얻은것마냥 어깨를 덩실거리며 고기를 먹었다.
브랜드란 모름지기 뚜렷한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각각의 고객접점에서 일관된 경험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고객과 관계를 형성하고, 그 팬덤을 변함없이 유지하는게 중요하다.
연남서식당은 이미 오랜 역사를 가진만큼 자연스레 세대교체가 되고 있으나 팬덤이 지속되고 있다.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도 많이 찾으시고, 세대의 세대를 거듭해 입소문을 타고 손님들이 찾는다. 마치 초등학생이었던 대표님이 어른이 되어 직원인 우리들을 이곳에 데려오신 것처럼.
이곳의 경험 포인트는 크게 두가지로 보면된다.
첫번째, 편견을 깬 새로운 경험, 서서먹기
선술집이라는 말의 의미를 이제서야 처음알았다. 말그대로 ‘서서 먹는 술집’. 아무래도 서서먹는 불편함을 감수하는 대신 저렴한 가격에 술과 안주를 먹을 수 있다는거겠지?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주변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빠르게 먹고 갈 수 있도록 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서서먹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고기를 순식간에 많이 먹는 효과도 볼 수 있다.
서서먹는 맥주는 봤어도, 서서 구워먹는 고기는 그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기 때문에, 일반 고기집과 다르게 느껴진다. 사실 서서갈비는 이집 상호가 아니라 사람들이 식당이름도 없던 시절 손님들끼리 약속을 잡으면서 ‘서서갈비로 와’했던게 고유명사처럼 불리게 되었다 한다.
어르신들에게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추억의 고기집이고, 젊은 이들에게는 서서먹는다는 새로운 경험의 장소이다. 동시에 푸짐한 고기를 가운데 두고 둘러 서있으면서 신발과 함께 찍을 수 있는 인스타그래머블한 매력을 가진 곳이기도 하다.
두번째, ‘고기 맛’이란 본질에 충실하기
메뉴는 딱 하나다. 딱 소갈비 하나뿐이다. 밥, 밑반찬, 찌개는 없다.
마늘-간장소스와 풋고추뿐이니 고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다. 밥이랑 김치가 먹고 싶다면 근처 편의점에서 사와도 괜찮다.
애초에 ‘컨셉’이라는 단어는 노포에 존재하지도 않을테니, 고기집이니까 ‘고기’만 판다는 그런 컨셉이 아니다. 식당을 시작했을 당시 사장님의 아버지는 요리를 해오시지도 않았을 뿐더러 다른 것들을 준비할 겨를도 없었으니 술과 고기를 팔았던 것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져 온 것이다.
양념맛으로 먹는게 아닌 진짜 고기 맛을 내기 위해 양념의 조합도 매우 심플하다. ‘심플 이즈 베스트’라고 했던가.
양념에 푹 재워져서 황금빛이 아닌 거의 생고기에 가까운 빛깔을 하고 있다. 적당히 달짝지근하면서 고기의 육즙을 입안 가득 느낄 수 있다.
호텔에서 물이 떨어지면 서빙 담당 직원이 와서 바로 컵에 물을 따라주듯, ‘이모~ 고기 한대 추가요!’ 하면, 아주머니께서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은쟁반 위에 턱턱 올려져있던 먹음직스러운 붉은 빛 갈비를 판 위에 펼쳐주신다.
숯불이 아닌 연탄을 고집하는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이다. 관리하기 번거롭지만 금세 재가 떨어져 식어버리는 숯불 대비 연탄은 화력이 일정한 편이라고 한다. 그런 연탄불에서 구워야 질겨지지 않고 고기 맛이 좋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 사장님은 지금까지도 새벽4시에 일어나 직접 연탄을 관리하신다하니 그 정성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브랜드는 언제나 ‘한결같음’을 강조한다.
노포역시 그렇다. 서울미래유산으로 지정한다고 해서 그 오래된 가치를 지켜내는데 크게 영향을 끼칠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노포가 오래도록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세상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장님의 마음가짐, 번거롭고 힘든 일이지만 거르지 않고 묵묵히 해온 실행력에 있다. 양념에 넣는 생수에서부터 연탄불까지.
아주 미묘한 차이에도 고객들은 달라졌다고 반응할 테니 무엇하나 허투루 할 수 없는거다.
문득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으로 유명한 장충동의 ‘태극당’이 리브랜딩을 하고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와 콜라보를 하는 것을 보면서, '아 어떻게 하면 노포가 변화의 흐름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를 비교해 생각해보니 참 재미있다.
연남서식당의 경우, 갈비라는 음식의 특성상 휴대하거나 간편하게 먹을 수 없는 노릇이고, 서서먹는다는 강력한 식당 안에서의 경험 포인트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큰 변화없이 유지가 가능했던 것 같다. 간판 역시 15년 전 간판을 해주셨던 분을 수소문 끝에 찾아 그대로 재현해낸 것처럼, 옛것을 지켜내는 정도이지 새롭게 소통하는 부분은 없었다.
하지만 태극당의 경우는 달랐다.
프랜차이즈 베이커리의 홍수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점점 떨어지는 매출을 보니 더 이상 브랜드가 올드해져서는 안된다는 판단하에, 그들은 전략적으로 이 브랜드를 영속시키기 위해 좀 더 젊게 갈 수밖에 없었던거다.
가게를 리모델링 하긴 했지만, 상징적인 샹들리에나 카운터 팻말 등을 바꾸지 않고, 가장 핵심인빵의 맛 역시 변함이 없다. 빵을 만드는 몇몇 직원분들도 그대로다. 다만 소비자에게 말하는 방법을 조금 달리 했을뿐이다.
옛 태극당을 그리워하시는 분들에게는 그 맛과 감성 그대로, 레트로를 사랑하는 젊은 이들에게는 단순히 빵이 아니라 조금은 의미있고 특별한 놀거리로.
어떤 방법이든 중요한점은 브랜드가
오랫동안 시간이 흘러도 철학을 유지함과 동시에 현시대의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회자 될 수 있는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점이다.
오래된 브랜드 힘은 절대 시간만이 만들어주지 않는다.
지속가능한 애티튜드, 그리고 사랑받기 위해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취해야하는지 끊임없이 고객들의 입장에서 고민하는데서 나온다.
오래오래 변하지 않고 우리 곁에 남아주기를!
[참고]
1) 기사 -[장사의 맛] 대박 갈비집 사장님 "절대 장사하지 마라" 속내는?
2) 도서 - 오늘의 브랜드 내일의 브랜딩 / 폴인
3) 이미지 - 태극당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