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fter the Book; 도시와 테이블에 놓인 노트

작은 북토크 #2. 폴 오스터와 브루클린 사람들

by 베리티

어느 한 도시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

이걸 깨보고 싶어 하는 시도들이 있습니다.


오래전 EBS 다큐멘터리 페스티벌에 참가했을 때였어요. EIDF라고 매년 8월이면 엄선된 다큐멘터리를 방영해 주는 축제입니다.(꼭 챙겨서 보시길 추천드려요) 그날도 어느 다큐멘터리 작가의 토크에 갔었는데요. 칼아츠(CalArts, 캘리포니아 예술학교 - 팀버튼이 나온 학교로 유명합니다.)의 교수가 강연하는 시간이었어요. 그는 아무 설명 없이 불을 다 끄고 슬라이드를 연달아 보여주었습니다.

사진은 어느 도시의 뒷모습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낡은 간판, 버려 진 쓰레기들, 휴지통, 페인트가 벗겨진 담벼락, 비어서 쓸모 없어진 집, 타닥타닥 깜빡이는 네온 간판... 이런 이미지들이 이어졌습니다. 디트로이트의 뒷골목쯤 되려나 하면서 한참을 보고 나서 교수가 물었습니다. 어느 도시일까요?


우리는 모르죠,라고 말로는 못했지만 짐작이 쉽게 가지 않았어요. 그럴듯한 답이 나오지 않았고 그제야 교수가 말했습니다. 뜻밖에도 LA였어요.

LA에 대해 흔히 떠올리는 화창한 날씨, 파란 하늘, 쨍한 햇살, 초록빛 야자수, 쾌적해 보이는 집들, 쭉뻗은 도로... 와는 전혀 다른 풍경이어서 예상을 못했습니다. 그 이질감에 혼란스러울 때 즈음 교수가 이 작품에 대한 소감을 물었습니다.

청중 한 명이 잘 이해가 안 간다, 어렵다는 말을 했습니다. 저는 그럴 수 있다고 봤는데, 그 교수님은 많이 불편했나 봅니다. 자신의 작품을 이해받지 못한다고 느꼈을까요? 굉장히 실망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어요.

"이 작품을 못 알아보다니, 아무래도 당신의 영혼에 구멍이 뚫린 것 같다!"


로버트 레드포드 부럽지 않은 젠틀한 분위기를 풍기는 분이었는데 그분의 어법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많이 화가 났는지 강연은 그렇게 끝났어요. 작품도 그렇지만,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모습이 잊히지 않는 경험이었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그 도시의 이미지를 달리 보고 싶었던 의도는 이해했습니다.


1980년대의 브루클린도 아마, 그 교수님이 보여준 풍경과 비슷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봅니다. 지금이야 뉴요커들의 자부심이 높은 곳이지만, 그 시기만 해도 빈민가에 우범지역이었고, 어지간하면 피해 가야 하는 곳. 브루클린에서 글을 쓰는 작가 폴 오스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나라의 다른 지역 사람들이 뉴욕을 지옥 같은 곳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그러나 그건 일부분만 보고 하는 소리다. 나는 <스모크>를 통해서 사물의 다른 부분을 탐험해 보고 싶었다. 이곳에 대해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다."


이미 브루클린의 파크슬로프에서 15년간 살고 있었지만, 폴 오스터는 다른 사람들이 잘 모르는 브루클린을 보여주고 싶었죠. 그렇게 해서 소설 <스모크>는 영화가 되었습니다. (이 영화의 인상적인 장면은 책에 써서 더 언급하지는 않겠습니다.) 1995년 제작된 이 영화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아서, 유튜브에 있는 클립을 올립니다. 자막본이 아니어서 좀 아쉽네요. 가게 주인이 직접 찍은 사진들이 보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GV_h36uZ5E


오스터는 브루클린에서 촬영한 또 다른 영화 <블루 인 더 페이스>의 인물을 빌어 그곳에 사는 이유에 대해 말합니다.


뉴욕에 사는 이유 중에 하나는... 내가 뉴욕 지리를 알기 때문이라는 거지. 파리 지리는 몰라. 덴버 지리도 몰라. 마우이 지리도 몰라. 토론토 지리도 몰라, 몰라 몰라... 그건 두말할 나위도 없는 거지. 난 알아, 뉴욕에 사는 사람 중에서 '난 곧 떠날 거야'라고 말하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거. 나도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했어... 지금까지 35년 동안. 난 준비가 거의 됐어.

-<블루 인 더 페이스>, 폴 오스터


회사를 관둔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쉽게 떠나지 않는 것처럼, 뉴욕에 사는 사람들도 떠난다고 습관처럼 말합니다. 35년 동안. 이제는 준비가 다 됐다는데... 뭐 떠날 수는 있겠죠. 그래도 오늘은 아니죠:)


재미있는 것은, 오스터가 말하는 브루클린 사람들의 특징인데요. 이를 "브루클린 식 사고방식"이라고 정의합니다.


브루클린 식 사고방식, 내 경우에는 그건 우선, 자신이 하는 일을 알아야 하고, 그 일이 옳은 거라면 그대로 따르는 거죠. 그리고 자신이 믿는 건 무슨 일이 있어도 그대로 하는 거예요. 그리고 그걸 지켜야 한다면, 물질적이건, 약속이건, 정신적이건 간에 하여튼 어떤 경우라도 그걸 지켜야지요. 브루클린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믿는 것에 대해 대가를 치를 준비가 되어있어요. 그건 솔직하고 한결같다는 거예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서 허튼소리 안 듣는 거.

-<블루 인 더 페이스>, 폴 오스터


안 그래도 세상엔 뉴욕 예찬론자가 넘치는데, 뉴요커도 아닌 저까지 더 보태려는 것은 아니고요. 한 도시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특징을 생각해 본다는 면에서 인상적이라서 적어봅니다.


책에 뉴욕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작가, 미술, 음악이 뉴욕을 많이 말하고 있죠. 전설로 남은 장소도 많고.


언젠가, 아마도 우디 앨런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가 나왔을 즈음으로 기억합니다. 영화에서 주인공이 자신이 이상적이라 생각하는 벨 에포크 시대를 찾아가듯, 친구들과 가보고 싶은 '골든 에이지'를 떠들었습니다.

록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라 단연 '1960년대 뉴욕 펑크 씬'이 많이 꼽혔습니다. 벨벳 언더그라운드(The Verlvet Undergraound)와 레이몬즈(Ramones) 등, 그 시대를 살아보지 못해서 더 그런 것이겠죠.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곡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으로 오늘은 마무리합니다.


The Velvet Undergraoud - Sunday Morning

https://www.youtube.com/watch?v=3vnRUp9qVZ0


*저의 책 초고에서 빠진 그림, 에드워드 호퍼의 <이른 일요일 아침, Early Sunday Morning 1930>

에드워드 호퍼.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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