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움과 영감으로 가득했던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by Daria



제59회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이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진행되고 있어 다녀왔다. 오후 늦은 시각에 관람할 예정인 연주회가 있어 예술의전당을 방문했다가 겸사겸사 기웃거려 보았는데 생각보다 무척 좋았다. 아니, 그냥 좋았다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고, 매우 감동적이었고 커다란 영감을 주었으며 아주 아주 흥미롭고 즐거웠다. 아동 도서전에 기반한 전시이지만 작품은 아동만을 겨냥하고 있지 않다. 오히려, 삶에 경험치가 어느 정도 축적되어 있고 살아오는 동안 충분한 희비를 겪은 성인들에게 다른 시선에서 훨씬 더 깊은 울림을 줄지도 모를 작품들이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에 대해 생소할 관람자들을 위해 벽면에는 아래 사진과 같이 친절한 안내문이 게시되어 있다.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 그리고 라가치상이란?



이탈리아의 '볼로냐'라는 도시가 어떤 특징을 지닌 곳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하고 있다. 짤막하게 로마 여행을 다녀올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걸 보니 로마만 다녀오면 많이 아쉽겠구나 싶다. 새삼 내가 사는 이 지구가 정말 크고 흥미로운 터전이라는 생각이 든다.


볼로냐란?



전시 초입에서부터 마주하게 되는 그림이 벌써 예사롭지 않다. 나의 평범한 일상에 방문한 이 우주토끼들에게는 이 풍경이 얼마나 낯설고 비범하며 흥미롭게 보일까! 일상을 여행하듯이 살면 매일매일이 권태가 아닌 경이와 아름다움으로 가득할 것이라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한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공상을 즐기던 내가 어릴 때 자주 상상 속에 그리곤 하던 모습들이 실제로 그려져 있어 매우 놀랐다. 별안간 작가와 나 사이에 강한 유대의 끈이 이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눈을 뗄 수 없는 흥미로운 그림들이 많다.




이 <가짜 놀이>라는 작품은 정말 좋았다. 우리가 살면서 갖게 되는 다양한 페르소나의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 모두에 대해 고민해 보게 되는 그림들이었다. 너무 좋아서 이 작품 앞에 꽤 오랫동안 서 있었다.




어쩜 보기만 해도 행복하고 활기찬 그림들로 기분이 좋아지는 전시이다.




이 그림들은 보면서 <The Swamp>라는 동화가 생각났다. 시중에 동화책으로 출판된 이야기는 아니고, 교육용 리딩 교재 수록을 위해 쓰인 이야기인데 학생들과 수업 시간에 제법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예쁘고 선명한 색 사용과 단순한 선 구성이 인상적이었던 하다 요시코의 <작고 귀여운 체리> 시리즈.




이 그림들 또한 너무너무 좋아서 오랫동안 그 앞을 떠나지 못하고 보았던 작품이다. 엉망 같은 상황 속에서도 유쾌함을 잃지 않는 할머니들의 좌충우돌 여행기가 마음을 따뜻하게 해 주었다.




앙헬리나 몬테로의 <도시의 단편> 시리즈 역시 오랫동안 음미한, 앞서 언급한 몇 작품들을 포함하여 기억에 남는 나의 최애 작품들 중 하나이다.




보자마자 "오잉?? 이 그림들은 굉장히 보쉬(Bosch)스러운데??"라고 생각하였는데, 오른쪽 하단에 작게 쓰인 안내문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보쉬와 브뤼헐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이 그림들도 마음을 참 몽글몽글 따사롭게 만들어 주었다. 어릴 때 학교가 끝나면 온 동네를 탐험하듯 쏘다니며 놀다가 그림 속 풍경과 같이 붉은 황금빛 노을이 푸근하게 내려앉을 때쯤 저녁을 먹으러 집으로 가던 기억을 떠올리게 했다.




한국 작가들의 기발하고 재미있는 작품들도 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내 침실 천장에 붙여주셨던 별, 달 모양의 야광 스티커에 대한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르도록 하는 그림이었다.




어릴 때 읽은 교육용 동화책에서 무조건 보았을 법한 내용의 그림들이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 난 책벌레 그 자체였는데, 새삼 이토록 많은 책들을 읽고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신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예술의전당에서의 이번 제59회 볼로냐 일러스트 원화전은 보는 내내 공감도 많이 되었고, 웃고 때론 울기도 하면서, 인생에의 다채로운 영감을 받을 수 있었던 전시였다. 구체적인 꿈은 아니지만 막연하게 나중에 언젠가 어른들을 위한 동화를 쓰고 싶다고 어렴풋이 생각해 왔었는데, 이 전시를 보고 나니 두 가지 서로 다른 생각이 동시에 든다. 하나는 "세상에 이렇게 재능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의 얄팍한 소망 따위론 비벼볼 수가 없겠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이 전시에 모인 작가들이 내게 이토록 큰 감동과 영감을 준 것처럼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작은 이야기로 감동을 주고 싶다."라는 것이다. 둘 중 어떤 생각이 최후에 살아남아 나를 움직일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그날까지 계속해서 인생의 경험을 쌓고, 사람들 속에 부대끼어 살며 교훈을 얻고, 어떻게 하면 사람들의 마음속에 불안을 걷어내고 숨어있던 낭만과 기쁨을 캐낼 수 있을지 고민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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