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글쓰기(영화)
쉬는 시간, 오롯이 혼자가 됐을 때, 나는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본다. 바깥이라면 어디서나 책을 펼치지만, 집에 있다면 백이면 백, 나는 영화를 찾아보는 편이다. 볼 영화는 언제나 쌓여있다. 넷플릭스, 디즈니, 쿠팡 플레이 등 나의 텔레비전에는 온갖 ott 앱이 깔려 있고, 무슨 일인지 요즘은 좋은 신작들이 마구 쏟아져서 나는 툭하면 극장으로 달려간다. 원래 그랬는데 요즘 내게 시간이 생겨서 이제야 눈에 들어오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시골에 살다 보니 문화생활을 할 만한 게 영화밖에 없어서 일까? 애니웨이, 나는 요즘 그 어느 때보다 영화를 자주 본다.
책이야 그렇다 치고, 영화는 무슨 이유일까? 그만큼 나는 이야기를 좋아하고, 누군가의 삶을 엿보길 좋아하는 것 같다.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온통 영화와 책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다. 이동진, 신형철, 김혜리, 이다혜 등. 그러니 내가 종일 책으로 갔다가 영화로 갔다가 다시 책으로 돌아오는 일은 당연하다.
영화 평론가들을 덕질한 덕분에 좋은 영화를 만날 수 있었던 건 내게 큰 축복이다. 책이 책을 불러오듯이, 영화도 영화를 불러온다. 감독에 꽂히면 그 감독 작품을 죄다 몰아본다거나, 배우에 꽂히면 그 배우가 출연한 다른 작품을 죄 찾아보는 식이다. 예전에 <프란시스 하>를 보고 노아 바움백의 작품을 정주행했던 것도, <콜미 바이 유어 네임>을 시작으로 티모시 샬라메의 작품을 정주행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영화는 ‘보고 또 보고’ 싶은 영화다. 내용도 좋고, 연기도 좋고, 음악도 좋고, 영상미도 끝내주는 영화는 한 번 봐선 성에 안 찬다. 봐야 할 영화가 쌓여 있는 상황에서도 기회가 되면 다시 보기를 하고 싶은 영화, 언제든 한 번 더 봐서 눈에, 가슴에 꼭꼭 담아두고 싶은 영화가 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가 두 번 이상 일부러 찾아본 영화는 많지 않은 것 같다. 불현듯 다시 떠오르고, 그래서 기어이 찾아보고, 또 한 번 절절하게 영화 속으로 쏙 빠져본 경험. 흔치 않은 일이기에 이참에 꼽아봤다. 내가 세 번 넘게 다시 보기 한 영화가 뭐였지? 딱 세 편을 골라보았다.
먼저 내가 제일 많이 다시 보기 한 영화는? 두구두구두, 바로 제임슨 카메론 감독의 <타이타닉>이다. 너무 많이 봐서 지금도 영화를 떠올리기만 하면 음악 소리가 먼저 들리는 듯하다. 마치 문지기가 파티장의 문 손잡이를 잡아 내게 열어주는 것처럼, 잔잔한 파티 음악이 흘러오는 것이다. 음악과 함께 타이타닉호에 초대된 나는 영화 안으로 걸어 들어가 계단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손을 잡는 것이다.
할머니 로즈의 발톱에 곱게 칠해져 있던 새빨간 매니큐어, 선착장에 앉아 목탄으로 그림을 그리던 잭, 칵 퉤! 장난스레 배 바깥으로 침뱉기를 하는 로즈, 로즈의 아름다운 몸매를 감쌌던 붉은색 드레스 자락, 그리고 그 유명한 차 유리 창의 손바닥 자국, 얼어붙은 잭을 바다 밑으로 내려보내며 이별하는 장면 같은 것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눈을 감은 채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 잭을 보고 얼마나 가슴이 미어졌는지, 나는 만날 똑같은 장면에서 오열한다. 정말이지 그때의 레오나르도는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아, 타이타닉 얘기만 해도 여기서 한 시간은 떠들 수 있을 것 같다. 아쉽지만 다음 영화로.
그다음 많이 본 영화는 <가을의 전설>이다. 감독도 모른다. 제작자도 모른다. 그냥 긴 머리칼을 휘날리며 말을 타고 오던 브래드 피트의 미소와, 슬픈 눈을 지닌 그의 큰 형, 한창 리즈 시절이었던 줄리아 오몬드와 아름다운 인디언 소녀가 떠오른다. 사이좋은 시골 마을의 세 형제가 도회지에서 온 한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
이 영화가 만들어질 때쯤 브래드 피트는 <흐르는 강물에서>에서도 비슷한 캐릭터를 소화했다. 야성미 넘치는 자유로운 영혼과 상처를 지닌 채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려는 의지의 소유자. 두 작품 모두에서 뿜어져 나오던 브래드 피트의 매력은 정말 어마어마했다. 브래드 피트뿐이랴. 검은 파마머리를 허리까지 늘어뜨렸던 줄리아 오몬드의 묘한 매력도 일품이었다. 내가 아직까지 긴 머리를 고수하는 이유도 다 그녀 때문이다. 비극적인 그들의 러브스토리와 미국의 대자연 위로 울려 퍼지던 영화음악도 ‘가을의 전설’이라는 제목답게 여운이 길게 남았다.
마지막 영화는 <노트북>이다. 대학교 때 ‘영화로 읽는 철학’이라는 교양과목 교수가 ‘사랑’파트 수업에 가져온 영화였다. 자기 기준 최고의 사랑 영화라는 소개와 함께. 당시 50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좁은 강의실에 옹기종기 모여 영화를 보던 시간이 떠오른다.
그때는 나 역시도 첫사랑을 호되게 하는 중이었고, 옆자리에는 바로 그 연인이 앉아 있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나는 옆 사람의 존재를 거의 잊고 라이언 고슬링에게 빠져들었었다. 그때 그 사람은 지금 어느 하늘 아래 잘 살고 있을지 갑자기 궁금해지네. 애니웨이, 나는 그 이후로 마음이 허전할 때마다 이 영화를 보는 것 같다.
호수 앞에 그림 같은 집이 있고, 평화로운 호수 위로는 새가 날고 노을이 지고, 사랑하는 사람과 나는 조그만 배를 타고 노를 저으며 호수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상상. 천국이 있다면 아마 그런 모습이지 않을까? 나를 위해 모든 것을 주는 남자에게 그런 돌봄을 받을 수 있다면 치매에 걸려도 좋겠다고 배부른 상상을 하며, 나는 진짜 이런 사랑이 있다고 믿고 싶은 것 같다.
이렇게 세 편을 꼽고 보니 나라는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좀 알겠다. 나는 그러니까 ‘사랑’ 얘기를 좋아하는구나. 그것도 그냥 스치듯 만나서 그럭저럭 살았다가 아니라, 정확히 그 사람이어야 하는 사랑. 세상에 단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랑 이야기 말이다. 4학년 7반이 되고도 이렇게 사랑 타령이라니, 이놈의 사랑. 천상 나는 사랑 때문에 살고 사랑 때문에 죽는 로맨티스트가 맞나 보다.
방금 어떤 손님이 책을 읽다가 좋은 구절을 발견했다며 읽어준다.
"이 사람이 창밖 풍경을 뭐라고 표현했는 줄 아세요? 글쎄, '매일 만나는 작은 영화'래요."
부서진 배, 아비규환 속에서 펼쳐지는 구구절절한 사랑 타령을 하다가 정신이 번쩍 든다.
고요한 창밖 풍경을 보며 '충분하다'고, 내가 가진 사랑의 소중함을 되새기며 '이거면 충분히 영화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나도 되고 싶다.
그나저나 창밖 풍경은 사랑하기 딱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