샌디에이고미술관 특별전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

by Daria



'또 인상주의'의 유행을 이어가는 이번 타자는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를 내건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이다. 또 인상주의니 뭐니 희화화해도 막상 작품을 마주하면 그 예술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지 않을 수가 없으니, 세종문화회관의 이번 전시 역시 보다 폭넓은 시기의 미술사를 다룸으로써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만족스러운 경험을 제공했다. 몸 상태가 별로 좋지 않은 날 꾸역꾸역 방문한 전시였음에도 불구하고, 전시장을 나오는 길엔 힘들어도 오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을 만큼 꽤 좋았다.




이 전시는 기본적으로 전시장 내 작품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있으며, 일부 몇몇 작품들에 한해서 사진 촬영을 허용해 두었다. 개인적으로 (국내 한정) 사진 촬영을 허용하지 않는 전시를 좋아하는 편이라 이번 전시의 쾌적한 관람 환경이 흡족스러웠다.


아마도 촬영이 허용된 가장 첫 번째 사진이었던, 베르나르디노 루이니의 <막달라 마리아의 회심>. 으레 그렇듯 유명한 화가들은 다른 화가들의 화풍에 영향을 주곤 했는데, 이 작품 또한 다 빈치 화풍의 영향이 강하게 뻗친 흔적들을 엿볼 수 있다. 국내에 다 빈치의 작품이 들어오는 경우는 드물기에 루이니의 이 작품을 통해 조금이나마 다 빈치를 느껴볼 수 있다는 의의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림을 보는 재미와 읽는 재미가 함께 공존하는 것은 물론이요, 독특하고 기괴한 화풍이 매력적인 그의 작품 세계 덕분에 참 좋아라 하는 히에로니무스 보스. 오죽하면 난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스페인까지 날아갔을 정도이다. 본 전시에 걸린 것은 (당연하게도) 그를 유명하게 만들어준 대표작 정도의 체급이 아니지만 이 작품 또한 그의 매력을 느껴보기에 충분한 맛보기 스푼이 되어줄 것이다. 가운데에 있는 평온한 얼굴의 그리스도와 대비되는 인간들의 광기 어리고 추악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그림을 바라보는 우리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나는 혼자 있을 때 종종 성선설VS성악설에 대해 나 혼자만의 내적 토론을 벌이곤 하는데 이 작품을 보니 또다시 그 논제를 띄워보지 않을 수가 없다. 여러분은 성선설과 성악설, 그리고 성무선악설 중 어느 쪽을 지지하시는지?




그림을 보자마자 누가 봐도 반 다이크 풍이라고 생각이 들었던 앤서니 반 다이크의 헨리에타 마리아 초상화이다. 반 다이크의 초상화들은 런던살이 때 정말 더 이상은 미련이 없을 만큼 실컷 봤다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이렇게 또 보니 역시 그의 초상화 실력은 감히 질릴 수 없는 우아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그림 속 여인이 입은 드레스의 옷감 표현을 가까이서 보면 정말 감탄이 나온다. 나였어도 그에게 초상화를 의뢰했을 것 같다.




엘 그레코프란시스코 데 고야의 그림들도 전시되어 있다. 엘 그레코 또한 매우 좋아하는 화가이고(난 무교이므로 종교적인 이유는 전혀 아니다) 역시나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스페인으로 날아갔던 바 있을 정도이다. 다른 유명한 그림들만큼은 아니지만 이 작품 또한 엘 그레코 특유의 화풍을 살짝 맛볼 수 있다.





공연장 덕후들로 잘 알려진 에드가 드가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의 그림들도 볼 수 있다. (미술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들은 아니지만... 구색 맞추기를 위함이겠지?)




점묘화를 시도한 여러 화가들 중 한 명인 막시밀리앙 뤼스의 <노트르담 대성당>은 차갑게 가라앉은 듯한 색감이 매력적이었다.




주체적인 여성 화가들의 작품도 나란히 놓여 있다. 관능적이고 매혹적인 모습의, 혹은 관음적인 시선으로 그려진 듯한 여성 누드화들을 보면 마음이 썩 편하지 않은데 여성을 있는 그대로, 한 인간으로서의 모습으로 그린 이들의 여인화를 보면 마음이 한결 편안해진다.





밝고 경쾌한 그림을 그려냈던 화가 라울 뒤피의 그림들도 두 점 만나볼 수 있었는데 작품 간의 연도 차이가 제법 있다. 그 덕분에 뒤피 고유 화풍의 변화를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초기 작품에는 비교적 뒤피스러움은 없으나 색에 대한 그만의 태도 또는 철학이 은은하게 배어나는 듯하다.




1935년작인 이 작품은 뒤피의 화풍이 확립된 시기에 그려진 것으로, 뒤피만의 리드미컬한 선 스타일과 강렬하고 경쾌한 색 스타일이 굉장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어 한참이나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그림을 감상하였다.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예술가들은 역시 남다르구나 싶었다.




세종문화회관에서의 전시를 보고 건너편 건물로 이동하는 길에 세종대왕 동상을 마주했다. 역시 후대에 이름을 남기는 사람들은 남다르구나.




미술사적으로 엄청난 가치가 있는 작품들은 아닐지라도 폭넓은 시기의 여러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걸어둔 이번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은 각 시기별 미술 사조를 훑어보고 여러 매력적인 미술 작품들을 즐길 수 있는,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는 전시였다.


한편, 과거로 시간 여행을 하다가 21세기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드는 바, 새삼스레 드는 생각은 나답게 사는 것이 역시 제일이라는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사람들의 생각이나 가치관 또한 불변의 형태로 고여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함께 흐르고 변한다. 남들의 기준이란 시간이 흐르며 변화하기 마련인데 그 기준이라는 것에 맞추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는 법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나답게 사는 것이 곧 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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