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왔다고 해서

-주제 글쓰기(봄에 관하여)

by 소란

봄이다.

‘봄’이라고 쓰고 보니 궁금해졌다.

‘여름, 가을, 겨울’은 다 두 글자인데, 왜 ‘봄’은 한 글자로 만들어졌을까?

봄, 봄, 봄봄. 왜 한 글자로 만들어 ‘봄봄’ 두 번 부르게 됐을까?

‘봄봄’ 두 번 불러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건 의도였을까? 결과였을까?

봄은 ‘보다’가 어원일까?

만약에 그렇다면, 사람들은 봄이 되면서 무엇을 보게 되었을까?

그새 잊고 있던 것, 겨우내 사라졌던 것, 그리운 그것을 다시 보게 됐다는 거겠지?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뭔가를 보게 되는 걸까?

그렇다면, 봄이 왔다고 해서 새로 보게 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봄.

우선 옷이 달라졌다.

오늘 만난 그녀의 옷은 연분홍색이었다.

분홍, 노랑 옷을 자신 있게 입을 수 있는 건 아마 봄뿐일 것이다.

사람뿐인가? 나무와 풀들도 한창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성질 급한 애들은 분홍, 노랑꽃을 먼저 피우고, 느긋한 애들은 작고 앙증맞은 연둣빛의 이파리를 보란 듯이 내민다.

‘이 작은 것이 얼마나 커지는지 볼래?’ 하며 장난치듯이.

분명히 작년 이맘때 본 것이고, 재작년, 재재작년에도 본 것인데, 그 모습은 언제나 보는 이의 마음을 흔들어놓는다.

말라비틀어질 것 같던 가지에 생기가 돌고, 마디마디에 돌기가 생기고, 그곳에서 기어이 무언가가 터져 나온다는 게, 여전히 신기하고 경이롭다.

누군가가 마법을 부리지 않고서야 그런 일은 어떻게 가능한가?

어릴 적 내가 살던 고향 집은 온통 산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이맘때면 음침하게 어두웠던 산 전체가 서서히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연두가 번져 초록으로, 초록에서 진초록으로, 진초록에서 다시 노랑으로, 빨강으로 물드는 산을 보며, 계절을, 세월을 직관적으로 느꼈다.

아무튼, 봄은 ‘꽃을 봄’,‘연두를 봄’이 출발이다.

그 이후, ‘생기를 봄’, ‘생기 있는 너를 봄’으로까지 확장되는 이야기.

그녀가 오늘 어떻게 분홍색 옷을 입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다.

그녀도 자연의 생기를 닮고 싶었을 것이다.

변한 자연을 보고 문득 용기가 생겼을 것이다.

화사해지고 싶었을 것이다.

변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렇게 ‘두근두근 봄봄’ 거리는 심장을 안고 내 앞에 나타났을 것이다. 환하게.

그래, 봄에는 서로의 얼굴에서 다시 힘껏 살아보고 싶은, 그 환한 마음을 보는 것 같다.

그 마음이 너무 귀해서 이 찬란한 계절의 이름은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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