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의 잠들지 않는 밤
친구들과 밤새도록 거리를 쏘다니던 시절이 있었다.
딱히 정해진 이유는 없다. 만나서 할 이야기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그렇게 된 건데, 알고 보면 그렇게까지 중요한 얘기도 아니었다. 언제나 가봐야 할 곳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우리 편이었다. 그렇게 천천히 흘러도 괜찮았다. 크게 쫓겨야 할 필요는 없었다. 그런데 돌아보니, 진짜 이유는 그때 우리가 홍대 주변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때는 20대 시절은 다 그렇게 보내는 줄 알았다. 어쩌면 딱 지나쳐야 할 때 그곳에 발을 디딘 운 좋은 사람들 인지도 모르겠다.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들이 그 거리에 들어서면서 힙합이 유행하고 클럽이 상업적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물감 묻힌 작업용 앞치마를 두르고 다니는 학생들이나 입시생들, 철학하는 사람처럼 방치인지 연출인지 모를 부스스한 홈리스 스타일로 오가는 이들, 멀리서 스포츠카를 타고 놀러 온 유학생들, 그리고 빨간 체크바지와 가죽점퍼에 삐죽 솟은 노란 머리로 쇠사슬 체인으로 덜그럭 소리를 내며 지나가던 펑크키드들이 이따금씩 보이던 곳이었다. 튀는 사람들이라 해도 사소하게 묻히는 거리. 우리는 그곳에 섞이는 걸 좋아했다.
클럽은 인디밴드들이 공연을 보거나, 음악을 크게 들으러 가는 곳이었다. 물론 그곳엔 늘 춤추는 이들이 있었다. 대형 스피커 앞에는 늘 혼자 노는 애들이 있었다. 구석에서 혼자 춤추는 애들이 많았다. 그러다가 모르는 무리들과 어울리고 다시 흩어지기도 했다. 물론, 우연한 만남이 있었다. 그렇다 해도, 요즘 클럽처럼 작정하고 가는 곳은 아니었다. 그렇게 밤샘을 하게 된 건 '클럽데이' 때문이기도 했다.
클럽데이는 한 달에 한 번씩 열렸는데, 한 클럽에 가는 티켓 가격으로 그 일대의 모든 클럽을 드나들 수 있도록 한 이벤트였다. 열 군데 정도 되는 클럽을 보려면 시간은 늘 모자랐고, 음악 취향에 따라 잘 골라야 했다. 외국의 거리처럼 맥주병을 들고 돌아다니는 풍경이 흔했다. 공연에 환호를 하다 보면 어떻게 알고 왔는지 외국인들도 많이 보였다. 공연에 집중하는 우리와 달리 그들은 늘 수다스러웠지만, 그것도 차차 익숙해졌다.
음악 장르에 따라가는 클럽이 달라지기 때문에,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취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가장 폭주하는 클럽은 '드럭'이었다. 펑크록이라는 장르처럼 쓰리코드의 직설을 그대로 옮겨놓은 장소. 그라피티 가득한 담벼락 옆 입구에는 늘 줄이 길었고, 그곳에 어울릴 법한 옷차림의 여학생들이 보였다. 눈 주위를 검게 칠하고 닥터 마틴을 신고 성큼성큼 걷던 아이들. 한편 수수하고 수줍어 보이는 애들도 많았다. 펑크키드들은 접근이 쉽지 않지만, 알고 보면 무서운 애들은 아니다. 오히려 놀랄 만큼 순한 면이 있다. (드럭의 공연에 대해서는 나중에 따로 써야겠다)
그렇게 한밤을 떠돌다 보면 출출해진다. 그렇게 흘러 흘러 모이는 곳이 바로 상상마당 사거리에 있었다. 한밤 중의 오징어배처럼 전구를 가득 밝힌 트럭에는 모락모락 김이 난다. 종이컵에 오뎅국물이 떠지고, 플라스틱 접시에 떡볶이가 담긴다. 은빛 트럭을 빙 둘러싸고 사람들이 모인다.
어딘가에 걸어놓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심야 음악방송 DJ의 낮은 울림이 들려온다. 네온 간판 사이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 지나가는 차 소리, 사람들의 웃음소리, 국적이 다른 언어들, 멀리 반짝이는 불빛들 사이 끝도 보이지 않는 길이 놓여있다. 길 위에서 떡볶이를 나누는 유랑자들, 그들은 이 거리의 감식가 들이다. 귀에 솔깃한 음악을 따라,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 다 설명할 수 없는 이 거리의 공기를 쫓아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시간 그곳에 있던 그 끈은 세월과 장소를 따라 파편처럼 흩어졌다가, 시간의 조각이 되어 이어지는 순간이 있다. 그 끈이 보이는 우연은 언제나 놀랍다.
떡볶이 트럭의 주인들은 형제로 보였는데, 조폭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래서 다들 '조폭 떡볶이'라고 불렀는데 나중에 트럭을 접고 진짜 그 간판을 내건 떡볶이가게를 냈다. 설마, 진짜 조폭은 아니겠지?
그렇게 밤새도록 찾아다녔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우리는 걷고 또 걸어서 시간을 멈추고 싶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