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나답게 해주는 것, 편지쓰기
보고 싶은 친구들아 오랜만이구나. 그 시절 감성으로 이메일을 보낸다. 카톡이나 인스타 통해 건너 건너 조금만 노력하면 연락이 닿을 수 있을 거 같지만, 그건 또 2000년 감성이 아니니까!
사실 좀 두려운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글을 쓴다는 일이, 추억을 소환하는 일이 누구에게는 잊고 싶거나, 아픈 기억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마음이 전해지고 싶은 마음이 있음에도 조심스러운 마음이 드네. 언젠가, 누군가는 이 메일을 확인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고, 오랫동안 몰랐으면 하는 마음도 있는 걸 보니 오락가락하는 듯!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크고, 내가 느꼈던 감정을 비슷하게나마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용기를 낸다.
며칠 전, 방 정리를 하다 교지 <두레박으로 꿈을 긷는 아이들>을 발견하고 옛 생각, 특히 너희 생각이 많이 나더라. 나이를 먹어서 그런가 미친.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관계의 소중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고 주변 사람들 특히, 친구에 대해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지 하는데 참 쉽지 않더라고. 내가 너무 무심하게 살아오기도 했고. 나조차도 친한 남자애들 안 본 지 몇 년은 넘었거든. 만나면 충분히 만날 수 있지만, 각자 살아간다는 핑계로 시간이 많이 흘렀네. 특히 남탕을 안 좋아하기도 하고 내가. 어릴 때 여자 좀 좋아할 걸!!! 그래서 너희들이랑 토크도 많이 했더라면, 아쉬운 마음이 드네.
졸업한 해, 스승의 날 때쯤 선생님 집 다 같이 찾아간 일이랑 스무 살 1월로 기억하는데 서면에서 다 같이 봤었는데 우리. 너희는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되게 쑥쑥 했던 거 같은데. 여자애들이랑은 말도 제대로 못 하고. 찐따였나? 내 기억이 맞다면, 다정이가 다가와 술 부어주며 토크 시도하던 기억도 나네. 초6 때도 그렇고 참 으른스러웠는데! 그러고 보면 남자애들보다는 확실이 여자애들이 키도 크고 센스도 있었지. 그건 인정!
사실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되게 뜨문뜨문 나네. 마치 내가 기억을 잃었던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로. 졸업 앨범이나, 연신초를 한 번 가본다면 더 추억이 선명할 텐데. 가봐야지 생각은 했는데 잘 안 되더라. 올해는 한 번 갈 수 있길.
그래도 이렇게 기억할 수 있는, 추억할 수 있는 기록이 있으니 덕분에 행복하네. 그때 교지 만든다고 되게 고생한 거 같은데 우리. 선생님에게 감사한 마음이네. 우리가 나이 먹은 만큼 고스란히 선생님도 세월을 겪으셨을 테니. 지금이면 퇴직을 앞두고 계시지 않을까? 아 그 정도는 아닌가. 사실 감이 없다. 20년이라는 시간이. 선생님 그리고 너희 모습이 사실 상상이 잘 안 가거든. 왠지 그대로일 거 같은 아니, 그대로이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너희를 생각하면 한없이 순수하고, 행복하고, 걱정 없던 그때의 내가 떠오르니까.
메일은 낙서장에 있는 주소로 보내니까 혹시 빠진 친구들이 있다면, 섭섭해하지 말길. 사실 jswzzang5017 이놈은 빼도 되는데 메일 있길래 같이 보낸다. 2018년, 결혼할 때 가서 봤거든 잠깐. 초대도 안 했는데 그냥 갔다 왔지. 초대했으면 안 갔을 듯. 그 뒤에 연락이 한 번 와서 토크 좀 했던 게 마지막이네. 애 키운다고 바쁜 거 같더라. 번호도 있어서 연락하면 되는데 굳이 뭐. 영백이랑 종석이는 번호도 있고 인스타 친구라 만나면 만날 수 있는데 애들이랑도 굳이. 준필이도 마찬가지. (심) 민정이는 메일이 없네.
가시고기를 추천하고, 음악을 좋아하고, 피아노를 열심히 쳤고, 헬런 켈러를 존경하고, 유치원 선생님이 되길 바라고 네덜란드를 가고 싶어 했던 다정이.
가시고기를 추천하고, 미술을 좋아하고, 학교 공부를 열심히 했고, 잔다르크를 존경하고, 의사와 간호사가 되길 바라고, 일본을 가고 싶어 했던 수향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추천하고, 영어와 음악을 좋아하고, 피아노 연습을 열심히 했고, 링컨을 존경하고, 교수와 아나운서가 되길 바라고, 캐나다를 가고 싶어 했던 보경이.
해리포터 시리즈를 추천하고, 영어를 좋아하고, 영어공부를 열심히 했고, 스티븐 호킹을 존경하고, 통역사와 아나운서가 되길 바라고, 호주를 가고 싶어 했던 다해.
다들 재밌게 살고 있는지. 살아간다고 힘이 든 건 아닌지. 다른 애들은 어떤지 궁금하네. 그때는 왜 그렇게 잘 살아라는 말이 많았는지. 10년 뒤에 연락하는 거보다 마음이 움직이는 지금 용기를 낸다 친구들아. 모두 부산에 있는 게 아니니까. 가정이 있는 친구들도 있고.
흘러가는 시간 속에 속에
나의 모습 찾을 수가 없어 없어
나를 돌아봐줘 그대여 나를 돌아봐
아직 우린 젊기에
- 싸이, 77학개론
어릴 때는 삶이 아주 길 것 같았지
까마득했지 이십 년이 지난 뒤
이젠 두려울 만큼 짧다는 걸 알아
눈 깜박하면 이십 년이 지난 뒤
- 이적, 이십 년이 지난 뒤
그냥 너희들 생각이 났어.
잘 살자 우리.
그때 모두의 바람처럼 건강하고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