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the Book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

온라인 북토크 #1. 빔 벤더스에 대하여

by 베리티

[After The Book ; 그 책 이후] 페이지를 만들었습니다. 작은 북토크나 영화 GV처럼 활용해보려고 합니다.


*예약 주문하신 분들은 책 배송을 2/5일에 받으실 수 있습니다.

교보문고에 갔다가 책 없다고 하신 분도 있고, 아직 베송 못 받았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어서 알려드려요.

책이 아직 인쇄 중이고, 4일에 서점에 입고되어 5일에 배송됩니다. 저도 그날 받을 듯합니다.

이번에 책을 쓰면서 예약 판매에 대해 알게 되었는데, 일종의 사전마케팅(pre-marketing)이라고 하네요. 배송 기다리는 동안 책 읽기에 도움이 될까 해서 가볍게 적어봅니다.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는 초고에 사진도 넣었는데, 페이지 수도 많고 이런저런 문제들로 작품 사진들이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웹에서 함께 볼 수 있는 사진이나, 그림, 영상 자료들 그리고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되는 작가나 작품에 대한 소개도 조금씩 해보려 합니다.

스포일러 피하면서, 알면 책 읽기에 더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할게요.



1. 영화감독 빔 벤더스(Wim Wenders)

빔 벤더스.JPG

올해 80세가 되신, 다들 아시는 거장입니다. 길 위의 감독, 이라고 할만한 몇몇 영화감독들이 있는데 이 분을 빼놓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아요. 로드 무비를 통해 천천히 움직이는 도시의 관찰자, 정도로 소개할까요.

2024년 개봉작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로 익숙하실 것 같아요. 지금도 넷플릭스에 올라와 있습니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차를 운전하고 거리를 스케치하는 트래킹 장면들이 이 분 영화의 주특기입니다. 저는 <퍼펙트 데이즈>에서는 두 남자가 그림자에 대해 말하면서 장난치는 장면을 특히 좋아합니다.


또, 소문난 락마니아입니다. U2의 보노와 친분이 깊고, 그의 영화에는 늘 락넘버들이 등장하죠. 극장에서 스피커로 크게 음악을 들으려고 보러 가는 영화들이 있는데, 빔 벤더스의 영화가 그렇습니다.

극영화뿐 아니라, 훌륭한 다큐멘터리스트이기도 합니다.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생애를 담은 <피나>, 또 쿠바의 음악가들을 다룬 <브에나비스타 소셜클럽> 등, 개봉 소식이 들리면 저는 무조건 극장으로 달려갑니다.

앞에서 잠깐 말씀드렸지만 제 책의 제목도 이 분의 다큐멘터리 <도시와 옷에 놓인 노트>에서 따온 것입니다.


영화가 호흡이 느린 편이고, 상업 영화적 플롯이 아니어서 할리우드 영화에 익숙한 분들은 끝까지 보기 어려울 수 있어요. 깐느 수상작인 <베를린 천사의 시>도 예술영화 분위기가 강하고, 제가 특히 좋아하는 <파리, 텍사스>에서도 전반부 30분가량을 말없는 사내 트래비스가 사막을 걸어가는 장면들이 이어지죠.

예술영화 티가 확 나는 영화들을 그리 즐겨보는 편은 아닌데, 지루할 수도 있지만 나중에 왜 그랬는지 알게 되는 즐거움이 큰 영화들이 있어요. 두 영화들이 그런 편이고요. <베를린 천사의 시>는 몇 번 보고 나서 감탄을 하게 되었지, 사실 처음에 졸았던 거 같아요. 근데, 졸면서도 계속 보게 되는 영화도 있지요. 꿈인지, 영화인지 몽롱하지만 오래 남는 영화들.


벤더스의 영화는 상업성을 찾기가 어려워서, OTT에도 잘 없고 극장에서도 길게 올리는 편은 아니죠. 시네마테크 같은 곳에서 특별전을 해주거나 상암동에 있는 영상자료원에서 가끔 상영을 해줍니다.

제가 책에서 이 분의 영화 장면들에 대해 썼는데, 그중 <밀리언달러호텔>의 오프닝 장면을 소개합니다.

그 챕터를 읽을 때 이 이미지를 떠올리시면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이 영화는 사실 벤더스의 영화 중에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어요. 추리 형식인데도 서사가 강하지 못하고, 대사가 사색적이고 인물들도 부랑자들 얘기여서 관객에게 모호하게 다가왔던 듯합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저는 이 영화가 벤더스의 세계관을 잘 보여주고 있고, 어떤 말이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아서 좋아합니다. 그리고 참, 밀라 요요비치가 너무나 예쁘게 나와요.


영화 <밀리언달러호텔> 오프닝 씬

https://www.youtube.com/watch?v=BgpmMBxbI8g


빔 벤더스는 사진가이기도 합니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는 듯 여백이 큰 사진들로 유명한데요. 홈페이지에서 조금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사진집 <한 번은>에 있는 에피소드를 잠깐 소개해볼게요.


한 번은

애리조나 주의 길라 밴드에서
지난 몇 년 동안 단 한 명의 손님도 찾지 않았던
아주 낡은 호텔을 발견하기도 했다.
문은 닫혀 있었지만, 창문 사이로 들여다보니
먼지가 수북한 로비와 놀라움 색감을 자랑하는 안락의자들이 보였다.
몇 시간 후에야 난 간신히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찾아냈다.

https://www.wim-wenders.com/photo/written-in-the-west/


얘기가 끝도 없네요.

빔 벤더스의 오랜 시나리오 친구로 피터 한트케가 있습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시가 좋아서, 역시 '끼리끼리는 과학'이구나 하면서 감탄해 왔는데, 어느 날 노벨상을 타더라고요.

제가 특히 좋아하는 <베를린 영화의 시> 오프닝 시퀀스에 소개되는 시도 소개합니다.


Lied vom Kindsein 유년의 노래

- Peter Handke 피터 한트케


아이가 아이였을 때
팔을 휘저으며 다녔다
시냇물은 하천이 되고
하천은 강이 되고
강도 바다가 된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자신이 아이라는 걸 모르고
완벽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세상에 대한 주관도, 습관도 없었다
책상다리를 하기도 하고 뛰어다니기도 하고,
사진 찍을 때도 억지 표정을 짓지 않았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질문의 연속이었다
왜 나는 나이고 네가 아닐까?
왜 난 여기에 있고
저기에는 없을까?
시간은 언제 시작되었고
우주의 끝은 어디일까?
태양 아래 살고 있는 것이 내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모였다 흩어지는 구름조각은 아닐까?
악마는 존재하는지, 악마인 사람이 정말 있는 것인지,
내가 내가 되기 전에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지금의 나는 어떻게 나일까?
과거엔 존재하지 않았고 미래에도 존재하지 않는
다만 나일뿐인데 그것이 나일 수 있을까..

아이가 아이였을 때
시금치와 콩, 양배추를 억지로 삼켰다
그리고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모든 것을 잘 먹는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낯선 침대에서 잠을 깼다
그리고 지금은 항상 그렇다
옛날에는 인간이 아름답게 보였지만
지금은 그렇지가 않다
옛날에는 천국이 확실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상상만 한다
허무 따위는 생각 안 했지만
지금은 허무에 눌려 있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아이는 놀이에 열중했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열중하는 것은 일에 쫓길 뿐이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사과와 빵만 먹고도 충분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딸기만 손에 꼭 쥐었다 지금도 그렇다
덜 익은 호두를 먹으면 떨떠름했는데 지금도 그렇다
산에 오를 땐 더 높은 산을 동경했고
도시에 갈 때는 더 큰 도시를 동경했는데 지금도 역시 그렇다
버찌를 따러 높은 나무에 오르면 기분이 좋았는데 지금도 그렇다
어릴 땐 낯을 가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항상 첫눈을 기다렸는데 지금도 그렇다

아이가 아이였을 때
막대기를 창 삼아서 나무에 던지곤 했는데
창은 아직도 꽂혀 있다


얼마 전 뉴스를 보니, 요즘 옛 영화 재개봉에 뜻밖에도 2~30대 층이 몰린다고 하네요. 중간에 끊지 못하는 집중력이 필요한 극장의 매력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저도 사실 요즘엔 집에서 OTT로 편하게 영화 보는 날이 많아졌고, 그런 시대라고 생각하지만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볼 때만 발견하게 되는 것들이 분명히 있다고 봅니다. (그 얘기도 책에 나옵니다.ㅎ) 이번 주에는 저도 극장에 가서 영화를 보려고 해요.

빔 벤더스 이야기는 밤새 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여기서 마무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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