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밤의 사색』,『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싯다르타』
잠 못 이루는 밤
헤르만 헤세, 『밤의 사색』
잠들고 싶어도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있고, 잠들고 싶지 않아도 잠이 오는 밤이 있다. 어제는 잠들고 싶지 않은 밤이었다. 잠으로 잠식하고 싶지 않은 밤이었다. 무엇하나 명확하지 않았고, 희부윰하게 부유하는 생각들로 잠 못 드는 밤이었다.
『밤의 사색』 때문이었을까. 아니,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오랜만에 밤의 사색을 즐겼다. 평소처럼 일찍 잠들어야 하는 이유는 없었다.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온전히 나를 위한 시간만이 있었다. 약속을 잡거나 해야 할 일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쉬는 날이라고 특별한 일을 만들고 싶지도 않았다. 가고 싶은 곳은 있었지만, 복잡한 마음에 그건 내일 생각하기로 했다. 그냥 있는 그대로 흘러가고 싶었다. 지나간 시간의 어떤 순간을 고요히 반추하며 보고 싶은 얼굴을 떠올렸다. 좋아하는 사람의 불면을 걱정하던 시간. 잠이 든 당신 곁에 기대어 온전히 잠들기를 바라던 순간. 당신이 평안하기를 바라던 마음들이 떠올랐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가. 아무렇지 않은 일은 어디에도 없는 걸까. 공허함과 외로움, 메마름은 무엇으로도 채울 수 없는 걸까. 부쩍 꿈을 꾼다. 어떤 식으로든 내게 관여하고, 기억의 한 칸을 차지하고 있는 얼굴이 보인다. 내 경험에 비추어 꿈을 꾼다는 건 마음이 복잡해서다. 불면이 아니라서 잠을 잘 자는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닌 거 같다. 깨고 싶지 않아 필요 이상으로 잠을 탐했을 뿐이다.
잠 못 이루는 밤을 평생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은 절대 사랑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사람은 아마 가장 순진한 영혼의 소유자일 것이다. - 헤르만 헤세, 『밤의 사색』
잠 못 이루는 밤. 뜻하지 않은 위로를 받는다. 가끔은 잠 못 이루며 외면이 아닌 내면을 사색하고 싶다. 내 인생은 어디로 흐르는 걸까. 나는 어디쯤 가고 있는 걸까. 내 마음은 어디로 향하는 걸까. 모두가 잠든 밤 오롯이 나를 마주하고 싶다. 아 물론 자주는 말고.
헤세 앓이
헤르만 헤세,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헤르만 헤세. ‘클로드 모네’와 함께 오랫동안 여자라 생각했다. 무엇이 선입견을 품게 했을까. 모네는 그림 때문이라지만 헤세는 모르겠다. 아마 이름 때문이지 않았을까. 이름과 『데미안』 제목으로 친숙한 작가. 한 달 전, 『밤의 사색』을 읽고 인간의 내면과 나에 대해 사색해 볼 수 있었다. 그 경험으로 그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했다. 왜 사람들이 헤세를 좋아하는지도. 왜 그의 작품을 탐닉하는지도.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을 읽고는 사랑에 빠져버렸다.
헤세 앓이. 이런 마음이 꿈틀대는 건 흐린 기억 속에 존재하던 정원에서 보낸 시간을 건드려서일까. 헤세가 추구하는 삶의 양식이 지금 내게 명징하게 다가와서일까.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헤세처럼 기계 문명을 거부하고 문명의 속박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심오하고 근원적일 필요는 없겠지. 그저 자연을 가까이 두고 관찰하고, 가꾸고, 체험하는 그 마음이면 충분하다. 그 과정에서 발견하는 기쁨, 슬픔, 생각, 배움은 부가적인 작은 행복일 테고. 그런 작은 행복이 때로 우리 삶을 지탱하는 견고한 땅이 되기도 한다.
수천 가지의 사소한 일들에서 우리는 작은 기쁨들을 찾아내 밝게 꿰어서 우리의 삶을 엮어갈 수 있다. - 헤르만 헤세, 『정원에서 보내는 시간』
“비록 내일 세계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으련다.”는 마틴 루터의 말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자연을 사랑하고 정원을 가꾸고, 식물을 돌보게 되는 일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함께 살아가고, 함께 생각하는 것이 우리 인생임을 그의 체험과 고찰을 통해 알아가고 있다. 정원을 가꾸며, 자연을 돌보며 느끼는 진실한 체험이야말로 가장 무해한 경험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으로 돌아가는 게 우리 인생이라면 그가 말하는 영혼의 고요함을 일상에서 자주 마주하고 싶다. 그러니 각자의 정원을 가꾸자. 성실하고 정직하고 아름답게.
“진리는 가르쳐질 수 없다.”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헤세 앓이를 이어가고 있다. 작가의 글에는 인생이 담겨 있다. 글을 읽는다는 건 한 사람의 인생을 함께 읽는 것이다. 접할수록 그를 향한 호기심과 사랑이 자란다. 사랑에 냉소적인 마음이 움트는 요즘에도 사랑으로 마음이 기운다. 사랑으로 마음이 향한다. 무엇이 나를 사랑으로 이끄는가.
자신의 체험이 바탕이 되는 자전적 이야기를 주로 쓴 헤세. 종교적 성장소설 『싯다르타』도 그렇다. 동양사상과 인도 여행을 체험하고, 관찰하고, 사색함이 책 속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금욕적 생활을 하는 싯다르타와 세속적 생활을 하는 싯다르타. 어떤 생활이 올바르다고 할 수 있을까. 헤세는 싯다르타를 통해 말한다. 다른 사람의 인생을 판단하는 건 자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오로지 자신에 대해서만 판단하고, 선택하고, 행동하는 것이라고. 깨달음이나 통찰력은 누군가의 가르침으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을 오롯이 들여다볼 때만 알 수 있는 것이라고.
작가는 무엇보다 경험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난 시간, 지금 여기 머물지 못하고 떠돌아 방황하던 건 어쩌면 도피가 아니라 다른 길을 갈망한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머물러 있으면 떠나고 싶고, 떠나와 있으면 되돌아가고 싶고, 가지고 있으면 싫증 나고, 갖지 못하면 애타게 원하는 게 사람 마음이다. 모든 삼라만상이 그러하듯 양면적이고 변덕맞다. 『싯다르타』를 읽고 오락가락하는 마음에 위로를 받는다. 정신이 맑음으로 치유되는 기분이다.
“진리는 가르쳐질 수 없다는 것. 이 깨달음을 나는 일생에 꼭 한번 문학적으로 형상화하고자 했다. 그 시도가 바로 싯다르타이다.” - 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자유롭게 떠나 길 위에서, 낯선 공간에서 마주하던 풍경이 유독 그리운 나날이다. 싯다르타처럼 세상과 모든 존재를 사랑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헤세처럼 내면 탐구를 통한 자기실현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색하고, 기다리고, 단식하는 삶을 실천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평생 깨달음에 닿을 수나 있으려나.
묵묵하고 꾸준하며 잔잔한 사랑
헤르만 헤세, 『페터 카멘친트』
헤세의 첫 장편 소설 『페터 카멘친트』. 좋아하는 작가의 첫 장편 소설이라니! 많은 글을 남기고 많은 사랑을 받으며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불리는 사람의 첫걸음. 처음은 무엇이든 특별한 법이다. 헤세에게 이 소설은 어떤 의미였을까. 불안정한 시기 이 책은 내게 어떤 의미였을까.
적지 못해 고통스러운 며칠이었다. 좋아하는 것을 하지 못하니 살아가는 이유를 잃어버렸다. 하루하루 버티는 삶에 가까웠다. 누군가 내게 왜 사냐고 묻는다면, ‘그냥’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책을 읽어도 마음 한구석은 공허함으로 메어지지 않았다. 괜찮은 줄 알았고 분명 괜찮다 생각했는데 난데없이 어둠으로 침잠했다. 고독함이 가득했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도 허무함이 몰려왔다. 내가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그게 아닌데. 마음을 나눌 사람, 일상을 나눌 사람, 좋아하는 것을 함께 좋아할 사람의 부재. 건강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그 빈자리가 나를 삼키기도 하더라.
묵묵하고 꾸준하며 잔잔한 사랑보다 세상에서 더 고귀하고 행복한 것은 없다. 나는 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 단 몇 명이라도 이 깨끗하고 행복한 재주를 내 영향으로 배울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헤르만 헤세, 『페터 카멘친트』
묵묵하고 꾸준하며 잔잔한 사랑! 지금 내게 필요한 사랑이다. 사랑에 회의적인 마음이 들다가도 여전히 사랑에 마음을 두고 싶다. ‘사랑이 짙어지면 슬픔이 되더라도 때론 그 뜻 모를 슬픔이 살아가는 힘이 되어주기도 한다는 걸’ 마음에 새기고 싶다. 흐드러지게 만개한 꽃들을 보며, 저물어가는 햇살의 온기를 느끼며, 일상과 하루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또 위로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