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지독한 사랑은 난생처음이라
아, 한 번만 안아달라고 할걸.
미친 생각이다. 미친 생각인데, 나 어차피 떠나잖아. 그 잠시간의 포옹은 당신에게 아무것도 아닐 거잖아. 나는 당신만 생각하면 열이 오르고 호흡이 가빠지다 중요한 발표를 앞둔 사람처럼 심장이 뛰고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그 정도는 괜찮지 않나? 내가 사귀어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훼방을 두려고 하는 것도 아닌데 당신의 품속에 한 번만 안겨 있는 것 정도는 괜찮잖아. 정말 딱 한 번뿐일 텐데.
그런 생각까지 했다. 그가 너무 좋아서, 그와의 마지막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가슴에 사무쳐서, 그런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결국 떠올렸다. 물론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그날 밤을 끝으로 더 이상 만나지 않았다. 며칠 뒤 나는 친구와 타즈매니아 여행을 떠났고 이대로 모든 것이 끝나게 될 것 같았다. 그러나 내 얘기를 들은 친구가 말했다.
“If I were you, I would definitely regret not doing anything to tell him again before I leave.(내가 너였으면 떠나기 전에 뭐라도 했을 거야.)”
그를 다시 만날 자신은 없었다. 다만 고마움은 전하고 싶었다. 누군가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이토록 좋아해 본 적은 정말 처음이라서, 이 감정을 알게 해 준 그에게 고맙다는 말은 꼭 하고 싶었다. 친구가 용기를 북돋아 준 덕분에 그에게 며칠 뒤에 시간 되냐고 물었고, 그는 약속이 있긴 한데 취소될 것 같기도 하다고 무슨 일이냐고 답했다. 다행이다. 차라리 잘됐다. 과연 이 이야기가 얼굴 보고 할 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하는, 나 스스로도 그런 의문이 있었는데 다행히 메세지로 보낼 수 있게 됐다.
잘 지내라고, 늘 행복할 수만은 없겠지만 최대한 덜 다치고 많은 기쁨, 즐거움, 행복만 누리면서 살았으면 좋겠다고. 듣기엔 정말 황당하겠지만 누군가에 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렇게 많이 좋아해 본 적 처음이었다고. 이런 감정 일깨워 줘서 고맙단 말 전하고 싶었다고. 언제 어디서든 늘 찬란히 빛날 테니 누가 뭐래든 개의치 말고, 마음 다치지 말고 잘 살라고. 그렇게 말을 끝맺었다. 아, 속 시원해. 이거면 됐다. 정말이지 더는 바라는 거 없다. 다 끝났다.
다만 그에게 돌아온 답변이 대단히 충격적이었는데, 너무나 다정하게도 내가 남긴 한마디 한마디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건네주었다. 나 진짜 좋은 사람 좋아했구나 하는 생각에 퍽 행복해졌다. 내게 사랑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는데, 이렇게 의미 있는 감정이었구나. 서로의 안녕을 빌고, 그렇게 모든 게 끝이 났다. 나는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는 내게 조심히 가라고 해 주었다. 목적지 없이 주행하는 내 사랑은 그렇게, 호주에 홀로 남겨졌을 테다. 그래야 했는데.
한국에 돌아와서도 하루하루 바쁘게 살았다. 호주에서 새롭게 생긴 목표들을 위해 해야 할 것들이 무척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러다 며칠 전, 앞서 말했던 것처럼 그의 인스타 스토리를 보게 됐다. 그의 스토리에는 나 역시 몇 번 가 보았던 곳에서 찍힌 선셋의 풍경이 담겨 있었고, 여자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계정이 태그되어 있었다. 그에게 애인이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고 있던 사실이고 단 한 순간도 잊은 적이 없는 사실인데 어째서 가슴이 이렇게 저릿한 것일까. 도대체 왜? ... 나, 여전히 좋아하는구나.
그를 좋아하게 된 순간부터 줄곧 그와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만 보면 나도 모르게 흠칫한다. 혹시 그 같은 사람일까 봐 하는, 비릿한 기대감 때문에. 실제로 그와 같은 이름을 하고 그와 비슷한 외양을 한 남자를 지인의 지인으로 만난 적이 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름만 보면 더더욱 마음이 요동친다. 이제는 인정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에게 애인이 없고 그 역시 나를 마음에 들어 했다면 나는 그와 반드시 사귀었을 거라는 것을. 그가 바꾸어 놓은 나의 이상형 때문에 여전히 처리되지 못하고 흐르는 감정을 어디에 분출할 수도 없다. 정말 짝사랑이 왜 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