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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Dec 02. 2015

나를 지키는 결심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으려는 애처로움



스마트폰 속의 모든 SNS를 지웠다. 더이상 나를 할퀴어 내지 않으려고.




가장 잘 지내는 모습만 올려 담은 것을 알면서도 그들과 나를 비교하고, 기어이 나를 할퀴어 내는 꼴이 지겹도록 못나보였다. 나는, 그러니까 지금 나는 자기연민에 빠지면 안된다. 그래야만 더 버틸 수 있으니까.



지난 며칠 동안 자기소개서를 쓰느라 지쳐있었다. 끊임없이 나를 내보여야하고, 지난 날의 나로 감동을 만들어야 하고, 내 열정을 증명해야하는 짓들에 진절머리가 났다. 족히 5개 쯤 쓴 것 같다. 적다면 적고, 많다면 많은 양인데 20개가 넘는 항목들에 써낸 글들만 13장이 넘어갔다. 한 두 곳 발표가 났고, '안타깝지만 불합격'이라는 문자를 받았다. 자소서를 써내느라 공들인 시간과 노력이 모두 헛되어 보였다. 



그래, 솔직히 말해 자존심이 많이 상했다. 아니, 자존감이 상했다는 말이 맞겠다. 나의 효용에 대해 한 번도 의심해 본 적 없었는데, 노골적으로 내 효용가치가 없다고 말하니 상처받았다. 

어떤 선배가, "앞으로 수 십번도 더 떨어져 볼건데, 인턴 하나 가지고 우울해하지마. 넌 졸업까지 1년도 더 남았잖아."하고 말했다. 알고 있었다. 앞으로  수도 없이 불합격 통지를 받아 볼 예정이라는 것. 

그래도, 속상하고 우울하고 자신감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나는 제법 내 효용가치에 대해서 자신있는 편에 속했다. 내 주변보다 이른 시기에 대외활동을 시작했고, 꽤나 큰 성과를 냈었다. 해외 인턴십 경험도 있고, 어디에 내 놔도 비교당하지 않을 학점과 어학성적을 갖추고 있다 자신했다. 아니, 그렇게 자만했다. 대학생활을 하며 바쁘게 지내온 것에 혼자 심취해 '이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렇게 바닥에 떨어진 자존감을 어떻게든 수습해 냈을 때, 습관처럼 들여다 본 SNS에서 한 후배가 인턴십에 합격했다는 글을 봤다. 이때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나보다 어린 후배인데, 나는 몇 주를 자기소개서를 쓰는 것에 쏟아 붓고도 거절당했는데. 이 후배의 열정과 그간의 노력을 폄하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내 기분이 그랬다. 







그러니까 나는, 투명한 어항 속의 물고기였던거다. 누군가 던져주는 먹이를 먹고서는 유리를 통해 보이는 세계 속에서 나 스스로 먹이를 찾아냈다는 착각에 빠져 살아온 것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나는 제대로 된 경쟁을 해본 적이 없었다. 학내 언론사에서 1년 반 동안 활동했던 것, 교내 프로그램을 통해 해외 인턴십에 다녀온 것, 교내 학회 활동, 교내 동아리, 교내 프로그램을 통한 봉사활동. 모든것이 학교 울타리 안에서 쌓아온 것들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투명한 어항 속의 물고기였던 것이다. 누군가 던져주는 먹이를 먹고서는 유리를 통해 보이는 세계에서 나 스스로 먹이를 찾아냈다는 착각에 빠져 살아온 것이다. 단 한 번도 어항 넘어로 나가 본 적도 없었으면서. 아, 물고기였으니 어항 밖으로 나갔으면 죽었으려나.



한참을 자괴감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SNS들을 지워내야겠다 결심했다. 어떻게 괜찮아진 기분인데, 남들의 '잘되가는 소식'들로 이렇게 정신이 흔들리니, 도저히 안되겠다 싶었다.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나는 정신력이 매우 취약한 상태여서, 어디 하나 합격하지 않고서는 주변 사람들의 합격소식에 끊임없이 휘청거리고 내 자신감과 자존감은 사경을 헤맬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끊임없이 그들과 나를 비교하며 나를 할퀴고 채찍질 해 댈 것을. 



그래, 다 그런 시기다. 본 게임인 취업이던, 연습게임인 인턴이던 지금 내 시기쯤에 있는 사람들 모두가 나와 같은 고민으로 힘들고 우울해 하고 있다. 나만 특별히 유난떨 것이 아니다. 그런데, 내 기분이 그렇다. 그래서 없앴다. 정신건강과 심신의 안정을 위해. 굳이 SNS 보며 초라하다는 쓸데 없는 감상과 자기연민에 빠지느니, 그러는 편이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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