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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Jan 12. 2016

스펙 중독

무언가 '계속' 해야만 할 것 같은.


지원했던 인턴에서 떨어지고 난 후, 대학 처음으로 '얌전한' 방학을 보내게 됐다. 3학년 2학기 겨울방학, 모두들 대외활동 하느라 바쁜 와중에 혼자 덩그러니 있으려니 영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무언가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나를 짓눌렀다. 그리고, 그 불안감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았다. 



어떤 말을 해도 나는 괜찮지 않다



한 학기 동안 나를 괴롭혔던 부동산 경제학 시험을 마지막으로 가을학기도 끝이 났다. 며칠 동안은 그저 자고, 쉬어야 겠다는 요량에 마음 놓고 본가에 내려왔다. 항상 1달에 1-2번은 본가에 '요양'하러 왔지만, 이번 만큼은 마음 편히 쉬지도, 자지도 못했다. '겨울 방학에 무엇을 해야하나?'하는 고민이 잠시라도 잊혀지지 않았다. '동기는 인턴을 한다는데'라던가 '동기는 이번에 어학연수를 간다는데'라던가 하는 비교질이 아니었다. 오로지 나, 아무것도 해야 할 것이 없는 이번 겨울 방학이 죽도록 두렵고 불안한 것이었다.



본가에 내려가기 전 서점에 들리게 됐다. 이 책, 저 책을 들었다 놨다 하던 중 김난도 교수의 <웅크린 시간도 내 삶이니까> 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을 사지 말았어야 했다. 제목에 마음이 무너져 고민할 것도 없이 계산대로 직행하지 말았어야 했다. 이 책은 그저, 온전히 제목 때문에 산 것이다. '웅크린 시간'이 딱 지금을 말하는 것 같아서 이 불안감을 어떻게든 잠재울 수 있지 않을까하는 기대 때문에 집어 들었다. 



본가에서 몸이 아플 정도로 자고 난 뒤, 책을 펼쳤다. 한 장, 한 장 읽어갈 때 마다 눈으로 들리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악마의 유혹처럼 느껴졌다. "괜찮아. 지금 잠시 쉬어가도 돼"하고 말하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처음엔 "그래, 잠시 쉬어도 괜찮아."하고 있다가 이내 "괜찮아? 안 괜찮아. 뭐가 괜찮아?"하고 반항을 했다. 그래. 괜찮지 않았다. 어떠한 말을 해도 나는 괜찮지 않았다. 이 책의 어디 쯤에서 '우리가 당연히 누리고 있는 이 평범한 일상도 누군가에게는 갈망의 대상이다'라고 했을 땐, 바로 책을 덮고 던져버렸다. 비교대상이 틀렸다. 내 비교대상은 어딘가에서 내일을 갈망하는 누군가가 아니라, 사지 멀쩡하고 졸업의 코 앞에서 취업을 걱정하고 있는 20대 중반의 사람이 맞는 것이다. 그렇게 불안과 짜증, 답답함 속에서 2015년을 보냈다. 그리고 불안과 짜증, 답답함으로 2016년을 맞이했다.




너 그러다 숨 차 죽어, 임마




새해 인사를 해오는 친구와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 하던 중 내가 느끼는 '불안'에 대해 이야기 했다. 인턴에 떨어진 것, 겨울 방학에 무엇을 해야 할 지 모르겠다는 것, 그리고 기껏 돈 들여 산 책을 읽자마자 집어 던진 것. 친구는 묵묵히 내 불안을 들어 주다가 한 마디 던졌다. "너 그러다 숨 차 죽어, 임마. 뭘 그렇게 뛰어다니냐? 사람이 걸을 때도 있어야지." 



인턴, 대외활동, 일련의 자격증 공부, 그리고 정규학기. 이것들은 우리에게 '뛰는 것'에 해당한다. 전력을 다해 집중하고, 배우고, 목표를 이뤄낸다.  목적의 방향이 '취업'에 향하는 정도가 짙은 것들. 반대로, 걷는 것은 목적의 정도가 연한 것들에 해당한다. 취업보다는 나를 위한 것, 압박감과 해야만 하는 의무가 없고, 온전히 즐길 수 있는 것. 그럼에도 멈춰 서 있지 않고 나의 곳곳을 채워주는 것들. 운동이던 작은 취미던 여유롭게 나를 조금 내려 놓을 수 있는 것들. 어쩌면 나는 걷는 방법을 잊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취업'에 쫓겨 계속 무언가를 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에 계속 뛰어다니고 있었다. 끊임없이 인턴, 혹은 대외활동 거리를 찾아다니고, 지원하고, 떨어지는 일련의 과정들을 겪어내면서 우울해하고, 자책하면서 나 스스로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었다. 



"뛰지 말고 좀 걸어. 2015년 누구보다 불태웠잖아, 너. 이제 걸을 때도 됐어."



친구와 한 바탕 통화를 하고 나서, 던진 책을 다시 집어들었다. 다시 읽어볼까 고민을 하는데 책 뒷면에 적힌 글이 눈에 보였다. 






"나만의 꿈을 모색하고 있는 한, 비루한 일상마저 위대한 꿈의 일부임을 잊지 말라. 지금을 자신을 유배시킨 채 기다림의 시간을 보내고 있더라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대는 여전히 그 꿈을 실현하는 위대한 여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내가 여전히 내 목표를 실현하는 여정을 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을 그냥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그러니까 흔한 비유로, 등산을 하다가 숨차서 잠시 쉬고 있는 중이라고 하면 딱 될 것 같다. 다시 차근차근 생각해 보기로 했다. 코 끝을 스치는 차가운 바람에도 피부로 느껴지는 따뜻한 겨울 햇빛을 즐길 방법을. 등산로 한 가운데, 잠시 비껴간 언저리에서 남은 길을 어떻게 오를 것인지 한숨 쉬는 시간처럼. 




언제부터였을까. 방학은 또 하나의 '학기'가 됐다. 취업에 한 번이라도 낙방을 '덜'하기 위해 정규학기보다도 더 치열하게 보내야만 하는 것. 쉴 수 있는, 재충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학기 중에 미처 하지 못한 스펙을 쌓는 시간이 돼버린 것이다. 비단 나 뿐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다. 방학 때 인턴을 마다할 대학생은 없으며, 하물며 토익공부 혹은 어떤 자격증 공부 계획이 하나쯤은 반드시 끼어 있다.




우리는, 그러니까 대부분의 대학생은 아르바이트던, 인턴이던, 공부던 항상 어떤 목적과 계획으로 방학을 보낸다. 방학에 여행을 가겠다고 함은, 여행 자체로 주요한 목적이 될 수 없다. 언제까지나 부차적인 계획일 뿐이다. 그러니까 토익 공부를 하던 중에, 혹은 어떤 자격증 공부를 하던 중에 '잠시' 여행을 하겠다는 의미다. 여행은 그 자체로 즐길 수 있는 것이 못됐다. 정말 지쳐 쓰러질 것 같은 일상에서, 여러 고민과 진로 앞에 놓인 그 순간을 외면하고 싶을 때 선택하는 '일탈'이었다. 현실도피. 그것이 내게 뿌리 박힌 여행의 정의였다. 

  




내 겨울 방학의 해시태그




얼마전에 읽은 칼럼에 눈길을 끄는 내용이 있었다. ‘직장과 나의 관계란 연애이지 결혼이 아니다. 사귀는(다니는) 동안 열심히 사랑(일)하고, 때론 좋은 상대(직장)가 생기면 떠나는 것이다’라고. ‘참 웃기고 있네’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라면 어쩌면 가능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적어도 현실에선 직장과 나의 관계는 더 좋은 직장이 나타났다고 떠날 수 있고, 아니 그러기 전에, 나를 밀어냈다고 주눅들지 않을 수 있는 그런 동등한 관계는 아닌 것 같다. 시작부터 “나 제법 매력 있는 사람인데 알아봐 주세요.”하고 아쉬운 소리를 하는 입장이니까. 



정답이 없는 구직시장에서  무한한 스펙 경쟁을 한다. 설령 한 기업에 낙방하더라도 기죽지 않고 다른 기업에 기대하며 “너 아니어도 나 사랑해줄 남자(혹은 여자)는 많아, 이 자식아”하고 싸대기까지 때릴 수 있기 위해. “이 회사랑 나랑은 인연이 아닌가 보다. 그런데, 나 놓친 너 후회할거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자신감, 혹은 그 근거를 만들기 위해서 말이다. 그것의 근원은 "나 같은 여잔(남잔) 세상에 나 밖에 없어"하는 개성과 차별,그리고 내 실력을 입증할 수 있는 것에서 온다는 것쯤은 모두가 알고 있다. 그래서 남들 가지고 있는 것들을 나도 똑같이 가질 필요도, 이유도 없다는 것도 알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어떻게든 애를 써도 힘든 취업 때문에 온갖 것을 다 갖추고, 거기에 나만의 개성까지 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다.



남들과 다른 경쟁력, 매력을 어필하기 위한 것들인데, 뒤돌아보니 결국 나도 남들과 '똑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결국 '차별'하고자 했던 일들이 오히려 나를 '동화'시키고 있었다. 헐. 짜 괜찮지 않았다. 심지어 나는 스펙 중독에 걸려, '스펙쌓기'에 해당하는 어떤 것들을 못하게 되니 이토록 불안해 하지 않는가. 진짜 좀 걸으며 다시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그래서 이번 겨울은 따뜻한 방 안에서 귤이나 까먹으면서 책도 읽고 못했던 영어, 중국어 공부를 하기로 했다.(특이하게도 나는 외국어 배우는 것을 좋아한다) 필요 이상으로 조급해 하고 불안해 하는 마음을 어떻게 좀 해보려고 필라테스도 시작했다. 그동안 매마른 감수성을 폭발시켜보고자 연애 소설도 여러 권 결제했다. 만화책도, 그리고 (이상하지만) 읽고싶었던 경제 서적도. 어쩌다 생각나면 자기소개서도 다시 한 번 써보고, 또 어쩌다 심심하면 그간 쌓아왔던 것들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포트폴리오도 만들어 보기로 했다. 그러다 또 잠깐 생각이 나면, 관심 기업 뉴스도 보기로 했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나를 채우는 것.  이 것이 내 겨울방학의 해시태그다. 

그리고 봄이오면 나는 또 신나게 뛰어다닐 거다. 아무도 날 잡지 못할 만큼 사방팔방 폴짝폴짝 뛰어다닐거다.










언젠가 교수님께서 말씀하시길, 무한스펙경쟁으로 청춘을 몰아 넣은 것은 어쩌면 '어른들'의 잘못일 수도 있겠다고 하셨다. 그래, 스펙 중독에 걸린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냥 요즘이 그렇다. 취업하려고 보니 사회가 이런 모양새인 것을 내가 어떻게 할 노릇이 없다. 이렇게 똑똑한 젊은이들이 취업을 못하니, 곳곳에서 이를 두고 사회병리적이라고 이야기하질 않는가. 


그러게, 교수님. 왜 그러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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