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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N Dec 30. 2021

2021년 연말 회고

무엇을 했는가에서 어떤 걸 느꼈냐로

연말 12월 마지막 주가 되면 통과의례처럼 하는 게 있다. 한 해동안 써온 다이어리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맨 앞 장 새해 다짐을 쓴 기록을 시작으로 1월, 2월 한 장씩 넘기며 내가 무엇을 했는지 쭉 리스트업 해본다.

내가 연말을 회고하는 프로세스와 그 내용을 일부 적어 보며 2021년을 마무리해야지.



첫 번째, 연간 목표를 달성했는지 확인하기

2021년 다이어리에는 거창한 목표보다 소소한 리추얼 목표를 세웠다. 최소 10분 스트레칭을 포함한 운동하기, 영양제 챙겨 먹기, 술 먹지 않기, 최소 다섯 줄 이상 글쓰기.



365개의 칸이 그려져 있고 그 안을 o, x로 채웠는데 정확히 딱 2월까지만 표시가 되어있고 그다음 달부터는 빈 표로 남아있다. 그나마 기록을 남긴 칸에도 o보다 x가 더 많다. 다행히 최소 다섯 줄 이상 글쓰기는 나름 잘 지켜온 것 같다. 블로그에 매일같이 일기를 적었는데 300 개 넘는 글을 작성했으니 이 정도면 꾸준히 써온 게 맞다.



두 번째, 내가 만난 콘텐츠를 정리하기

전시, 산 책과 읽은 책, 영화, 방문 공간, 들은 단기 강의나 수업, 다녀온 여행을 쭉 블로그에 타이핑해놓고 개수를 세어 본다. 읽은 책은 스무 권이 되네? 영화 별로 안 보는데 이번에는 열 편도 넘게 봤네? 수준으로 정리한다.


하이라이팅 펜 색을 달리하거나 < > 꺾새를 활용해 구분하면, 카테고리별로 나중에 구분해서 정산하기 쉽다. 사실 노션 같은 생산성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도 있지만 매일의 짧은 기록들은 손으로 쓰는 걸 더 좋아해서 다이어리를 뒤적이며 정리해왔다.



올해의 영상 콘텐츠

슬기로운 의사생활 2, 스트릿 우먼 파이터,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경기, EBS 건축 탐구:집, 소울정 유튜브 콘텐츠


올해의 책

숲 속의 자본주의자

(+유독 매거진을 많이 사들였네..!)


올해의 영화

소울


올해의 베스트 공간

송파 뷰클랜드, 맥파이앤타이거 신사티룸


올해의 배움/커뮤니티

밑미 영감 수집 리추얼,

정지우 작가와 함께한 에세이 수업 with 합평


올해의 전시

<정원 만들기> in 피크닉



세 번째, 일과 관련해 굵직한 사건들을 정리하기

일기와는 별도로 일에 관한 글쓰기를 '일쓰기'라 칭했다. 때로는 에 관한 록이라 '일기'로 새롭게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그날그날 했던 업무, 잘한 점, 부족한 점. 이렇게 세 파트로 나눠서 항목을 적고 나면 업무를 돌아보는 데 도움이 된다.



2021 일 회고 요약 1

퇴사 - 휴식기 - 이직이란

큰 변화를 올 한 해 겪은 걸 정리해보고 싶었다.

다니던 회사를 8개월 만에 그만뒀고, 커리어 방향성에 혼란이 생겨 잠시 모든 걸 내려놓고 4개월 동안 휴식을 가졌다. 철저한 계획형인 내게 넥스트 없이 그만두는 게 불안하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기도 했다.


생각보다 쉬는 시간을 너무나 알차고 재미있게 보냈다. 회사를 그만둘 때마다 찾던 나의 제주도 아지트에서도 일주일 넘게 머물렀고, 자아성장 큐레이션 플랫폼 밑미에서 리추얼 프로그램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었다. 네이밍만큼은 자신 있게 받을 수 있는 업무였는데, 시기적절하게 정말 감사하게도 네이밍 의뢰가 들어온 덕분에 쉬면서도 아주 조금씩 일을 하며 돈을 벌 수 있었다.


때로는 그저 인스타그램으로 공유하는 취향과 인사이트가 비슷하다는 이유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과 끈끈한 인연이 되기도 했다. 그러다 내가 좋아하는 걸 남들도 좋아하게 만들어볼까? 싶은 마음에 '영감투어클럽'이란 비정기적 모임도 열어봤다.


일은 '하는 것'과 '하지 않는 것'으로 나뉜다 했던가.

할까 말까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것 과 달리, 한번 물꼬를 터서 용기를 내니 이상하게 일이 크게 돼버렸다. 개인적으로 한 두 번 했던 일은 모임 참가자의 지인, 내 인스타그램을 보던 전 직장 동료를 통해 새로운 사이드 프로젝트의 기회가 되었다. 컬래버레이션 형태로 외부 플랫폼을 통해 모객을 하고 프로그램화해서 운영해보는 시도를 했다.



2021 일 회고 요약2

본격 에디터로서의 업무 시작

첫 <아이템> 촬영, 첫 <인터뷰>, 책 추천, 공간 추천 콘텐츠를 만들었다.

경력직이지만 본격 에디터의 업무는 처음이었던지라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 컨셉진 에디터 스쿨에서 배웠던 내용을 상기시켜보고, 에디터 경력이 있는 동료들의 도움을 받아 콘텐츠를 만들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인 브랜드 기획단에서는 브랜드 핵심 키워드를 뽑거나 이름을 만드는 데 힘을 더 보태었다.  

콘텐츠는 절대 혼자 만들 수 없으며, 탄탄한 기획력, 업무 진행을 위한 유연한 소통 능력이 참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던 한 해였다.


그런데 내가 한참을 회고를 하고 보니 뭔가 빠진 것만 같은 허전한 기분이 들었다. 어떻게 느꼈고 어떤 의미로 남았는지를 정리하지 않으면, 진정한 회고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연말 회고를 하는 이유는 단순히 올 한 해 고생했다! 많은 걸 했구나! 짝짝짝 나 자신에게 손뼉 치고 2021년 셔터를 내리는 것에만 있지 않다.


한 해 회고는
다가올 다음 해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어떤 부분을 더 신경 써야 하는지,
내가 더 나 나다운 시간을 늘리기 위해
어느 길로 걸을지 방향을 설정하는
과제와도 맞닿아 있다.



그래서 어떤 걸 느꼈고, 어떤 의미가 있었는가?


몸 건강 차원

코로나19를 핑계로 수영장에 가기 두렵다는 이유로 운동을 놔버렸다. 다른 운동은 시도하지 않고, 집에서 가끔 유튜브를 보며 요가를 한 게 전부인데, 이제는 텐션이 자주 떨어지는 걸 실감하며 내년에는 진짜 몸 건강을 잘 챙겨야겠다 생각했다. 신체 건강이 곧 정신 건강으로 이어진다. 몸이 늘어지면 어떠한 의욕도 생기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을 잘 쓰기 위해서는 내 몸을 잘 쓰는 것부터 챙겨야겠다.


마음 건강 차원

위에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올 한 해는 정기적인 심리 상담으로 마음 건강을 챙긴 의미 있는 해였다. 마음이 맞는 상담사 선생님과 일주일에 한 번, 50분씩 줌(zoom)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나면 그렇게 마음이 개운할 수가 없다. 막상 특별한 감정의 동요가 없던, 꽤 괜찮다고 생각했던 날에도 선생님은 수면 아래 있던 감정들을 내 입으로 뱉을 수 있도록 했고, 이를 통해 나도 몰랐던 내 감정들을 읽을 수 있었다. 많은 부분이 상담을 시작하기 전보다 나아졌다.


감정을 표현하는 게 서툴러서 눈물부터 나는 현상을 개선했고, 나쁜 감정이 든다고 해서 이게 나쁜 게 아닌데, '아 그럴 수도 있구나, 내 마음이 지금 이렇구나' 받아들이는 연습도 많이 했다.


모든 관계에서 스스로 지우는 책임 때문에 힘들어한 적이 많은데, 내가 해결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을 구분하고 감정의 소비를 하지 않는 방법을 터득했다. 완벽히 되지는 않지만, 결국 나를 이해하고 나를 존중하는 게 선행되어야 타인과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도 확실히 깨달았다.



일 건강 차원

모든 제안을 다 받을 필요는 없다. 거절을 잘하는 것도 능력이다. 지금의 거절은 내가 일을 하지 않겠다는 표면적인 현상이기보다, 그 시간을 아껴 미래에 내가 쓸 에너지를 비축하는 일과도 같다.


나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속 가능한 업무 환경과 에너지를 위해서는 업무 범위, 함께 일하는 사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영역의 크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함을 깨달았다.


동시에 내 노동력을 너무 과소평가하지도, 과대평가하지도 않고 적당히 매길 줄 알되, 가치 있고 소중하게 여길 줄 알아야 한다는 진리를 배웠다.


시작하고 기획하는 단계는 너무나 즐겁게 하는 편이지만, 불확실한 변수가 상대적으로 커서 불안감을 느끼거나 에너지를 빼앗기는 실행단을 만나면 초반에 마음먹었던 것과 다르게 내 태도 역시 달라지는 걸 느꼈다.


일을 맡긴 사람에게도, 일을 수행하는 내 입장에서도 그 현상은 좋지 않은 것 같아서, 똑똑하게 일하고 클리어하게 서로가 얻고자 하는 바를 잘 얻어갈 수 있게 만들려면 거절을 잘하고 요령껏 시간과 양을 배분하는 쪽으로 머리를 굴려볼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내년은 가급적 일을 너무 옆으로만 벌리는 수평적 확장보다는 수직적 확장으로 가볼 생각이다.



종합

2021년은 수평적 확장이었다면,

2022년은 수직적 확장으로.


수직적 확장이란 말은 일에서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 전반에도 적용된다. 아무리 많은 콘텐츠나 좋은 영감들을 수혈받는 걸 재밌게 하고 습관처럼 해왔더라도, 내가 기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고, 이 안에서 내 것으로 만들지 못하면 그저 한 번 스쳐가는 SNS 피드와 다를 게 없다.


내게 들어온 감각과 정보들 중에 선별하여 내 경험에 적용해 볼 수 있도록 내 생각을 덧붙이고, 왜를 끊임없이 물으며 '자기화'하는 게 중요하겠다.


내가 그동안 부러워한 사람들은 솔직히 말하면 그저 잘 나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의 생각이 잘 정리된 사람에 가깝다. 그들의 콘텐츠가 부러운 게 아닌 자기만의 생각이 분명한 그 자세와 확신이 부러웠다. 당연히 생각이 잘 정리되어있으니 글이나 영상으로 이를 표현하는 게 잘되는 건 더더욱 당연한 일. 끊임없이 나를 탐구하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라는 말을 이제야 알 것 같다.


그래서 내년은 내면을 단단하게 성장시키고 내가 잘하고 싶은 분야에서 깊이를 가져가고 싶다. 내가 매번 같은 질문을 잊을 만하면 던지는 이유도 이 부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표면적인 대답으로 결론을 대충 얼버무리고, '자, 다음 질문은 뭐야?' 하며 넘겨버린 게 잘못이었다.


근본적인 '왜'를 찾지 못하니 했던 질문을 또 하고, 이와 비슷한 곁가지의 질문들을 늘어놓게 되니 나는 그때그때 얕은 생각으로만 나의 세계를 지지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년은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한 것도 아니고, 진짜 옹골찬 나를 만들기 위해 온갖 잡음과 유혹을 뿌리칠 줄 아는 분별력으로 시간을 만들어가길. 내가 원하는 삶에 가까울 수 있도록 시간을 제대로 만질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수직적 확장의 구체적인 계획은 좀 더 고민해봐야지!

안녕 나의 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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