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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Jan 07. 2016

흥청망청 25살

흥청망청 돈 쓰는 경제학도, 인생구제하기



한 말로 '살기 어려운 시대'라 그런지 요즘 '돈 관리'에 대한 대학생, 직장인들의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돈이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관심의 대상이긴 하다. 한정된 자원(=돈)을 내가 하고 싶은 것들에 가장 합리적으로 쓰는, 그야말로 경제의 기본 원리에 꼭 맞는 활동을 우린 평생에 걸쳐 하고 있다.  체크카드가 등장하고, 스마트폰으로 간단한 은행 업무를 혼자 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경제활동을 한결 편하게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이런 과학의 발전이 우리의 소비를 편하게 해줬지만, 과연 우리의 씀씀이 또한 '합리적이게' 했을까에 대한 것에는 물음표다.



자신의 자산을 증식하는 행위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당연히 매력적이다. 이때 쯤, 그러니까 남자라면 전역 후, 여자라면 3학년 쯤 됐을 때 자신의 '자산'에 대해 눈이 뜨기 시작한다. 취업 준비나 진로계획을 위해 하나 둘 씩 해야 할 것들을 나열해 보면서 동시에 돈 계산이 되는 것이다. 부모님에게 얼만큼을 지원받아야 하는 지,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충당할 수 있는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를 따져보면서 용돈을 관리하는 법이나 재테크를 하는 법에 슬슬 곁눈질을 하게 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지금껏 모아돈 돈이 별로 없거나 아에 없는 경우가 대부분의 20대다.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 산 것도 아니고, 오히려 못 해 본 것 천지인데 통장 잔액은 너무 초라하다. 청약 저축이 무엇인지도 모르거나 정기적금에 대해서는 아직 내 일이 아닌 것처럼 느끼기 부지기수다. 그래도, 이대로 어정쩡하게 있느니 차라리 있는 돈이라도 잘 써서 여윳돈도 좀 남겨보고, 하고 싶은 것도 할 수 있도록 돈을 운용해보자는 결론을 내린다. 나처럼.




청춘을 즐기라는 20대, 소비의 쾌락을 이겨낼 수 있을까





올바른 소비, 저축 교육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매일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지 않는 이상 한 달에 한 번 받는 월급 혹은 용돈을 현명하게 운용하는 것. 그리고 보다 긴 미래를 대비하는 것. 대학생이 되면 알바를 하던 용돈을 받던 일단 손에 쥐는 돈의 금액이 고등학생 때 보다 커진다. 대개 한 번에 한 달 용돈을 받아 그 돈으로 한달에 걸쳐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소비 계획'이 필요하다. 그리고 매일매일 소비가 일어난다는 가장 큰 위험성이 있다. 소비는 저축보다 느끼는 쾌락이 커서 금액의 크기와 상관 없이 중독되기 쉽다. 소비욕구를 조절하지 않으면 우리는 있는 돈을 모두 쓰다 못해 다음 용돈을 받기 한참 전부터 생활고에 시달리게 된다. 평범한 대학생이라면 한 번 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겐 너무도 빈번한 일이지만.



그런데 이 두 교육은 그 목적과 필요성을 뼈저리게 알면서도 정이 안간다. 안그래도 하고 싶은 것이 천지고 돈 써야할 일도 천진데 저축까지 하라니. 그리고 무엇보다 요즘의 두 교육에서 풍기는 '짠 냄새'가 싫다. 목돈 모으게 해주겠다는 책은 한 없이 돈을 아끼라는 소리만 하거나 있지도 않은 종잣돈을 금융상품에 투자하라고 한다.


젊음과 청춘을 즐기라는 20대(특히 대학생)에게 요구하는 '긴축 재정을 통한 저축', 그렇게 이어지는 부자가 되는 방법은 몇 년 후 부자가 된 나에게 되려 미안할 일들만 만들어 놓는다. 그리고 사실, 이미 청춘과 젊음의 맛을 알기 때문에 소비하고 즐기고자 하는 욕망을 이기기란 힘들다. 이를 참아내고 미래를 위해 저축하겠다는 인내는 조금 더 미뤄둬도 될 것 같이 느껴진다.



돈은 모으고 싶지만 책을 보면 나를 너무 스크루지 처럼 만들고 '멋 없게' 만드는 것 같았다. 남들처럼 청춘을 즐기고 싶고, 가끔은 쇼핑도 하고 영화도 보고 친구들, 남자친구와 이따금씩 근사한 데이트도 하고 싶었다. 나 스스로도 소비의 욕구와 절약의 인내 사이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고민하다 결국 여기까지 왔다. 사실 아직도 저축에 대한 고민 없이 조금 더 여유를 부리고 싶으면서도 돈은 모으고 싶고, 나도 좀 똑소리나게 살고 싶었다. 그러니까, 나는 지금까지 흥청망청 살다가 이제서야 좀 정신 차린거다.



대학생 쯤 되면 다 안다. 본인이 받는 용돈수준, 알바 월급 수준으로는 1천만원 이상 모으기가 얼마나 힘든지. 뭐, 한다고 마음먹으면 못 할 것이 어딨겠는가. 대학생이 천만원을 모으는 것에는 몇 가지 예상되는 시나리오가 있다. 그 중 하나는 엄청난 짠순이가 되어있어 돈 쓰는 순간마다 손이 떨리는 '소비 증후군'이 생겨 있고 동시에 목표금액 달성을 위해 밤낮 끊임없이 알바를 하는 것. 아니면 특출난 어떤 재능이나 능력이 있어 일반 시급보다 많은 월급을 받거나 부모님의 용돈이 넉넉한 경우. 그러나 이 둘은 평범한 나에게는 없는 옵션이다.



그래, 이 모든 것이 내 의지박약이라고 치자. 그래도 간간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용돈쟁이가 1천만원을 모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노는 것 외에 지불해야 할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영어학원, 자격증 공부 등 돈 들어 갈 곳 천지다. 토익 시험이라도 한 번 볼라 치면 당장 생활비에 영향 가는게 용돈쟁이 대학생 아니겠는가. 1천만원 모으자고 내가 번 돈 다 통장에 갖다 넣어버리면 결국 부모님께 손 벌리게 되어있다. 그렇게 부모님에게 손 벌려가며 모은 돈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래도 나는 이렇게 살다간 정말 망할 것 같았다.




폭삭 망해버린 첫번째 저축




내가 돈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것은 대학에 입학하면서였다(정신 차린 것과 관심이 생긴것은 엄연히 구별했다). 평범하기 그지없는 가정에서 사립대학교에 딸을 보낸다는 것은 참 힘든 일이었다. 반찬이 한 가지 줄고, 외식 한 번이 줄고, 야식 몇 번이 줄 것이며, 그리고 엄마도 기분 내어 쇼핑하는 횟수도 줄어들 것이다. 입학 당시 장학금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대에 한 번 가자고, 가족들 허리띠를 졸라 매게 만든 것이 죄스러웠다.



그래서, 대학에 입학하면서 돈을 모으기로 결심했다. 한 달에 5만원 씩 1년이면 60만원. 그래도 이래저래 용돈 받은 것들 조금씩 더 넣으면 못해도 80만원 이상은 모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신분증과 도장을 가지고 호기롭게 은행으로 향했다. 1년 정기적금 통장을 만들었고 매달 자동이체 되도록 설정해 뒀다. 돈을 열심히 모아 학비에 보태거나 필요한 것을 사는데 부모님 도움을 받지 않고 할 '생각'을 하니 스스로 대견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비록 용돈 모아 저축하는 것이나, 그래도 조금씩 아껴 돈이 더 들 일, 덜 들게 한다는데 누가 뭐랄 것이 있겠는가.



두 세달이 지날 무렵, 적금 통장을 만든 것에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대학생이 되니 할 수 있는 것도 정말 많았고, 동기들과, 선배들과 놀러가고 술 마시고 어울릴 일도 굉장히 많았다. 매주 10만원 씩 받았던 용돈이 빠듯했고, 적금이 빠져나가는 주가 되면 나는 용돈이 부족해 항상 부모님께 용돈을 더 달라고 해야만 했다. 첫 학기에는 부모님도 대학생이 되어 처음 누리는 대학생활의 기쁨을 이해해 주시는 듯 했다. 그러나 몇 개월이 더 지나고 나서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짓눌렀다.



그럴거면 적금을 왜 들어?



가을 쯤 어느 주말,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저녁을 먹은 뒤, 엄마와 용돈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 때 아버지께서 물었다. "요즘 용돈 많이 받니?" 나는 조금 죄송한 마음으로 "적금을 들고 있다보니 매달 용돈이 부족해 져서요"라고 대답했다. 그 때였다. 예상치 못한 아버지의 답변이 나온 것은. "엄마, 아빠가 적금 들라고 한 것도 아니고, 네가 적금 들겠다고 했으면서 용돈 부족하다고 결국 또 용돈 받아가면, 그게 네 적금이니 엄마, 아빠 적금이니? 그럴거면 적금을 왜 모아? 돈 쓰고 싶은 것 다 쓰고 적금 들면, 그게 저축이니?"



서러웠다. 적금 들고 있으니 빈말이라도 '잘 하고 있다'는 칭찬을 들을 줄 알았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안 드느니만 못하다'는 꾸지람이었다. 사실, 맞는 말이었다. 저축이라는 것이 내 소비를 절약해 돈을 모은다는 것인데, 결국 저축은 저축대로 하고 소비는 소비대로 하면 저축의 의미가 없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신 것이 바로 이것이었다. 적금을 통해 절약해 저축하는 법을 배우길 바라셨던 것이다. 나는 오로지 '적금 들고 있다'는 것에만 의미부여하며 자랑스럽고 뿌듯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아르바이트도 하지 않는 내가 용돈만으로 생활을 하면서 적금까지 들겠다는 것에 계획도 없고, 준비도 없이 무턱대고 발 부터 담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뒤로, 부모님께 약속한 용돈 이외에는 더이상 돈을 받지 않기로 결심'만' 했다. 용돈이 부족하면 야금야금 엄마에게 몰래 타 쓰는 것은 여전히 습관처럼 남아있지만.


그렇게 꾸지람과 어리숙함이 가득했던 적금은 만기가 되어 70만원이 통장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그 뒤로 다시 적금을 들지 않았다.




그래도 남은 인생 구제는 해야지




그렇게 2년 쯤 지났다. 인턴을 다녀오고 텅 빈 통장을 보며 '돈을 모아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들었다. 그래도 한 번 거하게 실패한 전적이 있었는지라, 이번엔 쉽게 은행으로 향하지 못했다. 나는 욕망과 이상의 절반쯤 되는 지점에서 타협하기로 했다. 아무리 현실적으로 생각해 본다 한 들 대학 졸업이 2년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1000만원이나 500만원 규모의 목돈을 만들기란 불가능했다(학생인 나에게는 상당한 목돈이다). 다만, 어떤 것을 시작하려 할 때 언제든 도전할 수 있도록 '종잣돈'을 만드는 정도라면 가능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에 큰 결심이 하나 따랐다. 부모님께 손 벌려가며 목돈을 모으고, 거지꼴을 하며 사느니 목표 금액을 낮추더라도 지금 받는 용돈을 끝으로 더이상 손 벌리지 말자고. 아직도 나는 보험료나 핸드폰 요금을 부모님이 내주신다. 그것까지 지금 당장 감당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용돈관리 능력, 저축 능력이 안정되고 나면 하나씩 내 몫으로 가져오기로 했다. 사실 결정적인 것은 내가 해보겠다고 보험료나 핸드폰 요금 납부를 내 통장으로 해 놨다간 잔액부족으로 보험이 실효가 정지되고 핸드폰 사용이 정지되서 더 큰 재앙을 불러오는 꼴은 못 보겠다는 부모님의 '불신' 이 컸다.



어쨌든 나는 2년, 3년 후를 위한 종잣돈이라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500만원이 훨씬 안되는 돈 일 수도 있다. 어쩌면 100만원을 간신히 모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하는 것은 안하는 것 보단 나으니까. 아니, 사실은 돈 모으는 것 보다, 돈을 모으는 습관을 기르는 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곧 사회로 내쳐질 텐데, 월급통장 관리 못해 시집갈 돈도 못 모아두면, 그야말로 '망하는 것' 아니겠는가.



그래서 목표하는 종잣돈이 얼마냐고? 그건 나도 모른다. 내가 300만원 모으겠다고 한들 300만원만 딱 모아지는 것도 아니고, 나도 나름대로 취업 준비니 공부니 하며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하나씩 하다 보면 300만원도 못 모을 수도 있다. 어쨌든, 감성을 조금 미뤄두고 이성적으로 돈을 쓰자고 결심한 것이 핵심이다.



열심히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한 마디 하셨다.


"그 계획이 3달 가면 내가 그 종잣돈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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