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책방

-소란서림 소설 창작

by 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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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희는 전기밥통을 열어 잡곡밥 한 그릇을 퍼 담아 식탁 위에 놓는다. 다시 냉장고 문을 연 순희는 몇 개 없는 반찬통 사이에서 총각김치 그릇을 꺼내고 1.5리터짜리 생수병을 꺼내 식탁 의자에 앉는다. 순희는 밥에 물을 부은 다음 숭늉이 된 국물을 마신다. 자고 일어나면 늘 똑같은 패턴이다. 순희는 눈을 뜨자마자 밥을 먹는 습관이 있다.

남편은 늘 그걸로 잔소리를 했었다. 아침부터 탄수화물을 그렇게 먹으면 안 된다고. 어느 날은 사과나 양배추를 사 와서 아침에는 그걸 먹자고 했다. 그렇게 건강을 챙기던 건 남편이었는데, 세상에 자기만 남기고 그렇게 빨리 가버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 순희는 사레가 들려 몇 번 헛기침을 한다.

평생 집하고 회사만을 쳇바퀴 돌 듯 오가던 순희의 남편은 정년을 채우지도 못하고 돌아갔다. 어느 날 기침이 그치지 않아 찾았던 병원에서 그는 폐암 4기 판정을 받고, 딱 일 년을 버텼다. 순희가 쉰 살이 넘어서까지 일했던 병원이었다.

순희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하고 어른 말도 잘 듣는 모범생이었지만, 가난한 농부의 첫째로 태어났다. 상고를 들어가게 해 준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상황에서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간호학원으로 직행해 간호조무사가 되었다. 친구들 중에는 일찍 시집을 가서 집안에 주저앉는 경우가 흔했지만, 순희는 악착같은 데가 있었다. 세상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고 해야 할까? 최소한 자기만큼은 평생 먹여 살릴 만큼의 기술을 꼭 배워야 할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예감은 적중했다.

순희가 스물네 살에 만난 남편은 농협 직원이었다. 입원 환자의 문병으로 순희의 병원에 곧잘 오던, 마르고 얼굴이 새하얀 청년이었다. 순희 못지않게 조용하고 정이 많던 그는 귀가 얇아서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기를 몇 번 당했다. 그가 평생 술담배를 즐겼던 이유도, 순희가 쉬지 않고 일을 해야 했던 이유도 다 그 연장선 상에 있었다.

그래도 순희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보는 재미에 살았다. 양처럼 순하고 사랑이 많은 아이였다. 종일 앉아서 조용히 그림만 그려도 좋다고 해맑게 웃던 아이, 윤석. 순희는 윤석이 미대를 갈 때까지만 해도 기대가 있었다. 세상의 아름다움을 흡수하고 그에 버금가는 무언가를 세상에 내놓을 줄 아는 사람으로 아이가 성장하기를 그 누구보다 바랐다.

윤석은 군대에 갔다 오더니 변했다. 불현듯 미대를 자퇴하더니 자신은 큰 물에 나가 돈을 많이 벌 거라며 미국으로 날아갔다. 아들의 패기에 놀라 순희와 남편은 얼결에 비행기값을 마련해주기까지 했지만, 그 이후까지 거의 매달 생활비를 보내야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이는 마흔 살을 넘긴 지금까지도, 순희가 혼자가 된 지금까지도 정기적으로 손을 벌렸다. 그 시기가 뜸해지기는 했지만 액수는 점점 커지고 있었다. 순희가 이십 년을 산 아파트를 팔고 작은 임대아파트에 살고 있는 이유기도 했다. 남편의 암 진단 사망보험금이 없었다면 아마 그마저도 처분해야 했을 테지만.

순희는 밥을 다 먹고 설거지를 한다. 기름기가 없는 식사여서 세제 없이도 그릇은 금방 헹궈진다.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를 하며 순희는 거울을 본다. 만 67년, 거의 매일을 마주한 얼굴인데 순희는 자신이 낯설다고 느낀다. 거울 안에 있는 건 진짜 자기가 아닌 것 같다. 여기저기 늘어진 살, 거뭇거뭇 올라온 검버섯, 총기 없어진 눈매, 그래도 제 얼굴에 정이 들었는지 거울을 보는데 슬프다는 생각이 든다.


밥을 다 먹고 나면 순희는 늘 산책을 나갔다. 시간도 거의 일정했다. 아침 여덟 시, 아파트를 나서, 아파트 상가를 지나서 천변으로 내려가 공원을 한 바퀴 돌아오는 일. 산책은 거의 한 시간에 걸친 하루의 의식이다. 산책을 돌고 와서 커피를 내려먹는 일, 순희가 하루 중에 가장 좋아하는 일이기도 하다.

순희는 단출하게 옷을 갈아입고 현관을 나선다. 가을 하늘이 유난히 파랗다. 순희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 역시 가을이다. 그날 순희는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순희는 매일 걷는 길을 모두 새롭게 보며 하나하나 인사를 하듯 걷기 시작한다. 그녀의 오래된 습관이다. 생전 남편은 늘 바쁜 사람이었지만 한가한 주말에는 함께 산책을 나서주었다. 둘이 걷던 길을 혼자 걸으려니 처음에는 되려 마음이 무거워져서 포기하기도 했다. 그래도 남편이 가고 일 년 후쯤부터는 서서히 기존의 루틴을 찾을 수 있었다.

순희가 아파트 상가를 지나 천변 쪽 막다른 길에 다다랐을 때, 끝 상가에 아침부터 사람들이 몰려있다. 피아노 학원이 빠지고 오래 비어 있던 곳이었다. 아마도 곧 가게가 들어서는 모양이다. 순희는 자신의 일처럼 귀가 쫑긋해졌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사실 어떤 가게가 들어서든 순희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생필품이나 식료품 가게가 아니고서는 순희와 관련이 없었다. 순희 자신이 몇 살까지 살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기에게 써야 할 돈을 최대한 아껴야 했다. 다 늙어서 어디에서 일자리를 얻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제 그녀가 자기 인생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필연적으로 욕심을 버리고 내려놓는 일 말고는 없었다. 순희는 걸음을 빨리하며 호흡을 가다듬는다.

순희는 천변을 지나 공원을 한 바퀴 돌고 시계를 봤다. 전날과 거의 같은 속도였다. 등 뒤로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순희가 다시 아파트 상가로 접어들자 이번에는 중년 여자가 빈 상가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파마머리를 길게 늘어뜨리고 발목까지 내려오는 검은 원피스를 입은 키가 작은 여성이다. 전체적으로 동글동글 귀여운 이미지였다. 순희는 문득 가게의 정체가 궁금해졌다. 순희는 지나가는 말로라도 어떤 가게가 들어오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순희가 나이 들며 터득한 대인관계의 기술은 최대한 말을 삼가는 것이었다. 나이 들수록, 추한 늙은이가 되지 않으려면 최대한 말을 아낄 것, 그것만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인 것 같았다. 순희는 마음을 접고 걷는 속도를 늦추지 않은 채 집으로 향했다.


순희는 집에 들어와서 샤워를 하고, 커피 한 잔을 내려 창쪽 의자에 앉았다. 순희는 이곳 임대 아파트로 이사 왔을 때, 이곳 전망이 마음에 들었다. 아파트가 오래된 만큼 주변 나무들의 나이도 많아서 5층 창가에서 보는 전망이 시원했다. 대부분 벚나무였는데 봄이면 꽃이 환했고 여름이면 이파리들이 창창했다. 벌써부터 이파리들이 갈변해서 하나둘 거리에 흩날렸지만 그마저도 운치가 있었다.

창밖을 보며 순희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을 때, 그녀의 전화벨이 울렸다. 순희는 안 봐도 발신자를 알 것 같았다. 지금 은둔자처럼 아파트에 갇혀 사는 자신을 찾을 사람은 윤석이밖에 없었다. 순희는 천천히 커피잔을 내려놓고 전화기 쪽으로 걸어간다.

“오랜만이야, 엄마.”

“그래, 어떻게 지냈니?”

“맨날 그렇지 뭐. 잘하면 올 겨울엔 한국에 갈 수 있을 거 같아.”

“그러니?”

순희는 최대한 마음을 절제하며 되물었지만 속으로는 기쁨이 번졌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들이 어쩌다가 그 지경이 된 걸까?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길래 그렇게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앞으로 살면서 아들을 몇 번이나 더 볼 수 있을까?

“응, 엄마, 그래서 하는 말인데, 마지막으로 이번 한 번만 도와줄 수 있어? 여기 정리하고 있는데, 이번에 차도 팔고 가구도 내놨거든, 그래서 곧 돈이 들어올 거 같아. 근데 집세가 좀 밀려서 그것만 좀 처리하고, 돈 들어오는 대로 바로 돌려드릴게.”

언제나 똑같은 패턴이다. 그렇게 가져간 돈을 윤석이 갚은 적이 있었던가? 몇 번 진귀한 선물을 택배로 보내온 적은 있었지만 돈을 돌려준 적은 없었다.

“거기 정리하고 아예 들어온다는 얘기야?”

“상황 봐야겠지만 그럴 거 같아.”

순희는 기대감이 생겼다.

“그래서 얼마가 필요한데?”

“한 육백 정도?”

윤석이 한국에 그대로 있었다면 월 육백은 벌 수 있었을까? 무슨 일을 해야 월 육백을 벌 수 있을까? 순희는 생각했다.

“엄마! 여보세요?”

“으응, 그래 한번 보자.”

“엄마, 진짜 마지막이야. 여기 처분하면 그동안의 것까지 한꺼번에 드릴게.”

“윤석아. 어디 아픈 데는 없니?”

순희는 윤석의 안부가 진심으로 걱정됐다.

“엄마! 이번 주까지 가능해?”

윤석은 뭐에 쫓기듯 급하게 얘기한다.

“그래, 이따 은행에 가서 해볼게.”

전화를 끊고 순희는 한참을 그대로 서 있다. 점심 햇살이 창문으로 들어오는 걸 느끼며 순희는 사는 게 참 징글징글하다는 생각을 한다. 남편이 남긴 보험금과 자신에게 남은 얼마 안 되는 재산을 몽땅 윤석에게 부쳐주고 싶다.


순희는 다시 외출복으로 갈아입는다. 통장과 도장과 신분증을 챙겨 가방에 넣는다. 공원 건너 은행직원에게 다시 부탁해 볼 참이다. 육 개월에 한 번쯤, 정기적인 행사인데도 해외송금은 늘 낯설고 어려웠다. 처음에는 아들을 유학 보냈냐며 대단하다고 순희를 치켜세우던 직원도 이제는 별말 없이 순순히 절차를 밟아주었다. 오늘은 어떤 표정으로 그녀를 또 볼 것인가? 순희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며 캡모자를 눌러쓴다. 캡모자 바깥으로 지푸라기 같은 머리칼이 새어 나온다.

아침과 달리 순희의 발걸음이 무겁다. 10월 초입, 아직 낮의 해는 기운이 있었다. 순희는 열두 달 달력의 날짜와 자신의 나이를 비교해 본다. 그러니까 자신의 나이를 달력으로 치면 10월 말쯤 되려나? 조금 넉넉하게 지금과 같은 10월 초라고 봐도 무방한가? 상가를 벗어날 찰나에 아침에 봤던 상가 앞으로 책장이 주욱 늘어선 게 보인다. 아침에 보았던 긴 머리의 여자는 택배 기사와 한참 얘기 중이다. 책장이 저렇게 들어간다면 북카페인가? 순희는 속으로 생각한다.

순희도 한창 책을 읽던 시절이 있었다. 삼 교대를 하며 바쁘게 지내던 시절, 그녀는 짬짬이 소설책을 읽으며 시간을 견뎠다. 그렇게 평생 취미라고는 책읽기밖에 없던 순희의 책장에도 책들이 꽤 모여 있었다. 하지만 남편이 가고 집을 이사하며 순희는 그 책을 모두 예전 아파트 도서관에 기증해 버렸다. 모두 다 짐이었고 모든 게 귀찮았다. 이제 자신에게 취미라고는 없었다. 종일 텔레비전을 틀어놓고 멍하니 봤다. 마치 하루가 빨리 저물기를 기도하는 사람처럼 그녀는 아침 산책을 끝내면 그 뒤로는 집에서 빈둥거렸다. 아침과 크게 다르지 않은 점심을 차려 먹고 잠시 졸다가 텔레비전을 보다가 다시 저녁을 차려 먹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강아지라도 키워볼까? 어느 날 순희는 문득 생각했다. 윤석이 어렸을 때 한참 강아지를 키우게 해달라고 조르던 시절이 있었다. 바쁘다는 핑계로, 아파트에서는 산다는 핑계로 단칼에 거절했지만. 그때 윤석이에게 강아지를 선물했다면, 집을 자주 비우는 부모를 대신해 강아지라도 정을 붙이게 해줬더라면 윤석은 다르게 컸을까? 산책하다가 종종 마주치는 강아지를 보며 순희는 생각했다. 산책길에는 순희 또래의 늙은이들도 강아지들과 함께인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안 될 일이었다. 이제 혼자가 된 이상 자신은 언제 어떻게 될 줄 몰랐다. 의식을 잃고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남편처럼 자기도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면, 그때 그 작은 생명을 어떻게 한단 말인가. 아니다. 강아지를 키울 돈을 한 푼이라도 아껴서 윤석에게 주어야지.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어느새 은행 앞이다.


“무슨 업무 보시게요?”

입구에 있는 직원이 묻는다.

“아, 네. 해외송금을.”

“저기 문 열고 들어가시면 돼요.”

순희가 익숙한 문을 열고 들어가자 송금 담당 직원이 전화 통화를 하며 순희를 알아보고는 고개를 끄떡한다. 순희는 그녀가 전화를 끝낼 때까지 통장만 쳐다보고 있다. 마지막으로 윤석에게 송금했던 게 겨우 5개월 전이다. 그때는 무슨 핑계였더라?

“어머니, 송금하실 거예요?”

직원이 웃으며 묻는다.

“네.”

“이번에는 얼마요?”

“육백을…….”

순희는 조그맣게 대답한다.

“어머니, 어머니가 이렇게 계속 퍼주니까 아들이 정신 못 차리는 거예요.”

직원은 순희와 가까운 사이인 듯 타박한다.

“아니,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에요. 곧 들어온대요. 한국에. 여기로 온다구요.”

순희는 자기가 믿고 싶은 미래를 변명처럼 늘어놓는다.

“아아, 네에.”

직원은 말꼬리를 늘이며 순희를 놀리는 듯하다. 순희는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것이 수치심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것 때문인지 모를 일이다. 아직도 자기 몸에 이렇게 뜨거운 기운이 있었다는 게 놀라울 정도로 순희는 바들바들 떤다. 직원도 순희의 기운이 이상하다고 느꼈는지 그 뒤로는 조용하게 일처리를 한다.

시간아, 어서 가라. 순희도 더는 말없이 직원의 일처리를 기다린다. 그녀도 누군가의 사랑스러운 가족일 터였다. 순희 자신이 여기서 화를 낸다고 그녀가 내뱉은 말이 주워 담기지 않았다. 화도 제대로 낼 줄 모르는 성미, 직원의 말대로 자기의 그런 흐지부지 맺음이 불분명한 태도 때문에 윤석이 그렇게 된 것일지도 몰랐다.


순희가 씩씩대며 다시 공원을 지나 천변을 지나 상가 입구에 다다랐을 때 상가 안으로 그새 책장이 다 들어갔다. 휑하던 시멘트 박스가 나무 책장만으로 온기를 품었다. 순희는 마술처럼 변한 그곳에서 눈을 못 떼고 있다. 상가 문이 열리고 여자가 나와 인사한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저, 여기에 책방 열어요. 문 열면 놀러 오세요.”

애교 섞인 저음의 목소리다. 둥근 뿔테 안경 사이로, 작지만 반짝이는 두 눈이 고요했다.

“책방이요?”

순희는 의아해서 묻는다.

“네, 요새는 이렇게 작은 책방들을 열어요. 여기서 책도 팔고 커피도 팔 거예요. 독서모임 같은 것도 하고요.”

“그럼 여기서 책을 살 수 있다는 말인가요?”

“네, 선생님 책 좋아하세요?”

“아……. 예. 그래요. 준비 잘하세요.”

순희는 얼결에 대답하고 걸음을 돌린다.

“안녕히 가세요.”

여자는 순희의 뒷모습에 대고 인사한다. 공기 반 소리 반인 목소리. 삼십 대 중반의 순희와 오래 같이 호흡을 맞췄던 간호사 윤도 그런 목소리였다. 그녀가 군인인 남편을 따라 남쪽 지방으로 이사를 가면서 헤어졌지만, 순희와 윤은 나이도 비슷하고 아이를 낳은 시기도 비슷해서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녀는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순희는 윤이 보고 싶었다.

순희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윤에 대한 생각과 그 시절의 남편과 윤석과 부대끼던 일들을 떠올렸다. 사람을 만나고 서로 얼굴을 보고 살을 부비며 살 수 있었던 일이 아주 먼 옛날 일처럼 느껴졌다. 그것이 다 자기가 겪은 일인지, 실제 있었던 일이었는지조차 의심스러워졌다. 도대체가 삶이라는 것이 이렇게 기억으로만 남는 거라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기억이 맞기는 한 건가? 자기가 한때 가졌고, 진짜 그것만은 자기 거라고 여기던 모든 것들은 다 어디로 간 건가? 순희는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돌림노래처럼 그 생각을 했다.

자기처럼 여기저기 삐걱거리는 아파트, 순희는 마치 자기 자신을 보듯 천천히 낡은 아파트 단지를 조망하며 뻔대 없는 글씨체로 ‘506호’가 박혀있는 보금자리로 들어선다. 그나저나 방금 길에서 마주친 여자는 그곳에 책방을 연다고 했다. 순희는 자신이 한 때 책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잠시 생각한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책을 사본 건 언제였더라? 기억이 안 날 만큼 까마득하다. 순희는 거실장에 꽂힌 몇 권의 책을 본다. 이사 오면서 대부분 버리거나 기증했지만 차마 버릴 수 없었던 책들이다.

한강 <채식주의자> 9년 전, 순희는 병실에서 잠든 남편 옆에서 한강의 책을 읽는다. 산소호흡기를 낀 남편의 목에서 규칙적으로 가르랑 소리가 난다. 순희는 한강이라는 작가를 이 책을 통해 처음 만난다. 순희는 오랜만에 자신과 결이 닿는 소설의 주인공 영혜에게 감정이입을 하는 중이다. 자신과 남편도 한때는 영혜와 형부처럼 서로의 몸에 집착을 했었다. 사랑 표현이 서툴고 수줍음이 많은 남편도 잠자리에서만큼은 정력적이었다. 그것이 얼마나 극기에 가까운 행위였는지 순희는 알았다. 본능보다 이성의 기능이 훨씬 더 발달했던 남자, 그가 무엇을 극복하고 자신의 몸을 점령하려 했는지를. 그 젊고 패기 만만하던 남자가 저렇게 침대에 누워 죽는 날만 기다리고 있다니, 순희는 남편이 가여워져 그의 손을 꼭 쥐어본다. 자고 있다고 생각했던 남편이 순희의 손을 마주 꼭 쥔다. 순희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또르륵 떨어진다.

신경숙 <외딴 방> 25년 전, 초등학교 6학년인 윤석과 오랜만에 일찍 집에 들어온 남편과 순희는 김치찌개로 저녁을 먹는다. 순희는 신이 났다. 지난밤 나이트 근무를 하고 그날 아침 전철역에서 산 책이 너무 재미있었다. 농촌에서 나고 자라 여공이 된 작가의 성장담이 마치 순희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 저녁을 먹고 치우고 윤석과 남편이 모두 잠자리에 들면 밤새 읽어낼 작정이었다. 저녁 밥상을 치우고, 세 가족이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다가, 아이와 남편이 차례로 잠이 든 후, 드디어 순희는 식탁 겸 책상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한다. 그날 밤부터 신경숙은 순희가 제일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권정생 <강아지 똥> 윤석의 네 살 생일이었다. 순희가 데이 근무를 마치고 집에 혼자 있는 윤석을 걱정하며 부랴부랴 퇴근을 준비하고 있을 때, 윤이 로봇과 우주선이 빼곡히 그려져 있는 포장지에 담긴 선물을 내민다. “순희 쌤 윤석이 낳느라 고생했어요. 윤석이도 똥 얘기 좋아하죠? 우리 형걸이도 이걸 제일 좋아하더라고요. 이모가 생일 축하한다고 전해주세요.” 순희는 빵집에 들러 생크림 케이크를 사서 집에 들어간다. 남편은 그날 회식이라 윤석과 순희 단둘이 생일상을 차려 먹는다. 아빠가 오는 걸 보고 자겠다고 조르던 윤석, 윤석은 순희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어주는 ‘강아지 똥’을 듣다가 스르르 잠이 든다.

계몽사 소년소녀 세계문학전집 <톰 소여의 모험> <강아지 똥> 옆으로는 <톰 소여의 모험>도 꽂혀있다. 국민학생이 된 윤석은 순희가 방판으로 들인 계몽사 세계문학전집을 무척 좋아했다. 집에 혼자 있을 때가 많아서 책에 더 집착하는 것 같았다. 그중에서도 윤석은 <톰 소여의 모험>을 특히 좋아했는데, 한동안 윤석은 마치 자기가 톰 소여가 된 것처럼 말하고 행동했다.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늘 모험을 떠나듯 집을 나서던 윤석, 겁도 없이 동네 뒷산을 안방처럼 드나들던 그 시절의 윤석이 순희는 그립다.

신경림 <농무> k여자상업고등학교 2학년, 순희가 짝사랑하던 담임 선생님은 국어선생님이다. 순희는 모든 과목 중에 당연히 국어 시간을 제일 좋아했다. 담임의 책상 한편에는 신경림의 <농무>가 놓여있다. 어느 날은 담임이 칠판에 <갈대> 시 전문을 옮겨 쓴다. 그는 겉모습처럼 글씨체도 근사하다. ‘산다는 것은 속으로 이렇게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란 것을 그는 몰랐다’ 순희는 담임이 쓴 구절 중에 그것을 되풀이해 읽으며, 어쩌면 앞으로 자기 앞에 펼쳐질 삶이 희극이기보다는 비극에 가까울 거라는 예감을 한다.

톨스토이 <부활> 순희가 열두 살이 막 되었을 때, 마을회관에 처음으로 ‘마을문고’ 코너가 생겼다. 그래봐야 200권 정도의 책이 2층 책장에 2줄로 들어섰을 뿐인데, 마을에서는 잔치를 연다. 순희는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 들어가 본다. 마을회관 특유의 시멘트 냄새와 새 책 냄새가 섞여 은은한 향기가 난다. 도스토예프스키, 레프 톨스토이, 윌리엄 셰익스피어,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순희는 그곳에서 처음으로 낯선 이름의 작가들을 만난다. 제목은 거의가 다 한자로 쓰여 있는데 그중에 톨스토이의 <부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가 한자 밑에 친절하게 음을 써놓았는데, 나름 최선을 다한 그 행위의 결과는 <복활>이었다. 순희는 어른이 되고 처음 서점이라는 곳을 구경하다가 그것이 오류였음을 안다. 그것이 재미있어서 순희는 한참 <부활> 앞을 얼쩡거리다가 책을 구입하고야 만다.


순희는 산책을 갈 때마다 일부러 상가를 빨리 지나친다. 한번 주인장과 안면을 튼 터라 어색해지기 싫어서다. 이른 아침에는 대부분 상가가 비어 있고 지나칠 때마다 아주 조금씩 모양새가 바뀌어 있다. 순희는 빠른 걸음으로 걸으면서도 꼭 한 번씩은 과감하게 고개를 돌려 상가의 변화를 체크했다.

그렇게 지나다닌 지 2주가 지났을 무렵, 산책에서 돌아오는 길에 순희는 드디어 책방 간판을 보았다. “다정책방”이라는 아기자기한 글씨가 가로로 나무에 새겨져 있다. 왠지 주인장의 모습과 닮은 꼴이다. 순희는 걸으면서 작게 ‘다정, 다정, 다정’이라고 말해본다. 발음해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순해진다. 주인장 이름이 ‘다정’인 걸까? 아니면 주인장의 삶의 철학이 ‘다정함’일까? 촌스러우면서도 노골적인 그 단어가 나쁘지 않다고 순희는 생각한다.

순희는 아파트 상가에 있는 마트로 발길을 돌린다. 왠지 그날은 자신에게 좀 순한 음식을 선물하고 싶다. 순희는 자연스럽게 빵코너로 걸어가 칼을 대지 않은 식빵을 고른다. 그날 점심은 살짝 구운 식빵에 사과잼을 발라 오래오래 씹을 것이다.


순희는 그날이 다정책방 개업 날이라고 생각하며 눈을 뜬다. 창문에 붙은 팸플릿에는 오전 11시부터라고 쓰여 있었다. 순희는 주인장이 가져다 놓은 책들이 제일 궁금했다. 많게 잡아도 오십 정도밖에 안 돼 보이는 주인장은 어떤 취향이려나. 자기 같은 노땅이 가도 될 분위기려나. 순희는 궁금한 것이 많다. 오늘 가 보면 대충 알 것이다. 억지로 만들려고 해도 사람 인연은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순희는 수없이 경험했다. 어쨌든 부딪혀봐야 안다. 순희는 물에 만 밥을 꼭꼭 씹으며 생각한다.

순희는 다른 날보다 조금 일찍 준비했다. 그새 아침저녁으로는 찬기운이 있다. 순희는 바람막이 속에 조끼를 받쳐 입는다. 이맘때쯤 남편이 즐겨 입던 옷이다. 순희는 대부분 남편 옷을 버렸지만, 남편이 겨울마다 목에 두르던 목도리 하나와 보풀이 일어났지만 아직 입을만한 니트 몇 벌은 버리지 않았다.

아침 일찍인데도 상가 앞에 사람들이 보였다. 순희는 일부러 그쪽을 쳐다보지 않고 공원 쪽으로 직진했다. 공원까지 한 바퀴 돌고 다시 돌아오는 길에는 화분이 몇 개 보였다. 지나가며 슬쩍 보니 주인장은 무언가를 열심히 포장하고 있다. 아마도 개업 선물이리라. 맞은편 남자도 함께였다. 둥글둥글한 인상이 왠지 그녀와 닮았다. 순희는 당장이라도 문을 열고 들어가 말을 걸어보고 싶다. 하지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

순희는 집에 돌아와 오래 씻는다. 살짝 화장도 한다. 가진 옷 중에서 가장 단정해 보이는 옷으로 갈아입는다. 11시가 되려면 한 시간이 남았다. 순희는 커피를 내려서 창가에 앉아 천천히 마신다. 나뭇잎들은 이제 거의가 떨어졌다. 하늘도 새파랗다. 이맘때쯤이면 순희는 꼭 한 번씩 남편과 산을 찾았다. 윤석이 대학에 진학하면서는 진짜 세상에 둘밖에 없는 것 같았다. 집안의 맏이로서 순희가 챙겨야 할 일들도 있었고 가끔은 집으로 찾아오는 동생들도 있었지만, 부모님이 차례대로 돌아가면서는 그마저도 뜸해졌다. 일찍 혼자가 된 시어머니만이 이제나 저제나 둘째 아들 내외를 찾았지만 집이 멀다 보니 자연스럽게 책임질 일이 덜했다. 남편이 가고 시어머니는 순희를 잘 찾지 않는다. 아들을 먼저 보낸 어미의 심정이리라.

순희는 남편과 도장 깨기를 하듯 전국의 산을 돌자고 했었다. 설악산을 시작으로 내장산, 지리산, 오대산, 속리산……. 전화벨이 울렸다. 윤석이었다.

“그래.”

“엄마! 진짜 미안한데 400만 더 해줄 수 있어? 그럼 딱 천만 원인데.”

“윤석아.”

“엄마, 진짜 마지막이야. 한 달 내로 제가 정리할게요. 거의 다 정리했어요.”

“한 달 내로 정리하고 들어온다는 거니?”

“그럴 거 같아.”

“그럴 거 같다니, 정확하게 말해야지?”

“한 달까지 안 걸릴 수도 있어요. 엄마. 진짜 나도 더는 못 버티겠어. 빨리 정리할게요.”

“정리하는데 왜 돈이 들어가?”

“엄마, 그동안 내가 빌린 돈이 있었어. 근데 여기 정리되면 다 받을 거야. 돈을 주기로 한 데가 있어.”

“400이면 돼?”

“더 여유 있어?”

“아니, 400이야 그럼, 딱 400. 더는 안 돼, 윤석아, 엄마도 힘들어.”

순희는 최대한 천천히 또박또박 얘기한다.

“알았어요. 엄마, 고마워. 진짜 고마워.”

커피 잔을 치우고 순희는 화장실에 들어간다. 화장실 거울에 비친, 한껏 꾸민 자기 모습이 역겹다.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어디에 가려고? 기껏 동네책방에 가고 싶어서? 결국 은행에나 갈 거면서? 순희는 휴지를 잘라 입술의 루즈를 지운다. 그리고 다시 캡모자를 눌러쓴다.

이제 막 문을 열었는지 책방 앞이 소란하다. 그새 화분이 입구에 가득하다. 슬쩍 고개를 돌려보니 노란 불빛이 가득한 공간에 사람이 꽉 차 있다. 주인 내외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느라 바쁘다. 몇 개 안 되는 테이블에는 사람들이 모여 서서 시루떡을 먹고 있다. 순희는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발걸음을 빨리한다.


순희는 집에 틀어박힌다. 아침에 눈을 뜨고 밥에 물을 말아먹고,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존다. 졸다가 깨서 점심을 차려 먹고 다시 소파에 기대어 앉아 텔레비전을 본다. 다시 존다. 졸다 깨면 바깥은 어둑어둑하다. 순희는 저녁 먹는 것도 잊은 채 다시 일인용 침대에 눕는다. 그렇게 일주일쯤 지났을까? 어느 날 오후 순희는 소파에 누워 졸다가 익숙한 멜로디에 놀라며 눈을 뜬다. 노래는 <님은 먼 곳에>이다. 1986년, 김추자 스페셜 영상이다.

김추자는 순희가 젊은 시절 제일 좋아했던 가수였다. 순희는 누운 채로 김추자가 <님은 먼 곳에>를 처연하게 부르는 모습을 본다. 노래의 분위기와 달리 삼십 대의 김추자는 탱글탱글 아름답다. 모습도 목소리도. 사회를 보는 두 사람도 생판 젊은 모습이다. 순희는 한동안 그 상태로 누워서 쇼를 보다가 <무인도> 후렴구에서는 결국 일어나 앉는다. 순희는 조용히 노래를 따라 한다. ‘솟아라 태양아, 어둠을 헤치고, 찬란한 고독을 노래하라, 빛나라 별들아, 캄캄한 밤에도, 영원한 침묵을 비춰다오’ 순희는 목소리를 높인다. ‘불어라 바람아, 드높아라 파도여!’ 순희는 마치 무대에 선 듯 소리 지른다. ‘파도여’ 순희의 눈에서 눈물이 펑펑 솟는다. 병원 회식 자리에서 부르던 순희의 18번이었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조용하던 사람이 마이크만 잡으면 바뀐다고 동료 간호사들이 놀리곤 했다. 순희가 2절을 부르는 사이 휴대전화가 울린다. 순희는 그것도 모르고 울면서, 웃으면서 노래를 완창 한다. 부재중 전화가 찍힌다.


이튿날 아침, 순희는 눈을 뜨고 심호흡을 한 번 한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순희는 창문을 활짝 열고 이부자리를 잘 개어 놓는다. 그리고 방문을 열고 부엌으로 가서 냉장고 문을 연다. 냉장고 안에는 계란 5개, 먹다 남은 마른미역 한 봉지, 총각김치 한통이 있고, 연달아 연 찬장 안에는 조미김 한 박스, 참치캔 2개가 있다. 순희는 팔을 걷고 요리를 시작한다. 흐르는 물에 쌀을 세 번 씻어 전기밥솥에 꽂고, 조미김을 살짝 얹어 계란말이를 하고, 기름기를 뺀 참치 미역국을 끓이고, 평소에 반찬통 채로 먹던 총각김치도 그릇에 잘 담는다. 순희는 정자세로 앉아 갓 지은 밥과 반찬들을 맛있게 먹는다.

설거지를 하고, 샤워를 하고, 순희는 가벼운 옷차림으로 갈아입는다. 산책할 때보다는 깔끔하지만 지난번처럼 구색을 갖춰 차려입지는 않는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순희는 거울을 마주 보고 한번 미소 지은 다음 루즈를 살짝 바른다.

전날 본 쇼의 마지막 곡, 김추자의 “그런 거라네”노래가 깔리는 듯 순희의 발걸음이 산뜻하다. 표정도 당당하다. 식빵을 샀던 마트를 지나고, 미용실을 지나고, 아이스크림 가게를 지나고, 치킨집을 지나고, 세탁소를 지나고, 부동산을 지나고, 드디어 ‘다정책방’ 앞. 순희는 심호흡을 한번 한다. 딸랑.

“어서 오세요.”

여자 특유의 다정한 목소리.

“안녕하세요?”

순희 특유의 순한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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