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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김밥 Oct 09. 2017

남유진 구미시장님께

'추석명절 박정희 대통령 영전에 고하는 글'에 대한 반론

추석연휴를 맞아 편안한 휴일을 즐기던 중, 시장님의 황망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추석명절 박정희대통령 영전에 고하는 글'이라는 제목의 글이었습니다.(관련기사) 먼저,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후 38년이 지난 뒤에도 변함없는 시장님의 충성심에 놀랐습니다. 높게 평가합니다. 정말입니다. 


하지만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서는, 시장님의 그것과 같은 '한결같은 충성심'이 보이지 않는 것이 참 안타깝습니다. 시장님은 글에서 "이시대에 이나라의 국민으로 태어나서 우리세대에 조국을 근대화해서 선진열강과 같이 잘사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말씀을 인용하셨습니다.


"내 일생 조국과 민족을 위하여". 그의 '조국'은 어디였을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 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요. 일제 강점기, 그 분의 행적은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일본 황제에 충성을 맹세하고 만주국 군관이 된 사실 말입니다. 그렇게 일제를 위해 복무하던 그 분은, "좌익이 판을 치던 해방정국"에서는 남로당 지하조직에 몸을 담으셨습니다. 그 후 1948년 14연대 반란사건에 연루되어 체포된 그 분은 '기적적으로' 살아나셨습니다. 지금 21세기에도 '빨갱이는 죽여도 돼'라는 피켓을 공공연히 들고 다니는 마당에, 어떻게 살아나셨을 수 있었을까요. "헌병대에 끌려가자마자 "내 이런 때가 올 줄 알았다"며 혐의를 순순히 인정하고 자술서도 술술 써내려" 가셨다고 하는군요. 그렇게 '빨갱이 색출' 작업에 적극적으로 협력한 대가로 그 분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동지들의 이름을 실토하신 겁니다.


그리고는 1961년, '구국의 결단'으로 쿠데타를 일으키시고는 이번에는 '반공을 국시'로 삼으셨습니다. 좌익전력 때문에 미국의 승인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을까요. 군국주의 일제에 가담하셨다가, 사회주의 단체에 가셨다가 이제는 미국. 변화가 너무도 무쌍하여 그 분의 진정한 뜻과 비전을 알기 힘들 정도입니다. 


1961년, 5.16 쿠데타를 일으킨 박정희 전 대통령.


'보수는 가치를 먹고 산다'


시장님, '보수는 가치를 먹고 산다'고 하셨지요. 그 분의 가치는 무엇이었습니까? 저 변신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념은 무엇입니까? 그 분의 이념은 잘 모르겠으나 분명히 보이는 것이 있으니, 그것은 그 분의 '기회주의적 속성'입니다. 이것이 아니고는 그 분의 연이은 '변신'을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두 주먹 불끈 쥐고 이념대결의 불길 속으로 뛰어든 열혈 정치인은 별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개탄하셨지요.


 그 분도 마찬가지셨습니다. 그 분은 대결의 불길 속으로 뛰어들지 않고, 항상 시류와 영합하셨습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만주국의 군관으로, "좌익이 판을 치던 해방정국"에서는 사회주의 단체의 일원으로, 냉전시대에는 '반공' 지도자로. 여기에 민족이 있습니까, 민주가 있습니까.


그렇게 대통령이 된 그 분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습니다.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고문하고 죽였습니다. 시장님의 말씀대로 "5천만이 5천만가지의 목소리를 내도 소음이 아니라 화음이 되는 나라! 그게 자유대한민국"이라고 저도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걸 막은 사람이 바로 그 분이십니다! 


①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 반대, 왜곡 또는 비방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② 대한민국 헌법의 개정 또는 폐지를 주장, 발의, 청원하는 일체의 행위를 금한다.
- 1974.1.8. 대통령긴급조치 1호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국가


훗날 위헌판결을 받은 이 긴급조치의 내용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5천만이 5천만가지의 목소리를 내는 자유대한민국'을 정면으로 위배하고 있지 않습니까. "전직대통령의 기념우표 한 장 못 만드는 나라가 자유 민주 국가입니까"라며 개탄하셨지요. 자유의 가치와 민주적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한 사람을 기념하는 우표를 발행하면 그것이 자유민주국가입니까. 자유민주국가라면, 그 분의 기념우표를 발행하지 않는 것이 순리입니다.


이른바 '인혁당 재건위 사건'(1975. 4월). 유신독재에 반대한 사람들에게 사형이 선고되고 단 18시간만에 형이 집행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죽은 이들은, 32년 뒤에 '무죄' 판결을 받습니다.(출처 : 한겨레신문)


이 모든 비판에도 그를 칭송할 업적은 남아있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경제건설'입니다. "개발도상국에서 정치의 초점은 경제건설이며, 민주주의도 경제건설의 토양위에서 자랄 수 있다."는 그 분의 말씀을 인용하셨지요. 우선, 박정희 대통령 재임기간, '민주주의'는 구현되지 못했다는 솔직한 고백, 감사드립니다.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민주주의로는 경제개발 못합니까? 조선, 전자 등 자본집약적 산업에 대한 막대한 투자는 '독재체제'에서만 가능한 것인가요?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경제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그 결과 OECD에 가입하기도 했습니다. 오히려 1960-70년대에는 경제규모 자체가 작았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1987년 이후의 경제성장은 1970년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일 것입니다. 당신들이 욕하는 '김대중-노무현' 시절에도 한국경제는 꾸준히 성장했습니다. 


1962-91년까지의 경제성장률 추이.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한국경제는 꾸준히 성장했다.



민주주의 하에서도 경제성장은 얼마든지 가능해


또 하나, 박정희 대통령님께서는 '민주주의를 구현할만한 경제건설의 토양'이 마련되었다고 판단이 되었을 때,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셨을까요? 대통령이 입법, 사법, 행정을 틀어쥔 유신체제를 스스로 끝내셨을까요? 그 기준은 무엇입니까? 국민소득 5천불? 1만불? 


저를, 그 분을 "독재자로만 인식"하는 "요즈음 일부 젊은 세대" 중 한명이라고 생각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생존이 먼저였던 산업화시대를 평가"하는 철부지 젊은이라고요. '생존이 먼저'라는 문제와 '독재 불가피'라는 문제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아니, '민주주의'가 오히려 국민의 안전하고 윤택한 생활과 생존을 담보한다고 생각합니다. 창의와 혁신, 자유로운 발상이 국민을 통제하고 획일화하는 독재적 사회에서 가능할거라 보십니까.


중간에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대한민국을 세웠고 공산주의자들의 남침을 막아냈"다는 평가도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그가 개전 3일만에 수도를 내주고 대구까지 내려갔다가 "너무 많이 내려오셨습니다"라는 참모들의 건의로 대전으로 올라갈 정도였다는 것 정도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시장님, "보수우파의 전열을 가다듬고 좌파들과의 이념전쟁의 최전선에 나서도록 하겠"다는 시장님의 결단은 숭고합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저와 같은, '자유'와 '민주'를 중시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건전한 보수우파'와 먼저 싸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 참고문헌

"실토해서 살아남은 박정희, 검찰 출두 앞둔 박근혜는?" 오마이뉴스, 2017.3.20

"냉혹한 현실주의자 박정희와 그를 미워하는 얼치기 이상주의자들" 조선Pub, 2017.7.31

그래프 : "박정희 정부 시기를 통해 본 발전국가 담론에 대한 비판적 시론", 박태균, 『역사와현실』제74호, 한국역사연구회, 2009, p 21, <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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