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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 Jun 20. 2017

권태의 유혹

"우리 권태기야?"라고 묻는 내 질문에 그는 적잖이 당황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연속이다. 유독 더 지랄맞게 싸울 것도 없었고, 유난히 더 달달하지도 않은 그런 날들의 연속이다. 이게 뭐지. 왜 별 감흥이 없지. 하다가 물었다. 우리, 권태기야? 하고.



밤 11시 쯤. 그는 1층 작업실에서, 나는 2층 사무실에서 열심히 각자의 모니터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와 나 사이의 공간을 채우는 조용한 음악과 엇갈리듯 타닥타닥 들리는 키보드 소리. 이 분위기에서 문득 '권태기인가?'하는 생각이 스친 것은 정말 변태같았다.


하기야, 권태기라 해도 별 이상할 것도 없었다. 틈만 나면 일 이야기에, 달달함이라고는 아이스크림이 전부였고, 시간만 나면 잠을 먼저 쫓아 가는 것이 요즘이었다. 게다가 1700일을 넘게 만났으니 이쯤 되면 슬슬 권태를 느낄만도. 게다가, 요즘은 날씨까지 권태롭다.



 연애의 금지어, 절대악 같은 '권태기'. 이 단어가 스치는 것 만으로도 마치 연애에 큰 위기나 시련이 닥친 것만 같은, 아니 꼭 그럴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결국 슬리퍼 차림으로 계단 중간 어디쯤에 걸터 앉고 그를 빼꼼 쳐다보며 물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게, 상큼하게, 딱히 진지한 고민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우리 권태기야?'를 물어보던 순간.



"우리, 권태기야?"


얌전히, 열심히 일 하던 그는, 난데없이 날벼락을 맞았다.


"왜?"


"아니 그냥,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들어서."


"아닐껄?"


"그럼 뭐야?"


"집중하는 시기야. 우리의 삶에. 더 나아가고 싶잖아."



우리의 삶에 집중하는 시기라는 그의 말이 좋았다. 권태가 아니라, 우리가 더 나아가기 위해 집중하는 시기라고. 잠깐 스치던 망상을 그의 현답이 위로했다.


바람이나 쐬러 가자는 그의 말에 쿵쿵 계단을 내려왔다. 맞잡은 손을 흔들며 밤바람을 쐬고 있을 때 그가 조용히 물었다.


"갑자기 왜 그런걸 물었어? 그런거 별로 신경 안쓰잖아."

"그러게. 그냥 문득 생각났어."

"뭐야, 멋없게."


그러게. 나 되게 멋 없는 여자네.





발상이 참 구식이네



"연애가 일상이 되어갈 때 권태를 경계하라"


꽤 그럴 법한 연애서 같은 것에서 읽었던 것 같다. 그러면서 '때때로 좋은 자극을 해 줘야한다'는 결론이 이어졌다. 오는 말이 예쁜 날엔 가는 말은 섹시하게 해 줘야 한다거나, 종종 남자들이 잔뜩 섞인 모임에서 번호를 따였다는 이야길 흘린다거나 하는 것들.


예방이 아니라, 오히려 권태를 발병시키는 말 처럼 들렸던 것은 기분 탓이었을까. "연애가 일상이 되어갈 때 권태를 경계하라" 같은 말을 듣고 나면, 여느 때와 다름 없는 상대방의 반응이 괜히 심심해 보인다. 이 말이 내 귀에, 눈에 들어온 순간 연인을 보는 렌즈의 각도가 살짝 삐뚤어진다.


상대방의 반응과 태도, 행동, 말 한마디 한마디가 '괜히' 무덤해 보이고, 이젠 내게 별 관심을 갖지 않는 것 처럼 느껴진다. 그렇게 스스로 걱정과 불안을 만들어 낸다. 처음 만날 때 처럼 반응이 격하지 않아서, 뭔가 더 내게 감동적이고 심장이 간질간질해 지는 말을 해 주지 않아서 서운해 진다. 뜨거워 데일 정도로 섹시하고 치명적인, 보다 더 달달하고, 그보다 더 짜릿한 무언가를 자꾸 요구하게 된다. 그러다 서운함이 연속되고, 없던 불만이 생기다가 결국 싸움에 이른다. 없던 권태를 만들어내는 창조주가 되는 경험을 하는 거다.


이럴 때는 그냥, "발상이 참 구식이네."하고 눈과 귀 밖으로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내는게 상책이다.


"엄한 말에 흔들려 연인을 시험에 빠뜨리고, 고난과 역경에 처하게 하지 말자."


얼마나 멋지고, 세련된 발상인지.


연애가 일상이 되어간다는 의미는 결국 서로에게 그만큼 스며들었다는 의미일거다. 서로에게 안정을 느끼고, 편안함을 느끼는 그런 상태. 그런 상태를 잘 즐기고, 누리고, 있는 그대로 편안함을 느끼면 된다. 나도, 상대방도 편안하게. 연인의 존재와 사랑이 당연한 듯 굴어서, '없어봐야 알지!'하는 심보로 대했다가 된통 당하지 말고.


잊지 말자. 연인과 아주 치열하고 격렬하게 싸울 때, 우리가 그토록 바라던 것은 '평화'였다.






'구릴'수록 꽤나 유혹적이라는 아이러니



이렇게 멋있는 척, 쿨한 척은 다 하면서도 나 또한 결국 연인의 사랑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은 욕망이 들끓어 오른다. '날 얼만큼 사랑해?', '요즘 날 별로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 '우리 서로한테 너무 익숙한가봐. 오빠 왜그래?', '오빠 변했어!' 하는 질문들이 사실 목구멍에서 입안까지 오르락내리락 하기를 수 백번, 수 천번 반복한다.


저런 질문이 실제로 연인 관계에 결코 긍정적이지 못한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질문들은 매우 유혹적이다. 멀쩡히 어제처럼 오늘도 날 사랑하고 있는 연인에게 날벼락을 던지지 말자 하면서도 자꾸 묻고 싶어진다.


사실 '일상 같은 연애를 즐겨라', '편안함, 안정감을 즐겨라'라는 말을 곧이 곧대로 실행하긴 힘들다. 사람에 따라 다이나믹한 연애를 꿈꾸는 사람도 있을거고. 로맨스 소설처럼 항상 날 위해 주고, "네가 없으면, 나도 없어."하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던져 준다거나(실제로 그런다면 무서울 것 같기도 하지만), 날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 던질 각오를 하는 모습들도 때로는 보고싶다(진짜 그러면 완전 부담스러울 것 같지만).


그러나 그 일상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모든 표현이 있다. '식사 챙겨 먹었어?' 하는 관심도 있고, '나 미팅있어. 나 어디 외근 가.'하고 미리 알려주는 배려도 있고, 형식적이 듯 통화가 끝날 때 '사랑해'하고 말하는 애정표현도 있다. 킬링 포인트는 4년 전 감기가 심하다며 도라지와 생강, 배를 넣고 차를 끓여준 정성이었다. 4년 전에.


그 연애 글을 계속 읽으면서 그냥 웃어댔던 것 같다. 피차 피곤하게 왜 굳이 자극을 해야 할까. 그냥, 편안함을 서로 즐기면 안되나. 남자가 내 부탁을 거절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표현에 거침이 없어지는게 대체 왜 이전만큼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일까.


많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일상을, 그 속에 녹아 있는 편안한 연애와 사랑을 원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계속 사랑을 되묻고, 확인하고 싶은 것은 일상 안에 사랑이 녹아 들어서 눈에 잘 보이지 않아서 그런게 아닐까.



요즘같이 햇빛이 좋은 날. 분위기 좋은 카페에 연인과 마주 보고 앉아 가만히 연인을 들여다 보고 있으면 기분이 좋다. '이 사람이 날 사랑하고 있구나. 날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사람이구나' 하고 계속 보고 있으면 마음 한 구석부터 간질이는 기분이 온 몸을 적신다.


그럼 남자친구가 묻겠지.


"왜 그렇게 쳐다봐?"


나는 이렇게 대답할거다.


"'이런 남자가 날 사랑하고 있네' 하는 생각이 들어서."


그러면, 그도 나처럼 간질이는 이 기분을 똑같이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언젠가 소설에서 읽은 것 같다.






저 사진을 SNS에 올리니 남자친구의 선배가 댓글을 달았다.

"이 쯤 되면, 너네 전우애 아니냐."


네, 함께 많은 전쟁을 치루긴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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