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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race Aug 06. 2020

1. 똥은 너의 손으로

흔히들 말하는 재벌집의 과외 선생으로 이 집 저 집 다니다 보면 상상을 초월한 경험들을 많이 하게 된다.

그리고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황당한 기억이 하나 있다.


열심히 수업을 하던 중 신호가 왔다.

사실 나는 재벌집 과외를 하면서 가장 좋았던 순간이 화장실에 가는 거였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부잣집 화장실 가는 것을 즐겼던 것 같다.

좋은 향기가 나고 멋진 그림이 걸려있는 건식 화장실에 추가로 프랑스 어딘가에서 만들어졌을 법한 고급진 비누..  

그날도 나는 즐겁게 화장실 문을 열었다.







이런 변이 있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프랑스산 수제 비누가 아니라 내 팔뚝만 한 똥덩어리였다.

나는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내 손으로 물을 내릴 생각도 못하고 또 더럽기도 해서  화장실 밖으로 "어머머" 소리를 내며 뛰어나왔다. 그리고 무슨 일이냐며 가정부 아주머니도 뛰어나오셨다.


"똥이..."

"엄청나게 큰 똥이.."

 

그러자 아주머니 께서는 한 숨을 푹 쉬시며 화장실로 들어가 물을 내리고 방향제를 칙칙 뿌리고 나오셨다.

사실 나도 우리 집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면 그냥 대수롭지 않게 물을 내리고 변기에 앉았겠지만..

100평이 넘는 고급 주택 화장실에서 가정 도우미 아주머니가 두 분이나 계신 집에서 남의 똥을 본다는 것은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일이라 당황했던 것 같다.


"저거 철수(가명) 똥이에요!" (철수는 내가 지도하는 학생 이름이다.)

아줌마는 짜증은 나지만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씀하셨다.


"근데.. 다 큰애가 왜 물을 안 내리고.."

나는 정말 이상해서 물어봤다.


" 사모님이 물을 나보고 내리래요!"


???


아니.. 이게 무슨...?


"네? 뭐라고요?"

나는 내가 뭘 들었는지  바로 이해하지 못했을 만큼 충격을 받았다.


"아니... 철수가 계속 일을 보고 물을 안 내리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몇 번 내려주다가.. 

사모님한테 지나가는 말로 철수가 변기 물을 안 내리네요. 이렇게 말을 했더니 사모님이 그냥 나보고 내리래요.

그런 일은 내가 해도 되는 일이고, 당신 아들은 큰 일 할 사람이니 작은 일로 아이 맘 상하게 하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철수 어머님이 말하셨던 큰일이 뭘까? 회사를 세우고 수만 명의 직원을 케어하는 일?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많은 분들이 철수의 어머니처럼 생각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철수의 어머님은 좀 극적인(?) 경우였지만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부모님들이 공부하느라 바쁜 아이들을 위해 기꺼이 본인 손으로 똥(?)을 치우길 마다 하지 않는다. 수행평가를 대신해주고 방 정리 신발정리 가방정리 책상 정리 심지어 친구 정리까지 대신해준다. 그러나 시간이 아주 많이 지나서야 깨닫게 된다. 

그때 내가 치웠던 것은 똥이 아니라 아이가 성장하는데 필요한 밑거름이었다는 것을..


자식을 가르치는데 작고 사소한 일을 없다. 칫솔질도 제대로 가르쳐야 하고 연필을 바르게 잡는 법도 가르쳐야 한다. 인사도 가르쳐야 하고 젓가락 질도 가르쳐야 한다. 작은 일일 수록 제 때에 제대로 배우지 않으면 나중엔 고치려고 해도 쉽게 고쳐지지 않아서 평생 불편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불편들이 쌓이면 불편한 인생이 된다.


자식을 가르치는데 큰 일과 작은 일은 따로 없다. 



PS. 철수는 고교 때 미국의 유명한 보딩스쿨로 유학을 갔다. 철수의 고교 내신에 불만족한 철수의 어머님이 재빨리 손을 써 미국으로 보낸 것이다. 그리고 철수는 미국 학교 생활에 적응을 잘하지 못해서 대입에 실패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군대 제대 후 부모님 회사에 입사하기 위해 한국 대학 입시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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