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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Dec 30. 2015

마늘과 양파와 레몬, 그리고 햇빛

나를 버티게 하는 것들

어느 책의 제목이 그렇듯 '버티는 삶'에 관해 관심이 많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버틴다'는 말 자체가 외롭고 힘들다는 느낌을 있는 그대로 준다. 기억 속의 누군가가 그랬다. 결국 인생은 버티는 것이라고. 그 말이 어떤 의미에서 나를 울렸는지 모르겠지만, 그 말을 들은 이후 계속해 '버티기'에 대해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 버티는 것이란 어떤 것일까. 괜히 나는 버텨본 적이 있었는지 과거를 헤집어 본다.




경력증명서, 그깟게 뭐라고


나도 버텨본 적이 있다.  2년 전 쯤. 나는 학내 언론사에 취재기자로 활동하게 됐다. 수습기간 2개월, 정기자 활동 기간 1년, 총 14개월을 버티면 경력증명서를 받을 수 있다. 어디가서 '나 기자 였어요'라고 보란듯이 말할 수 있는 '증거'였다. 다른 언론사는 2년을 지내야 하는데 왜 여기만 1년일까 싶었다. 내심 속으로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리고 정확히 6개월 뒤, 1년의 이유를 철저히 깨달았다.



처음 2달은 그럭저럭 있을 만 했더랬다. 그때의 나는 '글을 쓴다'라는 개념 조차 제대로 정립되있지 않은 상태였으니 아이템 선정부터 취재, 기사 작성, 피드백까지 모든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아무리 혼이 나도 '처음 배우는 것이니까'하며 난도질 당해 돌아온 기사에도, 눈물 쏙 빠지는 피드백에도 전혀 기죽지 않았다. 아기가 발걸음 떼 듯 3개월을 보냈다. 단신부터 시작해 4-5페이지 분량의 커버 기사도, 할아버지 뻘 되는 동문 인터뷰 기사도 써냈다. 그럼에도 내 기사는 여전히 난도질을 당했고 돌아오는 반응은 '아직도 이 정도냐'하는 평가 뿐이었다. 이 때 쯤엔 하루에도 몇 번씩 그만 둘 고민을 하고, 편집장의 피드백 메일에, 혹은 단순한 연락에 벌벌 떨었었다. 기사 초안을 보내고 난 뒤엔 겁이나서 하루 종일 핸드폰을 꺼두고 있었던 적도 있었다. 이 때가 처음 '버티던' 시기였다.


한 날은, 같이 활동하던 기자를 붙잡고 엉엉 울었었다. 너무 힘들다고, 도저히 늘지 않는 실력과 부족한 내 탓에 들려오는 독설들을 더 이상 견딜 수가 없다고. 이 때가 5개월 쯤 됐을 때였다. 마주 앉아있었던 기자는 그 어떠한 말도 내게 도움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걸 이미 알았던 듯 했다. 혼자 역동적인 드라마를 마무리 지을 때 쯤 독기가 피어 올랐다. '딱 경력증명서 받을 수 있을 때 까지만 하자. 경력증명서 받으면 그 때 미련없이 나오자.' 하고.


경력증명서, 그 깟 종이 한 장을 위해 버텼던 것 같다. 어느 순간엔 '언젠가 나도 칭찬 받겠지' 하고 체념한것도 있었다. 그렇게 버텼던 것 같다. 마치 경력증명서 한 장이 지난 날의 모든 것을 보상해 줄 것 처럼. 8개월을 더 버티고 나서, 나는 정말 미련없이 박차고 나왔다.




버티는거, 사실 별 거 없더라.


이제와서 생각을 해 보면 그 때를 버티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썼던 것은 아니었다. 별 거 없었다. 그냥 늘상 하던데로 회의를 가고, 아이템을 정하고, 취재를 하고, 기사를 썼다. 그래도 뭔가 더 나아지려는 노력은 했던 것 같다. 그렇다고 특단의 대책을 세웠던 것도 아니다. 그저 쓴 기사를 몇 번이고 다시 보고, 조금 더 나은 리드를 쓰기 위해 더 많은 책을 보고 잡지를 봤다. 그리고 더 괜찮은 헤드라인을 뽑아 내기 위해 매일 신문을 봤던 것 같다.


지나고 보니 알았다. 버티고 나야 비로소 변화를 알아 차린다는 것을. 애써 버텨내던 그 때 편집장이 바뀌었고 부편집장도 바뀌었으며 새로운 기자가 들어왔다. 어느 날, 이제 이 곳을 떠날 날도 머지 않았다고 생각하던 때 느닷없이 칭찬을 들었다. "제희씨 이번 기사 잘썼다"하고.

무작정 버틴지 11개월 쯤 됐을 때였다. 그 때는 그래도 기사 쓰는 것이 그다지 힘들지 않았었던 것 같다. 익숙해졌기 때문이었을까. 습관처럼 취재하고 기사를 쓰다 보니, 2-3페이지 글을 써내는 것 쯤은 무리가 없었다.



왜 그 때는 몰랐을까. 버티려 애썼던 그 순간에도 나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을.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몇 걸음 더 나아가 있었다. 다시금 생각해보면, 나는 정말 아무것도 한 게 없었다. 그저 어제와 같았던 오늘을 지냈을 뿐이었다.




언젠가 후임기자가 물었다. "어떻게 하면 기사를 잘 쓸 수 있을까요?" 아마 그 애도 내가 미칠듯이 힘들었던 그 시기를 겪고 있었던 듯 했다.

"나에게 물을 질문이 아닌데? 나도 여전히 못 써."

정말 해 줄 말이 없었다. 나도 그저 쫓겨나지 않으려 버티기만 했으니까. "이대로 6개월만 버텨"라고 말했다. 내게 특단의 조치나 '기사 잘 쓰는 방법 10가지' 뭐 이런 것을 바랬던 것 같지만 아쉽게도 내게 그따위 것은 없었다.








마늘과 양파와 레몬, 그리고 햇빛


토익강사 유수연이 한 특강에서 힘든 시기를 독하게 버티고 난 뒤에 남는 후유증에 대해 말했다. 그녀에겐 그 후유증이란 것이 양파와 소세지였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공부할 때 배고픈 것을 버티기 위해서 삶은 소세지와 생양파를 전자렌지 위에 올려 놓고 배고플 때 마다 먹었다고 했다. 나도 그 비슷한 것이 있다. 마늘과 양파와 레몬, 그리고 햇빛이다. 나는 이 4가지만 있으면 버틸 수 있다. 참 유난스럽게도.


우리 집엔 마늘과 양파가 떨어진 적이 없었다. 냉장고 한 편에는 항상 빨개 벗은 마늘과 양파가 있었다. 특별한 것 없이도 나는 마늘과 양파를 소금과 후추에 구운 것을 좋아했다. 어느 날엔 문득 구운 마늘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조금 더 챙겨먹을 땐 구운 마늘과 양파에 닭가슴살을 넣고 발사믹 드레싱을 더해 샐러드로 먹기도 한다. 홈메이드 파스타에는 종류가 무엇이던 항상 마늘과 양파가 들어가 있었다.


또 한 가지, 나는 햇빛을 사랑한다. 내 삶의 영역에 있어 일사권은 매우 중요하다. 만약 내가 살 아파트에 볕이 들지 않는다면 나는 기꺼이 일사권을 위한 소송도 걸 여자다. 그런데, 지금 내 자취방에는 햇빛이 들지 않는다. 고시텔을 얻어 살다 보니 운이 지지리도 없었다. 월세를 조금 더 내고 볕이 드는 방으로 옮길까 했지만, 방이 나질 않았다. 그래서 나는 해가 떠 있을 때면 이것 저것을 들고 밖으로 나왔다. 볕이 잘 드는 카페에 앉아 책을 읽다, 별 상상을 다 하다 배가 고프면 샐러드나 토스트를 시켰다. 그것에 양파와 마늘이 있다면, 완벽하다.


아, 나는 레몬도 좋아한다. 레몬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깨끗한 물에 레몬 한 조각 띄운 물을 좋아한다. 그냥 물은 재미가 없는데, 레몬을 띄운 물을 먹으면 입안이 개운한 느낌이다. 그래서 항상 내 방 물병엔 레몬이 한 조각씩 띄어져 있다.


마늘과 양파와 레몬, 그리고 햇빛. 나를 버티게 하는 것들이다. 하루 종일 온갖 공부에 시달리다 갈증이 날 때 마시는 레몬 물은 그 어떤 것 보다 청량하고, 배고플 때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 마늘과 양파는 더 힘나게 만드는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을 때 책 한권 들고 카페에서 쬐는 햇빛은 내 몸의 영양분들이 비로소 제 역할을 하도록 하고, 그 때 마시는 레몬물은 온 몸을 일깨우는 느낌이다. 이 네 가지로 일상을 버틴다. 특별할 것이 없어 지겨운 일상을.




지금도 나는 버티고 있다.


지금도 나는 버티고 있는 중이다. 언젠가 지금 내가 버티는 이 시기를 '달은 지고 아직 해가 뜨지 않은, 가장 어둡고 고요한 새벽'이라고 비유했던 적이 있다. 졸업을 얼마간 앞뒀지만 미래는 흐릿한 지금, 내 인생에 가장 조용하고 적막한 시기다. 1년 조금 넘게 남은 지금이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생산적인 시기라고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른다. 언젠가 책에서 읽은 한 구절이 기억난다.


"노동시장에서 피켓에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적어서 나를 팔아야 하는데, 그 피켓에 무엇을 적을래요?"


해가 뜨는 순간 그 피켓을 들어야 한다면, 지금 나는 피켓에 끄적일 것들을 만드는 중이다. 햇빛이 들기 시작할 때 내가 그 햇빛에 비춰 빛날 수 있게. 그렇게 우울하고 답답한 이 시기를 버티고 있는 중이다. 해가 모습을 드러낼 때 나 또한 함께 빛날 것이라는 믿음으로. 마냥 버텼던 예전과 다르다. 지금은 건강히 버텨 낼 수 있게 하는 4 가지를 알고 있다. 마늘과 양파와 레몬, 그리고 햇빛.



그래서 나는 비참할 날이 없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잘 버티고 있다.

그리고 버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눈치채지 못할 만큼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호기롭게 차려입고 나온 오늘은 햇빛이 들지 않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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