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실 대신 가족의 품을 선택한 아버지의 평온한 마지막
안녕하세요, 구독자 여러분. 23년 차 전문간호사이자 여러분의 헬스큐레이터 JY입니다.
오늘 제가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병원 중환자실(ICU) 문턱에서 일어났던, 깊은 여운을 남긴 한 환자분의 이야기입니다. 갑작스러운 심폐소생술(CPR)과 '연명치료'라는 무거운 선택지 앞에 놓였던 가족들의 눈물, 그리고 기적처럼 찾아온 4일의 시간에 대한 기록입니다.
20년 넘게 간호사로 근무하며 수없이 많은 삶과 죽음의 경계를 마주했지만, 갑작스러운 이별의 순간은 늘 익숙해지지 않습니다.
최근 전신 쇠약과 폐렴 증상으로 입원하셨던 70세 남성 환자분이 계셨습니다. 몇 개월 새 체중이 7kg이나 빠져 부쩍 야위셨지만, 고유량 산소요법(High flow)에서 일반 산소줄(nasal cannula)로 바꿀 만큼 상태가 호전되고 있었습니다. 식사량도 늘며 "선생님, 고맙습니다" 하시던 다정한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런데 아침 라운딩 때, 어르신이 평소와 다르게 기운이 많이 없어 보이셨어요. "어제 잠을 잘 못 잤어..." 하는 말씀에 "그럼 편히 식사하시고 조금 쉬세요"라고 따뜻하게 말씀드리고 나왔지요.
그렇게 평온했던 아침 인사가 하마터면 생의 마지막 대화가 될 뻔했다는 걸, 그때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불과 15분 뒤, 고요함을 찢는 급박한 콜벨 소리에 병실로 달려갔을 때, 환자분은 눈이 풀린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계셨습니다. 환자는 호흡이 아주 얕고 불규칙했으며, 목에서 짚어본 맥박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당장 심장이 멎어도 이상하지 않을 절체절명의 위기. 저는 지체 없이 복도를 향해 소리쳤습니다.
"선생님! 빨리 코드블루 방송해 주세요!"
그리고 곧바로 침대 위로 뛰어올라 환자분의 가슴에 두 손을 포개고 온 힘을 다해 심폐소생술(CPR)을 시작했습니다.
"코드블루, ○○○병동 ○○내과, 성인"
코드블루 방송이 온 병원에 울려 퍼졌습니다.
제가 땀을 쥐며 흉부를 압박하는 동안, 순식간에 동료 의료진들이 달려와 병실은 전쟁터가 되었습니다. 교대로 심폐소생술이 이어졌고, 기도삽관과 각종 응급처치가 긴박하게 시행되었습니다. 주치의는 환자 상태를 확인한 후, 중환자실(ICU)로 옮겨 집중치료가 필요한 위급 상황임을 가족에게 다급히 전달했습니다.
그때까지 환자 가족은 연명치료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서 마주한 '중환자실'과 '연명치료'라는 단어는 가족들에게 엄청난 공포이자 딜레마였습니다.
아버지를 이대로 보낼 수 없다는 절박함. 그리고 혹시라도 연명치료를 거부하면 내가 아버지를 포기한 몹쓸 불효자가 될 것 같다는 그 무거운 두려움. 저는 가족들의 그 찢어지는 마음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저 곁에서 묵묵히 상황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아드님은 눈물을 머금고 중환자실 입실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겪는 실제 연명치료는 드라마처럼 평온하지 않습니다. 23년 차 간호사로서 고령 환자의 CPR과 기도삽관은 부러지는 갈비뼈의 통증, 수많은 튜브, 그리고 기계음에 둘러싸인 처절한 사투임을 알기에 제 마음도 타들어 갔습니다.
그런데 중환자실로 옮기기 직전, 정말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기도삽관을 한 상태에서 아버님이 서서히 의식을 찾으신 것입니다.
보통은 원활한 집중치료를 위해 진정제를 투여하여 수면 상태를 유지합니다. 하지만 환자분은 의식이 깨어나면서 자신의 현재 상태를 명확히 인지하셨습니다. 주치의가 다가와 중환자실로 이동해 집중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설명하자, 환자분은 온몸으로 강한 거절의 뜻을 표하셨습니다.
"어르신, 지금 숨쉬기가 힘드셔서 중환자실에 안 가시면 위험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안 가시겠습니까?"
아버님은 고통 속에서도 고개를 세차게 저으셨습니다. 눈빛에는 흔들림 없는 단호함이 서려 있었습니다. 생명과 직결된 튜브를 제거하는 것은 의료진에게도 엄청난 부담이자 어려운 결정입니다. 하지만 환자분의 확고한 자기결정권 앞에, 주치의와 가족들은 긴 고뇌의 시간 끝에 눈물을 흘리며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동의 절차를 밟았습니다.
조심스럽게 기도삽관 튜브를 제거했습니다. 물론 심폐소생술의 여파로 흉부의 불편감이 남아있고 가쁜 숨을 몰아쉬셨지만, 놀랍게도 환자분의 의식만큼은 그 어느 때보다 맑았습니다.
튜브를 빼낸 후 흘러나온 목소리는 갈라지고 힘이 없었지만, 놀라 울고 있는 가족들을 바라보는 아버님의 눈빛은 한없이 따뜻하고 평안해 보였습니다.
아버님은 차가운 중환자실의 기계음 속이 아닌, 사랑하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일반 병실에 남으셨습니다. 가족들은 아버님의 손을 꼭 잡고, 미처 하지 못했던 사랑한다는 고백과 깊은 감사의 인사를 원 없이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정확히 4일 후, 아버님은 사랑하는 가족들의 온기 속에서 가장 평온하고 존엄한 임종을 맞이하셨습니다.
만약 그 순간 환자분이 깨어나지 못해 중환자실로 가셨더라면, 가족들은 기계에 의지한 아버지를 보며 깊은 죄책감과 후회 속에 이별을 맞아야 했을지도 모릅니다. 환자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을 결정한 이 기적 같은 4일은, 연명치료가 단순한 의학적 기술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에 관한 깊은 철학적 질문임을 제게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브런치 독자 여러분, 이 글을 읽고 계신다면 오늘 당장 실천해 주셨으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아직 건강하시고 대화가 가능하실 때, 반드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시길 바랍니다.
"아버지가 나중에 많이 아프셔서 숨쉬기조차 힘들 때, 억지로 기계 달고 연명하는 게 좋으세요, 아니면 우리 곁에서 편안하게 가시는 게 좋으세요?"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결코 불효가 아닙니다. 오히려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 자녀들이 '불효자'라는 죄책감의 덫에 빠지지 않게 막아주고, 부모님이 가장 존엄한 모습으로 삶을 마감할 수 있도록 돕는 가장 확실한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마지막으로 주고 싶은 선물은, 평온한 이별입니다."
오늘 들려드린 4일의 기적이, 여러분 가족의 따뜻한 미래를 준비하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1. 제도 알아보기: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웹사이트(www.lst.go.kr)에 접속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의 법적 효력과 등록 기관을 검색해 보세요. (가까운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 등에서 작성 가능합니다.)
2. 자연스럽게 대화 열기: 명절이나 가족 모임 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오늘 내가 인터넷에서 어떤 간호사 글을 봤는데..."라며 제 글을 핑계 삼아 대화를 시작해 보세요.
3. 부모님의 뜻 존중하기: 부모님이 어떤 선택을 하시든, 마음 깊이 존중해 주세요.
4. 건강할 때 문서화하기: 뜻이 모아졌다면, 부모님이 직접 기관에 방문해 의향서를 정식으로 등록하시도록 꼭 곁에서 도와주세요.
오늘도 여러분의 몸과 마음이 모두 평안하시길 빕니다. 헬스큐레이터 JY였습니다.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n.d.). 연명의료결정제도 안내. Retrieved from https://www.lst.go.kr/
보건복지부. (2018).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결정에 관한 법률 (약칭: 연명의료결정법).
최철주. (2015). 존엄한 죽음: 연명치료 중단과 안락사 논쟁을 넘어. 서울: 청림출판.
#연명치료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존엄사 #웰다잉 #심폐소생술 #중환자실 #임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