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심포니오케스트라, 지휘자 올라리엘츠,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의 연주.
한동안 분명히 찾아온 듯한 봄날씨가 겨우내 꽁꽁 얼었던 몸과 마음을 말랑말랑 부드럽게 녹여주더니, 역시나 꽃샘추위의 계절 아니랄까 봐 갑자기 차가운 겨울 날씨가 따뜻한 3월의 한때를 급습하였다. 그날은 공교롭게도 국립심포니의 시벨리우스 곡이 연주되는 공연일이었다. 시벨리우스 곡 하면 기분 탓인지 몰라도 으레 겨울 북유럽의 이미지가 연상되기에, 시벨리우스 곡 연주일자에 맞춰 찾아온 게릴라 겨울날씨가 꼭 마법처럼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날은 2025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자인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 그리고 현 에스토니아 국립관현악단 음악감독인 지휘자 Olari Elts(올라리 엘츠)가 국립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호흡을 맞춰 Erkki-Sven Tüür의 '템페스트의 주문'을 비롯한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협주곡, Op.47 및 교향곡 2번, Op.43을 연주했다. 바이올리니스트 박수예의 시벨리우스 콩쿠르 우승 후의 연주는 아마도 처음 듣는 것 같다. 젊은 연주자들이 콩쿠르 우승 전후를 기점으로 연주 스타일에 크고 작은 변화를 보이는 경우가 많기에, 이번 박수예의 연주도 굉장히 궁금하고 기대가 됐다.
공연의 서곡과도 같았던 '템페스트의 주문'에 대해 솔직히 말하면 지금으로선 그다지 기억이 나지 않아서 쓸거리가 없으니 넘어가겠다.
이어서 연주된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에서는 박수예의 풍성한 음량과 절제된 감정선이 초입부터 귀를 번쩍 뜨이게 했다. 박수예의 바이올린 소리는 오케스트라에 전혀 지는 기색 없이 단단하고 맹랑하게 서사를 끌고 나갔다. 아쉬웠던 점은, 솔리스트와 오케스트라가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었으면 좋았을 텐데 이따금씩 그러한 느낌이 깨지거나 빈약하게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었다. 더불어, 내 앞자리 커플의 엄청난 시각적 훼방이 연주를 실제보다 더 산만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데 큰 몫을 했던 것 같다. 근래 들어 더욱 자주, 음악을 듣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가벼운 데이트 코스 중 하나로써 연주회장을 찾는 이들이 늘어난 듯 보인다. 예전이라고 안 그랬겠냐마는 근 몇 년 새 부쩍 극심해진 탓에 덩달아 피로도도 나날이 극심해져만 간다.
2부의 시벨리우스 교향곡 2번 라장조, Op. 43 (Symphony No. 2 in D Major, Op. 43)에서는 역동적이고 박진감 있는 전개로 서사를 쌓아 올려나가며 4악장에서는 록페스티벌 폭죽 피날레처럼 한껏 폭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확실히 4악장은 사람을 울컥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데, 엘츠의 해석은 그 감정을 더욱더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향한 것 같았고, 구르고 구르다가 매우 거대해진 감정의 눈덩이는 왠지 몸을 피해야 할 것처럼 부담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되려 무척이나 차분한 상태로 한 발짝 물러나 음악을 바라보는 상태가 되었다.
1부와 2부 모두 전반적으로 좋았지만 어딘가 다소 산만했다는 느낌이 은은하게 남았다. 그 느낌에 대해 조금 더 곱씹어볼 틈도 없이 맞닥뜨린 공연 후 저녁의 추위는 정리되지 않은 그 인상을 급속냉동시키듯 그대로 얼려 버렸다. 요즘은 넷상에 하도 날 서있고 호전적인 사람들이 많아서 무슨 말 한마디를 꺼내기가 극히 조심스럽다. 글을 닫기 전, 이를 무릅쓰고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장르마다 나름의 관람 예절과 법도가 있음을 숙지하고, 아니 최소한 누군가가 알려주었을 때 수용하고자 하는 태도를 지니고 예술 관람의 장에 방문해 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