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돌아다니는 거 아니야? 라는 마음이 들지 않도록
영감투어클럽은 우리에게 영감을 줄만한 공간을 주제에 따라 큐레이션 하고, 함께 둘러보는 모임이다.
같은 공간을 둘러보지만 인상 깊은 풍경이나 느끼는 감정은 다를 수 있다.
나만의 관점으로 공간을 충분히 감상한 다음 편하게 서로의 감상을 나누다 보면,
좋았던 감각들을 좀 더 오래 기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내가 보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 새로운 시야를 얻을 수도 있고. 1회 투어를 마친 지 좀 되었지만, 기억을 붙잡고자 모집부터 투어 마무리까지 방식과 느낀점을 정리하고자 한다.
개인 인스타그램에 신청 안내 콘텐츠를 올렸다.
수강신청처럼 오픈 일과 시각을 정확하게 표시했다. 공고와 신청일 사이 텀이 너무 길면 잊어버리고 신청을 못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아 딱 하루의 시간을 두었다.
많은 관심 덕분에 모집은 1분 만에 마감되었다.
재밌는 곳 둘러보러 가는 프로그램이고 이름도 '투어'인데 데면데면한 사람들끼리만 있으면 어색한 기운이 흐를 것 같았다. 얼굴만이라도 익히는 게 좋겠다 싶어 사전 zoom 모임을 30분 정도 가진다.
인사를 나누고 가볍게 자기소개와 영감투어클럽에 신청한 이유를 이야기한다. 나 역시 오프라인으로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분들이었지만 스무스하게 사전 줌 모임을 마칠 수 있었다. 간단하게 투어 코스도 소개한다.
영감투어를 하시는 분들에게만 드리는 가이드북이 있는데, 노션으로 만들어 공유한다. zoom에선 화면 공유로 가이드북을 함께 보며 기획 의도, 투어 스팟과 관련해 함께 알고 가면 좋은 정보를 모아서 브리핑해 드린다.
직접 프로그램을 기획한 건 처음이라 그런지 '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 이걸 만들었는지, 이 모임의 목적이 뭔지 설명하는 게 참가자를 위한 배려라 생각했다.
취지에 공감하면 더욱 그 투어를 즐길 수 있을 테니까!
차 없이 도보로 이동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루트를 알려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패키지 투어에서도 시간대와 소요 시간 등을 알려줘서 오늘 하루가 어떻게 흘러갈지 가늠할 수 있듯이,
영감투어클럽도 하나의 코스가 있으니까 위치, 이동 순서 등을 지도 이미지로 공유했다.
처음으로 준비해서 의욕이 앞섰던 건지 동선을 잘못 설계한 걸 뒤늦게 알았다. 모노하 성수와 나머지 2,3,4번의 위치는 꽤 멀리 떨어져 있고, 걷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것 같아서 양해를 구하고 zoom 모임에서 장소를 수정했다. 모노하 성수 대신 2번 근처에 오브젝트 성수점을 들르기로 했다. 급 테마와 결이 안 맞는 건 아니야? 싶었지만 다행히 문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이라 문구인들에게는 사브작 거리는 소중한 물건을 보면 힐링이 되므로 휴식 테마와는 맞는 걸로 치겠다.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브랜드 소개, 브랜드 선정 이유를 적고, 경험해 보면 좋을 포인트가 있다면 함께 코멘트한다. 브랜드의 공식 홈페이지, 인스타그램 계정, 인터뷰 기사 링크를 함께 걸어 미리 읽어보고 올 수 있도록 만들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사진 찍기 좋은 핫플로 보일지라도, 해당 공간을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의도에서 만들었는지, 어떻게 공간과 메뉴 등을 구성했는지까지 살펴보고 가면 공간을 훨씬 입체적으로 이해하고 경험할 수 있다. 배경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공간에 머무르면, 작은 것 하나 지나치지 않고 호기심 있게 들여다보게 되고, 직원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대화를 하다 보면 재미난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그럼 자연스레 그 공간을 오래 기억할 수밖에 없다.
논픽션 성수 -> 오브젝트 성수점 -> 프로젝트 렌트 -> 서울숲 -> 맛차차 티 코스
1. 논픽션 성수
가보지 않은 곳, 새로 생긴 지 얼마 안 된 곳은 변수가 많다. 생각보다 영감을 얻지 못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딱 오픈하고 나서 일주일이 채 지나지 않았던 시점에 이곳을 갔는데, 내게는 평범한 쇼룸처럼 보였다. 사진을 활용해 논픽션이 전하는 지향가치와 무드를 연출하는 것뿐, 다양한 향을 맡아볼 수 있는 정도로만 기억되었다.
2. 오브젝트 성수점
때마침 쓰는 사람을 위한 문구를 만드는 소소문구가 전시를 시작했다. 참문덕이라는 참새 캐릭터를 만들고 페르소나를 부여하여 제품과 연결시켰다. 그동안 소소문구가 제품을 셀링하는 포인트를 많이 봐왔는데, 캐릭터를 통해 좀 더 친근한 기록 생활을 제안하고 있어서 신선했다.
3. 프로젝트 렌트
울끈불끈 근육질의 농부를 포스터로 앞세운 토마토 가게가 인상 깊어서 들어갔다. 그날 아침 수확한 토마토를 농장에서 바로 가져와 판매하며 브랜드를 알렸다. 투박하고 연령대가 있는 농부의 이미지를 벗어나 새로운 이미지를 전하고 싶은 포인트가 인상 깊었다. 농산물 브랜드, 1차 산업 브랜드는 요즘 사람들에게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지 새롭게 시도한 사례라고 볼 수 있다.
4. 서울숲
미리 챙겨놓은 돗자리를 펼치고 1시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오브젝트 성수에서 각자 사온 문구를 언박싱하기도 하고, 지금 하는 일, 고민들을 나눴다. 영감노트도 몇 권 챙겨서 보여드렸더니 재밌게 봐주셨다.
어깨에 힘을 빼고란 주제에 가장 걸맞은 장소가 아니었을까. 초록초록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까르르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신나게 뛰어다니는 강아지들까지. 평일 낮 아주 적당한 햇빛과 온도에 산책하기 딱 좋은 아주 좋은 풍경이었다.
5. 맛차차 티 코스
1시간 30분 동안 차와 다과로 준비된 티 코스를 즐겼다. 차를 몰라도 쉽게 알 수 있도록 티 마스터가 차를 내리며 설명을 해주신 덕분에 재밌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감상을 나누기도 하고, 혼자서 앞에 펼쳐진 나무를 바라보며 가만히 차를 마시기도 했다. 모두들 와보고 싶어 한 곳이라 그런지 만족도도 높았고, 휴식에 맞춰 촘촘히 설계된 공간 경험 덕분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영감을 수혈받은 느낌이었다.
"코스처럼 시간대별로 장소를 알려주는 점이 좋았어요. 헤매지 않고 정해진 대로만 가면 되니까."
"장소 큐레이션도 그렇고, 동선이나 장소 순서도 매끄러워서 진짜 좋았어요."
투어라 이름 붙인 게 헛되지 않도록 신경 쓴 부분들을 알아봐 주신 것 같아서 정말 감사했다.
뭐라도 만들어 보려는 의지를 알아봐 주시고 이것저것 아이디어도 제안해 주셔서 첫 참가자분들께 정말 감사했다. 스탬프를 만들거나 서울뿐만 아니라 전국구로 다른 로컬 지역으로 진짜 여행처럼 프로그램을 만들어도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회차를 거듭하고 알찬 프로그램이 된다면 전국구로 뻗어 나갈 수 있게 만들어봐야겠다.
내겐 별 게 아닌 관점이라 생각할지라도 타인에겐 필요한 포인트 일 수 있다.
이 프로그램을 꾸릴 계획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인스타그램에 내가 직접 가본 공간을 나만의 관점으로 정리해 올린 콘텐츠가 반응을 얻고, 실제로 도움이 되었다며 피드백을 주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났다.
이건 분명한 니즈가 있는 셈이다. 굳이 많은 사람이 아니어도 되었다. 나의 관점과 생각을 좋아해 주고 필요로 하는 소수의 몇몇 분만이라도 만족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동네와 주제를 정하고 내가 가본 곳, 가보지 않았는데 컨셉이 좋아 꼭 가고 싶었던 곳을 섞어서 하나의 실로 꿰듯 코스를 만들었다.
신기하게 사람들이 모였다. 그리고 찾아주신 분들은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 자체를 즐기시는 분, 그리고 이렇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 서로 다른 영역에 있지만 그 이야기 속에서 재미를 얻고, 작은 영감을 얻어갈 줄 아는 분들이었다. 그냥 이렇게 모여서 네트워킹 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에너지가 생기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신기한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