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오면 세상은 온통 고요해지거든

2026년 01월 09일 16시 48분

by 모남이

눈이 온다.

눈이 아주 많이 오고 있다.


나는 이 문장을 쓰기 전까지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써야 더 멋지고 내 감정을 화려하게 꾸며내는 문장이 될까? 고민의 결과는, Simple is the best.

눈이 오고 있는 사실을 멋드러지게 꾸며봤자 뭐하겠는가. 나는 지금 또 다시 눈이 펑펑 오는 창밖을 감상하며 커피를 홀작이고 있는 편안함을 즐기면 그만인것을.


눈이 오면 세상은 온통 고요해지거든.

중학교 2학년 15살, 한창 소설 쓰기에 맛들인 내가 지었던 소설의 제목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는 더욱 더 멋진 걸 좋아했기에, 저 제목마저 열심히 영어와 일본어로 번역해 아랫줄에 써놓았던 기억이 있다. 정작 내용은 기억이 잘 나지 않는 미완성 작품이었지만. 그리고 저 소설이 쓰여진 공책은 또다시 한참 옛날이었던 스무 살의 내가 기겁하듯 박박 찢어 없애버렸던 웃픈 기억이 있다.

최후의 나에게 남은 건 소설 제목을 짓기 위해 열심히 고민했던 새벽 1시 즈음의 열정, 그리고 여전히 눈이 오면 세상의 잡음이 잦아드는 걸 느끼며 흡족해하는 현재의 나였다.


꽤 만족스러운 최후라고 생각한다. 15살의 나, 지금의 나.

눈을 보며 고요함을 느끼는 이 순간을 오롯이 향유할 수 있음에 그저 감사하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이다.


잘 버텼고, 잘 쳐냈으며, 이 모든게 지금의 감사를 만들었다.

나의 사회적인 시선, 스펙, 정량적인 가치.

그 무엇도 아닌 이 순간의 나를 만들었다.


정작 내가 이 노트를 펴고 글을 쓰게 만든 이유가 인터넷에서 본 귀여운 일상의 숏츠였지만. 눈이 오는 이 순간에 떠오른 문장들을 십여년 전 그 날 처럼 설레임으로 담아내던 기회를 다시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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