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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구 May 03. 2020

글을 쓴다는 것

내 첫번째 브런치의 흔적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머릿속 생각들을 문자 형태로 꺼내는 작업이다. 나는 꽤 어린 시절부터 타각타각 키보드를 두들겨 내 눈으로 제일 먼저 읽어보기도 하고, 서걱서걱 글씨를 휘갈기고 자신의 악필을 비웃으면서 그럴듯하게 문자로 된 그림을 그리기도 해왔다. SNS에 짧막한 허세 담긴 부끄러운 글을 적어보기도 하고, 또 언제는 블로그에 누가 읽을지도 모르는 나만의 개똥철학을 두서없이 적어보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글을 쓴다는 것은, 시시각각 변하는 나의 생각의 상태를 붙잡아두는 행위이다. 매일 나는 같은 사람 같지만, 실제로는 마음가짐이나 세포단위의 상태까지도 늘 새롭다. 하물며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 마음속 생각들은 언제나 새로운 법이다. 그냥 그 순간을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내가 쓰는 순수한 글이 쓰여진다. 이것은 온전히 '나의 글'이고 그게 내가 글을 쓴다는 행위를 의미한다. 내가 생각한 것은 '나의 생각'이고, 이걸 말로 표현하면 다시 '나의 말'이 된다. 결국 글을 쓴다는 것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하는 효율적이면서도 때론 가장 비효율적인 것이 아닐까.


회사에 다니면 사업계획서와 각종 보고서, 정리자료들에 치여서 나의 생각이 아니라 남에게 그럴듯하게 보이도록 구성된 문서들을 끝도 없이 만들어낸다.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말로 나오면 나는 곧바로 내 귀로 빨아들여 다시 생각의 사슬에 잇는 것을 반복적으로 해왔다. 도대체 이건 누구를 위한 누구의 생각이던가.


회사 이야기가 나온 참에 한가지 일화를 소개해보겠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문제를 해결하여 사업모델로 만드는 과정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 나는 고심하고 고심하여 이 아이디어를 주변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켰다. 탁월한 아이디어라면서 많은 사람들이 내 생각에 공감하고 일의 방향성이 잡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일주일이나 지났을까? 내 말은 곧 다른 사람들의 생각의 사슬에 깊게 자리를 잡았고, 그 결과 나의 아이디어는 이미 모두가 자신의 아이디어라고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작은 조직이었기 때문에 성과 때문은 아니었다. 진심으로 사람들은 그것이 자기가 생각해낸 아이디어라고 믿고 있었다. 이건 꽤 참신한 경험이었다. 마치 바이러스처럼 어디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른채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시대와 문화를 초월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생각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글과 말은 생각을 전달하는 효율적인 수단이다. 그리고 눈과 귀라는 입력장치를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이 나의 속으로 들어온다. 그리고 나의 머릿속에서 그것은 깊게 숙성되고 재구성되어 '나의 생각'이라는 형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글이라는 것은 내가 말로 전할 수 있는 상대가 내 앞에 없어도 시간차를 두고 다양한 사람들에게 생각의 씨앗을 심을 수 있는 훌륭한 수단이다. 그리고 그 생각이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고 지지받을때의 그 느낌은 나에게 있어서 썩 좋은 기분을 들게한다.


늘 읽기만 했던 브런치라는 플랫폼에 첫 글을 남기게 되었다. 여기 글을 쓴다는 것은, 이 순간 나의 어떤 욕구를 채워줄 끄적거림의 결과물이고, 이 결과물은 다시 씨앗이 되어 흩날릴 것이다. 굳이 생각하면 흐믓한 기분이 든다. 이 맛에 글을 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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