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가 아닌, 마지막을 사랑으로 채우는 따뜻한 돌봄
안녕하세요, 병원에서 삶과 죽음의 경계선에서 환자분들과 호흡하고 있는 전문간호사 헬스큐레이터 JY입니다.
길고 긴 투병과 중환자실의 고비를 넘겨온 가족들에게, 주치의의 "이제 더 해드릴 수 있는 치료가 없습니다"라는 말은 세상이 무너지는 선고와 같습니다.
병실 밖으로 나와 주저앉아 오열하시는 가족들을 볼 때마다 제 가슴에도 똑같이 멍이 듭니다. 하지만 이 무서운 선고 속에 담긴 진짜 의미를 알고 나면, 남은 귀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비로소 보이기 시작합니다.
의료진의 그 말은 환자를 병원 밖으로 내몰거나 '포기'하겠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치료가 질병의 '완치'나 '생명 연장'을 위한 공격적인 싸움이었다면, 이제는 환자분을 짓누르던 그 무거운 무기를 내려놓게 하려는 '치료 목표의 전환'입니다. 더 이상 무의미한 고통을 주지 않고, 가장 인간다운 마무리를 돕겠다는 '존엄한 선택'이기도 하죠.
독한 항암제나 인공호흡기 같은 처치가 이제는 환자에게 유익보다 고통을 더 많이 줍니다. 그렇기에 치료의 방향을 질병 자체에서 '환자분의 남은 삶의 질과 평안함'으로 전환하겠다는 뜻입니다.
극심한 통증과 숨가쁨을 덜어내어, 환자가 남은 에너지를 사랑하는 가족과 눈을 맞추고 진심을 전하는 데 쓸 수 있도록 돕는 것. 그것이 호스피스 완화의료라는 진정한 돌봄의 시작입니다.
제가 임상 현장에서 말기 암 환자분들 못지않게 자주 뵙고, 또 가슴 아파하는 분들이 바로 심부전, 신부전 같은 '만성 장기 부전' 환자분들입니다. 벼락처럼 떨어지는 암 선고는 온 가족을 충격에 빠뜨리지만, 역설적이게도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치열하게 고민하게 만듭니다.
반면, 장기 부전 환자분들의 삶은 수많은 입퇴원을 반복하는 '희망과 절망의 롤러코스터'와 같습니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또 괜찮아져서 퇴원하실 수 있을 거야." 가족들은 과거의 기억 때문에 이 희망의 끈을 쉽게 놓지 못합니다.
하지만 기능이 다해가는 장기에 억지로 매달리며 무의미한 연명치료에만 몰두하다 보면, 정작 생의 마지막 순간을 아름답게 준비할 골든타임을 놓치고 맙니다.
긴 간병에 지쳐 깊은 우울 모드에 빠지고, 결국 이별할 마음의 준비조차 없이 허망하게 마지막을 맞이하시는 분들을 뵐 때면 그 안타까움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그저 내 집으로 가고 싶다..." 수많은 말기 환자분들이 제 손을 잡고 하시는 진심입니다. 차가운 기계음과 소독약 냄새 대신, 가족의 온기가 있는 곳에서 마지막을 보내고 싶은 인간의 당연한 존엄이죠.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호스피스'나 '완화의료'는 죽으러 가는 곳, 혹은 가족의 도리를 다하지 않는 불효라는 꼬리표가 붙어 금기시되곤 합니다.
여러분, 완화의료는 더 해드릴 치료가 없을 때 밀려나듯 가는 곳이 아닙니다. 진단을 받는 그 순간부터, 치료의 과정과 나란히 발을 맞추어 환자의 고통과 불안을 덜어주는 동반자여야 합니다.
우리에겐 생의 유한함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웰다잉(Well-dying) 교육이 절실합니다. 존엄사에 대한 사회적 합의와 준비가 있을 때, 비로소 오늘 하루와 내 곁의 사람들을 더욱 가치 있게 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 병원에서 참 다행스러운 변화를 마주합니다. "사랑하는 가족에게 무거운 간병의 짐과 결정의 죄책감을 지우고 싶지 않다"며, 건강할 때 미리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분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실 저 역시 20년 전, 당시 남자친구였던 지금의 남편과 우연히 명동성당을 방문하던 길에 뜻을 모아 장기기증과 조혈모세포 기증 서약서에 서명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무수한 죽음을 곁에서 지켜보며, 언젠가 맞이할 우리의 마지막이 누군가에게 생명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가족들이 무의미한 연명치료 앞에서 고통스러운 고민을 하지 않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더 해드릴 치료가 없습니다"라는 말을 들으셨을 때 부디 무너지지 마십시오. 그것은 환자분이 차가운 중환자실 기계음에 파묻혀 고통 속에서 생을 마감하는 대신, 조금이라도 덜 고통스러운 상태에서 마지막 생의 존엄을 지켜낼 수 있도록 돕는 무겁지만 반드시 필요한, 가장 용기 있는 결단입니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내린 가족들의 그 숭고한 결단이, 환자분의 마지막 여정을 평안하게 지켜줄 것입니다.
1.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해 두기: 의식이 명료할 때 무의미한 연명치료(인공호흡기 등)에 대한 본인의 뜻을 밝혀두는 것은 가족에게 주는 든든한 사랑입니다. 가까운 국민건강보험공단 지사나 보건소, 지정된 의료기관에 신분증을 지참하고 방문하시면 본인이 직접 작성 가능합니다.
2. 조기 완화의료 상담 요청하기: 장기 부전이나 암 진단을 받으셨다면, 치료가 다 끝난 후가 아니라 치료의 과정 중에도 통증과 불안을 덜어주는 지지적 돌봄을 주치의와 꼭 상의해 보세요.
3. 미루지 말고 오늘 건네는 인사: "이번 고비만 넘기면..."이라고 훗날로 미루지 마세요. 환자분의 컨디션이 가장 좋은 오늘, 사랑하고 감사했던 기억들을 소리 내어 전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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